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38화 (38/1,826)

§ 나는 될놈이다 38화

어쩔 수가 없었다.

“알겠다! 내 발로 따라간다!”

케인은 병사들 옆에 서 있는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이 방금 한 말을 듣고 알 수 있었다.

저놈이 했구나!

“너…… 미쳤냐?”

케인은 살벌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게임에서 그가 이럴 때 겁먹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태현은 아니었다.

“아니, 백부장님! 저놈 좀 보세요! 절 죽인다고 합니다!”

“저, 저, 저 찢어 죽일 놈!”

마치 자기 가족이 협박받은 것처럼 분노하는 백부장!

태현이 하는 짓에 케인은 뒷목이 뻐근해졌다. 태현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 * *

그들이 오크들과 싸우는 동안, 태현은 요새 지휘관을 설득했다.

-지휘관님!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저 밖의 다른 나라 놈이 저를 협박하고 모욕하고…… 하여튼 사악한 짓이란 짓은 다 했습니다!

친밀도 덕분에 이상한 퀘스트를 받게 됐지만, 친밀도 덕분에 설득도 쉬웠다.

태현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은 지휘관은 단단히 화가 나서 명령을 내렸다.

-그 건방진 놈을 잡아 와라!

그리고 지금.

병사들은 살벌하게 케인과 길드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뒤에서 오크들과 부족장이 점점 용병들을 처리하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길드원들은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았다.

“저기, 저 오크들 잡아야 합니다! 처리하면 올라올 겁니다!”

“너희들부터 잡고 처리할 거다! 수작 부리지 말고 따라와라!”

케인은 이를 갈며 방송을 켰다. 리플은 지금 축제 상황이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체포된 거야? 체포된 거야?

-체포됐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의구현이다!

-지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세금 뜯던데, 아주 쌤통이다!

케인은 한 짓만큼 악명을 쌓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와서 기뻐 날뛰고 있었다.

태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오크 정예 전사들이 용병들을 밀고 올라오려고 하고 있었다.

“좋아. 가자.”

“오케이.”

이심전심.

최상윤은 태현과 눈빛만 봐도 뜻이 통했다.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최상윤을 알아보고 리플을 달았다.

-어? 저거 사유잖아?

-사유가 왜 저기 있어?

-저 옆에 있는 남자새끼는 누구야?!

-죽여! 저 자식 얼굴 좀 따봐!

-어디서 저런 얼굴로 우리 여신님 옆을!

열렬한 반응!

최상윤의 팬은 최상윤과 친해 보이는 태현에게 광분했다.

“핫!”

먼저 뛰어든 건 최상윤이었다. 그는 발 빠르게 움직이며 오크 정예 전사들의 목을 벴다.

푹! 푸푹!

“취익, 이 인간이 감히!”

“크으악!”

오크 정예 전사들이 반격하려고 하면 남은 용병들을 방패로 삼았다.

춤추는 것처럼 빠른 몸놀림에 오크 정예 전사들은 최상윤에게 제대로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말 그대로 학살!

그러는 동안 태현은 조심스럽게 오크 부족장, 카자크에게 접근했다. 카자크는 최상윤에게 덤벼들려다가 태현이 다가오자 시선을 돌렸다.

“취익, 네놈에게서는 신성이 느껴지는군.”

신성, 신성력과 비슷하지만 다른 뜻이었다.

신성력은 신과 관련된 직업이 가지는 스탯. 사제나 성기사나…… 하여튼 신과 관련된 사람이면 쉽게 생기는 스탯이었다.

그리고 태현의 스탯은 신성력이 아니라 신성이었다.

직업이 사제나 성기사가 아닌, 화신이었으니까.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보통 이런 곳에 있는 저렙 보스가 저런 대사를 하나?’

저렇게 ‘나는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건 레벨이 높거나, 좀 중요한 위치에 있는 보스 몬스터가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요새 주변이나 털러 온 오크 부족장이 할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취익.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맞나 보군.”

“어떻게 안 거지?”

“취익. 신성을 가진 인간. 나를 무시하지 마라. 나는 가장 밝은 눈과 가장 좋은 귀를 가지고 있는 오크다. 어떤 인간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얘 진짜 저렙 보스 맞아?’

