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43화 (43/1,826)

§ 나는 될놈이다 43화

-네?

-자세한 건 네가 직접 봐. 네가 보여준 얼굴 맞는 거 같은데.

구성욱은 급하게 필이 보내준 영상을 확인했다.

정말 그 대장장이가 나왔다고?

‘뭘로 나온 거지?’

하긴, 그런 식으로 장비에 옵션을 부과할 수 있다면 언제 유명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금 대장장이는 어느 곳에서든 다 구하려고 하는 인재니까.

그러나 나온 영상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대단하지? 너도 보고 있냐?

-어…… 이게…… 뭔…….

-그래서, 맞아?

-얼굴 맞는 거 같은데…… 아니…… 분명 초보자였는데……?

처음에 태현을 봤을 때, 구성욱은 초보자라고 생각했다.

먼저 타이럼은 초보자들(잘 모르고 속은)이 시작하는 곳이었으니까.

게다가 태현의 겉모습은 그렇게 레벨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장비도 별로 대단한 것들이 아닌, 기본 장비 같은 것들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초보자가 아니면 대장장이 옆에서 왜 그 짓을 하고 있었지?’

태현이 타이럼에서 한 건 토끼를 잡은 것과 NPC들에게 요리를 해준 것, 그리고 대장장이한테 기술을 배운 것 정도였다.

당연히 초보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저렙은 아닌데? 레드존 길마가 여러모로 함정에 빠지기는 했는데, 저렇게 이기려면 절대 초보자는 아니지. 레드존 길마가 레벨 몇이었지?

-82였을 걸요. 저보다 2 낮죠.

구성욱의 목소리에는 살짝 자부심이 섞였다.

판타지 온라인에는 레드존 길마보다 레벨이 높거나 더 강하지만, 아직 기다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구성욱도 스스로가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를 잡으면 그들의 길드도 당당하게 나아갈 것이다.

판타지 온라인 랭커들의 꿈은 모두 똑같았다.

대륙의 황제!

물론 각자 눈앞의 목표는 다르겠지만, 가장 높은 목표는 대륙의 황제였다.

성이나 도시 하나 얻기도 힘든데, 대륙의 황제라니. 생각만 해도 멀고 대단한 목표였다.

-그러면 아무리 낮게 봐도 70은 넘지 않겠어?

-아니, 근데 진짜…… 그러면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던 거지?

-아. 혹시 이런 거 아닐까? 원래 본래 직업은 따로 있는데, 레벨 좀 올리고 나니까 대장장이 기술이 배워지고 싶어진 거야. 그래서 타이럼에 와서 대장장이 기술을 배운 거지. 겉모습이 허름하다고 했지? 그건 괜히 눈에 띄기 싫어서 위장한 거고.

-레벨 70 넘긴 플레이어가 뭐가 아쉬워서 대장장이 기술을 새로 배워요?

그 정도 되면 그냥 돈 주고 대장장이한테 맡기는 게 훨씬 빨랐다.

쓰고 있는 장비의 수준이 높아서 대장장이 기술 조금 배워봤자 자기 걸 만질 수도 없었으니까.

대장장이 기술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건 고난의 길이었다.

노가다와 눈물의 길!

레벨 70을 넘길 정도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야. 사람 속은 모르는 거다. 너무 성급하게 단정하지 마. 어디서 또라이가 나올 줄 모른다고.

-하긴…… 그렇긴 하네요.

판타지 온라인의 플레이어가 워낙 많다 보니, 컨셉을 독특하게 잡은 사람들도 많았다.

레벨 70을 넘기고 새로 대장장이 기술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어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길드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은 원래 좀 잡다하게 스킬 배우는 경우가 많잖아. 미리 좀 배우려고 하나 보지.

-그러면 그 옵션은 레벨이 높아서 그렇게 나온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대장장이 직업이 특이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사실 그런 식으로 옵션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어.

행운에 관련된 옵션은 보기 드문 옵션에 속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들 행운을 올릴 바에는 다른 스탯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직업이 한두 개도 아니고 우리가 모르는 게 있어도 놀랍지는 않겠지.

-갑자기 걱정되는데요.

-왜?

