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0화
이름을 보니 어디 이데르론 부족이 관련된 퀘스트를 깬 것 같았다.
‘자, 뭐부터 해볼까?’
태현이 손바닥을 비비자 구성욱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제, 제발 조심해서…….”
“알겠다니깐요.”
가장 먼저 할 건 수리.
태현은 구렌달에게 받은 망치를 꺼내 들었다. 초보 대장장이한테 주는 기본적인 아이템이었지만 스킬을 쓰려면 필요했다.
[붉은 이데르론 장검을 수리합니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 스킬은 그냥 발동하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수리를 하려면 직접 망치를 두드려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여러 말이 있었다.
-스킬 레벨이 낮더라도 정말 잘 두드리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이른바 ‘손맛’이라는 게 있다는 거였다.
물론 거기에 동의 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냥 스킬 레벨이 전부야. 무슨 손맛을 따져?
태현은 손맛이 있다고 생각했다. 스킬 레벨이 높더라도 아무렇게나 대충 건드리면 좋은 게 나오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해서 최대한 그럴듯하게 해야 했다.
땅, 땅, 땅-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옆에서 보는 구성욱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질 뿐이었다.
태현이 너무 거칠고, 막 두드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붉은 이데르론 장검의 수리가 끝났습니다.]
[뛰어난 솜씨로 수리를 마쳤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이 증가합니다.]
[수리가 증가합니다.]
[레벨 차이로 인한 효과를 받습니다.]
‘됐다!’
태현이 노린 게 바로 이거였다.
레벨이 낮을 때 레벨이 높은 아이템을 만지면 빠르게 스킬이 오른다.
초급 대장장이 기술 8 (95%)
초급 수리 4 (25%)
대장장이 기술은 초급 단계여서 그런지 순식간에 올랐다.
10이 되면 중급으로 넘어가니, 이번에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태현은 장검, 갑옷뿐만이 아니라 벨트, 부츠, 손목 보호대, 투구, 안에 입는 체인메일 셔츠, 그 안에 입는 속옷까지 달라고 했으니까.
한 번 기회를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 대장장이 계의 흡혈귀!
구성욱은 그가 한때 썼던 아이템들이 초보의 손에 파괴당하는 걸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크흑흑…….’
[붉은 이데르론 경갑의 수리가 끝났습니다.]
[뛰어난 솜씨로 수리를 마쳤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이 증가합니다.]
[수리가 증가합니다.]
[레벨 차이로 인한 효과를 받습니다.]
[초급 대장장이 기술이 중급 대장장이 기술로 변합니다.]
[중급 대장장이 기술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모든 대장장이 관련 스킬에 추가치를 받습니다.]
[도시에서 대장장이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스킬이든 초급 단계는 쉽게 뚫을 수 있었다.
중급 단계부터는 슬슬 어려워지고…….
고급 단계는 말 그대로 1%, 1% 올리는 게 고통!
물론 지금은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태현은 신이 나서 홀린 것처럼 망치를 두드려댔다.
[대장장이 기술이 증가합니다.]
[수리가 증가합니다.]
[날카롭게 갈기가 증가합니다.]
[녹 없애기가 증가합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계속해서 오르는 스킬들!
태현은 결과물을 보지 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 * *
“다 끝났습니까?”
구성욱의 눈은 왠지 모르게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혹시 우셨어요?”
“네? 아, 안 울었습니다!”
태현은 다 큰 남자가 울려고 하는 걸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원래 그는 약해 보이는 사람한테 약했다.
강한 사람한테는 강하게, 약한 사람한테는 약하게.
그게 태현의 신조였다.
물론 약해 보여도 마음에 안 들면 절대 봐주는 게 없었지만.
“그래도 크게 실수 안 했습니다. 수리도 파손 메시지 한 번도 안 떴으니까 손해 볼 건 없을 거예요.”
“네…….”
구성욱은 시무룩한 얼굴로 장비를 받았다.
과연 얼마나 망가져 있을까?
‘으. 차마 못 보겠다.’
