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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9화 (9/1,826)

§ 나는 될놈이다 9화

쾅!

데미지는 없었다.

밑에 푹신푹신한 건초더미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태현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구멍이 함정처럼 나 있었다. 어떤 놈이 저런 걸 만든 건지 알 수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저기가 던전 입구였나보다. 여기 진짜 난이도가…….”

둘 다 레벨 20 이하. 물론 그 레벨로도 깰 수 있는 던전도 있었지만, 타이럼 주변의 던전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보통 던전은 이런 식으로 입구를 만들지 않았다. 게다가 저레벨 던전이라면 더더욱.

NPC한테 정보를 듣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던전 입구라는 걸 알 수 있듯이 크고 널찍하게 나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야 초보자들은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략을 짜고 파티를 모으고…… 하여튼 온갖 준비를 다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함정처럼 떨어지는 건 고레벨 던전, 그것도 위험한 구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개발진 이 인간들 진짜 타이럼에 뭐 원한이라도 있는 거 아냐?’

시작하기 전에 ‘타이럼시에서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엿먹여라!’라는 말을 들은 게 아니었다면 이런 밸런스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 * *

“어?! 팀장님! 김태현이 던전 들어갔어요!”

“던전 들어갈 수도 있지. 왜 호들갑이야?”

“아뇨, 아뇨. 일반 던전 말고요! 타이럼 레인저의 무덤이요!”

“뭐? 거기를 벌써 들어갔다고?! 어떻게?!”

아무리 김태현이라고 해도 지금 앞에서 토끼만 잡다가 던전에 들어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타이럼 레인저의 무덤은 일반적인 조건으로는 매우 찾기 힘들었다.

원래라면 타이럼 사냥꾼들과 매우 친해진 다음, 그들에게서 실종된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실종된 동료의 유품을 찾고…….

하여튼 몇 단계의 사전 퀘스트를 진행하고 나야 던전 입구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함정 형식의 입구였지만, 당연히 누군가가 산을 돌아다니다가 조건도 달성하지 않고 떨어지면 의미가 없어지니 공을 기울였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 아니면 바닥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입구 위에서 바닥을 부술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태현처럼 행운에만 스탯을 올인한 사람이 그 위를 걸어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행운 때문에 저렇게 된 거야? 아오, 진짜…….”

최명성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투덜거렸다. 힘이나 민첩 같은 스탯들과 달리, 행운은 그들도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는 스탯이었다.

인공지능이 자체적으로 게임 시스템을 만들고 돌리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일어나는 일이나 확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어, 잘된 거 아닙니까?”

“뭐가?”

“여기 타이럼 레인저로 전직 가능한 곳이잖아요. 만약 김태현이 타이럼 레인저로 전직하면 더 이상 타이럼 앞에서 토끼만 잡고 다니는 짓은 안 하지 않겠습니까?”

“음…….”

최명성은 생각에 잠겼다. 과연 어떨까?

일단 이 던전의 난이도를 봤을 때, 저 둘의 능력치로 깨는 건 어려워 보였다.

원래라면 레벨이 더 높은 궁수 계열 직업들이 상위 직업을 얻기 위해 깨는 퀘스트 던전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상대는 김태현이었다.

‘김태현이라면 깰지도 몰라.’

만약 깬다면?

타이럼 레인저로 전직할까?

“평범하게 강한 직업이라 싫은데…….”

“아니, 지금 팀장님 취향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 토끼만 계속 잡아서 행운 수치가 진짜 초월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면 그런대로 재밌겠지. 우리 인공지능을 좀 믿어보자. 알아서 잘 할 거야. 원래 한 명이 독주하면 또 다른 사람이 나오고 그러는 게 게임이야. 그런데 진짜 타이럼 레인저로 전직하나? 초반에 영웅 직업 얻는 기회가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니까 할 거 같긴 한데…….”

아쉬움에 최명성은 입맛을 다셨다. 김태현은 뭔가 좀 더 변태 같은 직업으로 변태 같은 플레이를 해주기를 원했다.

