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1화
태현은 구렌달과의 대화를 끝낸 다음 바로 도시 밖으로 향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토끼 안 나왔나?’
자기가 일시적으로 멸종시켜놓고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
개발자들이 보면 욕이 나올 정도의 집념이었다.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행운 5를 또 올리겠다!
그러나 물론 토끼는 없었다. 한 번 사라진 이상 다시 나타나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다.
“다른 거 하면서 기다려야 하나?”
“오ㅃ…… 가 아니라, 형! 형!”
“음?”
익숙한 목소리에 태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친구 추가 안 했어요!”
헉헉거리며 지수가 달려왔다. 그녀는 태현처럼 계속 접속해 있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최대한 빨리, 급하게 들어왔다.
물론 태현과 같이 퀘스트를 깨고 싶어서였다.
처음에 타이럼시로 떨어졌을 때에는 세상에 무슨 이런 도시가 다 있냐고 우울했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얻지도 못할 행운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게 태현 덕분이었다.
같이 게임을 할 생각을 하니 신이 나서, 친구들도 버려두고 들어왔는데…….
‘친구 등록을 안 했잖아?!’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 추가?”
“네! 지금 하죠!”
“어…… 꼭 해야 해?”
“네?!”
지수는 정말로 충격받았다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랑 친구 하기 싫어요?!”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네가 좀…….”
예쁘장하게 생긴 미소년이 자꾸 형, 형 하면서 눈빛을 반짝거리니까 슬슬 불안해졌다.
‘얘 진짜 그런 취향인 건 아니겠지?’
지수는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떨궜다. 그걸 보자 또 태현은 마음이 약해졌다.
“야. 야. 알겠어. 친구 하면 되잖아!”
활짝!
지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솔플 하는 거 같은데, 그러면 제가 처음으로 친구인 거죠?”
“어? 아니. 친구 있는데?”
“네?”
지수는 배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니…… 나도 친구 있을 수 있지. 현실 친구 있잖아. 친구는 게임 밖에도 있어!”
“아…….”
지수는 아쉬웠지만 무슨 소리인지는 이해했다. 그녀도 친구는 있었으니까.
“오늘도 토끼 잡으실 거예요?”
“아니. 토끼는 한동안 안 나와.”
“네? 왜요?”
“내가 하도 많이 잡아서.”
“…….”
“이제 슬슬 레벨 업도 하고 장비도 맞춰야 하기는 하겠어. 기본적인 스킬은 다 잡아놨으니…….”
타이럼시에서 우연히 좋은 것들을 많이 얻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 안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더 좋은 장비, 더 좋은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돌아다니면서 퀘스트를 깨고 새로운 던전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면 저랑 같이 가요!”
“응? 왜?”
“……저랑 같이 가기 싫어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뭐 퀘스트라도 있냐고.”
“아아. 네! 물론이죠!”
지수는 재빠르게 퀘스트창을 켰다.
<오크를 토벌하라>
잘츠 왕국은 소국이지만 강하다. 산악 지대에서 오랫동안 버텨온 잘츠 왕국의 전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최근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다.
떠돌이 오크 부족이 아덴 요새 근처에 나타난 것이다.
국경을 지키는 것은 타이럼 레인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요새로 가 상황을 확인하고 병사들을 도와라.
보상: ???
“이거 직업 퀘스트잖아?”
태현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타이럼 레인저여야만 받을 수 있는 퀘스트였다.
“어? 그러면 같이 못 하나요?”
“아니…… 도와줄 수야 있겠지만…….”
태현은 말하고 잠시 멈췄다. 생각해 보니 그는 어차피 전직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직업의 직업 전용 퀘스트를 같이 깨도 별 상관이 없었다.
보상은 아마 타이럼 레인저만큼 받지 못하겠지만, 손해는 안 볼 테니까.
“그러면 같이 가볼까?”
“네!”
지수는 신이 나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전에 장비 좀 줘볼래?”
“네? 여기요. 장비는 왜요?”
지수는 아무 의심도 없이 바로 장비를 벗어서 건넸다.
