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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9화 (19/1,826)

§ 나는 될놈이다 19화

“더디다고요?”

타이럼 사냥꾼들과 친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인 태현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았다.

“네. 친밀도가 오르기는 하는데, 너무 느리고…… 타이럼 사냥꾼들이 절 좀 많이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레벨이 높아서 같은데.”

어떤 세력과 친해지려면 몇몇 조건이 필요했다.

태현은 구성욱의 말에서 타이럼 사냥꾼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레벨이 낮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레벨이 낮을 때, 타이럼을 떠나지 않고, 타이럼 주변에서 열심히 사냥을 해야 친해질 수 있다!

레벨 10 찍었다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플레이어들은 철저하게 싫어하는 쪼잔한 세력.

그게 바로 타이럼 사냥꾼이었다.

‘이러니까 플레이어한테 욕을 먹지…….’

게시판 보면 타이럼에 대해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어쨌든 구성욱은 이미 늦은 셈이었다.

퀘스트를 깨면 친밀도가 오르기야 하겠지만 너무 조금씩 올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빠르게 하기 힘든 상황.

그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태현에게 말을 건 것이다.

“타이럼 사냥꾼들이 좀 치사하기는 하죠. 그런데 다른 방법이라, 혹시?”

“네. 절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물론 대가는 지불하겠습니다.”

소개. 판타지 온라인의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면 무조건 통하는 게 인맥!

현실적인 시스템이다 보니 이런 게 가능했다.

태현이 구성욱을 데리고 가서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친밀도가 꽤 오르는 것이다.

적어도 싫어하는 페널티는 사라질 게 분명했다.

구성욱은 레벨을 공짜로 올린 게 아니었다. 그는 타이럼 사냥꾼들이 태현을 대하는 걸 보고 알아차린 것이다.

‘이놈…… 친밀도를 거의 끝까지 찍었구나!’

대체 어떻게 이 쪼잔하고 까다로운 놈들과 친해졌는지 신기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대가를 주고라도 저 대장장이와 친해져야 했다.

“대가요? 돈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

‘아차!’

구성욱은 깜짝 놀랐다. 그가 했던 거짓말이 여기서 이렇게 되돌아오더니.

태현은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역시 돈을 좀 더 숨기고 있었군.’

“아, 아니. 그게…… 길드원 분한테 부탁해서 돈을 받아오겠습니다.”

“괜찮아요. 아까 받은 것도 있는데, 제가 돈 없는 사람한테 그렇게 돈 뜯어낼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구성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현이 그래도 완전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대신 장비 좀 만지게 해주시죠.”

“네?”

* * *

장비를 만지게 해달라.

그 말을 들은 구성욱은 겁에 질렸다.

태현이 장비를 들고서 도망칠 걸 걱정한 건 아니었다.

주는 것도 아니라 대장장이에게 맡기기 위해 밖에 꺼내놓은 장비를 가지고 도망칠 수는 없었으니까.

겁에 질린 건 다른 것 때문이었다.

‘이…… 이런 초보한테 내 장비를? 아무리 봐도 대장장이 기술 중급도 못 찍은 것 같은데…….’

아까 스킬 설명을 듣는 걸 보니, 대장장이 기술 중급도 못 찍은 것 같았다.

대장장이 기술 초급을 끝까지 찍었다면 수리, 강화, 이런 기술을 미리 배웠을 테니까.

레벨이 낮으면 모를까, 구성욱 레벨은 이제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를 만나야 하는 레벨이었다.

레벨 낮은 대장장이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장비 성능이 대폭 하락!

‘안 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저, 저기…… 그냥 돈을…….”

“아니, 돈은 됐습니다. 아까 받은 걸로도 충분해요.”

‘그냥 돈 좀 받아줘, 이 자식아!’

욕이 나오는 걸 구성욱은 간신히 참았다.

“다른 건 안 되겠습니까? 어…… 혹시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길드 마스터랑 친해서, 말하면 한 명 정도는 넣을 수 있습니다.”

구성욱이 태현의 정체를 알았다면 이런 말은 결코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무릎을 꿇으면서 제발 들어와 주세요! 해도 거절할 텐데, 무슨 선물이라도 주는 것처럼 저렇게 말하니 태현의 심술이 발동했다.

