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화
태현은 이미 가시밭길을 걷기로 결심한 사람.
익힐 수 있는 스킬은 다 익혀야 했다.
[요리 스킬이 상승합니다.]
[요리 레시피: 소피아의 고기 수프를 배웠습니다.]
[요리 레시피: 소피아의 고기 양념을 배웠습니다.]
“재능이 있는데요?”
“제가 원래 그렇습니다.”
“겸손함은 없네요.”
“제가 원래 그렇습니다.”
소피아가 흰 눈을 뜨고 쳐다보거나 말거나, 태현은 묵묵히 국자를 저었다.
가상현실 게임인 이상 스킬을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운다고 해서 바로 익혀지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요령을 익혀야 했다.
“아직 더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직 모자라네요. 양념의 맛이 부족해요.”
“저번보다 낫지만 아직 부족해요.”
“저기, 저도 좀 쉬고 싶은데 언제까지 오실 거예요?”
요리를 만들어서 건넬 때마다 달라지는 소피아의 말.
처음에는 남편의 시체를 찾아줘서 고맙다는 태도였지만, 태현이 쉬지도 않고 계속 요리를 건네주자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NPC도 결국 사람!
“아직 제 실력은 많이 부족합니다!”
“아니, 이 정도면 됐죠. 여기서 요리 잘해서 뭐하려고요?!”
다른 왕국의 다른 도시면 모를까, 타이럼은 산 한가운데에 위치한 사냥꾼들의 도시였다.
타이럼시가 있는 잘츠 왕국 자체가 사냥꾼들의 왕국이었으니 문화나 그런 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요리 스킬이 상승합니다.]
[요리 스킬이 상승합니다.]
[요리 레시피: 소피아의 비밀 고기 양념을 배웠습니다.]
<소피아의 비밀 고기 양념>
소피아가 할머니에게 배운 비전의 양념이다. 원래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지는 않지만, 가족의 시체를 찾아준 덕분에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당신이 끈질기게 매달리는 게 귀찮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먹을 시 일시적으로 체력 5% 증가, 힘 5 증가.
‘떴다!’
이런 걸 노리고 NPC한테 요리를 배우려고 한 것이다.
혼자서 요리를 해봤자 저런 레시피 같은 건 구하기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면 저한테 배울 건 없을 거 같네요.”
“아닙니다. 더 배우고 싶습니다.”
“나가요, 좀!”
* * *
소피아에게서는 쫓겨났지만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태현은 어거스트를 찾아갔다.
“타이럼 사냥꾼들을 위해 요리를 해주고 싶습니다.”
“뭐라고?! 역시 자네는…….”
태현은 이제 대꾸도 하지 않고 움직였다.
타이럼 사냥꾼들은 타이럼시에 머무르면서 돌아다니는 NPC들이었다.
다른 도시의 병사들이 할 역할을, 타이럼시에서는 타이럼 사냥꾼들이 하는 것이다.
일종의 군대라고 봐도 좋았다.
당연히 숫자도 많았고 머무르는 곳도 따로 있었다.
“자네가 다인즈를 찾은 사람이군. 어거스트한테 들었네.”
“자네 덕분에 친구를 무덤에 묻을 수 있었어.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요리를 해드리겠습니다.”
“뭐?”
친밀도가 높아서 거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와서 요리를 해준다니 타이럼 사냥꾼들은 당황했다.
“요리라니. 우리야 좋지만…….”
“요리를 잘하나? 소피아보다는 못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소피아의 음식을 못 먹은 지도 좀 됐군.”
웅성거리는 타이럼 사냥꾼을 뒤로 한 채, 태현은 솥으로 다가갔다.
막사에는 재료가 가득했다. 사냥꾼들의 막사인 만큼 재료는 넘쳐났다.
아무도 요리를 안 해서 그렇지.
‘역시. 날로 먹을 수 있겠군.’
요리를 해주는 걸로 생색은 내지만 돈은 하나도 들지 않는 곳.
스킬 숙련도를 팍팍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요리 같은 일반 스킬들은 숙련도가 매우 중요했다.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차이가 커지는 것이다.
태현은 소피아에게 배운 대로 고깃덩어리를 집어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던 사냥꾼들도 잠시 후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막사 안에 맴돌자 태현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오, 냄새가 제법…….”
“혹시 한 입 먹어봐도 되나?”
