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화
안 됐다.
[치명타가 연속으로 터졌습니다! 데미지가 중첩됩니다!]
“젠장!”
몬스터도 급소가 있었다. 토끼 같은 건 급소가 뻔하니 급소 부분을 때리면 치명타 확률이 높아졌다.
문제는 워낙 행운이 높다 보니, 급소 아닌 부분을 일부러 골라 때려도 치명타가 터지는 것이다.
“제가 먼저 해볼게요.”
“그래. 그래야겠다.”
태현은 지수 옆에 섰다. 그녀가 먼저 쏜 다음, 그녀를 공격하는 토끼를 잡는 것이다.
근접전은 정말 아니었지만, 지수는 꽤나 솜씨가 괜찮았다. 어지간해서는 토끼가 접근하기도 전해 쏘아서 끝을 냈다.
‘얘 진짜 잘 쏘네. 현실에서 양궁 선수 유망주 같은 건가?’
태현도 눈이 있었다. 이런 실력은 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잘 쏴서.”
지수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태현이 지수의 등을 쳤다.
“미소년 얼굴로 그러지 마. 부럽잖아.”
“미, 미소년 아닌…….”
“그런 얼굴로 수줍은 표정을 짓다니. 벌써부터 이미지 관리하는 거야? 응? 나중에 아이돌 데뷔해서 누나 팬들 좀 모으겠다 이거야?”
“아, 아니거든요!”
레벨 10까지는 무난했다. 사냥하는 법만 알면 올리기는 쉬웠다.
‘스탯창.’
이름 : 유지수
레벨 : 10
직업 : 백수
HP(체력) : 195
MP(마력) : 190
힘 : 10
민첩 : 45
체력 : 20
지혜 : 10
행운 : 10
보너스 스탯: 0
이름 : 김태현
레벨 : 18
직업 : 백수
HP(체력) : 270
MP(마력) : 270
힘 : 10
민첩 : 10
체력 : 10
지혜 : 10
행운 : 480
보너스 스탯: 0
지수의 스탯은 평범했다. 궁수 계열을 노리고 있다면 모범적인 배치였다.
그에 비해 태현의 스탯은 변태스러움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레벨 18에 전직도 안 했고, 거기에 행운은 500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토끼발이 뭐죠?”
“응? 행운 올려주는 거야. 복용해.”
“행운 올려주는 거면 오ㅃ…… 아니, 형 드릴게요. 저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까불지 말고 너나 복용해. 대가 받으려고 도와준 거 아니다. 아. 날로 먹지는 말고. 꼭 요리해서 먹어.”
“……!”
태현은 지수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자 살짝 부담스러워했다. 이 자식 이거, 왜 이렇게 눈빛을 빛내며 쳐다봐?
‘그러고 보니 친구들도 내버려 두고 나랑 같이 파티하자고 하고…… 이 자식 설마 그런 취향은 아니겠지.’
지수가 웬만한 여자들은 뺨칠 정도로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태현은 어디까지나 여자를 좋아했다.
“좋아. 준비 끝났으니까 늑대 잡으러 가자. 바로 죽지는 않겠지.”
“괜찮을까요?”
토끼한테 계속 죽었던 지수는 아직 완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레벨 10이면 괜찮을 거야. 거기서 힘든 퀘스트를 어거스트가 주지는 않았겠지. 게다가 너 전직도 해야 하는데 더 레벨 올리면 좀 골치 아파져. 결정했으면 전직은 가능한 빨리하는 게 좋거든. 레벨 올리면 올릴수록 레벨 업 하기 힘들어지는데 얻을 수 있는 스킬 같은 거 날리잖아.”
“네!”
* * *
산속으로 올라가자 금세 주변이 어두컴컴해졌다. 아직 한낮인데도 워낙 숲이 무성한 탓이었다.
지수는 긴장한 듯이 침을 삼켰다. 이런 걸 보면 정말 현실감 넘치는 게임이었다.
“안, 안 떨리세요?”
“뭐, 죽으면 다시 하면 되니까. 게임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푸학!
소리가 들리자마자 태현은 지수를 잡고 뒤로 밀었다. 소리가 난 곳과 반대 방향이었다.
방금까지 떠들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바로 검을 휘둘렀다.
캉!
늑대의 이빨에 검이 막혔다.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어거스트 이 자식, 이런 놈을 20마리 잡으라고 한 거야?!”