아니면 차라리 아키서스의 화신 같은 전설 직업을 얻어버리던가.

“그나저나 파티로 움직이네요? 이 옆에 있는…… 여자애죠?”

“어. 여자 맞아. 캐릭터 만들 때 얼굴 좀 건드렸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억지로 얼굴 건드려도 모양이 되니까 참 치사해요. 그렇죠?”

“나한테 동의 구하지 마. 난 그런 거 모른다고.”

판타지 온라인 2는 시작할 때 외모를 완전히 뒤바꿀 수는 없어도 알아보지 못하게 살짝살짝 수정 정도는 가능했다.

보아하니 유지수란 플레이어도 그런 식으로 수정한 것 같았다.

워낙 원래 얼굴이 예쁘다 보니 남자처럼 보이게 수정을 해도 미소년처럼 되어버렸지만.

남자처럼 보이게 수정하거나 여자처럼 보이게 수정하는 플레이어가 한둘이 아니니 별로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신경이 쓰이는 건 김태현 쪽이었다.

“파티 플레이 안 하는 놈이 무슨 마음의 변화가 있었기에 파티 플레이를 하지?”

“파티 플레이를 아예 안 했나요?”

“가끔 하긴 했는데 기본적으로 혼자서 움직이는 놈이었지. 그래서 더 좋았고.”

다른 랭커들은 다 길드다 뭐다 세력을 모아서 움직였지만 김태현은 친구 몇 명을 빼고서는 혼자서 뛰었다.

그런 고독한 늑대 같은 점이 매력이었는데.

“뭐…… 좀 더 지켜보자고. 아무리 김태현이라고 해도 던전 난이도가 있으니 못 깰 수도 있어.”

* * *

“던, 던전이면 갑자기 몬스터 나오고 그러는 거 맞죠?”

“그렇겠지.”

처음 들어오는 던전에 지수는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게다가 그 던전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들어온 던전.

“좋게 생각하자. 기회일 수도 있어.”

“……함정에 떨어져서 들어온 던전이 어떻게 기회에요?”

“원래 이런 식의 비밀 던전은 찾기 힘들어. 찾으려면 퀘스트 깨고 노가다 좀 해야 해. 그런데 우리는 바로 들어왔잖아.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거지.”

“준비 하나도 못하고 들어와도 괜찮아요?”

“사실 그게 문제긴 해.”

“…….”

“뭐,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너나 나나 죽어도 별로 페널티 없잖아?”

“너무 긍정적인 거 아니에요?!”

태현은 턱을 긁적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벽마다 횃불이 타오르고 있어서 앞은 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배려해 주니까 더 무서운데.’

컨트롤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태현의 스탯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너무 극단적이었다.

행운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형편없는 상태였으니, 범위 공격 하나만 맞아도 끝장이었다.

몬스터의 평범한 공격은 컨트롤로 피한다고 쳐도 주문이나 범위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으,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알기라도 하면 낫겠는데요.”

“여기는 고블린이 나와.”

“네? 그건 어떻게 알아요?”

지수는 놀란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이 그녀와 달리 꽤나 게임에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처음 본 던전에서 나올 몬스터가 어떤 몬스터인지 바로 알아맞히다니?

“여기 쓰여 있잖아.”

[고블린 주의!]

벽에 떨리는 글씨체로 크게 써져 있었다. 지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쓰여 있네요…….”

“고블린이면 함정이 나올 텐데. 이거 골치 아프네.”

“네?”

“우리는 도적이 없잖아. 너나 나나 둘 다 아직 전직하지 못한 상태고.”

고블린은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함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레벨이 높은 고블린은 정말 욕이 나올 정도로 짜증 나는 함정들을 사용했다.

이런 것들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도적이나 대장장이 같은 함정 관련 직업이 필요했다.

물론 태현이나 지수는 둘 다 아니었다.

“미리 주의하면 안 될까요?”

“주의야 하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레벨 낮고 함정 발견 레벨이 없잖아. 난이도가 조금만 높아도 찾기 힘들걸.”

