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화
“찾는 걸 좋아하지 내가 그걸 할 생각은 없어. 채가도 상관은 없다. 아. 약한 직업이면 할지도 모르겠네.”
-변태 자식. 그러면 나 먼저 해보고 너 시작하면 도와줄게. 너 그런 플레이하면 솔직히 도움 많이 필요하잖아.
“고맙다.”
-대학은 갔다 왔어? 오랜만에 가니까 분위기 어때?
“어. 나 알아보는 애들이 나 싫어하더라.”
-그야 네가 한 짓이 있으니까 그렇지.
“아니, 내가 뭘 했다고.”
태현은 투덜거렸다. 그는 정말로 떳떳했다.
* * *
“헉. 저 사람. 그 선배잖아?”
“응? 지영아. 저게 누군데?”
“가까이 상대하지 않는 게 좋아. 저 사람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고.”
“왜? 애들 때렸어? 군기 잡았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입학 이후 대학 동기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친해졌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어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건 게임이었고, 그들도 모여서 게임을 즐겨 했다.
마침 그 당시 유명한 게임사, 화염폭풍사에서 새로운 FPS 게임을 출시했는데 그 게임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캐릭터가 맞부딪히며 치열하게 싸우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태현은 매우 뛰어났다.
“헤드. 헤드. 헤드.”
3:1로 붙어서 이기는 건 기본이고,
“힐러로 딜러를?!”
힐러로 딜러를 잡는 것까지. 태현의 플레이는 홈페이지 영상에 나올 정도였다.
“어, 근데 공격 상황인데 수비용 포탑 짓는 캐릭터는 왜 고르는 거야?”
물론 이때에도 불안 요소는 있었지만, 동기들은 눈치채지 못했었다.
일이 터진 건 피시방이었다. 등급전에 목숨을 거는 한 동기가 태현과 같이 플레이하기를 부탁했다.
그가 같이 해주면 한결 쉬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태현아…… 왜 한주를 고르는 거야……?”
한주는 궁수 캐릭터로, 남들은 폭탄에 총에 로봇까지 들고 다니는데 혼자 활을 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인지 가장 약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오죽하면 아군이 한주를 고르면 다른 사람들이 나간다고 협박을 할 정도였을까.
“요즘 얘 파고 있는데 재밌더라고.”
“바꿔 이 자식아! 다른 거 해!”
“네가 뭔데 명령이야?”
원래 이래라저래라 들으면 더 삐딱해지는 게 태현이었다. 태현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 사이 채팅창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아 저 새끼 왜 한주를 골라가지고!
-한주 픽 바꿔!!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태현은 치유를 제외한 모든 금메달을 따고 닥치는 대로 상대팀을 죽였지만, 전체적인 실력에서 워낙 차이가 났다. 그들은 결국 패배했다.
“너, 너! 내가 도와달라고 했잖아!”
“도와줬는데. 금메달 딴 거 안 보이냐?”
“다른 거 픽했으면 더 잘했잖아!”
“그건 결과론이지. 내가 1인분 못한 것도 아니고, 거의 3인분 혼자서 다 했는데 졌으면 네 실력 때문이지.”
“너 이 자식……!”
열이 받은 동기는 주먹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태현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
* * *
“어……. 그러니까 게임 캐릭터를 이상한 거 골랐으니까 나쁜 사람이란 거야?”
“아니, 그다음에 한 짓을 봐!”
“먼저 덤볐다며? 부탁도 그쪽에서 한 거고?”
“그, 그렇기는 한데……. 하여튼 이상한 사람이야. 엮여서 좋을 거 없으니까 그냥 피하는 게 좋아.”
“??”
소희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사정이 있어서 입학하고 바로 휴학을 한 다음 돌아온 사람이었다.
“이상한 사람 아닌 것 같은데…….”
* * *
“어쨌든 수석 찍은 것만 인증하고 다시 게임 시작할 테니까, 3개월만 기다려.”
-누구한테 수석 자리 맡겨놓기라도 했냐? 야. 한국대가 무슨 개나 소나 가는 곳도 아니고…….
