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9화
태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킬을 확인했다.
<아키서스의 변덕>
보상으로 얻는 스탯이 늘어납니다. 스탯이 랜덤으로 배분됩니다.
스탯은 모든 플레이어들이 원했다. 레벨 업으로 얻는 스탯은 너무 적었다.
보통 퀘스트나 아이템으로 보충하게 마련이었다.
그런 면에서 얻는 스탯의 양 자체가 늘어나는 패시브 스킬은 사기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태현은 기뻐하다가 멈칫했다.
‘잠깐, 랜덤으로 배분된다니. 이게 무슨 소리?’
생각해 보니 좋은 게 아니었다.
스탯을 원하는 스탯에 넣을 수 없고, 랜덤으로 올라가는 형태!
‘이게 뭔……?’
순간 밀려오는 억울함!
태현은 첫 번째 전설 직업 보유자가 아니었다.
이세연이 먼저 전설 직업으로 전직을 했기에, 전설 직업이 얻는 스킬들이 대충 어떤지 알고 있었다.
방송에서도 몇 번 나왔으니까.
이세연의 전설 직업 전용 스킬들은 말 그대로 화려한, 네크로맨서의 정점을 찍은 스킬!
언데드들을 강화시키는 오러부터 시작해서 사제들의 신성 마법을 차단하는 저주, 강화된 데스 나이트 소환까지.
방송에서 공개한 스킬만 그 정도였으니, 실제로는 더 강력한 스킬들을 여럿 숨기고 있을 것이다.
이세연도 랭커니 방송에서 중요한 정보를 숨길 테니까.
그런데 아키서스의 화신은 같은 전설 직업이면서 뭔가 스킬이 다 미묘했다.
‘아니…… 이럴 거면 차라리 전직 거부를 받아주던가…….’
다른 전설 직업보다 구린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설 직업이라서 구리다는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에이. 전설 직업인 건 진짜 숨기고 다녀야지.’
지금 알리면 귀찮아지는 것도 있었지만, 나중 가도 숨기고 싶어졌다.
-직업빨로 이기는 놈!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다음 스킬 보자.’
<신의 품격>
행운 수치에 따라 회피율, 치명타율이 올라갑니다.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올라갑니다.
지금도 태현의 회피율과 치명타율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들은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지 못할 정도!
그런데 행운 수치에 따라 더 올라간다니.
얼마나 올라갈지는 태현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마어마할 게 분명했다.
‘어?’
그 뒤 문장을 읽은 태현은 경악했다.
행운 수치에 따라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올라간다고?
‘아니, 잠깐, 잠깐만……?’
현재 태현의 행운 수치는 2550!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치.
그렇다면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얼마나 올라간다는 것인가?
‘이런 미친……!’
빠르게 레벨을 올려서 랭커로 이름이나 알리려고 했던 태현으로서는 날벼락이었다.
캐릭터의 강함과 상관없이 레벨 자체가 엄청나게 느리게 오를 테니까.
‘아…… 진짜…….’
태현은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판타지 온라인 1 때처럼 해야 하나?’
사실 어떤 플레이어가 강하느냐, 이런 문제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누가 세다 누가 세다 하지만 그 결과를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레벨로 순위를 매기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싸워보면 결과는 알 수 없는 법.
판타지 온라인 1에서 태현이 랭커들을 사냥하고 다니기 전에 ‘내가 가장 세다!’라고 말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보여주는 것.
사실, 태현은 지금 빠르게 명성을 얻는 방법이 있었다.
그냥 판타지 온라인 1 때 김태현이 그라고 밝힌 다음 방송을 시작하면 됐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랬다가는 복수하겠다고 전부 몰려올 테니…….’
사람은 원래 원한을 쉽게 잊지 않았다.
판타지 온라인 1의 랭커들은 당연히 2도 거의 하고 있을 것이다.
태현한테 썰렸으니 당연히 이를 갈고 있겠지!
‘끙. 이것도 결국 캐릭터 좀 키우고 할 수밖에 없나. 레벨 업에서 밀리니 퀘스트 보상 위주로 키우고.’
