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2화
펠마스가 그러고 있는 동안, 지수가 돌아왔다.
“저 왔어요!”
“어, 그래. 그런데……?”
돌아온 지수는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윤기 나는 은색 가죽 갑옷에, 보라색 빛을 뿜어내는 활과 활통. 거기에 적색 보석이 박혀 있는 건틀렛과 부츠까지…….
‘대체 퀘스트 보상으로 얼마나 받은 거야?!’
타이럼시 같은 곳에 저런 번쩍번쩍한 장비들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겉모습만 보면 지수는 어엿한 고렙 플레이어!
“뭐 얼마나 받은 거야?”
“스킬 다섯 개랑 여기 있는 장비 세트들이랑…… 막 원래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하고 왔다고 되게 칭찬받았어요!”
“그래. 잘됐네…….”
슬슬 태현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전설 직업이고, 지수가 영웅 직업인데, 지금 나오는 보상만 보면 아무래도 둘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이럴 거면 강제 전직이나 시켜주지 말던가!’
그냥 전직 안 시켜주면 억울하지나 않지. 전직은 억지로 시켜놓고서 이상한 것들만 나오니 억울했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세요?”
“나 퀘스트 주러 온 NPC.”
“네?”
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펠마스의 겉모습이 마치…….
거지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 겉모습은 위장인 건가?’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나 소설에서도 자주 나왔다. 아무도 안 찾아오는 곳에서 허름하게 위장하고 있는 현자.
지수는 펠마스가 그런 현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일부러 저렇게 입은 거죠?”
“뭐가?”
“저 사람이요. 복장이요. 복장. 일부러 저렇게 입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태현은 지수의 어깨를 잡았다.
“……?”
“네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현실은 현실!
판타지 온라인은 의외로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구석이 있었다.
거지처럼 입은 사람은?
진짜로 거지일 때가 많았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 이미 태현은 그런 경험을 몇 번 해봤었다.
“아키서스 님.”
“아키서스가 아니라 김태현이다.”
“김태현 님. 그러면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어…… 그런데, 너희들이 있는 곳이 어디지?”
“아탈리 왕국입니다!”
아탈리 왕국. 잘츠 왕국에서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야 나오는 왕국이었다.
오스턴 왕국보다도 더 남쪽에 있는 왕국.
제작 계열 직업들의 대우가 좋아서 제작 계열 직업들은 저기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네? 아탈리 왕국이요?”
“아. 너랑은 퀘스트 위치가 좀 다르겠네.”
“아, 아니에요. 저도 아탈리 왕국 가도 괜찮아요. 제 퀘스트도 도와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너 다음 퀘스트 받았지?”
태현을 게임 관련으로 속이는 건 힘들었다. 태현은 바로 지수가 받은 퀘스트를 맞췄다.
“네…….”
“그거 어딘데?”
“잘츠 왕국 주변 던전 같아요.”
“그런데 아탈리 왕국으로 따라오면 안 되지. 너도 직업 퀘스트 깨야 할 거 아니야.”
“저, 저 도와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내가 도와준 건 그냥 내가 할 거 없어서 도와준 거야. 너는 지금 네 퀘스트 있잖아. 기껏 영웅 직업 받고 설렁설렁하면 아쉽잖아?”
판타지 온라인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있는 퀘스트도 사라지거나 바뀔 수 있었다.
대륙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들 전력을 다해 퀘스트를 깨고 있었다.
“네가 가볍게 하는 거면 모를까, 너도 꽤 게임 빡세게 하는 편이잖아. 그러니까 그냥 가서 네 직업 퀘스트 깨. 난 안 도와줘도 괜찮으니까.”
지수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저희 나중에 볼 수 있는 거죠?”
“이거 게임이거든? 언제든지 원하면 볼 수 있으니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무슨 일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고. 상윤이도 있으니까.”
레드존 길드를 공격할 때 지수는 비교적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태현이나 최상윤만 쫓아올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태현은 미리 당부를 했다.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윽. 눈빛이 진짜…….’
반짝거리는 눈동자!
외모까지 합쳐지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그러면 다음에 보자!”
“아, 형, 그, 오빠…….”
뒷말은 점점 작아져서 태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 * *
-누나 그 남자 누구예요?
-그 자식 누구임?
-누가 신상 좀 알려줘! 골드 주고 산다!
-저거 레드존 길드원 아니냐?
-레드존 길드원 아니거든.
-맞는 거 같은데? 저거 아이디가 사이트에 레드존 들어갔다고 자랑한 놈 아이디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드존ㅋㅋㅋㅋ 한 명한테 깨진 길드래요ㅋㅋㅋㅋㅋ
-너희들 아직 감옥에 있냐?
비웃는 리플들. 태현의 신상을 알아내려다가 레드존 길드원이라는 게 걸린 길드원은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됐다.
오크 부족 퀘스트가 끝나고 나서, 판타지 온라인 2 게시판은 엄청나게 달아올랐다.
전설 직업 전직 퀘스트나 랭커들의 퀘스트가 아닌 퀘스트 치고는 정말 대단한 반응이었다.
그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대륙 퀘스트와 연결된 퀘스트였기 때문이었다.
오크 대족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건 위기이자 기회였다. 벌써 이걸 듣고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번째로, 태현도 있었다.
보통 판타지 온라인의 랭커들은 자기 홍보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개인 방송은 물론이고,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홍보하는 경우도 많았다.
태현처럼 독특한 성격이 아닌 이상 프로그램의 섭외를 받으면 보통 나갔다.
홍보도 되고 자랑도 되는 일이니까.
그러나 태현은 갑자기 튀어나왔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의 김태현인 건 아직 아무도 몰랐지만 그래도 갑자기 나타나서 레드존 길마를 잡은 건 충분히 대단했다.
