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화
“건물주 양반이 착하고 사람 좋은 사람이기는 한데, 원래 사람이 자기 자식 일에는 약해지잖아. 나중에 자기 아들 직장이라도 만들어줘야겠다고 우리 내보내면 어째?”
아주머니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실제로 가능하긴 했다.
장사가 잘되는 대박집은 건물주도 탐을 내게 마련이었으니까.
내보내고 자기 가족을 넣거나 하는 일은 분명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상황을 알고 있는 태현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가 이 대박집을 탐내서 아버지한테 부탁을 한다니.
태현은 일단 헛소문부터 고치려 했다. 동네 사람들한테 오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에이, 그거 아닐걸요. 제가 알기로 거기 집 아들은 성실하고, 인성 좋고, 노력파에, 얼굴은 조금 험악할지는 모르지만…….”
잘생겼다고 말하려다가 양심이 찔려서 고쳤다.
“대학도 한국대학교 들어갔다고요. 여기를 넘보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한국대학교를?”
한국 최고의 대학교라고 하니 아주머니도 놀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양반은 왜 그런 소리를 했지?”
그야 태현이 1등을 해놓고서도 의대나 법대가 아닌 국문학과를 가서였지만, 태현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건물주라는 사람, 김태산 씨 맞죠?”
“어? 총각이 그걸 어떻게 알아?”
“저도 여기 사니까 소문으로 들었죠. 그 사람, 사람은 좋은데 요즘 좀…….”
태현은 손가락을 머리 옆에 두고 빙빙 돌렸다.
“약간 이상한가 봐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헛소리를 한다고…….”
“어머, 그래?!”
“네네. 거기 아들은 성실하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총각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제가 그 집 아들하고 고등학교 때 동창이었거든요.”
태현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주머니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었다.
“그러면 다행이네. 잘 먹었어?”
“네. 맛있네요. 아주머니도 고민 해결되어서 다행이고요!”
“그래. 우리 딸도 총각처럼 활발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네?”
태현은 뒤를 쳐다보았다. 그가 알기로, 여기 아주머니의 딸, 주현영은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태현이 여기 단골이다 보니 가끔 얼굴 볼 때가 있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얼굴 예쁘고 요리 잘하는데 그 정도면 완벽한 거 아닌가?’
“현영이가 뭐 문제 있어요?”
“젊은 애가 밖에 안 나가고 일만 하니까 그렇지. 걱정이야. 저래서 시집은 제대로 갈는지…….”
“에이. 일 제대로 하는 게 어디에요. 안 돌아다닐 수도 있죠.”
“안 돌아다니더라도 애가 취미 생활이 없다니까? 일은 나 혼자 해도 되니 뭘 좀 하라고 시간을 줘도 그냥 나와서 요리를 하니까…….”
‘그래서 이렇게 맛있는 건가?’
요리에만 정성을 다하니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총각은 취미가 뭐야?”
“저요? 저는 게임하죠.”
“무슨 게임?”
“이번에 나온 판타지 온라인 2라고 있는데…… 아세요?”
“아, 그거? 나도 뉴스에서 봤지.”
가상현실 게임 중에서 독보적인 완성도와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니, 뉴스에서도 연달아 나왔다.
게임 내 이야기만을 다루는 케이블 채널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그게 그렇게 재밌나? 나도 현영이한테 해보라고 할까…….”
누구는 게임 하겠다고 싸워야 하는데 누구는 게임을 하라고 등을 밀어주다니.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재밌으니까 한 번 해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래. 한 번 시켜봐야겠다. 총각이 잘 아는 거 같은데, 시작하면 도와줄 수 있어?”
“어…… 가능하면요?”
지금 태현이 워낙 이상하게 플레이를 하고 있어서, 도와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 * *
“아. 질문 답변 올라왔나?”
돌아온 태현은 아까 올린 질문을 확인했다.
-이런 단검 나왔는데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성능이냐?
‘답변이 한 세 개 정도 달렸겠지? 하나라도 달렸으면 좋겠는데.’
[답변(129)]
“?!”
태현은 놀라서 창을 켰다.
