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0화
<화신의 매력>
행운 수치에 따라 친밀도 보정을 받습니다. NPC의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스킬 때문인가?’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전직할 때 주어진 패시브 스킬 중 하나.
좋은 스킬이었다. 문제는…….
태현이 지금 이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
요새의 병사들을 죽이기라도 하면 깎이겠지만 그랬다가는 퀘스트 취소가 아닌 지명수배를 당할 것이다.
‘전설 직업이면 범위 스킬 같은 거나 줄 것이지, 별 이상한 스킬들만 주네 진짜.’
태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계획을 포기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상윤아!
안 될 것 같을 때는 친구의 도움을!
* * *
최상윤은 오랜만에 태현의 귓속말을 받고 놀랐다.
그리고 태현이 도와달라고 했을 때 더 놀랐다.
태현은 어지간해서는 도와달라고 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판타지 온라인 1 때는 그가 도움을 받았다.
-진짜? 도와달라고?
-왜. 싫냐?
-아니, 좋지! 도와줄게! 도와주게 해주세요!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도와달라고 한 거야?
-뭐…… 이것저것 있다.
태현 혼자 하는 퀘스트도 아니고 지수도 있었다.
게다가 태현은 지금 폼을 잡을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올라서서 뭐라도 좀 해놔야지…….’
전설 직업 때문에 레벨도 올리기 힘든 상황. 도움이고 뭐고 필요하면 받아야 했다.
-지금 어딘데?
-에랑스 왕국이랑 오스턴 왕국 국경 쪽 있잖아. 거기에 있는 아덴 요새.
-아. 아덴 요새? 거기 지금 오크들 나오고 있는 곳이지?
-뭐야. 너도 알아? 고렙 애들이 관심 가질 곳은 아닌데?
몬스터도 그렇고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은 여기에 관심 가질 이유가 없었다.
-난 게시판에서 봤지.
-게시판?
-응. ‘레드존’ 길드 애들이 그 주변에서 깽판 치고 있나봐. 욕하는 글들이 많더라.
정확히는 아덴 요새가 아니라, 아덴 요새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 오그던 요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오그던 요새는 오스턴 왕국의 요새였지만, 현재 오스턴 왕국은 내전이 일어나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 상황.
그 상황을 틈타 ‘레드존’ 길드원들이 오그던 요새를 점령한 것이다.
성이나 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새만 점령해도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레드존’ 길드원들은 고생을 한 만큼 뽕을 뽑기 위해 지나가는 플레이어들에게 돈을 걷고 사냥을 할 때 세금을 걷으려고 했다.
그 주변의 오크들을 잡아야 하는 플레이어들은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
태현과 지수는 다행히 잘츠 왕국의 아덴 요새로 들어가서 저런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오그던 요새에서 퀘스트를 깨려는 플레이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길드의 요구를 따라야 했다.
잘츠 왕국의 아덴 요새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잘츠 왕국 출신 아니면 구박을 하는 곳이지.’
태현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했다.
-욕하는 글은 많은데 뭐 별로 신경 안 쓰는 거 같더라. 길드 애들이 그렇지. 돈만 벌면 된다 이거지.
평판이나 악명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한탕주의!
사실 그게 맞았다.
게시판에서 아무리 욕해봤자 실제 게임에서는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으니까.
-그러면 오그던 요새 주변만 안 가면 되는 건가?
-응. 그 주변 가면 세금부터 시작해서 좀 골치 아플 거야. 그 주변 가지 말고 사냥하자.
-좋아. 도착하면 연락해.
* * *
“친구요?”
“어.”
“어떤 친구예요?”
“게임 잘하는 친구지. 소꿉친구야. 성격 괜찮고 믿을만하고 게임 열심히 하고…… 걔는 나보다 레벨도 훨씬 높아. 먼저 시작했거든. 랭커 아니면 준 랭커급인데.”
태현의 말을 들은 지수는 눈빛을 반짝거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오지? 아까 다 왔다고 했는데.”
멀리서 긴 생머리의 미녀가 보였다. 갸름한 얼굴에 선명한 눈동자. 어디서 본 것 같은 미녀였다.