“아니, 그렇게 대단한 길드에 제가 어떻게 들어가겠어요? 게다가 인맥으로라니. 그쪽한테 피해가 가잖습니까. 제가 그렇게 상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웃는 얼굴로 사람 괴롭히기!

태현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예의 바르게 말하지만 결국 장비를 만지게 해달라는 거 아닌가. 구성욱은 속이 탔다.

그는 길드 채팅으로 말했다.

-여러분. 차가운 울음의 검 제조법 퀘스트 깨고 있는데…… 타이럼 친밀도 올리기가 힘들다고 말했잖습니까?

-그렇지.

-아직도 못 올렸어?

구성욱이 말하자 다른 길드원들이 대답했다.

그들도 구성욱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하필이면 재수 없게 타이럼 사람들하고 친해져야 하냐?’

‘그 인간들 진짜 짜증 나.’

-그런데 거기서 타이럼 사냥꾼들하고 친밀도를 최대로 찍은 사람을 찾았습니다.

-어? 진짜?

-그런 변태가 있어?

-어떻게 찍었대?

-아마 레벨 10 되고서 떠난 게 아니라 그냥 여기서 계속 버틴 것 같아요.

-아. 그런 식으로 했구나.

-그래도 대단하네. 나 같으면 바로 떠났을 텐데. 왜 거기서 버티고 있었대?

-그건 저도 모르고…… 어쨌든 이 사람한테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장비 좀 만지게 해달라네요.

-응?

-직업이 대장장이인 거 같아요. 뭐 방법이 없을까요? 길드에 초대해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고, 돈도 싫다고 하고…….

-잘못 걸렸네.

-아. 필 씨.

필은 길드의 대장장이였다. 구성욱도 필의 신세를 많이 졌다. 뛰어난 생산 직업은 언제나 구하기 힘든 인재였다.

생산 직업에서 성격 더러운 사람이 많다는 말이 있었다.

워낙 노가다를 많이 해야 하는 데다가, 레벨이 높아지면 대우가 엄청나게 좋아지니 성격이 거만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필은 성격도 좋고, 능력도 좋았다. 길드의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했다. 길드의 기둥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그거 스킬 올리려고 하는 것 같아.

-스킬이요?

-어. 대장장이 기술 레벨 낮을 때는 고레벨 아이템을 수리하거나 만지는 것만으로도 스킬 레벨이 확확 오르거든.

태현이 노리는 게 바로 이거였다.

대장장이 기술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는 방법.

비교적 고레벨의 아이템을 만지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고레벨의 아이템은 낮은 기술 레벨로 만지면 망쳐질 확률이 높았지만…….

‘어차피 내 거 아니니까!’

-욕심 좀 많은 대장장이 같은데. 어떻게 좀 설득 안 되겠어?

-뭐로 설득하죠?

-돈도 거절했지?

-네.

-아이템은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게 없을 거고, 길드 다시 초대해봐. 우리 길드에 레벨 높은 대장장이 있으니까 들어오면 직접 도와주겠다고 말해봐.

-네?!

-아니, 필. 그건 좀 심하지 않아? 네가 그렇게까지 해야 해?

-별로 시간 쓰는 것도 아닌데 뭘. 그냥 스킬 올리는 거 도와주고 제작법 몇 개 알려주는 거 정도야.

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이 정도면 누구나 탐내는 지원이었다.

선배 대장장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해서 알려주는 가이드라인.

-게다가 길드에 대장장이 더 있으면 좋잖아? 레벨 높은 대장장이는 구하기 힘드니까 일찍 잡아서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타이럼에서 친밀도 높은 것도 좋고.

-으음…….

구성욱은 망설였다. 확실히 필의 말은 맞았다. 대장장이는 있으면 있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레벨이 높은 대장장이는 다들 구하려고 난리였으니 현실적으로 새로 구하기는 힘들었다.

아예 길드에 넣고 지원을 해서 키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얄미워!’

구성욱은 태현이 너무 얄미웠다. 이런 놈한테 그런 혜택을 줘야 한다니!

그도 길드에서는 성격 좋은 사람으로 통하지만, 태현은 무언가 많이 얄미웠다.

