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3화
“도움이요? 어…….”
여사제, 최하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혼자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같이 온 파티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파티장님이 결정하죠?”
“파티장이 결정하면 따를게요.”
파티원들은 의외로 반대하지 않았다. 요새에 들어가는 건 공짜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 파티의 파티장은 최하영이었다.
사제는 구하기 힘든 귀중한 인재니 파티장을 맡아도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건 아니었다.
최하영은 중갑을 입고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그녀의 남동생인 최하준이었다.
“어떻게 할까?”
“그냥 골드 같은 거 주면 안 돼? 우리도 퀘스트 있는데 괜히 도와주다가 발목 잡힐 수도 있잖아.”
동생의 말을 들은 최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외쳤다.
“골드는 어때요? 골드 드릴게요.”
물론 태현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
“아니, 누가 골드 달랬어요? 사제로 도와줄 거 아니면 됐어요.”
태현과 지수가 바로 요새 안으로 들어갈 것 같자 다급해진 건 그들이었다.
오크 토벌 퀘스트를 받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 주변에는 보급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 요새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계속 돌아다니면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오크들과 싸워야 했다.
“아, 아니에요! 도와줄게요! 요새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그렇게 나오셔야지.”
지수가 태현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물었다.
“꼭 도움을 받아야 해요?”
“왜? 도움받기 싫어? 나 혼자면 몰라도 너 퀘스트 깨려면 도움 좀 필요할 텐데.”
“아니…… 그런 건 아닌데요…….”
지수는 우물거렸다.
태현과 둘이서 잘 놀았는데,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게 조금 꺼려지긴 했다.
실제로 그녀는 처음에 너무 못 싸운다고 파티 몇 개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었다.
“걱정 마. 필요할 때만 도와달라고 하는 거고. 저쪽이랑 계속 같이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 퀘스트가 쟤네 퀘스트랑 아예 안 겹칠 수도 있고.”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저 사람들, 우리 일행인데 들여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병사는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이 오릅니다.]
밖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말 한 마디에 병사들이 문을 열어주는 걸 보고 입을 벌렸다.
“말 하나 했다고?”
“진짜 여기 뭐야?”
잘츠 왕국의 쪼잔함은 그들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그래도 일단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최하영은 태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들어왔네요.”
“사제로 도와주기로 했으니 따로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그거 말인데. 그냥 골드로는 안 됩니까?”
최하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중갑을 입은 모습에 태현은 생각했다.
‘성기사인가?’
“일단 들어오니까 생각이 달라지죠?”
최하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런 게 아니라…….”
“그보다 그쪽도 레벨이 그렇게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골드가 그렇게 넘쳐납니까?”
파티원 중 하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여기 파티장이 돈이 좀 많아.”
“돈이 좀 많다고?”
“현질 있잖아. 현질.”
최하영이 눈살을 찌푸리자 최하준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아, 현질한 건가. 골드야 많겠군.”
“아닙니다. 그냥 농담한 겁니다.”
그러나 태현은 끝내지 않았다. 태현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얼마나 돈이 많은데?”
“듣고 놀라지나 말라고. 집에 빌딩이 두 채나 있다나 봐.”
“그만하라니까! 별거 아닙니다.”
파티원이 자꾸 말하자 최하준이 성질을 냈다. 그러자 파티원도 찔끔해서 입을 다물었다.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최하준의 얼굴에서는 자부심이 보였다.
내가 이만큼이나 잘 산다는 자부심.
‘별거 아닙니다’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예의상 말하는 대사!
그러나 태현과 지수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정말 별거 아니었네.”
“그러게요.”
“????”
그들에게는 정말로 별거 아니었던 것이다.
* * *
태현은 요새 안으로 들어온 파티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에랑스 왕국 내에서도 퀘스트가 나온 모양이었다.
-국경 주변에 나타난 오크들을 처리하라!
왕국과 친밀도를 올리거나, 왕국 내에서 무언가 자리를 얻으려는 플레이어들은 이 퀘스트를 노릴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 몰려오겠네.’
가능하면 빨리 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 파티원들은 사제에 성기사에 전사, 마법사. 균형 잡힌 조합.
“그런데 두 분은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궁수에, 어…… 전사?”
지수는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백수라고 말해요?’
‘미쳤냐? 당연히 안 되지.’
말하는 순간 같이 다니는 건 끝!
“도적 계열입니다. 얘는 궁수 계열이고.”
“두 명이서 다니기 안 힘들어요?”
“얘가 영웅 직업이라서요.”
순식간에 바뀌는 눈빛!
희귀 직업도 나름 대접받는데, 영웅 직업이라면 보는 눈빛이 달랐다.
“그쪽도 영웅 직업이에요?”
“영웅 직업 아닙니다.”
“일반 직업?”
“일반 직업 아닙니다.”
“아, 희귀 직업인가 보군요.”
영웅 직업도 아니고, 일반 직업도 아니고, 전설 직업도 아니니 남은 건 희귀 직업!
사실 전직을 아직 안 한 상태였지만.
‘영웅 직업에 희귀 직업이라 둘이서 다니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실력은 믿을 만한 수준!
“오크 부족을 정찰하러 간다! 따라올 모험가 있나!”
요새 안에서 백부장이 크게 소리쳤다. 참가하려면 참가하라는 뜻이었다.
“따라가죠!”
파티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병사들과 같이 움직이는 게 지름길이었다.
“다 모였나? 출발한다!”
백부장이 칼을 휘두르자 병사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잠시 휴식!”
병사들을 따라 걷던 플레이어들은 지휘관의 소리에 멈췄다.
“오크는 언제 나오는 거야?”
“몰라.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좀 적게 나왔으면 좋겠다.”