“먹어보시죠.”
“오오! 이 맛은!”
“소피아가 해주던 맛과 똑같잖아!”
* * *
“이번엔 요리냐?”
“토끼 안 잡으니까 다행 아닌가요?”
“안 잡지는 않을걸.”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플레이어 중에서 뭐 눈에 띄는 거 있냐?”
“이세연이 마지막 전설 퀘스트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이번 주 안에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로 전직할 것 같은데요.”
“예상대로네.”
“지금 방송, 게시판 모두 화제에요.”
방송이나 게시판에 자기가 했던 걸 올리지 않는 태현과 달리, 이세연은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올리고 길드를 홍보하는데 능숙한 플레이어.
원래 실력과 외모까지 있으니 그 인기는 끝이 없었다.
지금도 전설 퀘스트의 막바지에 도착했다고 직접 인터뷰를 한 상태였다.
판타지 온라인 1도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게임이었지만, 2의 성공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2는 엄청난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런 만큼 1에서 뛰어났던 플레이어들은 관심을 많이 받았고, 이들을 인터뷰하려는 곳도 많았다.
“난 좀 자고 올 테니까, 너도 적당히 하고 교대해라.”
“예!”
* * *
“지수야. 너 아직 잘츠 왕국이야? 레벨 10 찍으면 에랑스 왕국으로 오기로 했잖아.”
“어? 아. 그랬지?”
“아직도 레벨 10이 안 됐어?”
“어…… 되긴 됐는데, 퀘스트가 있어서.”
“그래? 어떤 퀘스트야?”
“희귀한 퀘스트면 좋겠다!”
친구들이 기뻐하면서 물어오자 지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했다.
-타이럼시 앞에서 토끼만 잡는, 사람은 착한데 성격은 약간 이상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랑 같이 돌아다니다가 영웅 직업으로 전직했어.
‘얘네들이 괜히 걱정할 것 같아…….’
걱정이 많은 친구들이다 보니 사실대로 말하면 괜한 걱정을 할 것 같았다.
“직업 퀘스트인데…… 별거 아니야. 곧 깨고 그쪽으로 갈게. 너희들은 뭐 하고 있어?”
“우리? 나는 마법사로 전직해서 마탑 퀘스트 깨면서 도시 구경하고 있어.”
“나는 재봉사 길드 들어가서 재봉 스킬 배우고 있어. 재밌더라.”
친구들은 게임을 그렇게 목숨 바쳐서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적당히 레벨 업을 하고, 적당히 퀘스트를 하고, 아름다운 장소를 구경하고…….
사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렇게 했다.
태현처럼 저렇게 죽어라 노가다를 하는 플레이어가 소수였다.
에랑스 왕국은 마탑부터 시작해서 각종 생산 직업 길드가 있었고, 레벨 높은 NPC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거기서 시작하는 유저들은 NPC들 밑에 들어가서 배우거나 퀘스트들을 받을 수 있었다.
잘츠 왕국이 괜히 욕을 먹는 게 아니었다.
주변 난이도는 높은데 왕국 내 시설은 형편없었고, 그나마 이름이 좀 알려진 건 사냥꾼들 정도였다.
다른 왕국의 사람들에게 잘츠 왕국을 물어보면 ‘야만인 놈들’ ‘산속에 박혀서 활만 쏠 줄 아는 놈들’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너도 빨리 에랑스 왕국으로 와. 같이 다니자.”
“어…… 나 기사 아저씨 왔으니까 이만 가볼게! 다음에 봐!”
앞에 멈춘 차를 향해 지수가 뛰어가자 남은 친구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지수가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얼마 전만 해도 잘츠 왕국 잘못 골랐다고 계속 우울해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거 같은데?”
“퀘스트나 아이템이라도 발견한 거 아냐?”
“지수가 그런 걸로 기분 좋아질 만큼 단순한 애냐! 걔가 너냐!”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지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지수가 먼저 말을 안 해줬는데 물어보면 당연히 숨기겠지! 지수 성격 알면서 그래? 계속 묻다가 화내기라도 하면 어떡해!”
하나는 시영에게 화를 냈다. 시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하나를 쳐다보았다.
‘이것도 친구라고…….’
“그러면 네가 잘츠 왕국으로 찾아가서 뭐 하고 있나 보든가.”
