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2화
그러나 둘은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상황.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직업이면 왜 제 무기를 달라고 한 걸까요? 이 정도라면 돈을 받아도 될 정도인데!”
“음. 일단 내 생각이 맞다면, 레벨이 낮은 건 확실한 거 같아. 레벨이 낮을 때 고레벨 장비를 만지면 스킬 레벨이 팍팍 오르니까. 아마 네가 레벨이 높아 보이니까, 네 장비를 만져서 빠르게 스킬 레벨을 올리려고 한 거겠지. 돈을 안 받은 건 아마 초보자라서 자기의 가치를 잘 몰라서일 거고.”
“자기의 가치를 잘 모른다고요?”
“판타지 온라인 2 하는 모든 사람이 다 똑똑하게 플레이하는 건 아니잖아.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영웅 직업으로 전직했다고 해도 초보자 같은 경우는 이럴 거라고. ‘어? 나 영웅 직업으로 전직했네? 뭐하지? 일단 타이럼에서 전직했으니 여기서 계속 레벨 업 해봐야지’ 이렇게. 초보자들은 자기 직업이나 스킬이 얼마나 좋은 건지 파악하기 힘들단 말이야. 파악을 했으면 벌써 다른 왕국으로 가서 길드 들어갔겠지. 타이럼 같은 곳에 계속 있다는 게 그 증거야.”
“그렇군요!”
“자기 직업이나 스킬이 그렇게 좋은 건지 모르니까, 너한테 돈을 받아도 모자란 상황에서 그냥 그런 스킬을 써준 걸 거야. 자기 스킬 레벨 올리려고.”
“그렇…… 어?”
구성욱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태현은 그렇게 순진한 사람 같지 않았던 것이다.
대화하는 것만 보면 사채업자라고 해도 놀랍지 않을 수준!
험악한 인상에 절대 양보하지 않는 굳은 마음.
이런 사람이 호구…… 아니, 초보자라고?
이상하긴 했지만 필의 말은 그럴듯했다. 구성욱은 그가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데리고 올까요?”
말하고서 구성욱은 아차 싶었다.
지금 길드의 대장장이는 필. 그리고 그도 영웅 직업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한테 묻지도 않고 당장 데리고 온다고 하다니.
필이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게다가 필 정도면 데리고 가려는 길드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필은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당연히 데리고 와야지.”
역시 대인배!
길드에서 가장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었다.
“대장장이 계열 영웅 직업이면 부르는 게 값이야. 무조건 데리고 와. 어떻게든 데리고 오면 내가 그다음부터는 설득할 테니까.”
좋은 장비 제공, 레벨 업 하기 위한 사냥터와 파티원 제공, 장비를 만들 때 쓸 재료를 제공해 주는 건 물론이고 스킬이나 제작법까지 도와준다.
초보자라면 순식간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번에 거절했는데 이걸로 될까요?”
“더 확실하게 말해야겠지. 팍팍 질러. 월급도 줄 수 있다고 해.”
“월급이요?!”
“줄 수 있지 않아? 길드에 있는 골드 환전하면 되잖아. 우리가 골드 못 버는 길드도 아니고.”
판타지 온라인 2는 기존의 게임이 갖고 있는 인기를 훨씬 뛰어넘는 인기를 갖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동시에 즐기는 게임!
실제로 필도 외국인이었다.
게임 내 아이템을 현금으로 비싸게 살 수 있듯이, 게임 내 골드도 현금으로 살 수 있었다.
“그 정도까지 해야 해요?”
“얘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네. 너 영웅 직업 대장장이가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르지? 나도 희귀 직업이야. 영웅 직업 대장장이가 레벨만 더 올려봐. 나중에 가서 다른 길드 무조건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우리만 손해야. 그때 가서 보면 우리 배가 얼마나 아프겠어? 무조건 잡아!”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돌아갔을 때 태현은 이미 타이럼을 떠난 상태였다.
“아오!!!!”
* * *
“거 참 신기하네. 행운 때문인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대장장이로 계속 플레이했던 태현이었다.
그런 그도 이런 현상은 신기했다.
스킬 레벨과 맞지 않는 대단한 효과가 부여되다니.
아이템을 만들 때도 일정 확률로 엄청나게 좋은 아이템이 나왔다.