판타지 온라인 1 때처럼 랭커 사냥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강함은 필수!
지금 레벨 26짜리 캐릭터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무리 회피를 한다고 하더라도 고렙 플레이어 정도 되면 태현의 움직임을 멈출 방법이 몇 개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일단 태현의 움직임만 멈추면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행운이 높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싸움이 되겠지.
‘그래. 더 키워야겠다.’
그러나 태현은 모르고 있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왜 전설 직업인지.
전설 직업이라는 건 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었다.
* * *
“김태현이 돌아왔습니다!”
“거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돌아온다고 했잖아!”
최명성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모니터실에서 태현이 전설 직업으로 전직하는 걸 보고 있었다.
태현이 전설 직업을 얻자 최명성은 소리를 질렀다.
판타지 온라인 1의 그 김태현이 전설 직업을 얻다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말 기대된다!
그러나 태현은 몇 마디 나누더니 그대로 로그아웃해 버렸다.
-방, 방금 뭐라고 했죠?
-어…… 접는다고 한 거 같은데.
-잘못 들은 거 아냐?
-아니, 진짜 접는다고 한 거 같은데.
최명성은 그 말을 한 직원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아, 아야야! 팀장님! 아파요!
-네가 잘못 들은 거야.
-네?
-네가 잘못 들은 거라고!
현실 부정!
김태현한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최명성에게 그가 접는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김태현은 돌아왔다.
어딘가 포기한 표정이었지만 뭐 어떤가, 돌아왔다는 게 중요하지!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이세연 때처럼 해. 직업 이름은 말하지 말고, 2번째 전설 직업 나왔다고.”
“사람들이 궁금해 죽겠는데요?”
“그렇지. 지금 랭커들은 다 자기들을 홍보하고 다니니까.”
개인 방송은 기본이고 공중파까지 나와서 홍보를 하려는 게 랭커들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의 순위는 그 자체로 흥행보장이 된 수표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판타지 온라인 2는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세연도 방송을 하고 있었으니, 판타지 온라인 측에서 발표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전설 직업이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지금 방송을 하지 않는 상황.
판타지 온라인 측이 발표를 하면 사람들이 매우 놀랄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인데 아무도 모르게 전설 직업이 된 거지?
“그래도 사람들이 너무 궁금해할 텐데, 정보 좀 풀어주는 게 낫지 않나요?”
“멋대로 정보를 풀면 안 되지. 공평하지가 않잖아.”
“그래도…….”
“게다가 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아. 한동안 또 이걸로 떠들지 않겠어? 공개를 하지 않으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화제가 될 거야.”
‘과연 이번에 나온 전설 직업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전설 직업을 얻었을까?’ ‘왜 전설 직업인데도 공개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한동안 떠들썩해질 것이다. 이런 것도 좋았다.
그리고 최명성은 김태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과연 어디까지 갈까?’
* * *
“형!”
“아. 깜짝이야.”
지수는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접지 마요! 접을 거면 연락처라도 알려주고 가요!”
“얘가 진짜…… 안 접어.”
“네?”
“안 접는다고.”
“진짜요?”
“내가 너한테 거짓말해서 뭐하게?”
지수는 활짝 웃었다. 그걸 본 태현은 점점 기분이 찜찜해졌다.
‘얘 진짜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딱히 태현이 편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태현은 어디까지나 여자를 좋아했다.
그런데 지수가 보여주는 눈빛은 자꾸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여자애처럼 예쁘장한 애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눈을 반짝이니…….
“형. 연락처 교환해요!”
“뭐?”
“전화번호요. 전화번호!”
“…….”
태현이 머뭇거리자 지수가 슬며시 말을 돌렸다.
“……아니면 카X오톡 아이디라도…….”
“…….”
“왜 대답이 없어요! 내가 그거 갖고 뭐 이상한 짓이라도 할 거 같아요?”
“나중에 교환하자. 나중에.”
태현은 급히 말을 돌렸다. 지수는 볼을 부풀렸지만 태현이 싫어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나 없는 동안 파티원들이 뭐라고 안 했어?”