그가 올린 질문 밑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거 조작이라니까? 어떻게 이런 수치가 나오냐?
-이거 조작임. 아무튼 조작임.
-와, 이거 팔면 얼마 나올까? 백만원은 넘겠지?
-백만 원은 무슨. 천만 원은 기본으로 간다.
-무슨 천만 원이야? 저거 성능이랑 옵션이 좋은 편이긴 한데 레벨 높은 일반 아이템 보면 저것보다 성능 좋고 옵션 좋은 아이템 넘치거든? 백만 원도 높게 쳐준 거다.
-멍청하기는. 그런 건 다 스탯 제한이 있잖아. 저런 단검은 마법사 계열 직업이 사려고 할 거다. 그러면 천만 원은 가볍게 넘지.
실제로 태현이 올린 단검은 성능 자체만 보면 대단한 게 아니었다.
한 80레벨 정도만 가도 일반 아이템 성능은 이걸 훨씬 뛰어넘었으니까.
문제는 그런 레벨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모두 제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레벨 몇 이상, 힘 몇 이상, 민첩 몇 이상. 이런 식으로.
레벨 제한이야 마법사 같은 직업도 넘길 수 있었지만, 힘 몇 이상, 민첩 몇 이상 같은 제한은 마법사 같은 직업이 넘기기 힘들었다.
그런데 태현이 올린 단검은 그런 제한이 없었다.
레벨 제한 없음. 스탯 제한 없음.
그런 주제에 공격력과 추가로 달린 옵션이 어마어마했으니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쪽지 확인 좀 해주세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거 진짜면 저한테 쪽지 좀 해주세요. 거래 의사 있습니다.
이런 댓글들이 한 20개가 넘는 것 같았다.
-아 사긴 뭘 사. 조작이라니까?
-근데 창 보니까 합성은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나온 거 아니야?
-야. 내가 대장장이 키우고 있거든? 이런 단검은 못 만들어. 단검 사진 보면 재료가 철이지? 그러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니까. 게다가 이거 보면 레벨 제한도 없고 스탯 제한도 없잖아. 보통 이런 게 어떻게 나오는지 아냐? 대장장이 레벨 낮을 때, 아이템 레벨 안 잡고 그냥 만들면 이런 거 나와.
댓글 중에는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줄줄줄 지식을 늘어놓았다.
-이거 분명히 레벨 낮은 대장장이 하나가 주목 좀 받겠다고 합성한 거야. 처음 대장장이 시작하면 단검 같은 간단한 거 만들라고 퀘스트 주거든? 그 단검 만든 다음 그 창에 저 수치 합성한 거라고. 원래 레벨 낮을 때 만드는 단검은 저런 제한 없을 정도로 성능이 구리거든. 거기에 성능이랑 옵션만 합성해서 넣으면 저런 사기가 나오는 거야.
-와. 님 진짜 잘 아시네요. 레벨 몇이세요?
-대장장이 레벨 56이다.
-개쩐다. 대장장이 56이라니.
-혹시 친구 추가 받아주실래요?
유저 하나가 여론을 이끌고 있었다. 꽤 설득력 있게 말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솔깃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별로 화내지 않았다.
‘뭐, 믿기 싫으면 믿지 말라지. 지들 자유니까.’
이런 익명의 댓글로 화를 낼 거였다면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댓글이 더 있었다.
-근데 만약 합성 아니면 어쩔 거야?
-맞아. 진짜일 수도 있잖아.
태현이라면 저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저런 도발에는 넘어가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꽤 성격이 급한 것 같았다.
-만약 합성 아니면 내가 저 플레이어한테 찾아가서 무릎 꿇고 절하면서 사과한다!
-오. 캡처했음.
-맞아. 나중에 지우지 마라. 아이디 기억했으니까.
“쯧쯧. 멍청하기는.”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겨봤자 얻는 거 하나 없는 걸 왜 한단 말인가.
하도 많은 사람이 답변을 달아서 그의 글은 일일 베스트에 올라와 있었다.
‘다른 건 없나?’
[네크로맨서 이세연. 판타지 온라인 2 처음으로 전설 직업을 획득하다!]