구성욱은 장비를 그냥 아이템창에 집어넣었다. 길드의 대장장이 필한테 가져가서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제가 소개해드릴 테니 같이 돌아다니죠!”
“네…….”
“기운 좀 내시고요!”
“네…….”
* * *
구성욱을 소개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렌달에게 찾아가서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어거스트에게 찾아가서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물론 어거스트는 듣자마자 콧바람을 내뿜었지만.
“흥. 여기가 싫다고 다른 곳으로 간 놈이잖나?”
타이럼 사냥꾼의 막사에 가보면, 그들의 좌우명이 벽에 걸려 있었다.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다!
처음 봤을 때는 나름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원한을 절대 잊지 않는 사냥꾼들. 무언가 폼이 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생각은 곧 바뀌었다.
타이럼 사냥꾼들은 그냥 쪼잔한 놈들이었다.
자기들의 도시가 안 좋다고 떠난 놈들을 절대 잊지 않는 게 쪼잔한 게 아니라면 뭐겠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친구가 다른 왕국에 늙은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데, 결혼해놓고 제대로 챙겨주는 건 없이 자기 혼자 돌아다니니 집안에서 구박을 많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1초도 걸리지 않고 술술 나오는 거짓말!
구성욱은 입을 벌리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NPC도 사람. 그럴듯한 거짓말에는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상대가 친밀도를 최대까지 찍은 태현이라면 더더욱.
[행운이 발동합니다.]
“……?”
[어거스트가 당신의 말을 완전히 믿습니다.]
[화술 스킬이 올라갑니다.]
화술. NPC들을 상대할 때 더 많은 걸 얻어내거나, 비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
보통 상인 같은 직업들이 많이 올리는 기본 스킬.
어거스트의 표정은 한결 풀려 있었다.
“흠. 그런 거였나? 그러면 어쩔 수 없군.”
‘그걸 믿냐?!’
“알겠네. 그러면 반성의 의미로 밖에 가서 토끼 열 마리를 잡아 오게나. 그걸로 잊어주도록 하지.”
“!!”
<속죄의 토끼잡이>
타이럼 사냥꾼들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한 번 도시를 버리고 떠난 당신을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관대하고 아량 넘치는 어거스트는 당신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토끼: 0/10
보상: 타이럼 사냥꾼들과의 관계 회복.
구성욱은 뛸 듯이 기뻐했다. 아까의 시무룩한 표정이 거짓말 같았다.
“들었습니까?!”
“어. 그런데…….”
“토끼 열 마리라니!”
초보자 때나 무서운 상대였지, 이제 토끼는 눈을 감고 때려도 잡을 수 있었다.
이건 거의 거저먹는 스킬 아닌가.
구성욱은 태현의 손을 잡고 흔들어댔다.
“정말 감사합니다!”
태현과 여러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끝이 좋게 났다. 구성욱은 태현에게 쌓였던 악감정을 잊기로 했다.
“아니, 그게…….”
“그러면 전 토끼를 잡으러 가보겠습니다!”
신이 나서 달려가는 구성욱의 뒤로, 태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 토끼는 내가 다 잡았는데…….”
지금 도시 밖 필드에는 토끼가 없었다. 태현의 학살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어거스트가 피식 웃었다.
“내가 그렇게 쉽게 용서해 줄 줄 알았나?”
‘와, 진짜…….’
태현도 원한을 잊지 않는 편이었지만, 타이럼 사냥꾼들은 정말 대단했다.
* * *
“언제 중급 대장장이 기술을 익혔나?!”
구렌달에게 배움을 요청하려고 가자. 구렌달이 깜짝 놀랐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태현은 바로 자세를 낮췄다.
“스승님 지도 덕분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건 자네 재능 때문이야. 그 단검을 만들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구렌달은 말끝을 흐리면서 태현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희귀 직업-비전 대장장이 전직 퀘스트>
비전을 이어받은 대장장이 구렌달은…….
‘아. 진짜 이 도시를 빨리 뜨든가 해야지.’
만나는 NPC마다 전직하라고 제안을 해오니 귀찮아 죽을 것 같았다.
