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8화
백작에게 다시 한번 칭찬을 듣고서, 태현은 어거스트와 같이 밖으로 나왔다.
“이제 뭘 할 생각인가?”
“토끼발이 더 필요한데, 아쉽네요.”
행운을 1500 찍어놓고 더 원하는 태현. 개발진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음? 그 토끼발? 그게 필요한가? 그걸 쓸 곳이 있나?”
“제가 타이럼 사냥꾼들을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잖습니까. 토끼발이 알고 보니 괜찮은 요리 재료더라고요.”
“그거 내가 먹어봤는데 맛이 별로던데…… 토끼발이 필요하다면 줄 수 있네.”
“네?”
[집단 ‘타이럼 사냥꾼’에게 쌓은 공적 포인트로 아이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교환하면 그만큼의 공적 포인트는 사라집니다.]
[현재 공적 포인트는 1,207입니다.]
세력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 이런 장점이 있었다.
타이럼 레인저 퀘스트를 어쩌다 보니 깨버린 바람에 공적 포인트가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토끼발 전부 주시죠!”
* * *
타이럼 사냥꾼들의 창고에는 토끼발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별 쓸모는 없지만 일단 행운을 가져온다니 말려서 걸어둔 것이다.
[공적 포인트가 200 소모됩니다.]
게다가 토끼발은 사냥꾼들에게 별로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 많은 양을 가져가는데도 공적 포인트는 별로 소모되지 않았다.
태현은 싱글벙글하며 토끼발을 챙겼다. 그걸 본 어거스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별로 먹고 싶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 주게.”
“예!”
그 순간 다른 곳에서는 탄식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고…….”
“저런 방법으로…….”
패치 전까지 토끼가 리젠이 막혀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타이럼 사냥꾼들에게서 토끼발을 뜯어내다니.
타이럼 사냥꾼은 친밀도를 쌓기 힘든 세력이었다.
대표 NPC인 어거스트부터가 까칠하고 성격 더러운 사냥꾼인 것이다.
태현처럼 오히려 강하게 나가야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러지 못했다.
괜히 강하게 나갔다가 불이익이라도 받을까 봐.
초보자를 위한 튜토리얼 퀘스트는 받을 생각이 없었던 태현이었기에 이런 까칠한 대응이 가능했다.
게다가 그 이후로 타이럼 레인저 퀘스트까지 억지로 깨버렸으니…….
“얼마야, 행운?”
“2495.”
“미친.”
누군가 내뱉은 한 마디가 그들의 생각을 정리했다.
행운이 2495.
한 스탯이 저렇게 높은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태현의 레벨은 25.
행운이어서 망정이었지, 다른 스탯이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최명성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다른 직원들이 솔깃해서 물었다.
“오, 팀장님. 무슨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있기는 무슨. 이미 늦었어. 김태현은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전직하겠지. 서버 두 번째로 전설 직업 전직이다.”
최명성의 담담한 태도는 포기해서 나오는 것이었다.
-포기하면 편해.
“이제 늦었으니 그냥 마음 편히 즐기자고.”
“아니, 팀장님이 팬이라고 그러시면 안 되죠!”
“내가 뭘? 내가 김태현한테 토끼 잡으라고 했냐?! 자기가 저렇게 해서 전직하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사실 맞는 말이었다.
태현이 누구한테 조언을 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서 방법을 찾은 것이었으니까.
“아키서스의 화신은 뭐가 있었죠?”
“전설 직업이 다 특별하기는 하지만, 아키서스의 화신은 그중에서도 좀 많이 특이하지.”
“김태현 저거 대장간 가는데, 화면 돌려도 되죠?”
“……그래라. 다른 플레이어 보자.”
그 많던 토끼발 요리를 끝낸 태현은 지치지도 않고 대장간으로 가고 있었다.
정말 질리지도 않는 끈기였다.