그렇다면 스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행운을 태현만큼 올린 사람이 없어서 참고할 곳이 없었다.
‘하긴, 행운을 이천 넘게 찍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 보람이 있지.’
태현이 일부러 어렵고 약한 캐릭터를 골라서 키운다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장점은 있어야 했다.
장점이 없는 캐릭터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덜커덩, 덜커덩-
“으으. 이거 너무 흔들리네요.”
지수가 멀미가 난다는 표정으로 밖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지금 마차 안에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레벨 10이 되면 바로 탄다는 바로 그 마차.
보통은 에랑스 왕국으로 갔다. 에랑스 왕국은 잘츠 왕국보다 훨씬 더 큰 왕국으로, 온갖 시설들과 NPC들이 있었다.
마탑도 있고 제작 길드도 다양하게 있으니 속 좁은 사냥꾼들만 우글거리는 잘츠 왕국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
“지금 가는 요새가 어디라고?”
“에랑스 왕국이랑 오스턴 왕국 국경 쪽이요.”
지수는 판타지 온라인 2 매니아 사이트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다.
오스턴 왕국은 잘츠 왕국의 남쪽에 있는 왕국.
그렇지만 지금은 고렙 정도만 거기에 들어갔다. 초보자들은 아예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안에서 내전이 벌어진 것이다.
판타지 온라인 2는 인공지능으로 실제 세계처럼 돌아가는 세상.
전쟁이 일어나고 왕이 바뀌고 왕국이 사라지거나 생기는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런 대규모 이벤트는 언제나 플레이어에게 좋은 기회였다.
귀족에게 붙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면 귀족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상인 같은 경우에는 거기로 가서 비싸게 물건을 팔 수 있었다.
그도 아니라면 그 주변을 돌면서 버려진 아이템들을 주울 수도 있었다.
저런 식의 전쟁은 퀘스트들을 산더미처럼 주는, 아주 좋은 기회였지만…….
‘지금은 무리지?’
태현은 아쉬웠지만 오스턴 왕국으로 갈 생각은 포기했다.
거기 끼어봤자 좋을 게 없었으니까.
전쟁은 레벨 100 안팎인 NPC들이 팍팍 튀어나오는 곳이었다.
왕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당연히 기사들도 나올 것이고.
그런 곳에 태현이나 지수가 갔다가는 뭘 하기도 전에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중에 또 기회가 생기겠지.’
어쨌든 오스턴 왕국은 현재 마비 상태였다.
덕분에 떠돌이 오크 부족들은 우르르 몰려와서 국경 주변을 점령했다.
그리고 이제 그 여파가 잘츠 왕국이나 에랑스 왕국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설명을 들은 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에랑스 왕국 쪽에서도 퀘스트 받은 사람 있겠는데?”
“네?”
“장소도 국경 근처고, 오크들이 에랑스 왕국도 침범했으면 에랑스 왕국 쪽으로도 퀘스트 몇 개 나왔을 거 아냐.”
“아. 그러네요.”
“경쟁 퀘스트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시간제한이 없는 퀘스트와 달리, 가장 먼저 한 사람이 깨면 끝나는 퀘스트!
이런 오크 토벌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열어줘요! 열어줘!”
“우리 오크 토벌 하러 왔다니까!”
“아니, 오크 토벌 하러 왔는데 안 열어주는 게 말이나 돼?!”
“너 밤길 조심해라!”
“……?”
마차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고개를 내미니 저 멀리 요새가 보였다. 그리고 요새 앞에 모인 플레이어들도.
“뭐죠?”
“글쎄?”
요새는 작았지만 아주 단단해 보였다. 돌을 쌓아 올린 성벽에, 위에 서 있는 병사들도 꽤나 레벨이 높아 보였다.
게다가 앞에는 목책과 해자가 있었고.
괜히 국경에 있는 요새가 아니었다.
“시끄럽군. 공격 준비!”
요새 성벽 위에 서 있는 NPC 하나가 입을 열었다. 복장을 보니 지휘관 같았다.
“물러서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
병사들이 일제히 활을 꺼내 아래를 겨냥했다.
그 모습을 본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물러섰다.
“뭐, 뭐야?”
“와, 진짜…… 잘츠 왕국 장난 아니다!”
“무슨 일입니까?”