“앗! 그러면 되나? 잠깐만. 잘츠 왕국은 난이도 높다며?”
“타이럼시는 초보자 시작 도시니까 다른 곳보다는 낫겠지.”
시영은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길드 사람들하고 같이 가볼까.”
여학교지만 지수는 인기가 좋았다.
살짝 중성적인 느낌이 나는 아름다운 외모에 활발하고 친절한 성격. 성적도 그렇고 집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 * *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미친 것 같아.’
태현은 기지개를 켜며 상태창을 켰다.
이름 : 김태현
레벨 : 24
직업 : 백수
HP(체력) : 330
MP(마력) : 330
힘 : 10
민첩 : 10
체력 : 10
지혜 : 10
행운 : 960
보너스 스탯: 0
초급 검술 3 (80%)
초급 요리 4 (55%)
초급 도축 2 (35%)
레벨은 기껏 2가 올랐지만, 행운은 거의 2배 가까이 뛰어 있었다.
요리도 스킬 레벨 4를 찍은 상태.
이유는 간단했다.
타이럼 사냥꾼들한테 요리를 해주고 나서 재료가 떨어지면 밖으로 나가서 토끼를 잡았다.
하도 많이 잡아서 일시적으로 토끼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잡고 나면, 토끼 고기를 갖고 돌아갔다.
그러면 다시 요리를 하는 것이다.
이 짓을 질리지도 않고 계속 반복했다.
이미 토끼를 잡아서 레벨 업 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 오를 때까지 스탯을 올린다!’
태현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컨트롤이 아니었다.
한 번 방향을 정하면 절대 멈추지 않는 끈기였다.
“정말 맛있는 토끼 요리군.”
“대단해! 이런 토끼 요리를 매일 먹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
“정말 맛있긴 한데, 다른 요리는 없나? 우리가 사슴이랑 곰도 잡아왔는데…….”
“제발 다른 요리 좀 해줘! 누가 소피아 좀 불러봐!”
덕분에 죽어 나가는 건 타이럼 사냥꾼들이었다.
그래도 다양한 요리를 먹던 그들이었다.
처음에는 태현이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것에 기뻐했지만, 그가 계속 토끼만 요리해 주자 질려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태현이 우호도가 낮으면 태현에게 그만하라고 협박이라도 누가 했곘지만, 태현은 타이럼 사냥꾼 우호도가 최고인 상태.
모두가 괴로워하면서도 태현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우욱…… 토끼 고기는 이제 싫어…….”
‘검술에 요리에 도축에…… 토끼 잡으면서 행운도 올리고. 완벽하군.’
태현은 몰랐지만, 쉬고 돌아온 최명성 팀장은 태현의 스탯을 보고 거품을 물고 있었다.
“저놈은 잠도 안 자냐?!”
“좋아, 이제 좀 쉬었으니까…….”
“……!”
“대장장이 기술도 좀 배워야겠다. 타이럼 사냥꾼들이 쓰는 대장간은 어디 있습니까?”
최명성은 뒤로 넘어졌다.
* * *
행운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친해진 것이었지만, 타이럼에서 사냥꾼들과 친하다는 건 엄청난 장점을 갖고 있었다.
타이럼시의 가장 큰 세력이 타이럼 사냥꾼들이었다. 이들이 친하게 지내는 대장간, 음식점, 주점, 여관…… 따지면 한둘이 아니었다.
즉 타이럼 사냥꾼들과 친하다면 이 모든 곳에서 친절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 시작하는 초보자들은 절대로 받을 수 없는 대접이었다.
“저리 꺼져! 소금 뿌리기 전에!”
“시키시는 건 모든지 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주세요!”
“네깟 놈이 뭐라고 일을 시키겠냐! 대장장이 일이 만만해 보여? 저리 꺼져!”
플레이어 한 명이 대장장이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다가 쫓겨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성질이 더러워 보이는 대장장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다시 왔다가는 망치로 머리통을 후려갈겨 줄 테다!”
‘좀 심하군. 설마 나한테도 저러나?’
판타지 온라인 2 NPC들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격이 다양했고, 당연히 그중 성질이 더러운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접근할 때 조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니까.
“너는…….”
대장장이가 그를 쳐다보자 태현은 긴장했다.
“아! 새로운 타이럼 사냥꾼이로군. 들어오게, 들어오게! 뭐가 필요해서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