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열 번째 생일파티 - 실비아 편(1)
내가 열 살이 된 오늘은, 나의 열 번째 생일이다.
“생일 축하해! 우리 아기!”
“…어머니. 제겐 ‘실비아’라는 예쁜 이름이 있습니다만.”
내 어머니는 열 살이나 된 딸에게 아직도 우리 아기, 공주님, 이런 오글거리는 단어로 부르신다. 부끄러운 건 왜 내 몫인지. 아카데미 초등부에 다니는 내 친구들 중 누구도 집에서 그렇게 불리는 애들은 없단 말이다.
“넌 언제나 내게는 아기야.”
아직 소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젊고 아름다운 내 어머니. 햇살을 받는 푸르른 나뭇잎처럼 깨끗하고 말간 초록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해사하게 웃는다. 그 미소에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있다.
‘제발 밖에서만큼은 아기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딱딱한 얼굴로 어머니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아버지가 아무 감흥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어머니의 말에 동조했다.
“네 어머니가 좋다고 하니 포기해라.”
덕분에 어머니의 얼굴에 더 화사한 웃음이 가득 들어찬다. 두 분 사이가 좋은 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아버지는 정말 어머니의 노예가 되기로 작정하셨나 보다. 부럽기도 하고, 저렇게 뜨거운 애정을 발산하는 두 분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지금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아카데미에 가지 않았다. 나를 아카데미에 보내면서 기숙사에 들이지 말자는 아버지 때문에 우리 세 식구는 현재 마세티앙 제국에서 머물고 있다. 생일을 맞이해 식당 테이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가득 채우고, 내 바로 앞에는 2단짜리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케이크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을 만큼 과한 어머니의 애정이 녹아있다.
딸기로 큰 하트를 수놓고 그 위로 초코 시럽을 뿌려 ‘우리 아기 생일’이라고 적혀있는데. 아, 좀 제발!
어머니가 나를 자꾸 아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 이름이 결정된 것이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썩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어서 무려 5년을 아기라고 부르기만 했다고.
대체 무슨 이름 하나 짓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5년을 썩힌단 말인가.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는데, 하마터면 내 이름이 ‘크림’이라고 지어질 뻔했다고. 그건 천만다행이었다. 아버지의 이름 짓는 센스는 정말… 누가 사천 살 먹은 블랙 드래곤 아니랄까 봐.
“실비아.”
낯부끄러운 케이크를 빤히 내려다보며 코를 훌쩍이는데,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른다. 어쩐지 목소리가 작정하고 혼내려는 듯 낮게 깔려있었다.
설마, 아카데미에서 사용한 마력 때문에 경고장이 날라 온 건가.
“네, 아버지?”
“아카데미에서 통고서가 왔다. 아카데미 내에서 마력을 사용하여 기물을 파손했다고 벌점이 부과되었다는 것만 벌써 세 번째인 것 같은데.”
역시. 자잘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지만, 이번에는 좀 큰 사건이라서 학과장님께서도 묵과할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이건 하나를 풀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야 해서 골치 아픈데.
“파이. 오늘은 생일이잖아. 생일 때 그러면 안 돼. 나중에 해야지.”
“아카데미에서 보내온 날짜가 오늘이니까 물어보는 것뿐이다. 묻는 것도 안 되는 건가?”
“지금 파이 목소리가 그냥 묻기만 하는 거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게다가 오늘이 생일인데 반성의 방으로 들어가게 하면 슬프잖아?”
반성의 방. 창고처럼 사방이 벽인 작은 방인데, 아버지 마력으로 모든 소리를 차단해 놓은 곳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심지어 내가 말하는데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그곳에 오래 갇혀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아서 너무 싫은 곳이지.
지금까지 딱 두 번 들어가 봤다. 아카데미에서 그 통고서가 날아올 때마다. 어머니는 워낙 온화한 편이라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설득해서 완만한 해결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봤던 내 친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잘생겼는데 너무 무섭다고. 그 살벌한 눈빛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우리 어머니가 참 대단하시단다. 그건 나도 인정. 그 어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저 눈빛을 보고도 쫄지 않는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생일이 뭐 대수라고. 매년 똑같이 치르는 파티 따위… 윽!”