“중급 대장장이 기술을 배운 사람이라면 더 이상 내 밑에서 배울 게 없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아직 더 배울 게 많습니다!”
구렌달은 최소 고급 대장장이 기술 이상을 갖고 있었다. 충분히 가르쳐 줄 수 있었다.
[더 이상 배울 스킬이 없습니다.]
[더 이상 배우려면 구렌달의 제자가 되어야 하거나 전직이 필요합니다.]
치사한 세상!
전직을 하지 않으면 더 고급 스킬을 배울 수 없었다.
‘에이…….’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대장장이가 끌리기는 했지만, 판타지 온라인 1에서 충분히 즐겼다.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끝까지 백수로 간다!’
그러는 동안 구렌달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자네가 벌써 떠날 때가 되니 마음이 아프군그래. 자네는 다른 곳에 가서도 잘할 거야. 이름을 알리면 내 밑에서 배웠다고 해주겠나?”
“물론입니다. 스승님!”
“자. 이걸 받게. 선물이야.”
[새내기 대장장이를 위한 도구 세트를 받았습니다.]
망치, 모루, 끌 등 대장장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아이템들이 들어 있는 세트!
보아하니 구렌달이 대장장이 직업이 없는 태현이 쓸 수 있도록 직접 만들어준 것 같았다.
“스승님!”
스승의 은혜를 여기서 느끼게 되다니. 절로 허리가 굽어졌다.
역시 가장 좋은 스승은 떠날 때 선물을 주는 스승 아니겠는가!
“자네가 대장장이로 일하지 않으면 쓰지 못할 장비들이 있을 거야. 그래서 이걸 선물하는 걸세. 전용 장비보다는 못하지만 쓸 만할 걸세.”
실제로 레벨이 높아지면 대장장이 직업 제한이 걸린 아이템들이 있었다.
친밀도를 높였기에 구렌달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자, 그리도 이것도 받게.”
“……!”
선물이 아직도 안 끝났다고?
태현은 순간 구렌달 밑에서 비전 대장장이로 전직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렇게 친절한 마음을 가진 NPC라니!
[강화석(10)을 받았습니다.]
“강화는 아직 자네 실력에 조금 이른 것 같지만, 자네 같은 재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지. 마법 아이템 제작이나 속성 아이템 제작은 못 해도 강화는 할 수 있으니 열심히 노력해 보게. 강화도 하면 할수록 느니까.”
마법 아이템, 속성 아이템.
모두 다 대장장이의 밥줄 중 하나였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법이 나간다면?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와 뛰어난 대장장이, 그리고 가장 많은 노오오오력이 필요했지만,
일단 완성만 되면 누구나 갖고 싶어 했다.
물론 대장장이로 전직하지 않는 태현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주의하게. 강화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내 친구 중 하나는 강화에 너무 빠졌다가 결국 재산을 날려버리고 자살했지. 내 다른 친구는 다른 사람의 장비를 강화 실패했다가 암살당했고…….”
“…….”
무언가 오싹한 이야기였다.
‘이거 왜 말해주는 거야?’
제작진들의 의도가 의심됐다.
물론 저런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강화를 할 것이다.
그게 욕망이고, 그게 사람이었으니까.
복잡한 마법 아이템 제작과 달리 강화석으로 있는 아이템의 성능을 올리는 쾌감!
“아. 이것도 받게.”
‘아직도?!’
마치 산타 할아버지처럼 끝없이 선물을 주는 구렌달!
[차가운 울음의 검 제작법을 배웠습니다.]
[현재 레벨이 낮아서 제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내가 예전에 한 대장장이한테서 받은 제작법이었는데, 재료가 많고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워서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네. 그렇지만 자네라면 언젠가 만들 기회가 생기겠지?”
태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런 식으로 주는 제작법은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갖고 있으면 일단 절대 손해는 안 보는 제작법!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나한테 더 배울 게 없다고 하더라도 자주 찾아오게.”
태현은 다음에 올 때 ‘푹 끓인 토끼고기 수프’이라도 들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이럼 사냥꾼들은 하도 많이 먹어서 그릇만 들고 와도 도망치지만, 구렌달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