태현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여기 있는 오크들이 너무 잘 싸우기는 했다.

최상윤에게 들어보니 레드존 길드원들은 50에서 60. 바깥 오크들이야 그냥 밀렸지만 부족장 주변의 전사들은 거의 비슷했다.

그렇다면 레벨도 비슷하거나 그 위라는 뜻.

‘아, 진짜……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태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 아니었다. 무언가 그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본능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 * *

오크들의 마을에 오기 전에, 둘은 전력을 확인했다.

실제로 최상윤은 궁금했다. 태현이 전설 직업을 얻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다음은 별로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얼마나 좋은 직업일까!

현재 공개적으로 나온 전설 직업은 이세연이 얻은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와 스미스가 도전하고 있는 전설 직업 정도였다.

당연히 전부 공개는 안 되었지만 공개된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했다.

각종 스탯 보너스에 뛰어난 전용 스킬에, 명성부터 시작해서 NPC들의 반응까지…….

이세연은 지금 몇몇 네크로맨서 세력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판타지 온라인 플레이어라면 모두 엄청나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전설 직업이었다.

직업들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직업!

“그런데 너, 전설 직업이면 좋은 스킬 좀 얻었지? 뭐 있나 말해봐.”

“…….”

“아니야?”

태현의 표정을 본 최상윤은 당황했다.

‘전설 직업인데 좋은 스킬이 안 나올 수도 있나?’

“직업 전용 스킬이 나오기는 했는데…… 다 뭔가 미묘해…….”

“그, 그래도 다른 직업보다는 좋겠지! 그리고 레벨 업 하고, 직업 퀘스트 깨면 더 나오지 않겠어?”

태현이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드물었다. 최상윤은 당황해서 태현을 위로했다.

“스탯! 그래. 스탯 보너스 있잖아.”

“아. 그렇지. 스탯은 많이 받았다.”

행운을 제외하더라도 태현의 스탯은 매우 높았다.

서버에서 처음 받는 칭호로 얻은 스탯이나, 전설 직업으로 얻은 스탯들.

“행운 제외하고 나머지 스탯은 전부 120대 정도인데…….”

“진짜? 뭐야. 좋잖아? 그 정도 스탯이면 레벨 50대 정도는 되겠다. 레벨 낮아도 전설 직업은 전설 직업인가봐?”

“이 스탯이 레벨 50 정도라고?”

“대충? 보통 레벨 업으로만 스탯 올리는 게 아니라 퀘스트 보상으로도 받긴 하니까? 근데 너 좀 특이하긴 하다. 보통 주력으로 올리는 스탯이 있고, 나머지는 적게 올리잖아.”

최상윤은 태현의 행운이 얼마 정도인지 모르고 있었다.

2천을 넘어가는 행운과 비교하면 120대 정도의 스탯은 보름달 앞의 반딧불 수준!

“보통 그렇지.”

“응. 어쨌든 스탯 총합은 비슷비슷할 거야. 그렇다고 막 동렙 전사한테 힘 싸움하지는 말고. 너랑 스탯 총합은 비슷해도 너보다 힘은 많이 올렸을 거 아니야.”

“내가 너냐? 그런 짓 하게?”

* * *

쾅!

태현은 날아가고 있었다.

오크 부족장, 카자크와의 힘 싸움에서 진 결과였다.

‘아, 진짜…….’

“야! 힘 싸움하지 말라니까!”

“내가 원해서 한 거 아니거든, 이 자식아?”

태현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투덜거렸다.

그걸 보며 카자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취익. 묘한 기술을 쓰는군. 인간.”

분명히 태현을 향해 도끼를 정통으로 내리찍었다. 바위라도 정통으로 부술 기세였다.

그런데 미끄러지듯이 빗나가 버렸다.

“너만 하겠어?”

태현은 레벨 높은 보스 몬스터와 힘 싸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카자크가 손을 뻗자, 자동으로 태현의 몸이 카자크한테 끌려갔다.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자석에 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로 당겨졌다.

놈의 전용 스킬이 분명했다.