태현이 설렁설렁 걷는 것 같아 보였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는 완벽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왔다는 건 늑대가 은신 스킬 비슷한 걸로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스킬을 가진 늑대를 20마리 잡으라니.
역시 잘츠 왕국의 타이럼시. 괜히 게시판에서 욕을 먹는 게 아니었다.
“에잇!”
지수는 바로 화살을 뽑아서 빠르게 쏘았다. 화살은 늑대의 발을 정확히 꿰뚫었다.
[스킬, ‘정교한 사격’을 얻었습니다! 원하는 부위를 노릴 수 있습니다!]
[발을 꿰뚫린 늑대의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잘했어!”
태현은 검을 들고 휘두르듯이 돌렸다. 늑대의 입에서 검이 빠져나오더니 그대로 콧잔등을 후려쳤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깨갱! 깨개갱!
늑대가 동네 똥개 같은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놈의 눈에 붉은 기운이 돌더니, 냅다 태현의 어깨를 물어뜯으려 했다.
물론 그런 공격에 맞을 태현이 아니었다. 태현은 공격을 했을 때부터 늑대의 동작을 눈에 넣어두고 있었다.
‘피한다!’
아슬아슬하게 피하자 늑대의 복부가 드러났다. 태현은 바로 검을 찔러넣었다.
[치명타가 연속으로 터졌습니다! 데미지가 중첩됩니다!]
‘원래 이렇게 치명타가 잘 터졌었나?’
태현은 의아해했지만 몸은 바로 움직였다. 늑대는 데미지가 컸는지 도망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푹!
“퀘스트창 확인.”
<늑대 사냥>
어거스트는 신뢰하는 당신에게 늑대 사냥을 맡기려고 한다. 타이럼 사냥꾼에게 들어온 의뢰를 당신한테 부탁했다는 건 그가 당신을 신뢰한다는 증거. 실패하거나 게으르게 처리할 경우 어거스트가 많이 실망할 것이다.
늑대 : 1/20
퀘스트 보상: 어거스트의 친밀도 증가. ???
먼저 늑대를 발견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몸으로 때워야 했다. 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쟤가 먼저 당하면 골치 좀 아프겠는데…….’
지수가 활을 잘 쏘고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태현이 앞에서 막아주고 있어서였지, 근접전으로 가게 되면 지수는 끝장이었다.
“꼼수를 좀 써야겠다.”
“꼼수요?”
“그래. 늑대가 은신 스킬이 있는 모양인데, 그거 찾아내려면 지금 우리로는 무리고…….”
“저 매직아이 잘하는데.”
“그거로는 당연히 안 되지! 장난해? 찾기보다는 그냥 불러 모으는 게 낫겠어.”
이제 지수는 태현에게 농담도 할 정도였다. 태현은 늑대의 시체에 다가갔다.
[늑대 가죽을 얻었습니다.]
[타이럼 사냥꾼의 강철 단검을 얻었습니다.]
“응?”
늑대가 타이럼 사냥꾼의 강철 단검을 갖고 있다니. 이건…….
“깊게 생각하지 말자. 누군가 떨어뜨린 걸 주웠을 수도 있잖아? 꼭 늑대가 타이럼 사냥꾼을 죽이고 뺏었다는 보장은…….”
<타이럼 사냥꾼의 강철 단검>
당신은 죽은 늑대에게서 타이럼 사냥꾼의 강철 단검을 찾았다. 타이럼 사냥꾼들은 은혜를 중요시한다. 물건의 주인을 찾아준다면 그들이 고마워하리라.
퀘스트 보상: 타이럼 사냥꾼 집단의 친밀도 증가, ???
“이거 무슨 퀘스트예요?”
“돌발 퀘스트지. 음. 원래 집단 친밀도 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긴 한데…….”
특정 지역, 특정 몬스터를 잡았을 때 생기는 퀘스트. 보상을 보면 깰 만한 가치는 있었다.
‘대충 친밀도 올려주고 토끼 더 잡으려고 했는데…….’
“저, 귀찮으시면 그냥 저 혼자 해도 돼요!”
지수가 눈치를 보고 그렇게 말하자 태현은 지수를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눈치는 이상하게 좋아가지고. 됐어. 같이 깨자. 타이럼 사냥꾼 친밀도 올라가면 편하기는 할 거야. 일단 늑대부터 다 잡고 가야 하겠는데…….”
태현은 늑대 사체를 단검으로 도려내기 시작했다.
[늑대 고기를 얻었습니다.]