태현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질문은 주기 전에 해라. 그리고 아이템을 주면 어떻게 해? 대장장이한테 맡기듯이 꺼내놓기만 해.”
“아. 그런 소리였나요.”
현재 지수의 장비는 던전에서 얻은 것보다 더 좋아져 있었다.
어거스트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다.
태현은 타이럼 사냥꾼이나 타이럼 레인저로 전직을 하지 않았지만, 지수는 타이럼 레인저로 전직을 한 상태.
어거스트는 오크 토벌 퀘스트를 주면서 지수에게 장비를 선물해 줬다.
예전에 보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
태현이 갑옷과 화살촉을 만지는 동안 지수가 물었다.
“역시 희귀 등급이나 영웅 등급의 아이템들이 훨씬 더 성능이 좋겠죠?”
“음? 그렇겠지. 그건 왜?”
“아뇨.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언젠가 희귀 등급이나 영웅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태현의 가방 안에는 둘 다 있었다. 둘 다 단검이었지만.
“지금 레벨로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희귀는 몰라도 영웅 아이템은 워낙 구하기 힘드니까…… 지금도 거래 사이트 가보면 낮은 레벨 영웅 아이템도 꽤나 비싸다고.”
“돈 주고 사는 건 별로 안 끌리네요.”
“……?”
태현은 지수를 쳐다보았다.
“돈이 없니? 하긴, 아직 어리니까…….”
“그, 그게 아니거든요! 살 돈은 충분히 있어요. 그렇지만 역시 게임 안에서 직접 노력해서 얻는 게 가장 기분 좋으니까…….”
태현의 생각과도 비슷했다. 태현은 기특하다는 듯이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소리를 하잖아? 그보다 살 돈이 충분히 있다니. 너 비싼 아이템 얼마나 하는지 알지? 몇천만 원 넘는 것도 꽤 있어.”
태현의 말을 들은 지수는 작게 중얼거렸다.
“몇천만 원 정도야 별로 큰돈도…….”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현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유성 그룹의 외동딸이라는 건 꺼내기가 힘들었다.
이제까지 말했을 때 태도가 안 바뀐 사람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태현은 그녀를 남자로 알고 있지 않은가!
“자. 갑옷 다 됐다. 갖고 가.”
“감사합니다.”
타이럼 사냥꾼의 경갑: 내구력 70/70. 방어력 28.
이동 속도 5% 증가.
힘 제한 5, 민첩 제한 10.
타이럼 사냥꾼이 쓰는 가벼운 갑옷. 산에서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들었다. 타이럼 사냥꾼의 장비를 하고 있으면 타이럼시민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다.
*뛰어난 대장장이의 녹 없애기 스킬로 능력치가 추가됩니다.
-방어력 50% 증가, 회피율 50% 증가, 행운 50 증가. 스킬 ‘낙법’ 사용 가능.
“????”
녹 없애기 스킬로 능력치가 추가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능력치에 지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거 뭐예요?”
“뭐가?”
태현은 창을 확인 안 하고 돌려줬다. 그래서 지수가 왜 놀라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능력치가 올랐잖아요!”
“너 대장장이 스킬 하나도 모르냐? 녹 없애기 스킬이잖아. 방어구 일시적으로 성능 올려주는 스킬.”
“이게 그렇게 대단한 스킬이었어요?!”
지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증가한 수치가 너무 높았으니까.
“대장장이로 전직한 거 아니죠?”
“안 했어.”
“그런데 이렇게 올라가요?”
“아니 뭐 얼마나 올라갔다고 그래?”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스킬 레벨을 생각했을 때, 기껏해야 방어력 한 3~4 정도 올라갔을 것이다.
‘확인.’
“!!!”
* * *
태현이 놀라는 동안, 다른 사람도 놀라고 있었다.
바로 구성욱이었다.
“저주받아라! 타이럼 사냥꾼들!”
그는 토끼를 잡아 오라는 말을 듣고 신이 나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가 왜 타이럼을 떠났는지.