‘아. 상성 안 좋은데…….’

태현은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한발짝 먼저 피하는, 천재스러운 재주가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광역기나 저런 사기적인 스킬이 나오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행운이 있어서 일반 공격은 어지간해서 데미지가 없겠지만, 한 대라도 맞으면 태현은 목숨이 위험했다.

회피를 무시하고 공격을 넣을 방법은 판타지 온라인에 많고 많았다.

“취익, 어디 한 번 다시 피해 봐라!”

카자크가 다시 손을 뻗었다. 태현은 혀를 찼다.

피하는 건 글렀고, 차라리…….

‘역으로 친다!’

앞으로 뛰어들자 빨려들어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태현은 그 속도를 타고 검을 들었다.

-행운의 일격, 5중첩!

카카캉!

“??”

정확하게 가슴팍을 찔렀지만, 검이 들어가지 않았다.

[상대의 방어구에 공격이 막힙니다!]

[상대가 데미지를 입지 않았습니다!]

카자크는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끌려 들어온 태현을 비웃었다.

“취익, 인간. 너 따위가 이 갑옷을 뚫을 수 있을 줄 알았나!”

“?!”

태현은 놀랐다. 아무리 상대가 보스 몬스터에, 강하다고 하더라도 데미지 자체를 주지 못하다니.

카자크는 몸을 덮고 있던 동물 가죽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입고 있는 갑옷을 가리켰다. 거의 전신을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는 갑옷이었다.

검은색으로 불길하게 빛을 뿜고 있는 갑옷은 딱 봐도 엄청나게…….

‘좋은 아이템 같네. 젠장!’

저렇게 ‘나 엄청 좋은 아이템 입고 있다!’라고 자랑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어떤 아이템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사기적인 옵션이 붙어 있는 게 분명했다.

태현의 공격을 아예 막아냈을 정도니까.

“취익, 죽어라, 인간!”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바로 빗겨나가는 일반 공격!

“?!”

“너만 사기를 치는 건 아니거든, 이 오크 놈아.”

“취익, 인간! 이상한 기술 쓴다!”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카자크를 노려보았다. 그의 회피율이 엄청나게 높아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걸 알아차린다면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해올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일반적인 공격을 하게 해야 했다.

* * *

“흥미진진하네.”

최명성 팀장은 팝콘을 먹으며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판타지 온라인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 흥미로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대륙이 넓고 플레이어 숫자가 어마어마했으니까.

그런 사건 중에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김태현도 있고, 요즘 살짝 화제가 된 ‘레드존’길드와 길드 마스터도 있고…….

“역시 김태현이라니까. 병사들 끌고 온 거 봤지?”

“아. 네.”

윤주환은 최명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팬질을 해도 되나?

“그런데 김태현이 저 오크 이길 수 있나요?”

“갑옷이 사기긴 하지. 근데 약점 있잖아. 등에 빈 곳이 있으니까.”

카자크가 입고 있는 갑옷은 정말 엄청나게 강력했지만, 등에 빈 곳이 있었다.

놈을 상대하려면 거기를 노려야 했다.

“김태현 정도면 눈치를 챌걸? 그보다 저 레드존 길드가 가만히 있을지가 궁금한데. 길마 성격이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

“지금 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완전히 잡혔는데.”

“사람이 열이 받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일단 김태현이 저 카자크부터 처리하는 걸 보자고. 카자크가 죽으면 대륙 퀘스트 하나 시작되지?”

“네.”

대륙 퀘스트. 대륙 규모로 진행되는 거대한 퀘스트였다.

용이 깨어나서 난동을 부린다거나, 강력한 리치가 나타나서 왕국을 공격한다든가…….

플레이어들은 싫든 좋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 *

“취익! 이 귀찮은 인간!”

카자크는 짜증을 내며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멀리서 지수가 정교하게 노린 화살이었다.

갑옷 위면 상관이 없었지만 얼굴만 노리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태현은 장비를 바꿨다.

“취익, 인간. 그건 뭐냐?”

“정말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 갑옷은 내가 포기할게.”

“??”

태현의 손에 들린 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망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