최상윤은 웃으면서 말했다.
-너 1년 후에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두고 보자고.”
그리고 시작된 1학기가 끝나고, 태현은 가볍게 과 수석을 차지했다.
* * *
“드디어 도착했군.”
넓은 방 가운데 위치한 캡슐을 보고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판타지 온라인 2는 1과 달리 본격적인 장비를 필요로 했다.
‘그만큼 현실감이 높다는 거겠지.’
어머니는 성적을 보고 한동안의 휴가를 허락했다. 물론 2학기는 2학기대로 열심히 다녀야겠지만, 한동안 태현을 내버려 두실 것이다. 약속은 지키시는 분이었으니까.
[캐릭터 이름을 정하십시오.]
“김태현.”
[외모를 스캔하겠습니다. 시작 지점을 정해주십시오.]
“어?”
시작 지점이 나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태현은 귓속말로 그의 친구, 최상윤을 불렀다.
“상윤아. 나 지금 도착해서 캐릭터 만드는 중인데.”
-어? 진짜? 내가 가서 도와줄게!
“아니. 됐어. 처음에는 혼자 하는 게 더 재밌어. 그보다 시작 지점이 너무 많은데, 추천할 곳 있어?”
-공략 사이트 보면 알겠지만, 초보자한테는 덩글랜드 왕국이나 에랑스 왕국이 좋아.
“질문을 잘못했군. 초보자한테 좋은 곳 말고, 절대 비추천하는 곳은?”
-그거야 잘츠 왕국인데……. 야, 너 시작부터 그 짓 하게? 진짜 하지 마! 잘츠 왕국은 진짜 개고생이라고! 일단 궤도 좀 타고 그 짓 해!
[귓속말이 끊겼습니다.]
“시작 지점은, 잘츠 왕국이다.”
[잘츠 왕국의 시작 지점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 *
공략 사이트, 판타지 온라인 2 매니아는 오늘도 활발했다. 전 세계에서 억대가 넘는 사람들이 접속하니 그만큼 이용자도 많았던 것이다.
-초보자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잘츠 왕국 골랐어요. 어떡하죠?
투데이 베스트에 오른 글이었다. 밑에 달린 답변은 친절했다.
-저레벨 구간에는 죽어도 페널티가 없으니, 어떻게든 죽거나 퀘스트 깨면서 레벨 10만 만드세요. 그럼 거기서도 일반 직업으로 전직이 가능한데,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마차 모는 NPC한테 사정사정해서 다른 왕국으로 가시면 됩니다. NPC는 친밀도나 돈으로 해결 가능한 거 아시죠?
베스트 답변이었다.
그 밑에는 순진무구한 초보자들의 질문이 달려 있었다.
-잘츠 왕국은 왜 안 돼요?
-왕국이 다양한데, 잘츠 왕국은 직업 시설이나 그런 게 좀 많이 후져요. 굳이 거기 가서 개고생할 이유가 없어요.
-게다가 잘츠 왕국 시작 지점은 도시 주변이 아니라 산골 마을이거든요? 도시라고는 하는데 솔직히 산골 마을이에요. 도움은 조금도 안 되는데 주변 몬스터는 더럽게 세요. 그 주변 토끼는 이단 옆차기를 한다니까요?
-윗분 뻥이 좀 심하시네. 어떻게 토끼가 이단 옆차기를 해?
-못 믿겠으면 잘츠 왕국에서 만들어보던가! 거기서 해보지도 않은 놈이 뭐라는 거야!
* * *
“오. 이런 느낌인가?”
태현은 생각보다 확실한 느낌에 감탄했다. 이 정도면 현실에 가까웠다. 이전 가상현실과는 차원이 다른 정교함이었다.
주먹을 쥐었다가 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좀 작고, 사람이 적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시설도 전체적으로 안 좋은 느낌에다가, 주변은 산으로 시야가 막혀 있었다.
거기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그들이 잘못 골랐다는 걸 뒤늦게 안 사람들이었다.
“아주 좋아. 아주 좋아.”
태현은 도전 욕구가 샘솟는 걸 느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맛이 있지!