게다가 최상윤도 나름 유명했으니, 태현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최상윤은 개인 방송에 달리는 리플을 무시했다. 이미 그는 방송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외모면 외모!(여장했지만)
실력이면 실력!
리플에서는 ‘왜 우리 질문에 대답 안 해줘요!’ ‘무시하지 마요!’ 이런 질문들이 많았지만, 그걸 무시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왜냐면…….
그래도 볼 사람들은 다 보니까!
대답 안 한다고 몇 명 떠나가 봤자 시청자들은 많아서 상관이 없었다.
최상윤은 리플은 적당히 무시하며 퀘스트를 설명했다.
태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생각이었다.
‘근데 뭔 무기를 갖고 올 생각이지?’
태현이 부탁한 게 있었다. 나중에 그가 무기를 만들고 강화하게 되면 최상윤이 광고해서 팔아달라고.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태현이 뭔가 만들어서 갖고 올 것이다.
당연히 기대가 됐다. 태현은 모든 면에서 대단했지만, 대장장이로서는 특히 더 대단했다.
판타지 온라인 1의 태현을 아는 최상윤이었기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쓸 만한 무기였으면 좋겠는데!’
태현이 무기를 만들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먼저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경매장에 올라가면 이제 그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친구니까 할인은 좀 해주겠지? 최상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누나, 이거 봤어?”
“응?”
데메르 사제, 최하영은 동생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뭘?”
“레드존 길드! 이번에 완전히 박살이 났어!”
“뭐? 진짜로? 어떻게? 누가?”
“이거 그때 그 사람 아냐?”
“?!”
셋이서 레드존 길드를 치러 간다고 했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애초에 불가능했고, 시도하더라도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둘은 눈을 크게 뜨고 동영상을 봤다.
동영상 안에서 태현과 최상윤은 말 그대로 화려하게 날뛰고 있었다.
요새의 병사들을 데려와서 레드존 길드원들을 붙잡고, 하던 퀘스트를 뺏고, 오크 부족장까지 처리한 다음에는 레드존 길마까지 싸워서 이겼다.
정말 대단했다.
같이 할 거 그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
“같이 갈 거 그랬나?”
“아니야. 같이 가봤자 우리는 방해만 됐을 거야.”
최하영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레드존 길드 마스터와 싸우는 걸 보니 최상윤도, 태현도 보통 실력이 아닌 것 같았다.
고렙 플레이어가 분명했다.
“그래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같이 가서 뭐하려고? 레드존 길드한테 찍히려고?”
최하영이 웃으며 말하자 최하준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맞는 말이었다.
같이 갔다면 방송에는 같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졌을 것이고, 레드존 길드와 원수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레드존 길드한테 쫓겨 다니는 건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웠다.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
* * *
“야. 진짜 할 거야?”
“그러면! 넌 뭐 할 건데?!”
“우리 벌써 두 번이나 죽었어…….”
“나는 한 번.”
“그리고 상대도 안 됐잖아. 완전히 발렸다고.”
“발리긴 누가 발려!”
“너랑 나. 얘네. 다 발렸지.”
“맞아. 너 발리는 거 다 봤거든?”
“네가 약한 놈이라고 해서 도와주려고 왔는데, 한 명은 랭커였잖아. 이 XX야.”
김병국은 화난 얼굴로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태현을 PK 하려다가 역으로 PK 당한 그였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처음 죽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두 번 죽자 이제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반드시 쫓아간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김병국을 노려보았다.
분명 김병국이 그들을 데리고 올 때는 만만한 놈 하나 손봐준다고 말했었다.
만만한 놈은 그들보다 레벨이 낮거나 비슷한 놈이지, 절대 랭커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만난 상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들!
하나는 방송에서도 나오는 랭커였고 다른 하나는 방송은 안 나왔지만 분명 랭커였다.
그렇게 박살을 내는데 레벨이 높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끝나고 나서 방송도 봤다. 태현이 레드존 길마를 죽이는 걸 보고 더 확신했다.
태현도 최상윤과 같이 다니는 걸 보니 랭커가 분명하다고.
“네가 XX, 처음부터 제대로 말했으면 우리도 죽지 않았을 거 아냐?”
“맞아.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
“뭐? 지금 나 때문이라는 거냐?”
“그래. 너 때문이라는 거다!”
현실에서도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게임에서 한 번 죽었다고 틀어지는 한없이 가벼운 사이였다.
김병국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당황했다.
“골, 골드 줄게.”
“얼마나?”
“적당히 주고 끝낼 생각 하지 마. 우리 지금 단단히 빡쳤으니까.”
“…….”
‘이것들도 친구라고…….’
김병국은 이를 갈며 골드를 꺼냈다.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드시 쫓아가서 복수할 것이다!
‘근데 어디로 갔지?’
판타지 온라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
세계가 너무 넓어서 상대가 숨으려고 마음먹으면 정말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 * *
-필 씨. 왜 부르셨어요?
구성욱은 타이럼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었다.
토끼가 잠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타이럼 사냥꾼들을 공격하고 싶었지만, 구성욱은 아직 거기까지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너 지금 타이럼 아니지?
-네. 거기 토끼 안 나와서 다른 데 왔잖아요.
생각만 해도 이가 갈렸다.
타이럼 사냥꾼들의 치사함은 상상초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토끼가 없을 때 토끼를 잡아 오라고 하는 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이런 도시가 초보자가 시작할 수 있는 도시 중 하나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다시 가봐야겠다.
-네? 토끼 나왔어요?
-그건 가서 확인해 보고…… 그 네 장비 만진 대장장이 있잖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동영상에 나오고 있는 거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