콧방귀를 뀌는 아버지가 갑자기 움찔거리며 입을 다문다. 그러더니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어머니를 노려보는데, 그런 아버지를 향해 윙크를 날리는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는다. 아마 테이블 아래에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의 압박이 있었으리라.
“자, 우선은 케이크부터 자를까? 그 뒤에 선물 증정식을 하고!”
어머니가 재촉해서 다시 케이크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유명한 디저트 가게의 사장인 어머니 제빵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가끔 간식으로 먹으라고 빵을 만들어 주시면 친구들이 달려들어서 나는 겨우 맛만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어머니가 해주신 빵이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먹지 않아도 배부른 기분이기도 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나이프로 케이크를 잘랐다. 나이프 무게도 꽤 되고 손놀림이 서툴러서 케이크가 망가질까 봐 조심조심. 그러나 부드러운 케이크를 적당히 잘라 그릇으로 옮기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앗, 안 돼!’
세모로 자른 케이크를 나이프로 떠서 옮기다가 케이크가 힘없이 떨어지려고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사용해 케이크를 공중에 둥둥 띄워 그릇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에휴, 또 혼나겠네.’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의 마력을 타고 난 터라 운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마력을 사용하면 생활이 엄청 편해지는 걸 알아서 자주 사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평범한 인간처럼 살길 바라셔서 실수를 하더라도 마력을 사용하지 않길 바라셨다.
하지만 이미 아카데미에는 내가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전부 퍼져버렸지. 처음 통고서가 저택에 도착했을 때, 두 부모님의 실망이 역력한 표정에 잔뜩 기죽기도 했다.
나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두 분의 눈치를 재빨리 살폈다. 아버지는 고개를 슬쩍 돌린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머니는 미소가 온데간데없어진 채로 조금 울적한 표정을 지으셨다.
“…죄송해요.”
아버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저런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미안해졌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 식당에는 창문 밖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새소리로 가득 메워진다. 화창한 햇살이 드리워지는 밝은 식당과 어울리지 않게 숨 막히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우리 예쁜 공주님의 능력이 나날이 늘어가는구나. 네 아버지가 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지, 그 이유를 잊은 건 아니지?”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는 힘이라. 제어가 가능해질 때까지는 가능한 사용하지 말라고…….”
“그래.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니까. 만약 그 힘으로 누군가 다치게 되면… 나는 네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끔찍해. 아버지가 그랬지? 네 힘이 자신의 마력과 거의 비등하다고.”
폭주하면 이깟 제국쯤은 가볍게 소멸시킬 대단한 능력을 가진 드래곤. 워낙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란지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만약의 일은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하셨다.
“케이크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실망하지 않았을 거야. 너도 최대한 조심하려고 했던 거였으나 실수였을 뿐. 그런데 왜 위험을 감수하고 마력을 사용한 건지, 말해줄 수 있니?”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신 소중한 케이크를 먹지 못하게 되는 건 싫었어요. 망가지는 것도 싫었고요.”
초코시럽으로 적힌 글귀는 싫었지만, 케이크는 누가 봐도 맛있어 보였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심혈을 기울여서 열심히 만들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테이블 따위에게 소중한 케이크 한 조각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여간 우리 공주는 말도 잘해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더 화낼 수가 없잖니.”
어머니는 그저 좋다는 듯 붉어진 뺨을 손으로 감싸 쥐며 몸을 배배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도 어머니가 그저 귀여운지 설핏 웃다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눈동자를 휘릭 굴려 나를 보길래, 나는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말이 나온 김에 묻지. 아카데미에서 네가 사용한 마력 덕분에 건물 1층의 창문 스무 개가 깨지고 강의실 다섯 곳의 벽이 부서졌다던데.”