“에이, 난이도 어련히 알아서 맞췄을까.”
파티원들이 떠드는 동안, 태현은 병사들에게 접근했다.
“저기…….”
“……?”
“갑옷과 창을 좀 손봐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는 눈!
아이템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잡아야 했다.
최하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분명 도적 계열 직업이라고 하지 않았나?
“갑옷과 창을 손봐준다고요?”
[병사가 기뻐합니다.]
[백부장이 기뻐합니다.]
[만약 장비가 손상된다면 친밀도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태현이 잘츠 왕국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병사들은 의심하지 않고 좋아했다.
“여기 있습니다.”
“저도 해주시죠!”
“제 것도 해주세요!”
쏟아지는 일감들. 태현은 거절하지 않고 전부 다 받았다. 입꼬리는 이미 올라간 상태!
‘대박이다!’
요새의 병사들은 딱 봐도 레벨이 꽤 높아 보였다. 이들의 장비를 다 만질 수 있다면 스킬 상승은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잘못 만졌다가 장비를 망가뜨린다면 친밀도 하락은 물론, 잘못하면 여기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러나 태현은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든 크게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잘츠 왕국 정예병의 창을 날카롭게 가는 데 성공합니다. 추가적으로 친밀도가 증가합니다.]
[잘츠 왕국 정예병의 갑옷의 녹을 없애는 데 성공합니다. 추가적으로 친밀도가 증가합니다.]
[대장장이 기술이 상승합니다.]
“오오! 정말 대단하군요!”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화색이 되는 병사들.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도적 계열 직업인데 저런 게 가능해?”
“저 정도 장비면 스킬 레벨 좀 높아야 만질 수 있지 않아?”
병사들의 반응을 보니 성공적으로 장비를 만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꽤 높다는 의미.
그런데 태현은 스스로가 도적 계열 직업이라고 했다.
“저기…… 도적 계열 직업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최하영이 묻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 계열 직업인데요.”
“그런데 대장장이 기술 쓰셨잖아요?”
“도적 계열 직업이라고 못 쓰는 건 아니잖아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우기기.
태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판타지 온라인 2의 직업은 많고 많았다. 대장장이 기술을 따로 갖고 있는 도적 계열 직업이 있어도 놀랍지 않았다.
‘대장장이 도적’ 같은 직업 말이다.
물론 태현은 아니었지만, 당당하게 말한다면 상대방은 알아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도적인데 대장장이 기술도 있다고?”
“그게 무슨 직업이지? 안 알려진 희귀 직업 같은데?”
“특이하네. 대장장이 기술하고 도적이랑 섞인 건가. 꽤 좋은 직업 같은데.”
“저기 병사들 반응 보면 대장장이 기술도 레벨 꽤 높은 거 같고.”
그들이 떠드는 사이 백부장이 외쳤다.
“오크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정찰에 나설 자원자 있나!”
[돌발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저요! 저희가 하겠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퀘스트. 최하준은 나서서 손을 들었다.
이런 소규모 돌발 퀘스트는 무조건 해야 했다.
큰 퀘스트를 깨는 데 도움도 되고, 보상도 따로 받는 일석이조의 퀘스트였으니까.
“에랑스 왕국 놈들치고는 용감하군! 그래. 좋다! 오크 놈들을 찾은 다음 놈들의 머리를 10개 가져오도록!”
지시를 하면서 빼놓지 않고 다른 왕국의 욕을 하는 백부장이었다.
그래도 퀘스트는 간단했다.
<오크 부족의 움직임을 파악해라>
백부장은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원자를 찾는다. 임무를 맡아서 성공할 경우 보상과 함께 요새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크의 머리: 0/10
보상: 요새 병사들과의 친밀도 증가.
최하준과 다른 사람들은 한 파티 소속이어서 퀘스트가 같이 받아졌다.
그에 비해 태현과 지수는 따로 신청을 해야 했다.
‘오크 머리 10개 잘라오면 되는 건가? 무난한 퀘스트군.’
“저희도 하겠습니다.”
“오, 너희도?”
[행운이 발동됩니다.]
[희귀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
태현이 당황하기도 전에, 백부장이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오크 부족이 있는 게 분명하다. 오크 부족의 근거지를 찾은 다음 시설을 파괴하고 놈들을 몰아낸 다음 부족장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오도록!”
쉬지도 않고 쏟아지는 지시사항!
게다가 결코 만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저쪽 파티는 그냥 오크 몇 마리 잡으면 되는 일인 데, 태현은 아예 오크 부족 하나와 통째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이런 미친……?’
태현은 당황해서 백부장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러나 백부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자네를 믿네!”
“아니, 백부장님! 이건 둘이서 할 게……!”
<희귀 퀘스트-오크 부족을 섬멸해라>
백부장은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실력을 신뢰하게 됐다. 그는 당신이 혼자서 오크 부족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신뢰를 배반할 경우 요새의 사람들은 많이 실망할 것이다.
보상: ???
태현이 거절하기도 전에 퀘스트가 떨어져 버렸다.
‘망했다……!’
희귀 퀘스트라니.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높은 행운이 이렇게 작용을 한 것이었다.
퀘스트도 일정 확률로 비밀 퀘스트가 주어지거나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비밀 퀘스트는 정말 좋은 보상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비밀 퀘스트와 조건을 찾는 사람들도 따로 있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찾지 못해서 안달인 희귀 퀘스트를, 태현은 행운으로 덜컥 받은 것이다.
“뭐, 뭐예요?”
“……이거 일이 좀 꼬인 거 같은데.”
여기서 거절했다가는 앞으로 움직일 때 꽤 많이 귀찮아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