* * *
이름 : 김태현
레벨 : 25
직업 : 백수
HP(체력) : 340
MP(마력) : 340
힘 : 50 (+20)
민첩 : 50
체력 : 50
지혜 : 50
행운 : 2495
보너스 스탯: 0
초급 검술 5 (80%)
초급 요리 9 (45%)
초급 도축 7 (35%)
초급 대장장이 기술 4 (95%)
태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스킬 창을 쳐다보았다.
행운이 하늘 높이 뚫고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뿌듯한 건 요리 스킬과 대장장이 기술 스킬의 성장이었다.
요리 스킬이 10에 도달하고, 거기서 99%를 찍으면 중급 요리 스킬로 넘어갔다.
대장장이 기술도 마찬가지.
요리 스킬과 중급 요리 스킬은 전혀 의미가 달랐다.
요리 스킬이 그냥 커피라면 중급 요리 스킬은 TOP!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종류부터 달라지고, 그 요리의 효과도 뛰어올랐다.
태현의 계획은 간단했다.
‘한동안 타이럼시에서 행운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올린다. 토끼발이 안 나올 때까지. 그리고 겸사겸사 요리와 대장장이 기술을 중급까지 올려놓는 거야.’
직업이 없는 백수였기에 그 정도는 해야 다음 진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사실, 지금 태현의 처지는 매우 어정쩡했다.
조금만 난이도 있는 퀘스트나, 던전만 해도 다른 사람과 파티를 맺고 깨야 편했다.
그러나 태현은 백수.
파티를 맺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직업이었다.
앞에서 맞아줄 탱커를 맡는 전사 계열 직업.
중간에서 공격을 넣을 궁수, 도적, 법사 계열 직업.
뒤에서 힐을 해줄 사제 계열 직업.
이런 직업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공략이 쉬웠다.
그리고 물론 여기에 백수는 끼지 않았다.
땅, 땅, 땅-
경쾌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5레벨이 되었습니다.]
“어디 보게, 이제 제법 자세가 나오는군. 새로운 기술을 배워도 되겠어.”
“새로운 기술이요?”
태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비전 대장장이라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지만…….”
구렌달은 태현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래도 하지 않을 거냐?’라는 뜻이 담긴 눈빛이었다.
물론 태현이 저런 눈빛 공격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태현은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자네는 아니니까, 간단한 것 몇 개만 가르쳐주지. 수리 스킬, 강화 스킬, 날카롭게 갈기 스킬, 녹 없애기 스킬 정도겠군.”
“……!”
대장장이 스킬의 종합 세트!
태현이 구렌달과 친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받을 수 없는 스킬들이었다.
‘친하게 지낸 보람이 있구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타이럼시를 욕하며 침도 그쪽으로 뱉지 않았지만, 태현은 달랐다.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수리 스킬은 내구도가 떨어진 아이템을 수리하는 스킬로, 대장장이의 밥줄 중 하나였다.
판타지 온라인은 수리도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게임은 그냥 돈을 주고 수리를 맡기면 짠! 하고 끝났다.
하지만 판타지 온라인은 달랐다. 대장장이의 스킬 레벨에 따라 수리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뛰어난 대장장이는 내구도를 꽉 채우고, 가끔은 성능을 더 높게 만들어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스킬이 낮은 대장장이는 내구도를 꽉 채우기는커녕, 실수를 해서 전체 내구도를 내리거나 성능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수리의 난이도는 아이템의 성능에 따라서 달라졌다.
초보 때 쓰는 아이템은 그냥 자기가 수리를 배워서 해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레벨이 높아지면 전문 대장장이를 찾아야 했다.
돈이 아까워서 대충 동네 아무 대장장이 NPC한테 맡겼다가는 피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날카롭게 갈기 스킬, 녹 없애기 스킬은 각각 무기, 방어구 강화 스킬이었다.
전투 시작 전에 무기의 성능을 일시적으로 올리고, 방어구의 성능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스킬.
파티에 대장장이가 있다면 파티원들이 꼭 부탁하는 스킬 중 하나였다.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좋은 스킬이었다.
플레이어들은 버프 하나에도 매우 민감했다. 판타지 온라인 2는 난이도가 만만하지 않았다.