요새로 돌아와서 쉬는 사이 멋대로 나가버렸으니 파티원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제가 잘 말해놨어요. 일이 생겼다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던데요. 먼저 다른 퀘스트 좀 깨고 있겠다고…….”
요새 안의 NPC들이 여럿 있었으니, 들어온 이상 여러 퀘스트를 받는 게 좋았다.
판타지 온라인은 퀘스트를 안 하고 레벨 업만 하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퀘스트 보상으로 스탯과 스킬을 쌓아가는데 레벨 업만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 생각보다 별말 안 했네.”
“처음부터 같이 파티 한 게 아니라 임시로 같이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형이 그 사람들도 다 잡아줬잖아요. 거기서 뭐라고 하면 양심 없는 거 아니에요?”
“원래 사람들은 그렇게 딱딱 맞춰서 행동하지 않는단다. 게다가 아이템도 내가 다 먹었잖아?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 없다니 다행이네.”
태현은 백부장에게 다가갔다.
최하준과 최하영 파티는 오크 머리 10개만 가져가면 퀘스트가 끝났지만, 태현과 지수는 그게 아니었다.
오크 부족의 근거지를 파괴하고 부족장을 죽여야 하는 하드코어한 난이도의 퀘스트!
태현은 지금 이걸 깰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걸 깬다는 건 죽으러 가기 딱 좋은 짓이었다.
태현은 어떻게든 백부장에게 잘 말해서 퀘스트를 취소할 생각이었다.
퀘스트를 취소할 때는 보통 페널티가 붙었다.
친밀도가 내려가거나, 명성이 내려가거나…… 다양한 페널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취소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판타지 온라인 2는 강력한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가상세계. NPC들은 실제 사람들과 똑같았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백부장님. 여기 오크들을 사냥해왔습니다.”
“오! 자네인가! 역시 믿고 있었네. 저런 비리비리한 다른 왕국 놈들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암!”
호탕하게 웃는 백부장. 태현은 그를 보며 말을 꺼낼 타이밍을 노렸다.
‘언제 꺼내지?’
“저, 백부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이 오크들이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아서…….”
“오크 머리를 베어온 솜씨를 보니…… 정말 대단하군! 이봐! 여기 와서 이것 좀 봐봐.”
“뭔데?”
백부장이 다른 동료를 부르자 태현은 불길함을 느꼈다.
‘설마…….’
“정말 대단하지 않아?”
“그렇군. 모험가치고 깔끔한 솜씨야.”
“지휘관님에게도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거 좋지!”
“아니, 백부장님. 그러니까 족장의 머리를 잘라오는 건 좀…….”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하하!”
듣지도 않고 돌아서는 두 백부장! 태현은 사실 그의 친밀도가 마이너스가 아닌지 의심됐다.
이게 엿을 먹이려는 거지 믿고 맡기는 건가?
너무 높은 행운 수치와 친밀도 때문에 나온 희귀 퀘스트. 어떻게든 취소를 하려고 하는데 만만치가 않았다.
태현은 친밀도 하락을 각오했다.
“야, 백부장! 내 말 좀 듣고 가라고!”
“음?”
지수는 화들짝 놀라 태현을 쳐다보았다.
“왜, 왜 그래요? 갑자기?”
NPC들에게 무례하게 굴면 위험했다. 친밀도 하락은 기본이고 운이 없으면 처벌까지 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기는 요새 안. 백부장 밑의 병사들이 많았다.
“괜찮아. 친밀도 때문에 공격은 안 당해. 아마 화를 내면서 친밀도가 깎이겠지. 퀘스트도 취소당할 거고.”
백부장은 가다가 돌아서서 태현에게 걸어왔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지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야라고?”
“그래.”
“자네…… 진작 그러지 그랬나!”
“?!”
“자네 같은 모험가라면 친구로 지내도 좋지! 편하게 부르게나!”
“이런 개 같은 시스템을 봤나!”
욕을 해도 좋아하는 백부장! 태현은 깨달았다.
지금 그는 어지간해서는 친밀도를 깎을 수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