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5화
친구가 여장을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애교를 떠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대충 20명 정도인가. 좋아. 일단 돌아가자.”
“응?”
태현이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돌아가자 최상윤은 놀랐다.
“걱정 마.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거든.”
“거기 멈춰라!”
“……?”
태현은 놀랐다.
지금 레드존 길드원들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가까이 올 수 있었지?
정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상대는 레드존 길드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익숙한 두 얼굴과 모르는 세 얼굴이 추가로 있었다.
“너희였냐? 난 또 뭐라고…….”
김병국과 최은철. 괜히 태현을 얕보고 PK를 시도했다가 죽어서 아이템을 뺏긴 두 사람이었다.
72시간이 지나고, 부활하자마자 그들은 아이템창을 확인했다.
대참사!
중갑, 도끼, 벨트, 귀걸이를 뺏긴 상황. 김병국도 김병국이었지만 최은철은 심각했다.
-반드시 귀걸이를 되찾아야 해!
뺏긴 귀걸이 같은 아이템을 다시 구할 자신이 없었다. 반드시 태현한테서 찾아야 했다.
사망 페널티나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그들은 태현을 찾았다.
물론 친구들도 불렀다. 태현한테 당했으니 두 명이서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총 다섯 명!
레벨 50대의 플레이어 다섯 명이 있으니 태현 같은 플레이어 정도는 손쉽게 박살 낼 수 있으리라.
“이 자식……! 죽기 싫으면 당장 귀걸이를 내놔라!”
“아. 그 귀걸이? 고마워. 잘 쓰고 있어.”
만나자마자 도발! 최은철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았다. 태현은 얄밉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걸 되찾고 싶나봐? 어떡하냐? 나 이거 내일 경매 사이트에 올릴 생각인데. 그때 다시 사면 되겠네.”
“죽여 버린다! 올리기만 해봐!”
“어쩔 건데?”
“당장 그 귀걸이 안 내놓으면 죽일…….”
“죽여서 뭐 어쩌려고? 난 너처럼 PK한 상태가 아니라서 죽여 봤자 아이템도 별로 안 떨어질걸. 귀걸이가 떨어지겠냐? 기껏해야 오크한테서 뺏은 돌멩이나 떨어질 거 같은데. 사망 페널티도 레벨 낮아서 별거 없고.”
태현은 팩트로 최은철을 두들겨 팼다. 최은철은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이, 이 자식이 진짜……!”
“근데 걱정 마.”
“……?”
“우린 PK 할 생각이거든. 지금부터.”
태현은 손을 내렸다. 그게 신호였다. 옆에 있던 최상윤의 모습이 사라졌다.
판타지 온라인 1때부터 같이한 둘은 서로 눈빛만 봐도 호흡을 알았다.
스킬 ‘축지’는 거리를 단숨에 지우는 스킬로, 마법사나 궁수 같은 원거리 직업을 상대할 때 매우 편리한 스킬이었다.
최상윤은 그 스킬로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가장 먼저 노리는 건…….
“크아악!”
사제!
다섯 명 중 가장 먼저 사제를 노렸다. 최상윤의 검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사제의 목을 그대로 후려쳤다.
레벨 90이 넘는 랭커가 기습을 했는데 사제 같은 방어력과 체력이 낮은 직업이 버틸 수 없었다.
사제는 바로 시체가 되어 로그아웃 당했다.
“현준아!”
선공으로 PK를 한 최상윤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PK 플레이어라는 뜻!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이름도 알아내기 힘들 정도로 정보가 잘 숨겨지는 판타지 온라인 2였지만,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는 몇 가지가 있었다.
장착한 아이템의 겉모습이나, 현재 상태. 그리고 상대가 PK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거기에 들어갔다.
저 붉은 상태에서 죽으면 더 많은 페널티를 입고, 더 많은 아이템을 잃게 됐다.
실제로 김병국과 최은철이 저 상태에서 태현한테 죽었다가 아이템을 날렸다.
그러나 최상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 죽으면 되니까!
“너 이 자식……!”
다음은 마법사!
최상윤은 랭커다웠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차근차근 우선순위대로 공격했다.
전사의 공격을 피하고 도적의 기습을 피한 다음, 잽싸게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화염 화…… 컥!”