그렇게 많이 부서졌었나? 그럼 통고서가 날아오고도 남았을 것 같다. 워낙 정신없던 일인지라 내게는 친구의 안위만 중요했거든.
“그 정도면 묵과할 수 없는 사고나 다름없지. 그 깨진 유리창에 누군가 다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인명피해가 일어났다면 퇴학감이다. 그걸 모르고 사용했나?”
“…아니요.”
“그럼 퇴학을 결심하고 일부러?”
“…아니요!”
하여간 저 아버지는 가끔 얄미울 때가 있다. 괜히 사람 속을 긁어놓으며 넌지시 속을 떠보는데, 가끔은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리곤 했다. 두 분 다 훈육할 때에 큰소리를 내는 성향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면 내일, 반성의 방에 들어갈 각오하고.”
나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뱉은 말을 절대 번복하지 않으신다. 예외로는 어머니에 관한 거지,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걸 보면 내게 그렇게 차가운 분은 아니시기도 하고.
오래 전에 아버지가 블랑 제국의 황제 폐하께 하는 거 보고 절대 대들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거든.
‘어쩌지? 뭐라고 설명하지? 다 털어놔 버려? 하지만 이건 친구의 개인적인 비밀인데.’
친구들 중 한 명이 사귀는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남자애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차버려서 홧김에 일을 저질렀던 거다. 감히 내 친구를 울린 그 못된 놈을 혼내준다고 공중에 둥둥 띄워서 거꾸로 매달아 놓았었다. 그러다가 그 못된 놈이 나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그랬지.
[작위도 없는 졸부주제에! 가, 감히 나를 괴롭히다니! 지옥에나 떨어져라!]
다른 것보다 졸부라고 우리 부모님과 나를 비하한 것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나서 욱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이 전부 난장판으로 변했다.
만약 그 사실을 전부 털어놓으면, 착한 우리 어머니는 상처받을 거고, 아버지는 그놈을 가만두지 않겠지.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는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맞는데.
“실비아.”
아버지의 재촉에 나는 두 눈을 꾹 감고 일단 내가 전부 뒤집어쓰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마음에 둔 남자애가 있는데…….”
“어떤 놈이지?!”
그랬는데 설명을 다 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심각하게 나를 본다. 게다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에 나는 물론이고 어머니도 깜짝 놀랐다.
“…네?”
“어떤 놈이냐고 물었다. 네가 마음에 뒀다던 그놈.”
…말하면 당장 찾아가 물고를 내겠다는 느낌이다. 아니,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도 아닌데. 솔직하게 털어놔도 죽겠고, 거짓말을 해도 제 명에 못 살 위기에 밀어 넣었네. 본의 아니게.
빨리 대답하라는 아버지의 선홍빛 눈동자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웬만해서는 무서워하는 게 별로 없는데. 이럴 때마다 왜 아버지가 파괴의 대명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그,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는 직접 확인을 해봐야 살려둘지 죽일지 판단하겠다.”
내가 마음에 뒀다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다니. 누군지 몰라도 내 미래의 배우자가 될 남자는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끝난 사이에요. 다시는 절대 마음 둘 일 없는 놈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튼 그건… 그 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서 더 말씀드릴 건 없어요.”
“학과장에게 전해 듣기로는 누군가 네게 졸부라고 비아냥거렸다던데.”
…뭐야? 다 알고 물어본 거야, 그럼?
괜히 속였나 싶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학과장님 귀에 들어갔으면 벌써 소문이 다 퍼졌다는 건데.
“왜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지?”
“…….”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화가 났다고 얘기했으면 이해했을 거다. 나 역시 그런 폭언을 한 녀석을 잡아다가 죽이고 싶은…….”
“파이.”
어머니가 단호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애칭을 부르자, 아버지가 입을 다물고 목을 가다듬는다. 저 장면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그렇게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아버지가,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인간 여자인 어머니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모습.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한 아버지는 남편으로서 딱 좋은 타입이라고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른다. 나는 딱히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