“후…… 저기요, 저희 길드에 고렙 대장장이 한 분 계신데, 그쪽이 들어오시면 직접 지도해 준다고 하시네요. 어때요?”

“싫은데요.”

1초도 걸리지 않고 나오는 대답!

“…….”

구성욱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왜요!? 진짜 있다니까?!”

“아, 누가 못 믿는대요? 길드 들어갈 생각 없어요. 장비 줄 거면 주고 안 줄 거면 가세요.”

뿌드득!

주먹이 운다.

오랜만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 구성욱은 길드 채팅으로 다시 말했다.

-거절하는데요.

-어떤 놈이야?!

-진정해. 상대가 좀 이상한 거 같다. 어쩔 수 없어. 장비 맡겨.

-네?! 진짜요?!

-너 아직 예전 장비 갖고 있잖아?

구성욱은 최근에 장비를 새로 맞췄다. 다행히 그 전 장비는 아직 팔지 않은 상태였다.

-그 예전 장비를 맡겨봐.

-그래도…….

지금 쓰고 있는 장비를 맡기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예전 장비도 꽤 비싸게 나가는 아이템이었다.

초보가 손을 대서 성능을 깎아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망가지면 내가 최대한 고쳐볼게. 지금 하는 퀘스트가 꽤 중요한 거잖아.

-그렇죠…….

-그러면 그 예전 장비 정도는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맞는 말씀이에요. 필 씨. 제가 너무 욕심만 부렸네요.

-그런데 눈치채지는 못하겠지?

-에이. 레벨 낮아서 눈치 못 챌 거예요. 장비 겉모습도 별로 차이 안 나고요.

-그래. 잘 해봐.

대화가 끝나고 구성욱이 걸어오자 태현은 하품을 했다.

“결정하셨어요?”

“여, 여기…… 정말 조심해서 다뤄주세요…….”

“겁도 많으셔. 그 레벨은 어떻게 찍었어요? 알겠어요. 알겠어. 소중하게 다뤄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현은 건성건성 잡고 있었다.

대충 모루 위에 장비를 던져놓는 시건방짐!

‘이 자식이랑 PVP 한 번만 뜨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구성욱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입고 있던 장비가 아닌 것 같은데?”

“네?! 아닙니다!”

구성욱은 지금 거의 벗고 있었다. 입고 있던 장비를 줬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꿔치기를 했다.

장비를 벗고, 주는 척하면서 예전에 쓰던 장비를 꺼내서 태현에게 준 것이다.

상대가 입고 있는 장비는 상대가 알려주지 않는 한 겉모습만 볼 수 있었으니, 실제로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태현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대장장이.

이런 미묘한 차이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에이. 장식도 바뀌고, 여기 무늬도 달라지고 했는데…… 사람을 너무 만만히 보시는 거 아닙니까?”

구성욱은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어떻게 하지?

태현은 그걸 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 이걸로도 충분하죠.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쥐었다가 폈다가. 태현은 능숙하게 구성욱을 갖고 놀았다.

구성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태현이 착하게 보였다.

계속 못해 주다가 한 번 잘해주면 긍정적으로 보이는 효과!

마치 불량배가 비 맞고 있는 고양이를 주워주면 왠지 착하게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아이템 확인.’

붉은 이데르론 경갑: 내구력220/240, 방어력 80

스킬 ‘가속’ 사용 가능, 스킬 ‘급속 회복’ 사용 가능. 회피율 증가.

레벨 제한 70. 힘 제한 30. 민첩 제한 100.

이데르론 부족의 전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경갑이다. 가볍고 우수한 방어구를 가진 이데르론 부족의 전사들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붉은 이데르론 장검: 내구력 105/110, 공격력 72

스킬 ‘질풍참’ 사용 가능. 검술 계열 스킬 사용 시 데미지 증가.

레벨 제한 65. 힘 제한 25. 민첩 제한 100.

이데르론 부족의 전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장검이다. 날카롭고 강력한 무기를 가진 이데르론 부족의 전사들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이템 등급: 희귀>

‘오. 꽤 괜찮은데?’

레벨 제한도 괜찮고, 등급도 희귀.

태현의 스킬을 올리기에는 딱 좋은 실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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