마법사의 마법은 강력할수록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었다.
그사이 공격을 받으면 시간이 길어졌다.
최은철도 지금 상황에서 준비가 많이 필요한 마법을 쓰지는 않았다.
바로 쓸 수 있는 화염 마법으로 일단 최상윤의 발을 묶으려 한 것이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민첩 계열의 전사. 그렇다면 방어력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상윤은 그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레벨이 40 가까이 차이 나도 절대 방심하지 않는 철저함!
그러는 사이 태현은 김병국과 대치했다. 김병국은 태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태현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이번에는 먼저 안 덤비나?”
김병국은 잠시 망설였다. 먼저 공격하면 PK 플레이어 취급을 받게 됐다.
그걸 알기에 태현은 기다렸다. 최상윤이야 상관없었지만 그는 아니었으니까.
김병국은 이를 악물더니 달려들었다. 지금 뒤에서 날뛰는 저 미녀는 레벨이 꽤 높아 보였다.
그렇다면 빨리 태현을 끝내고 친구들을 도와줘야 했다.
뒤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가 신경 쓰였다.
“이 자식! 죽어라!”
김병국의 장비는 바뀌어 있었다. 도끼 위주로 일격 일격을 날리는 스타일에서, 거대한 방패를 한 손에 들고 비교적 작은 도끼를 든 스타일로.
거대한 도끼는 죽을 때 태현한테 뺏겼기도 했지만, 나름 생각을 한 것이다.
‘저놈…… 레벨 낮아 보였는데 공격력이 범상치 않아. 뭔가 스킬이 있다.’
태현에게 일격에 죽었는데 똑같은 짓을 다시 반복할 만큼 김병국은 바보가 아니었다.
레벨이 실제로는 높거나, 아니면 무언가 특수한 직업이라 특수한 스킬을 갖고 있거나.
판타지 온라인 2의 세계는 넓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이 극단적인 방어 스타일이었다.
거대한 방패로 몸 전체를 가리고 다른 한 손에 든 도끼로 상대의 빈틈을 노린다!
저번에 태현과 붙었을 때, 태현의 움직임은 놀라웠지만 엄청나게 빠르지는 않았다.
민첩을 주력으로 올리는 전사나 도적에 비교하면 그 속도는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그가 먼저 덤볐다가 동작을 전부 읽히고 카운터를 맞은 것이지, 이렇게 버티면 태현한테 먼저 맞을 일은 없었다.
아무리 데미지가 강하더라도 방패가 흡수할 테니까!
-방패 강타!
익숙하지 않은 방패여도 레벨은 레벨. 김병국의 스킬은 제법 위력적이었다.
태현은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콰콰쾅!
“머리 좀 썼군!”
땅바닥에 길게 끌린 자국이 생겼다. 김병국은 방패 뒤에 얼굴을 숨기고 태현을 노려보았다.
방패에 몸을 숨기고 계속 저렇게 덤비겠다는 뜻.
“좋아…… 어디 한번…….”
행운의 일격, 7중첩!
공격력을 폭발적으로 올린 다음 태현은 달려들었다. 노리는 건 김병국의 방패.
한 대 때리면 상대가 그 틈을 노리고 쳐오겠지만 피할 자신이 있었다.
스킬을 쓰더라도 태현도 전설 직업,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전직하며 얻은 스킬들이 있었다.
위험할 경우 그 스킬들을 쓸 것이다.
‘와라!’
김병국의 눈빛이 타올랐다. 아무리 공격력이 강해 봤자 이 방패를 뚫을 수는 없었다.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바로…….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굉음이 터져 나왔다.
뒤에서 싸우던 최상윤도 고개를 돌릴 정도!
[강력한 충격으로 엑시온 강철 방패가 파괴되었습니다.]
아이템 파괴!
김병국의 입이 떡 벌어졌다.
판타지 온라인을 하면서 말로만 들었었지, 처음 보는 현상!
정말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아이템이 박살 날 수도 있었다.
아이템도 내구도가 있었으니 재수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를 상대하면서, 풀 내구도인 장비가 이렇게 되다니…….
“이, 이 자식…….”
태현도 놀랐다. 이 고대의 망치의 위력에.