“오, 이세연이?”
태현도 아는 이름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 그를 이긴 플레이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판타지 온라인 1의 랭커였던 이세연 씨는 전설 직업,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의 직업 퀘스트를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처음으로 등장한 전설 직업에 모두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저희 GNC는 이세연 씨의 단독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이야. 역시 클래스는 클래스인가? 진짜 잘나가네. 벌써 전설 직업을 얻고.”
판타지 온라인 2의 방송을 담당하는 방송사들은 신이 나서 이세연의 인터뷰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세연이라는 플레이어 자체가 판타지 온라인 1 때부터 방송 출연이 많았으니, 이번 전직 퀘스트도 직접 편집해서 올린 모양이었다.
그녀가 운영하는 개인 사이트는 거의 접속자로 폭주하고 있었다. 태현은 간신히 동영상을 켰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두운 지하 신전에서, 이세연이 혼자 걸어 나오고 있었다.
들고 있는 지팡이는 한눈에 봐도 명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검은색 본체에 끝에 달린 보석은 몇 겹의 세공이 걸쳐져 있었고, 입고 있는 로브는 독특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저거 팔면 집 몇 채는 사겠네.’
태현은 그런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이세연의 동영상을 계속 보았다.
콰쾅!
갑자기 사방에서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직업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나오는 적 같았다.
이세연은 네크로맨서.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시체를 일으켜서 부하를 거느리고 있을 때 강한 직업이었다.
당연히 일대일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세연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그 한계를 깼다.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부하들은 없는데…….’
-어둠의 화살!
순식간에 허공에서 굵은 검은색 가시가 생기더니 쏜살같이 솟구쳐나갔다.
달려들던 기사들은 방패에 오러를 불어넣어 막으려 했지만, 가시는 방패를 관통하고 그대로 기사들을 뚫어버렸다.
“……!”
딱 봐도 기사들의 레벨은 100은 넘는 것 같았다. 착용하고 있는 갑옷이나 검도 보통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세연은 그걸 한 번에 뚫어버린 것이다.
-속박!
뒤에서 달려들던 기사들은 이세연의 손가락 한 번에 멈췄다.
-블러드 익스플로전!
가시에 관통당한 기사들의 몸이 폭발했다. 멈춘 기사들도 같이 쓰러져나갔다.
-언데드 소환!
조금의 쿨타임도 느껴지지 않는 연속 마법.
더군다나 상대는 잡몹이 아니었다. 보통 기사 NPC는 왕국에서 거느리고 있는 만큼 정예였던 것이다.
그런 상대로 저런 학살이라니.
이세연은 엄숙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데스 나이트 소환!
순식간에 전장이 바뀌었다.
첫 번째로 달려들었던 기사들은 죽은 다음 이세연의 부하가 되어 등을 돌렸다.
그 뒤에서 다시 달려들려던 기사들은 당황해서 외쳤다.
“사제님, 축복을!”
“축…… 축복이 통하지 않습니다!”
바닥이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것을 보고, 태현은 이세연이 또 다른 주문을 썼다는 걸 짐작했다.
아마 사제의 능력을 봉인하는 그런 저주겠지.
“죽어라!”
“나의 주인의 명으로!”
“이, 이런. 정신 차려! 에드워드!”
“이 자식! 감히 우리 동료를…… 크아악!”
아무런 부하도 없는 상태에서 주문만으로 기사 한 부대를 학살했다.
그다음 죽은 기사를 바로 언데드로 소환시키고, 그중 몇몇은 데스 나이트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어째 판타지 온라인 1보다 더 세진 것 같다……?’
레벨 100은 가볍게 넘긴 것 같았다. 아마 태현 말고도 다른 랭커들이 이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고 있을 것이다.
기사단과 사제는 맹렬하게 저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한 명이 쓰러질 때마다 언데드가 되어서 늘어났고, 그럴 때마다 점점 상황은 불리해졌다.
모든 적이 쓰러지자 이세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러자 자리에 있는 모든 언데드 부하들이 무릎을 꿇었다.
정말로 강렬한 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