태현은 마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화난 얼굴로 요새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인간들이 문을 안 열어줍니다!”
“안 열어준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죠?”
“그쪽은 여기에 무슨 일로 왔는데요?”
“오크 토벌 때문에요.”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저 인간들이 외부인이라고 요새에 못 들어가게 해요. 아니, 토벌 퀘스트인데 어떻게 파티 하나로 깹니까? 세력에 들어가야지!”
말이 오크 부족이지, 숫자만 본다면 파티 하나로 깨기는 힘든 퀘스트였다.
보통 이런 퀘스트는 다른 왕국의 병사들과 힘을 합쳐서 깨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츠 왕국 요새는 단호하게 접근을 거절했다.
“왜 이런 거죠?”
“글쎄, 설마…….”
태현은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다가갔다.
그러자 요새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 타이럼 사냥꾼인가? 들어오게!”
“…….”
잘츠 왕국의 사람은 환영하지만, 다른 왕국의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잘츠 왕국의 요새니까 말이야 되는데…… 여기 좀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태현도 어이없어할 정도!
오크 토벌을 위해 플레이어가 왔으면 도와주기 위해 요새 안으로 들어가게 해줘야지.
그래야 요새 안에서 도움도 받고, 회복도 하고, 장비도 사고팔고 할 거 아닌가.
병사들과 같이 움직이기도 하고.
들어가려다가 거절당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태현과 지수가 들어가는 걸 보고 발끈해서 외쳤다.
“아니, 저 둘은 왜 들여보내 주는 겁니까?”
“타이럼 사냥꾼이잖아.”
“??”
이해를 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직업을 말해야 들여보내 주는 건가?’
그렇다면 직업을 말해보자!
“나는 견습 기사에요! 에랑스 견습 기사!”
“나도 방패 전사인데?”
“저는 데메르 여신을 믿는 사제…….”
우수수 나오는 직업들. 그러나 요새의 지휘관은 냉정했다.
“그래. 그리고 에랑스에서 온 놈들이잖아. 우리 요새는 잘츠 왕국의 요새다! 다른 놈들은 안 받아줘!”
“뭐 이런?!”
현실성의 극대화!
잘츠 왕국에서 온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잘츠 왕국의 요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친밀도를 쌓아야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걸 쌓는 건 무리.
“뭐라는 거야! 지금 오크들이 적 아냐?!”
“당신 미쳤어?!”
아무리 플레이어들이 난리를 쳐도 지휘관과 병사들은 냉정했다.
그걸 빨리 깨달은 건 자기가 사제라고 밝힌 여자 플레이어였다.
“저기, 저기요!”
“……?”
요새의 문 사이로 들어가려던 태현과 지수는 멈칫했다.
“저희 좀 도와주세요!”
“뭘요?”
지수가 물었다. 그러나 태현은 손을 뻗었다.
너는 말하지 말라는 뜻!
“이때는 뭘요라고 묻는 게 아니야.”
“??”
“왜요지. 왜요?”
내가 널 왜 도와줘야 하냐?
좋은 게 있으면 결코 공짜로 나눠주지 마라!
듣자마자 태현이 ‘왜요’라고 묻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같이 오크를 잡으러 왔으니까요?”
“바보야.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여사제가 눈치가 빠른 것 같았다.
“왜 그래?”
“들어오게 해줄 테니까 대가를 내란 거잖아.”
“뭐? 저 요새 들어가게 해주는 거 가지고?”
“그러면 지금 저 요새 들어갈 수 있어? 도움 안 받고?”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겨우 요새 하나 먼저 들어간 거 가지고 대가를 요구하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다.
요새의 NPC들과도 친한 것도 일종의 힘!
“돈 주면 되지 않을까?”
다른 파티원이 중얼거렸지만 여사제는 무시하고 태현에게 물었다.
“가만히 있어 봐. 내가 말해볼 테니까. 저기요! 뭘 원하세요?”
“거기 사제 있죠?”
“네? 네. 제가 사제예요. 데메르 여신 사제요.”
“퀘스트 깰 때 도움 좀 받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괜히 파티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가장 좋은 조합은 균형 잡힌 조합!
그 조합 중에서 사제는 언제나 많이 찾는 직업이었다.
파티원들을 회복시켜주고 축복으로 버프해 줄 수 있는 직업을 누가 싫어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