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화
‘이게 이렇게도 작용을 하나?’
아무리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높아도, 언제나 대단한 아이템이 나오지는 않았다. 1에서도 그랬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나, 스탯이 높은 아이템은 일정 확률로 나왔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은 나올 수 있는 아이템의 성능과 그 확률을 올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행운만으로 그 확률을 뚫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키서스가 누굽니까?”
“아키서스? 행운의 신이잖나. 갑자기 그건 왜 묻나? 이런 일이 생겨서 자네도 얼떨떨한가?”
“하하. 그러네요.”
게시판에 정리된 기본적인 정보를 보지 않고 시작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
‘행운의 신이라고? 아키서스가 장난을 쳤다는 건 그냥 표현인가 보네.’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나왔을 때 쓰는 표현.
“허, 참. 자네한테는 재능이 있나 보군. 어거스트한테 말은 들었지만, 힘이나 두드리는 모습이 영 어설퍼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구렌달의 평가가 상승합니다.]
“나머지 단검도 만들어보게. 기대되는군.”
“예!”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살짝 불안해졌다. 행운은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스탯이었다.
만약 다음에 만든 아이템은 평범하다면?
‘뭐, 상관없나?’
어차피 퀘스트 자체는 10개만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방금처럼 희귀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지 못해도 구렌달이 그를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현은 아직 대장장이에서는 초보였으니까.
[가벼운 단검을 만들었습니다.]
[가벼운 단검을 만들었습니다.]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을 만들었습니다.]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을 만들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을 만들었습니다.]
“……!”
갑자기 뜨는 눈부신 보라색 빛. 다시 자기 일을 하던 구렌달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 내구력 40/40. 공격력 90.
공격 속도 1.5배. 치명타 확률 10%. 인벤토리 무게에 잡히지 않음. 장비 무게에 잡히지 않음. 일정 확률로 출혈, 기절, 부위 파괴 발동.
만든 사람의 솜씨는 형편없지만 어째서인지 성능이 미친 듯이 좋은 무기다. 아키서스가 내려와서 만들고 간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할 것이다.
태현은 바로 아이템 등급을 확인했다.
<아이템 등급: 영웅>
“이, 이건…… 정말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구렌달은 계속 대단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한동안 태현이 만든 단검만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자네는 재능이 있어! 나보다도 더 뛰어난 재능이!”
“아니, 그건 재능이 아니라…….”
“자네 같은 인재를 발견했는데 뛰어난 대장장이로 키우지 못한다면 나는 목을 매달아야 할 거야! 스승님을 볼 얼굴이 없겠지!”
<희귀 직업-비전 대장장이 전직 퀘스트>
비전을 이어받은 대장장이 구렌달은 언제나 자기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제자를 찾아왔다.
당신은 구렌달의 눈에 들만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 구렌달은 당신을 제자로 삼아 비전을 이어가려고 한다.
잘츠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 중 하나인 구렌달의 직속 제자는 흔히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닐 것이다.
보상: 비전 대장장이로 전직.
‘아니, 이놈의 도시는 왜 다 강제로 취직을 시키려고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배가 불렀다고 욕을 먹을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희귀 직업만 되도 구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하는데, 태현은 희귀 직업, 영웅 직업도 다 거절하고 있으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저는 하고 싶은 다른 게 있어서…….”
백수로 레벨을 계속 올리겠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구렌달이라도 화를 내겠지.’
“그런! 대체 뭘 해야 하기에! 대장장이라서 불만인가? 대장장이는 절대 만만한 직업이 아닐세!”
‘그건 내가 더 잘 알아. 이 사람아.’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대장장이로 그 짓을 하고 다녔는데 대장장이를 얕볼 리 없었다.
“기사보다 화려하지 못하더라도, 전사보다 강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놈들이 굽실거리는 게 누군지 아나? 바로 우리, 대장장이란 말일세!”
“정말 죄송합니다.”