‘이 진짜 쪼잔하고 더러운 놈들……!’
토끼가 없다는 걸 알고 토끼를 잡아 오라고 시킨 게 분명했다.
‘아니, 근데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여기 보이던 토끼가 다 어디 간 거야?’
이 주변 토끼는 유명했다. 끈질기게 계속 나와서 초보자들을 괴롭히는 걸로.
구성욱도 경험을 했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안 보이다니. 대체 누가 다 잡은 걸까?
“아오…… 일단 길드 좀 갔다 와야겠다.”
구성욱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다.
토끼가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닐 테니까. 기다리다 보면 다시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계속 기다리기는 뭐하니 길드로 돌아갔다가 다시 올 생각이었다.
태현이 만진 장비도 다시 맡기고.
“어휴. 어휴. 어휴. 진짜…… 타이럼은 와서 좋았던 적이 하나도 없다니까.”
“진정해. 지금은 짜증이 나더라도 나중에 퀘스트 보상을 받으면 화가 풀릴 거야.”
“감사합니다. 필 씨.”
필은 드워프였다.
처음부터 대장장이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플레이어가 고르는 종족!
물론 드워프를 고르고 다른 직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 대장장이를 했다. 그만큼 드워프라는 종족 특성이 대장장이에게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1에서도 2에서도 인간을 골랐다.
-종족 특성으로 이익 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골라가는 변태같이 굳은 의지!
“그래. 초보자가 얼마나 만졌는지 보자고.”
“네. 흑흑.”
구성욱은 태현이 만진 장비들을 꺼냈다.
그래도 자기가 한때 잘 썼던 장비들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필은 장비를 받더니 창을 켰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이, 이건…….”
“그렇게 심각해요?”
“그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해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필 씨도 못 만질 정도로 심각하다는 뜻이에요?!”
“아, 말 좀 하게 기다려, 이 자식아!”
“헉. 죄송합니다.”
그 성격 좋은 필이 화를 냈다. 구성욱은 그대로 작아졌다.
“직접 보는 게 낫겠다. 봐봐.”
아이템의 총 내구력은 오히려 올라갔다.
혹시 몰라서 방어력이나 공격력을 봤지만 더 내려가지 않았다.
거기에 일시적으로 붙은 효과.
<녹 없애기>와 <날카롭게 갈기> 스킬로 인해 붙은 효과가 있었다.
레벨 낮은 대장장이는 스킬을 써봤자 아주 조금 올라갔고, 시간도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태현이 해준 스킬은 아직까지 효과가 지속되고 있었다.
-공격력 +50%, 치명타율 +10%, 행운 +35.
공격력이 +5나 +10이 아닌, 무려 %비율로 올라가는 사기적인 효과!
거기에 치명타율이나 행운 같은 평소에는 볼 수도 없는 스탯들이 붙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걸 초보자가 해줬다고? 너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거 아니지?”
“하늘에 맹세코 진짜 초보자였어요! 타이럼에서 계속 있던 초보자! 딱 봐도 레벨 30도 안 된 거 같았는데!”
“그런 놈이 이런 걸 했다고?!”
필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구성욱이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걸 초보 대장장이가 했단 말인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네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그놈은 희귀 직업, 아니다. 이 정도면 희귀 직업으로도 모자라. 영웅 직업으로 전직을 한 게 분명해. 대장장이 계열 영웅 직업.”
영웅 직업!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단어였다.
구성욱은 희귀 직업인 쌍검술사로 전직했는데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영웅 직업이라니.
그것도 대장장이 계열!
“낮은 레벨에서 볼 수 없는 버프 효과. 거기에 치명타율이나 행운 같은 건 원래 무기 강화 스킬에서 잘 보이지 않는 효과잖아.”
“그렇죠.”
“그렇다면 분명 직업 전용 스킬일 거야. 치명타율을 부여해 주거나 행운을 부여해 주거나.”
“오오오……!”
둘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직업 전용 스킬도, 영웅 직업도 아니었다.
그냥 어마어마하게 높은 행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