-초보자면 우리가 엄청 밀어줄게! 하고 데려올 수 있겠지만…… 레벨 높은 플레이어면 그런 게 잘 안 통하잖아요.

-그래도 설득은 해봐야지. 혼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이 왜 혼자 돌아다니겠어?

-어…… 같이 뭘 하는 걸 싫어해서요?

-그래. 대형 길드 같은 경우는 사람도 많고 안에서 이것저것 시끄러운 경우가 많잖아. 그에 비해 우리는 소형 길드라서 그런 것도 없고 화기애애하지.

구성욱이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의 길드 ‘검은 바위단’은 소수 정예에, 분위기도 좋았다.

다른 대형 길드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걸로 설득을 해봐.

-잘 알겠습니다.

-그래. 아. 이번에 퀘스트도 꼭 깨고. 대체 그 ‘차가운 울음의 검’은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내가 만들어주고 싶어도 제작법을 봐야 만들어주지!

-저도 알아요. 필 씨. 이번에는 꼭 깹니다!

타이럼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분통이 터졌다.

‘타이럼 사냥꾼 놈들 세게 한 대만 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구성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태현은 사라져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태현 님.”

“부르지 마라.”

태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러나 펠마스는 넉살 좋게 웃었다.

“하하, 왜 그러십니까?”

“눈이 있으면 이 마차 꼴을 보고서 이야기하지?”

덜컹대는 마차 바닥.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것까지 리얼하게 구현을 하다니.

처음에 펠마스가 ‘아탈리 왕국까지 제가 다 모실 테니 태현 님께서는 걱정하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좋았었다.

아, 이게 대접을 받는 거구나!

그래. 명색이 신인데 이렇게 신도들한테 충성을 받아야지.

그러나 태현은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펠마스가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차도 어디서 부서지기 직전의 낡은 마차를 갖고 왔고, 마부를 고용할 돈도 없었는지 자기가 직접 마차를 몰았다.

잘 몰지도 못했다. 덕분에 마차는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마차의 왼쪽 바퀴가 파손되기 직전입니다. 멈춰서 수리해야 합니다.]

[바퀴가 부서져도 마차는 움직일 수 있지만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스톱, 스톱!”

그냥 하는 협박보다 더 무서웠다. 태현이 말하자 펠마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바퀴가 이상하다. 고치고 가자.”

“바퀴요? 하하. 겁도 많으셔라. 아직 괜찮습니다.”

“네 머리통을 바퀴 사이에 끼워줄까?”

바로 나오는 성질. 펠마스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태현은 망치를 꺼냈다. 대장장이 기술은 기초 스킬이었다. 이런 마차 바퀴 수리 같은 건 다른 스킬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대장장이 기술도 중급 단계고, 행운도 있었으니 일단 한 번 해볼 생각이었다.

‘더 심각해지지는 않겠지?’

아우우우-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

“이거 뭔 소리냐?”

“주변에 몬스터가 있는 것 같군요. 아마 검은줄무늬늑대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검은줄무늬든 점박이든, 어느 정도로 강한 몬스터지?”

“한 방에 보낼 수 있습니다.”

펠마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 모습에서는 인생을 오래 산 사람에게서만 풍길 수 있는 지혜로움과 자부심이 엿보였다.

태현은 살짝 감탄했다. 그래도 전설 직업 관련 NPC인데, 뭔가 능력은 있구나!

“그놈이 저를 말이죠.”

“……뭐?”

“검은줄무늬늑대라면 저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위험한 몬스터입니다. 그런데 태현 님. 왜 망치를 들고 저한테……?”

퍽!

“으아악!”

“안 아픈 거 안다.”

때려봤자 어차피 데미지도 안 들어가는 망치였다. 펠마스는 아프지 않다는 걸 깨닫고 눈을 깜박였다.

“빨리 고치고 가야겠군.”

태현은 대충 마차 바닥에 있던 못을 꺼내 바퀴의 흔들리는 부분을 향해 두드렸다.

믿을 수 있는 건 대장장이 기술과 행운뿐.

[금이 간 마차 바퀴를 수리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없습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뛰어난 행운이 손을 인도합니다.]

“……?”

잠깐 놀란 태현은 이게 뭔지 깨달았다.