[늑대 고기를 얻었습니다.]
[도축 스킬을 얻었습니다.]
도축 스킬은 몬스터에게서 재료를 얻어내는 스킬이었다. 이것도 역시 높여두면 좋았다. 이 스킬이 높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아이템도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스킬이 낮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태현은 능숙한 칼질로 고기를 분리해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늑대 고기를 본 지수는 질색하며 물러섰다.
“그걸 왜 잘라낸 거예요?”
“미끼로 쓰려고. 피 냄새가 나면 아무래도 좀 오겠지?”
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동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저기, 그런데요.”
“왜?”
“피 냄새 풍기면 몬스터가 많이 몰려오지 않을까요?”
“걱정 마. 판타지 온라인은 레벨이 낮은 몬스터는 그만큼 지능도 낮거든. 무리로 몰려오지는 않아. 게다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일 테니까, 기껏 해봤자 두세 마리 정도겠지.”
그러나 태현은 한 가지 잊고 있었다.
여기는 타이럼이었고, 밸런스가 잘못 맞춰진 곳이었다는 것을.
“어…….”
“왜 그래? 걱정할 거 없다니까.”
“아니, 저거…… 늑대 아니에요?”
저 멀리, 나무들이 없는 곳에서 붉은 점들이 보였다. 늑대들의 눈동자였다. 수십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였다.
태현은 그가 여기 수준을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이런 젠장.”
“어, 어쩌죠?!”
“싸우는 것보다는 그냥 빠져나가야겠다. 숲을 나가서 내려가면 타이럼 안에 있는 사냥꾼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도망칠 길을 준비한 상태였다.
다행히 아직 거리가 있었다.
“한두 마리 정도라면서요?!”
“원래 저레벨 몬스터들이 이렇게 빨리 쫓아오지는 않는데. 어떤 놈들이 설정을 한 건지…….”
태현은 앞으로 타이럼 주변의 몬스터들은 무조건 한 단계 높게 평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교한 사격!”
“……!”
달리면서 뒤로 돌아 화살을 쏘아 늑대의 발을 꿰뚫다니. 태현은 혀를 내둘렀다.
“야. 너 진짜 잘 맞추는데?”
“헤헤…….”
“근데 지금은 뛸 시간이야. 뛰어!”
태현은 늑대 중 몇 마리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저거 왜 우는 거예요?”
“신호 보내는 거 같은데.”
숲을 빠져나와 산을 내려가면 바로 도시의 입구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늑대들도 그걸 아는 것 같았다.
“쯧.”
늑대들이 앞을 막는다면 포위당하게 됐다. 태현은 혀를 찼다. 어차피 죽는다고 하더라도 페널티는 없었다. 전직도 하지 않은 데다가 레벨도 낮았으니까.
그래서 조금 안일하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타이럼 주변의 몬스터 난이도는 이상했다.
“혹시 이런 상황도 예측했어요?”
“설마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는데. 도망칠 길까지 막히면 옆으로 난 저 길로 빠져나가려고 했지.”
“저 길로요?”
지수가 질린 표정으로 태현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말이 ‘길’이었지 그냥 비탈진 절벽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야 몬스터가 못 막고 있을 거 아니야. 저기도 막히면 그냥 죽고 도시에서 부활하자.”
지금 상황을 보면 저 길에 뭐가 있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지수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가까이 붙은 건 처리하면서 움직이는 게 낫겠군.’
늑대들도 다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태현은 빠르게 방향을 돌려 가장 앞에 있는 늑대의 눈을 노렸다.
정신없는 상황이었지만 단련된 태현의 몸은 침착하게 늑대의 급소를 노렸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그렇지!”
이 상황에서 터지지 않는다면 행운을 올리는 이유가 없었다. 태현은 바로 늑대의 턱을 걷어찼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이것도?!”
이건 단순히 견제를 위한 공격이었는데. 늑대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뒤에 늑대들이 달려오는 걸 보며, 태현은 급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서 돌아서 빠져나가면 무사히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푹-
“……?”
태현과 지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둘이 디디고 있던 바닥이 푹 꺼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지수가 비명을 지르며 태현을 껴안았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태현은 혀를 찼다.
‘낙하 데미지가…… 괜찮으려나?’
잘못하면 떨어지자마자 죽을 수 있었다.
[던전:타이럼 앞산의 지하동굴에 입장하셨습니다. 당분간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로그아웃 시 던전에서 강제로 퇴장당하며, 페널티가 부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