태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꼼꼼하게 바닥을 훑어보았다.

턱-

“응?”

지수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발밑을 보니 무언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뭐 밟았냐?”

“네…….”

쾅!

벽이 열리더니 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태현의 위치는 전부 맞아야 하는 위치였다.

[함정이 발동되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

태현은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상태에서 저런 함정을 맞았다면 바로 죽거나 적어도 죽기 직전까지 가야 했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 * *

“야! 아무래도 저건 이상하잖아?! 행운이 높긴 해도 저렇게 다 회피하는 게 말이 돼?!”

“어…… 그게…… 행운이 500 가까이 되면 어느 정도로 효과가 나오는지는 저희도 정확하게 알기 힘들잖습니까.”

“어휴. 진짜.”

“그리고 저거, 아마 보정도 들어갔을 겁니다.”

“뭐?”

“네. 그러니까 레벨에 맞게 들어가면 그냥 그대로지만, 레벨이 너무 낮으면 스탯에 살짝 보정 들어가는 거 있잖습니까.”

“그거 해당되는 던전 몇 개 없잖아.”

“저게 그 몇 개 중 하나입니다. 팀장님. 영웅 직업 전직 장소라…… 퀘스트 기껏 다 깼는데 저기서 전멸하면 좀 그렇잖아요. 사전 퀘스트도 많은데.”

“눈이 있으면 봐라! 저게 살짝 보정 받은 거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기서 다 피하는 게 말이 돼? 지금 행운 수치가 한 두 배는 되는 거 같은데?”

레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행운 수치가 보정을 받으니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가 나왔다.

“보정 받은 행운 수치가 지금 얼마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문제가 좀 심각한데. 행운 수치가 높아지면 원래 저렇게 되는 건가?”

세부사항은 인공지능이 다 짜놓은 상태라 그들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도 힘이 낮으니 공격력도 낮고, 체력이 낮으니 HP도 낮고…… 민첩이 낮으니 명중률이나 회피율도 낮을 거 아닙니까.”

“지금 저 함정 다 피한 거 보고서 회피율이라는 소리가 나와? 저 정도 행운이면 명중률이나 회피율은 의미가 없어.”

“그래도 보정 받아서 저 정도잖습니까. 두 배면 거의 1000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데. 스탯 하나를 그 정도로 찍어서 겨우 저런 함정 하나 피하는 거면 너무 아깝죠.”

“그건 그렇긴 해.”

힘이나 민첩 같은 스탯을 1000까지 찍었다면 어마어마한 성능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모습도 그렇게까지 놀랍게 느껴지지 않았다.

최명성은 문득 생각했다.

지금이야 500이 안 되지만, 나중에 행운을 올리고 올려서 1000을 넘어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하긴 하네.’

* * *

함정에 다치지 않았다고 해서 방심할 틈은 없었다.

함정이 작동한 소리를 듣고 고블린들이 나타난 것이다.

“침착하게 상대하자.”

“누, 누, 누, 누구부터 쏠까요?”

“침착하게 상대하자니까…….”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뒤에 있는 지수를 보지 않아도 벌벌 떨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활 들고 있거나, 지팡이 들고 있거나, 돌멩이 들고 있는 고블린부터 먼저 쏴. 걔네는 살려두면 귀찮아지니까.”

태현은 고블린이 휘두르는 칼을 쉽게 받아냈다.

“……!”

그리고 뒤로 밀려났다.

‘아니…… 아무리 내가 힘을 안 찍어도 그렇지, 고블린한테 근력으로 밀리나?!’

태현은 고블린들의 레벨이 생각보다 높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받아넘기거나 하는 건 무리였다.

무조건 피해야 했다.

“진짜 귀찮게…….”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몽둥이를 피하고, 옆구리를 찔러오는 칼을 피한다. 그리고 드러난 고블린의 머리통을 칼로 후려친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고블린이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스킬, ‘행운의 일격’을 얻었습니다! 행운 수치에 따라 치명타 데미지가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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