<신의 예지>

아키서스의 능력에 따라 길을 보여줍니다.

패시브 스킬, 신의 예지. 설명만 봤을 때는 이게 무슨 헛소리만 늘어놓은 스킬인가 했었는데, 이제는 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마차 바퀴는 흰색으로 반짝이는 부분과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부분이 있었다.

‘건드려야 하는 곳과 건드려야 하지 말아야 하는 곳이라는 건가?’

아키서스의 능력이라면 바로 행운.

행운이 높은 사람이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었다.

돌팔이 의사가 칼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는데 운 좋게 종양을 잘라낼 수도 있었고, 대장장이가 망치를 아무렇게나 휘둘렀는데 운 좋게 걸작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신의 예지란 건 바로 그런 스킬이었다.

아무것도 몰라도 높은 행운으로 길을 보여주는 스킬!

‘쓸 만한 게 있어서 다행이군.’

전직하고 나서 얻은 스킬들이 다 미묘해서 슬퍼지려던 참이었다.

‘좋아, 그러면 흰색을 두드리면…….’

콰지직!

“……?”

바로 박살 나는 마차 바퀴.

아.

붉은색을 건드려야 하는 거였구나…….

* * *

[마차 바퀴를 전부 수리했습니다.]

[금이 간 마차 외벽을 수리했습니다.]

[마차 바닥을 수리했습니다.]

[수리 스킬이 증가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증가합니다.]

[스킬, ‘기계공학’을 배웠습니다.]

기계공학. 한마디로 복잡한 원리를 갖고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스킬이었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기계공학까지 스킬 레벨이 높으면 정말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 잘 써먹었었는데…….’

태현은 추억에 잠겼다.

-하하! 로켓 폭탄이다! 죽어라!

-으아악! 저 미친놈이 뭘 터뜨린 거야!?

-로켓을 막아! 로켓을 막아!

-로켓 안에 독이 들어 있어! 도망쳐! 막을 수가 없어!

-덫, 덫이다!

-대체 언제 덫까지 깔아놓은 거야?!

주로 태현에게만 좋은 추억이었다.

당한 플레이어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 악몽 같은 기억들!

‘그래. 기계공학도 좀 익혀둬야지.’

기계공학 같은 건 NPC를 잘 만나야 했다. 혼자서 제작법을 배우는 건 힘들었다.

‘아탈리 왕국에 제작직이 많다는데, 기계공학 NPC도 있으면 좋겠군.’

“처음에 태현 님께서 마차 바퀴를 부수셨을 때는 놀랐습니다.”

“거,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여분의 마차 바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아니, 날 밝은 다음 움직이자.”

아무리 생각해도 펠마스의 마차 운전 실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태현이 직접 몰고 행운에 맡겨도 저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날이 어두워진 상태에서 맡기는 건 자살행위!

“늑대가 나오는데 괜찮겠습니까?”

“하하. 네가 운전하는 것보단 낫겠지.”

“하하하. 저는 태현 님만 믿겠습니다.”

펠마스는 운전 실력을 욕하는 건 은근슬쩍 넘기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순식간에 불을 피우고 야영할 준비를 마쳤다.

‘늑대 정도야 이길 수 있겠지.’

태현은 레벨만 낮았지 스탯만 보면 레벨 50대 플레이어하고 비슷한 수준이었다. 거기에 행운까지 더하면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이런 산에서 나오는 늑대들이 무슨 보스 몬스터 수준이지는 않을 테고, 덤벼봤자 이길 자신이 있었다.

중요한 건 마차와 펠마스였다.

마차가 부서지면 아탈리 왕국까지 가는데 곤란해졌고, 펠마스가 죽으면 퀘스트가 꼬였다.

‘이럴 때 스킬이 없는 게 아쉽단 말이지.’

지금 태현에게는 딱히 스킬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공격력 버프 스킬은 좋은 스킬이었지만 펠마스를 지켜가면서 싸울 수는 없었다.

이럴 때면 마법사가 부러웠다. 고렙 마법사는 상대가 접근하기도 전에 끝내버렸다.

‘마법 좀 배워야 하나…….’

마법사가 아니니 강한 마법은 못 배우겠지만, 다른 직업도 배울 수 있는 마법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