그러나 지금은 놀랄 때가 아니었다. 태현은 망치를 들고 씩 웃었다.
“잘 가라.”
퐁!
어딘가 귀여운 소리가 났다.
[고대의 망치는 생명체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합니다.]
“네?”
태현은 무의식적으로 시스템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대답은 돌아올 리 없었지만.
“……?”
죽을 줄 알았던 김병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데미지가 없었다.
“뭐야?”
김병국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뜨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망치를 집어넣고 검을 꺼냈다.
아직 행운의 일격 버프가 걸린 상태.
“잠, 잠깐……!”
푹푹푹!
“으허억!”
“어쩐지 너무 세다 했지…….”
태현은 오러가 타오르는 고대의 망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방패를 일격에 파괴시킬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면 싸울 때도 편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싸움으로 깨달았다.
‘이거…… 아이템이나 무생물체한테만 데미지가 들어가는 아이템이잖아……?’
아이템 중에서는 설명에 나와 있지 않은 히든 옵션이 숨어 있는 아이템도 있었다.
이런 건 직접 경험해서 알아내야 했다.
고대의 망치(+7): 내구력 ∞/∞. 공격력 ?
착용 시 대장장이 계열 스킬 사용 가능, 대장장이 계열 스킬 레벨 상승.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파괴되지 않음. 공격력은 대장장이 기술 스킬로 결정됨.
고대의 대장장이가 쓰던 물건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고대의 물건이 지금보다 좋을 리는 없지 않은가?
(추가 옵션)생명체에게 데미지 줄 수 없음
“…….”
아무리 쳐다봐도 옵션은 사라지지 않았다.
태현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망치는 인벤토리에 넣었다.
지금이니 망정이지 다른 상황에서 이런 짓을 했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최상윤이 남은 플레이어들을 도륙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 잠깐만! 타협하자! 타협!”
푹!
“저는 그냥 돈 받고 온 거예요! 얘네 친구 아니에요! 그냥 놔주시면……!”
푹!
깔끔한 뒤처리!
변명 따위는 듣지도 않았다. 최상윤은 깔끔하게 남은 플레이어들을 처리했다.
“너 원한 좀 제대로 산 거 아니냐? 나 있을 때면 몰라도 나 없을 때 오면 어떻게 할래?”
“어차피 퀘스트만 깨면 여기 떠날 건데 만날 일도 없어.”
판타지 온라인 2의 대륙은 너무 넓어서 어지간해서는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리고 만나 봤자 이 정도 놈들이면 별로…… 얘네 길드도 아닌 거 같은데.”
그냥 현실 친구 몇 명 더 데리고 온 수준!
“그렇기는 해.”
“너 PK 페널티는 괜찮냐?”
“여기서 죽을 일 없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게다가 나 건드리면 복수할 사람들 많아서 나 못 건드려.”
“…….”
태현과 지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걸 본 최상윤이 어이없어했다.
“지금 페널티 먹을 거 감수하고 싸워줬는데 그런 취급이야?!”
“하하. 오해란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런데 아까 그건 뭐야? 스킬? 방패가 박살 나지 않았어?”
“아. 그거.”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강화한 망치 효과다.”
“진짜?! 그거 완전 대박 아니냐?!”
최상윤은 아직 효과를 완전히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리고 생명체한테는 데미지가 안 들어가.”
“…….”
“뭐라도 좀 말해봐.”
“어…… 우리 다른 곳으로 사냥이나 하러 갈까?”
“그냥 차라리 비웃어라.”
저렇게 나오니 더 속이 쓰라렸다. 그렇게 목숨 걸고 강화해서 나온 게 싸울 때는 쓸모없는 물건이라니…….
“어쨌든 이 멍청이들 때문에 일이 늦어졌는데, 빨리 요새로 돌아가자고. 병사들 불러올 거야.”
“응?”
“네?”
상윤의 말에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사들이요?”
“요새 병사들?”
요새 병사들을 불러서 오크 부족들과 싸우는 데 도움을 받는다.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가능하면 말이다.
이미 태현과 지수는 요새 병사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다. 그리고 거절당했고.
-자네라면 분명 혼자서 해낼 수 있을 거야!
과도한 친밀도로 인한 부작용.
그건 NPC의 무한한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