[구렌달이 매우 실망합니다.]
‘젠장.’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서 대장장이로 전직하고 싶지는 않다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존중해 주겠네. 언제라도 내 밑에서 수련하고 싶다면 말하게나.”
“감사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단검 제작 기술을 획득했습니다. 재료와 방법에 따른 다양한 제작이 가능해집니다.]
단순히 단검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재료를 뭐로 쓰고 시간을 얼마나 들이는지에 따라 얼마나 좋은 아이템이 나오는지 달라졌다.
지금 태현이 만든 단검은 그냥 평범한 강철과 가죽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물론 그래도 영웅 등급의 아이템인 만큼, 성능은 미친 듯이 뛰어났지만.
은이나 백금, 흑철, 진은(眞銀)이나 아다만티움 같은 고급 재료를 사용했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아이템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스킬이 낮아서 그런 건 아직 못 다룬다는 거고…….’
태현은 이 단검이 어느 정도의 성능인지 궁금해졌다.
다른 아이템에 비교하면 월등히 뛰어나고, 레벨 제한도, 스탯 제한도 없었으니 분명 좋은 아이템이기는 한데…….
좋은 아이템에는 레벨 제한이나 스탯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고레벨로 가면 마법사들은 레벨에 맞는 단검 하나 끼기도 힘들었다.
-아니, 왜 단검에 힘 제한이 있어?! 단검도 힘이 있어야 드냐!
이런 항의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의 설정은 인공지능이 만들었으니까.
“한 번 찾아볼까?”
* * *
판타지 온라인 2 매니아는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였다.
당연히 올라오는 글 속도도 어마어마했다.
태현은 별생각 없이 아이템 사진을 올렸다. 어차피 글이 엄청나게 올라오니 그가 올려도 대답 몇 개 정도 받고 묻힐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단검 나왔는데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성능이냐?
그리고 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쉴 생각이었다.
“아들, 이제까지 게임만 했냐?”
“조건 채우면 다음 학기까지는 자유 아니었습니까?”
“그렇지만 앉아서 게임만 하면 몸 썩는다.”
그렇게 말하며 김태산은 주먹을 부딪쳤다.
“오랜만에 스파링이나 할까?”
태현의 아버지, 김태산은 운동을 좋아했다. 태현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격투기를 배웠다.
물론 최근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싫어요. 제가 이기면 또 삐지실 거잖아요.”
“삐, 삐지기는 누가! 누가 삐졌다고 그러냐!”
“아버지 지면 이길 때까지 계속하자고 우겨서 피곤하다고요.”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부턴가 운동은 혼자서 하게 되었다.
김태산은 찔렸는지 말을 돌렸다.
“크흠. 그래서 너…… 그 게임 하고 있다고 했지? 판타지 온라인 2.”
“네. 아버지도 관심 있으시면 같이하시죠?”
“됐다. 이 나이에 무슨 게임이냐.”
“에이…… 아버지 게임 폐인이었던 거 다 아는데…….”
태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김태산을 쳐다보았다.
어릴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리X지라는 게임에 빠져서, 폐인처럼 게임만 했다가 어머니한테 등짝을 맞았던 것이다.
“그때 분명 집에 덩치 큰 아저씨들도 많이 왔었는데. 아버지한테 성주님, 성주님 하면서…….”
“무, 무슨 소리냐? 그런 적 없어?”
“아버지. 어릴 때라고 제 기억력 무시하지 마세요. 다 기억합니다. 그거 길드였죠? 아버지가 길드 마스터였고. 잠깐, 그 아저씨들 외모가 좀…… 설마 조폭이었나?”
“조폭은 무슨! 같은 체육관 친구들이었어!”
“그러면 같이 논 건 맞네요?”
“컥!”
태현의 유도신문에 걸렸다는 걸 깨달은 김태산은 신음했다.