버프 하나로 목숨이 갈릴 수 있었다.
싸우기 전에 신전을 찾아가서 버프를 받고, 요리사를 찾아가서 버프가 되는 요리를 먹고, 대장장이를 찾아가서 버프를 받고…….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은 딱히 드문 게 아니었다. 오히려 정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화.
‘강화는…… 별로 배우고 싶지 않지만…….’
태현이 배우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매우 쓰라린 기억 때문이었다.
수리 스킬이 대장장이의 밥줄이라면, 강화 스킬은 대장장이의 복권이었다.
보통 대장장이한테 수리를 맡겼다가 실패하면, 맡긴 사람은 화가 나도 보통 난리는 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템은 어디 가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강화가 실패하면?
-내 아이템 내놔, 이 돌팔이 자식아!
당장에 욕을 하며 달려드는 게 보통이었다. 그게 귀중한 아이템일수록 더욱.
강화 스킬의 실패 페널티는 수리 스킬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아이템이 박살 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강화를 결코 포기하지 못했다.
평범한 일반 아이템도 강화를 몇 번 성공하면 희귀, 영웅 아이템을 뛰어넘는 명품이 되니까!
보통 규모가 있는 길드는 대장장이 몇 명을 따로 키우는데, 이 중에서 강화 전문 대장장이는 필수였다.
결국 확률의 문제지만, 실력이 좋을수록 강화 성공 확률도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도 실력 좋은 대장장이는 정말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고 날려 먹은 아이템이 몇 개냐.’
생각만 해도 속이 쓰렸다. 다른 대장장이는 길드에 지원이나 받지, 태현은 혼자서 뛰며 강화석, 재료, 주문서를 다 모아야 했다.
실패하면 정신적 타격은 몇 배!
‘에휴. 그래도 배워야지.’
대장장이인 이상 안 배울 수가 없었다.
“자. 수리 스킬은 말이야…….”
구렌달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계십니까?”
“어? 아직 안 떠나셨네?”
태현에게 ‘어떻게 구렌달과 친해지죠’ 물었던 구성욱이었다.
그는 태현을 보자 반갑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어! 그분이시네. 잘됐네요! 저 좀 잠시 봅시다!”
“환불은 안 되는데요?”
“네? 아니, 환불해 달라는 게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
“잠시 기다리세요.”
“……?”
“제가 지금 스킬 배우는 중이라서 기다리셔야 해요.”
“아. 기다리겠습니다.”
구성욱은 얌전하게 자리에 앉았다. 아쉬운 게 많았던 것이다.
설명을 방해받았던 구렌달은 구성욱을 힐끗 쳐다보고 나서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자, 수리 스킬은 말이야…….”
* * *
“저기…… 언제 끝납니까?”
“아, 참을성 없기는.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구렌달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를 하며 벌컥 화를 냈다.
옆에서 태현은 맞장구를 치며 쯧쯧거렸다.
“구렌달 님의 말이 맞습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구성욱은 얄미운 태현을 노려보았다.
‘투기장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아니, 필드에서 덤볐으면 좋겠다…….’
“자, 이제 수리 스킬이 뭔지 알겠는가?”
“이제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다시 한번 해보게.”
구렌달의 성격은 꼼꼼하기 치밀한,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
가르칠 때도 다시, 다시, 다시를 몇 번이고 말한다.
물론 이때 싫증을 내면 친밀도 대하락으로 이어졌다.
태현은 이미 구렌달의 성격을 파악한 상태였다. 태현은 조금도 지루하다는 티를 내지 않고 망치를 두드렸다.
“하아…….”
구성욱의 한숨은 깊어질 뿐이었다.
* * *
“뭡니까?”
사람인 이상 태현도 살짝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물어보는 건 돈 안 받아야지.’
“그…… 타이럼 사냥꾼하고 친해지라고 말해주셨잖습니까.”
“그랬죠.”
“지금 퀘스트를 일단 깨고 있는데…… 너무 더딥니다. 혹시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