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그 미녀가 다가와서 말했다.
“야. 나 왔잖아.”
“……누구세요?”
“나야. 나. 최상윤.”
“????”
판타지 온라인 2는 외모는 건드릴 수 있었지만 성별은 건드릴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최상윤은 아무리 봐도 여자였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시선을 한 번씩 줄 미녀!
“내가 지금 미친 건가?”
“아니야. 들어봐.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최상윤은 험상궂은 태현과 달리, 꽃미남으로 인기가 많았었다.
학창 시절 때도 여장을 하면 어지간한 여자애 뺨치게 예쁠 정도의 꽃미남!
최상윤은 자기가 잘생긴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내에서 여장을 하면 통할까?’
판타지 온라인 2를 시작할 때 최대한 미녀스럽게 얼굴을 깎고, 레벨을 올려서 가발과 가짜 가슴 아이템을 얻고…….
원래 얼굴이 되는 꽃미남이었기에 가능한 여장!
그리고 그 여장은 완벽했다.
-저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번호 좀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까 아이템 구한다고 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졸졸 따라오는 추종자들!
난이도가 순식간에 쉬워졌다.
“그래서 계속 여장을 하고 있다고?”
“그래. 아. 사람들 있을 때는 사유라고 불러. 상윤이라고 부르지 말고.”
“…….”
태현은 친구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에라이. 할 게 없어서…….”
“야. 너도 해봐. 이거 진짜 편하다니까? 재미도 있고!”
“잠깐, 너 랭커 방송에 없던데, 설마 없는 이유가…….”
“너 남자 랭커들만 찾았지? 그러니까 안 보였겠지.”
충격적인 사실!
둘이 수군거리는 동안 지수는 망치로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여, 여, 여…….”
“여?”
“여자친구 있었어요……?”
지수가 말하는 걸 보고 최상윤이 씩 웃었다.
놀려주기 딱 좋은 상황.
“응.”
현실에서도 알고, 소꿉친구인 데다가, 얼굴도 엄청 예쁜 미녀.
지수는 갑자기 스스로가 엄청나게 작아지는 걸 느꼈다.
“아. 시끄러. 오해하잖아. 얘 여자친구 아냐.”
“친, 친구 이상 연인 미만 같은 거죠? 저도 알아요.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태현은 지수의 머리 양옆에 주먹을 대고 돌렸다.
“아야야야!”
“눈 있으면 똑바로 봐라. 쟤 남자다.”
태현의 말에 최상윤은 가발을 벗고 웃었다. 지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안해. 놀려서.”
“이래서 잘생긴 놈들은…… 넌 저렇게 되지 마라. 쟤는 잘생긴 얼굴을 참 이상하게 쓴단 말야.”
태현의 말을 들은 최상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들’?”
지수가 약간 중성적으로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숙련된 여장 경험이 있는 최상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지수는 여자였다.
최상윤은 태현 몰래 물었다.
“너 여자애 아냐?”
“……맞는데요.”
“근데 쟤는 남자애인 줄 아는 거고?”
“……네…….”
최상윤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바로 파악된 상황!
‘얘는 태현이를 좋아하고…… 태현이 저거는 띨띨해 가지고 눈치도 못 채고 있구나!’
이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인가!
“내가 도와줄게.”
“네? 뭘요? 사냥을요?”
“뭐든 말이야!”
“??”
“일단 태현이 주소부터 알려줄까?”
“……!”
지수는 바로 최상윤의 손을 잡았다.
“언니!”
“미안한데 나 남자거든?”
* * *
“그렇군요. 또 뭐 있나요?”
“쟤가 고등학생 때 싸움 좀 하고 다녔어. 내가 일진 애들한테 잡혀서 삥 뜯기고 있을 때 쟤가 와서 구해줬거든. 4 대 1로 싸워서 이기더라.”
지수의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그녀가 모르는 태현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앞에서 걸어가던 태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둘이 빨리 친해진다?”
“너 고등학생 때 이야기해줬어.”
“그런 걸 왜 이야기하는 거야? 하지 마.”