“치기 싫다는 사람들 억지로 데리고 가서 골프 치지 말고, 그때 친구분들하고 연락해서 판타지 온라인 2 해보세요. 재밌어요. 어머니랑도 같이하셔도 좋고. 여행하는 재미도 있으니까.”
“됐다. 인마. 난 골프나 칠란다.”
“안에서 쳐도 좋을 텐데…….”
“그런데 너, 그렇게 게임을 열심히 하는 거 보니 게임 안에서 어느 정도냐?”
왕년에는 랭커였다 보니 김태산은 아들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 궁금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아들인데. 순위가 높겠지?
“저 아직 전직도 못 했는데요?”
“뭐?! 왜!?”
“하고 있는 게 있어서…….”
“게임을 어떻게 하는 거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랭킹 안에 들고, 방송도 타고, 정말 잘하면 아예 그런 프로 게이머로 나가도 되고!”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 뭘 그렇게까지 해요.”
“이 자식은 말만 하면 내 속을 긁네. 재능을 좀 썩히지 마! 넌 게임을 해도 잘할 수 있잖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
“아냐, 인마!”
“그러면 아버지도 와서 저랑 한 판 붙으시죠.”
“뭐? 그러면 한 번 해보…… 아니, 게임 안 한다니까!”
“쯧.”
넘어오게 할 수 있었는데. 태현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속을 뻔했다는 걸 알아차린 김태산은 태현을 노려보았다.
“나가, 인마! 나가서 동네나 한 바퀴 뛰고 와!”
“아니, 지하에 러닝머신 있는데 왜 동네를?”
“뛰어! 가서 뛰어!”
태현이 투덜거리며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자 김태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어, 그래. 나야. 너 아직도 게임 하지? 판타지 온라인 2라고 아냐?”
* * *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흔히들 게임 폐인이라고 하면 계속 앉아서 게임만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태현은 그렇지 않았다.
-게임 내 노가다도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이 없으면 게임 내 노가다도 하기 힘들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아닐 것 같았지만, 오히려 더 필요해졌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서 싸우는 것이다 보니 격투 센스가 없으면 많이 불편한 것이다.
실제로 지수도 그래서 고생을 했고.
‘걔는 진짜 너무 심하게 몸치야. 학교에서 왕따나 안 당하려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태현은 달리기를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한 격투기와 운동이 게임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컨트롤의 절반은 거기서 나오고 있겠지,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순대국밥 하나요!”
“아이고, 오랜만이네. 왜 이렇게 안 왔어?”
“하하. 죄송해요.”
운동을 끝내고 들린 곳은 단골 순댓국밥집이었다.
태현은 여기의 순대국밥을 좋아했다. 태현의 얼굴을 알아본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했다.
“자. 여기! 건더기 듬뿍 넣었어.”
“감사합니다!”
신나게 숟가락을 들어 입에 퍼 넣고 있는데, 가게 안의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상한 없는 임대료에 등골이 휘는 자영업자, 오늘은 건물주의 ‘갑질’에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을 모셨습니다.
“아이고, 큰일이야.”
“예? 뭐가요?”
먹던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아주머니가 TV를 보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
“건물주 잘못 만나면 장사하는 사람은 진짜 고생하는 거잖아. 나도 좀 걱정이네.”
“네? 여기 건물주가 아주머니한테 뭐 갑질이라도 했어요?”
태현은 여기 건물주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였다.
물론 아주머니는 몰랐지만…….
“아니, 우리 건물주는 착한 사람이지. 동네에서 인심 좋다고 소문났고…… 그런데 들어보니까 그 사람한테 아들이 있더라고.”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그게 뭔 상관이에요?”
“우리 집이 장사가 잘되잖아. 저번에 건물주가 와서 밥 먹고 가는데 자기 아들 한탄을 한 시간 넘게 하더라고. 대학도 어디 이상한 곳을 들어가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고.”
“…….”
태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인간이 어디 밖에서 헛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