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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126화 (126/132)

# 126화

“강아지라도 키울까 싶어서. 어릴 때부터 여러 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잖아.”

“그럼 사용인을 더 늘려야 할걸요? 내가 혼자 감당할 수가 없는걸? 그리고 동물들이 힘들어할 거예요.”

“왜지?”

“저번에 블랑이가 그랬거든요. 나한테 드래곤의 냄새가 배어있어서 그 어떤 동물들도 가까이 오지 못할 거라고.”

아. 또 그런 사연이 있었나. 동물은 안 되겠군.

“그럼 입양은 어때?”

“…생각 안 해봤는데. 아니, 이 남자가 갑자기 오늘따라 왜 아기 타령이래? 혹시 뭐, 나 몰래 어디서 애라도 만들어놨어요?”

수상하다는 듯 가자미눈을 하는 치즈가 의심을 한가득 담아 나를 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투덜거리면서.

“그럴 리가. 네가 레이라를 부러워하는 것 같아서 해본 말이다. 나는 치즈 너만으로도 족하지만, 너는 아닌 것 같아서.”

“파이도 아이를 원해요?”

“네가 원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아이가 좋다고 하면 보육원이라도 차려줄 수 있다.”

그러자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긴 치즈는 그 이후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내 의견을 말해놨으니 생각이 정리되면 내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겠지. 그래서 나는 저놈의 눈치 없는 태양이 빨리 산등성이 아래로 꺼져주길 바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석양빛에 붉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식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치즈를 품에 안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치즈는 꼭 정사를 치르기 전에 목욕을 해야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절대 가슴도 못 만지게 하니까. 해가 질 때쯤 목욕을 시작하면 밤이 금방 찾아온다.

“오늘은 무슨 입욕제를 넣을까?”

“사과 향? 아니다, 어제 라벤더 입욕제 새로 산 거 있죠? 그거 넣을까요?”

“그래.”

자연스럽게 목욕 준비를 하고 탈의를 해서 욕조에 함께 들어갔다. 치즈와 서로 껴안은 자세로 몸을 담그는 것도 익숙했다. 두 다리를 내 허리에 감아서는 가슴팍에 뺨을 기대고 완전히 밀착한 치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거품으로 손장난을 친다. 그럼 나는 불끈거리는 하체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치즈의 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문질러주었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거품을 가지고 놀던 치즈가 손가락으로 내 가슴팍을 살살 간질이며 말을 꺼낸다. 그 미약한 자극에 하체가 격렬한 반응을 보여서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말해.”

“나를 낳아줬다는 부모님이요. 저번에 프리센 왕궁에서 그랬잖아요. 내 어머니의 머리카락 색이 고동색이었고, 아버지는 나와 같은 색이었다고.”

“…그랬지. 그건 갑자기 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 부모님을 본 사람이 파이가 유일하니까요. 나… 우리 아버지랑 닮았어요? 아니면 어머니하고?”

어렸을 때 왜 자기는 부모님이 없냐고 물어본 이후로 두 번째다. 치즈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건.

나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피투성이여서 확실하진 않지만… 너를 내게 부탁할 때의 그 애절한 표정은 너와 흡사해.”

“그렇구나. 보통 딸은 아버지 닮는다는데. 역시 어머니의 유전이 강했나 봐요. 만약에 우리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파이를 닮을 것 같아. 드래곤의 피니 어련하겠어요?”

“그럼 곤란한데.”

오늘따라 치즈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마치 암묵적인 규칙이라는 듯 지금껏 꺼내지 않았던 말들을 다 하고. 서로 혼인한 사이이니 비밀이 없길 바라는 걸까.

아무래도 이야기를 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나는 지금까지 숨겼던 뒷이야기를 꺼냈다.

“이십 년 전에 내가 봤던 너의 부모님은 내가 말한 그대로의 모습이었어. 하지만 네 어머니마저 숨이 끊어진 이후, 두 사람에게 걸려있던 마력이 풀어지더군.”

“…마력?”

처음 듣는 이야기에 치즈가 놀라서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생생하게 떠올리며 확신을 담아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왕궁을 도망쳐 나왔으니 신분을 숨겨야 했을 테고, 그래서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마법 약을 마신 것 같았다. 일정 기간 유지되는 약이었으나 심장이 멈추었으니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겠지.”

프리센 국왕이 물어봤던 그 날, 그 말을 꺼내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치즈를 빼앗기기 싫었기 때문에. 하지만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 그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평생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치즈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내 심장이 반응을 해버렸다. 아마도 레이라의 아기를 보고 난 뒤에 치즈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생겼던 모양이다.

“네가 프리센 왕족의 혈육이라는 건 장담할 수 없어. 다만 내가 본 사실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아서.”