<초보자 퀘스트-사냥꾼 어거스트를 찾아가라>
사냥꾼 어거스트는 사나워 보이지만 친절한 사내다. 그를 찾아가면 초보 모험가가 가져야 할 기초적인 것들을 알려주리라.
보상:1골드.
“……?”
신기한 표정으로 퀘스트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태현은 창을 꺼버렸다.
“튜토리얼? 왜 해?”
어차피 기본 장비는 아이템란에 장비되어 있었다. 초보자용 기본 장비였다.
‘캐릭터창 확인하고 바로 사냥 간다.’
캐릭터창이 떠올랐다.
레벨 : 1
직업 : 백수
HP(체력) : 100
MP(마력) : 100
힘 : 10
민첩 : 10
체력 : 10
지혜 : 10
행운 : 10
보너스 스탯 : 0
‘흠. 정말 초보자스러운 스탯이군.’
게다가 직업 : 백수가 왠지 신경 쓰였다. 보통 직업 : 없음으로 표현하지 않나? 왜 하필 거슬리게 백수란 말인가.
‘빨리 전직하란 건가?’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백수의 초라한 장검: 내구력 10/10. 공격력 5.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모험가의 검이다. 들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
아무리 생각해도 제작진의 악의가 느껴졌다.
“뭐…… 상관없지.”
태현은 도시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정문이라고 해봤자 웅장한 성벽 대신 목책이 있을 뿐이었다.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도 뭔가 게을러 보였다.
이런 마을 근처에는 언제나 초보자용 몬스터가 있었다.
‘잡아서 레벨 업 좀 하고, 어떻게 키울지 고민 좀 해봐야지.’
어떻게 키워야 가장 변태 같다고 소문이 날까?
태현은 그렇게 고민하며 걸어갔다.
정문 밖, 풀밭에는 토끼들이 뛰놀고 있었다. 태현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초보자용 몬스터로 매번 토끼가 나오는 것도 좀 안일한 것 같은데.”
혼잣말과 함께 태현은 토끼에게 달려들었다. 무게중심이 적절하게 실린 공격이 토끼에게 들어갔다.
퍽!
그리고 토끼가 반격했다.
이단 옆차기로.
퍽!
“?!?!”
피가 절반이나 깎였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토끼가 앙증맞은 주먹을 들어서 태현을 향해 휘둘렀다.
태현은 급하게 피했다. 아무리 당황했어도 컨트롤은 어디 가지 않았다.
‘이게 뭔 토끼야!?’
펀치에 킥. 수준급 격투가나 보여주는 동작을 도시 앞 토끼가 보여주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토끼는 공격을 맞았는데도 멀쩡한 기색.
태현은 다시 웃었다.
“그래. 이래야 재밌지! 덤벼라! 으하하!”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은 하품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새로 온 모험가 중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런 모험가는 또 처음이었다.
토끼와 싸우면서 유쾌하게 웃는 놈이라니.
“좋은 싸움이었다.”
태현은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토끼를 내려다보았다. 개인적으로 20위권에 있던 도적 랭커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오. 벌써? 토끼 한 마리 잡았다고?”
레벨 : 2
직업 : 백수
HP(체력) : 110
MP(마력) : 110
힘 : 10
민첩 : 10
체력 : 10
지혜 : 10
행운 : 10
보너스 스탯 : 5
“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 보너스 스탯은 초보자 전용이었지?’
직업을 고르고 나면 레벨 업 할 경우 그 직업에 맞게 스탯이 성장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업 전에는 스스로가 스탯을 배분해야 했다. 원하는 직업에 맞춰서.
대부분 빠르면 10 미만, 늦어도 20 미만에서 직업을 가졌다.
일반 직업보다 더 좋은 희귀 직업이나 영웅 직업을 찾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찾기도 힘들었고, 공유도 되지 않았다. 발견되지 않는 걸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운 좋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당히 타협을 했다.
“이럴 때는 역시 상윤이한테 물어봐야지.”
-너 한 번만 더 멋대로 귓속말 끊어버리면 차단할 거다.
가장 먼저 들려온 건 친구의 진지한 협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