태현은 손사래를 쳤다. 싸움질하고 다녔던 게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지수는 최상윤에게 들은 정보를 소중하게 기록했다.
태현의 주소, 번호, 다니는 대학, 본명까지!
“쟤 엄청 둔하지?”
“네! 진짜 그래요!”
사실 지수는 그녀가 여자라는 걸 바로 말할까 고민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직접 말하는 건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언젠간 알아차려 주겠지!
그런데 지금 보니 진짜 끝까지 못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태현아. 퀘스트가 정확히 뭐야?”
“오크 부족장 죽이고 머리 가져오기.”
“???”
최상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지금 레벨에 나올 퀘스트야? 너 레벨 몇인데.”
“26.”
“생각보다 느리다?”
토끼발로 행운만 주야장천 올렸으니 당연히 레벨은 낮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26인데 오크 부족장 죽이는 퀘스트가 떠? 이상하네. 오크 부족장 죽여야 하는 거면…… 일단 부족 찾아가서 뚫을 수 있나 보자. 혼자 뚫을 수 있으면 뚫어보고, 못 뚫겠으면 사람들 부를게.”
“사람들이라니?”
“내가 연락만 하면 사제부터 성기사까지 일렬종대로 달려온다?”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거 저러다가 나중에 큰일 나지.
“아. 가기 전에 네 장비 좀 줘봐.”
“응? 왜?”
“대장장이 스킬로 좀 만져줄게.”
“싫어!”
“너 나 못 믿냐?”
“1때야 믿었지만 너 지금은 레벨 26이잖아! 대장장이 전직도 안 했을 거고! 뭘 믿고 장비를 맡겨!”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었다면 끼어들었을 것이다.
험상궂은 태현이 미녀를 붙잡고 장비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아. 믿어보라니까.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한 적 있…… 기는 한데 이번은 아니야.”
“……여기 있다.”
“이거 지금 네가 쓰고 있는 검 아니잖아?”
최상윤은 허리춤에 기다란 곡선 형태의 도(刀)를 매달고 있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검집에서 느껴지는 포스는 보통이 아니었다.
딱 봐도 명품!
“설마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장비를 줄줄 알았냐?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이 속아서 안 돼. 일단 그걸로 해봐. 그걸로 잘하면 이것도 빌려준다.”
친구 사이지만 신뢰고 뭐고 없었다.
최상윤은 태현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뭔가 하고 싶으면 우정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폭주하는 게 태현이었다.
“쳇. 쩨쩨한 놈.”
“그 장비도 레벨 제한 75 넘는 아이템이거든? 현금 거래하면 몇백은 기본으로 시작한다.”
태현은 그 말을 듣고 아이템창을 켰다.
하얀 서리의 곡도:
내구력 220/220, 공격력 90
스킬 ‘눈보라’ 사용 가능, 스킬 ‘빙결’ 사용 가능, 공격 시 빙결 데미지 추가.
레벨 제한 75. 힘 제한 45. 민첩 제한 150.
대장장이가 칼을 만들고 숙련된 마법사가 서리의 결정을 안에 집어넣은 마법검.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가진 명검이다.
과연 랭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상윤이 준 검은 뛰어났다.
이걸 만지면 대장장이 기술들이 얼마나 오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태현은 손바닥을 비볐다. 그걸 본 최상윤이 불안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 그런데 대장장이 스킬은 있지?”
“아. 믿으라니까? 1에서 나한테 신세 많이 졌잖아.”
“1에서야 네가 대장장이로 전직을 했잖아! 2는 네가 전직을 아예 안 했고! 누가 전직하지 말랬냐!”
“나 전직했다.”
“어? 진짜? 뭐로?”
“그건 이거 만진 다음 말해줄게.”
“대장장이 계열 직업이야?”
최상윤은 기대가 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 태현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독보적인 대장장이였다.
그 변태 같은 취향을 고쳐먹고 대장장이로 전직을 한다면, 2에서도 정말 대단할 것이다.
뛰어난 대장장이 한 명 알아두면 판타지 온라인에서는 정말 편했다.
장비 수리면 수리, 강화면 강화, 온갖 문제가 해결됐으니까.
태현은 대답 대신 망치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