“…왜 그때 말해주지 않았어요?”

“너를 보내기 싫어서. 말하면 프리센 국왕이 네게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왕녀가 사랑의 도피를 한 이유는, 타국의 후궁으로 팔려가기 싫어서라고 했다.”“후궁…….”

상황을 이해한 치즈가 알만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다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치즈가 뺨을 비비며 기분 좋게 웃었다.

“고마워요. 이제라도 말해줘서. 내가 왕족이든 뭐든 중요하진 않죠. 지금 파이하고 혼인한 현재가, 내가 드래곤의 신부라는 사실만이 중요하니까.”

“네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말하지 않았겠지. 굳이 떠올리려던 건 아니었으니.”

사랑스러운 내 여자가 두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싸서 끌어안는다. 말랑한 가슴이, 보드라운 살결이 내게 밀착되는 그 느낌이 좋았다. 물기에 젖은 피부가 서로 들러붙는 그 감촉이…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방금 치즈에게 미움 받을 행동을 할 뻔했어. 조심해야지.

“너무 오래 담그고 있어도 피부에 좋지 않다. 마사지해야지?”

“응.”

정성스레 머리를 감겨주고 두피마사지를 해준 뒤, 몸도 전부 닦고 목욕을 마쳤다. 그리고 머리카락의 물기를 다 말리고 나서 피부 보호제를 발라주었다.

“파이, 잠깐 먼저 나가 있어요.”

“왜?”

“오늘 잠옷은 내가 골라서 입을 거니까. 어서 나가요! 빨리!”

내 등을 떠밀어서 밖으로 내보낸 치즈가 다시 드레스 룸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어차피 혼인하고 나서는 잠옷을 입고 잔 적이 없건만.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얌전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부스럭거리는 드레스 룸 입구만 빤히 지켜봤다.

옷을 입기는 입는 것 같은데. 설마, 오늘은 그냥 잠만 자겠다는 뜻인가? 아직 달거리 날이 오지 않았건만. 정말 그런 생각이면 오늘도 밤새우겠군.

초조함이 극에 달해 손가락과 발가락이 제멋대로 움찔거린다. 만약 치즈가 그냥 누워서 별이나 보자고 하면, 이 성난 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런 경우가 예전부터 종종 있었으니까.

“잘 기다리고 있었어요?”

곧 드레스 룸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 치즈가 해사하게 웃는다.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려 핀으로 꽂아 고정해 놓았는데, 스스로 해본 적이 드물다 보니 엉성했다. 아마 저 머리를 정리하려고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았다.

왜 머리를 틀어 올렸나 궁금해하던 차. 쑥스러워하면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치즈의 옷차림에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이거, 혼인식 날에 리브엘이 던져놓고 간 선물이래요. 다른 뜻은 없고… 찢어져도 아깝지 않은 거라서 입어봤는데, 어때요?”

한쪽 팔은 허리에 얹고 삐딱하게 선 치즈가 반대 손으로 입술을 가볍게 훑는다. 일부러 나를 유혹하려는 듯 눈빛이 야릇하다.

문제는 그 자세를 더 음란하게 만드는 옷이었다. 그건 피부를 조금도 가려주지 않는 얇은 레이스 캐미솔이었다. 옷의 기능 따위를 무시해버린 디자인으로, 엉덩이가 다 드러날 만큼 짧았다.

백금색 음모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길이에 마른 침이 절로 삼켜진다. 가슴 부분이 은은하게 비치는 레이스로 되어있어서 진분홍빛의 정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 흡혈귀 새끼가 그걸 줬다고?”

“누가 줬는지에 대한 건 별로 상관없는데. 우리 신혼여행 가서 첫날밤에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잖아요. 얼떨결에 생각지도 못한 여행이어서 준비 하나 없이 갔던 게 좀 후회되더라고요.”

느릿하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다가오는 치즈가 내 앞에서 뒤태를 보여주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든다. 순간 얼굴과 하체에 피가 쏠려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상대가 치즈여서 더, 심장이 엉망진창으로 뛰어댔다.

그저 어리기만 한 아이였는데. 혼인한 이후부터는 활짝 피어난 꽃처럼 향기롭고 우아한 자태를 머금었다. 게다가 요염한 표정도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저러니 밖에 내놓기가 무섭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내 여자에게 함부로 손댈까 봐.

“나 어때요?”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당겼다. 치즈도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나와 마주 본 자세로 허벅지에 자연스럽게 앉는다.

“날 유혹하는 거라면 성공이니 그만해도 돼. 더 했다가는… 해가 뜰 때까지 재워주지 않을 거다.”

“뭐, 밤일로 누가 이기나 시합하는 건 이제 포기했어요. 어차피 내가 질 게 뻔해서. 하지만 오늘은… 밤새 잠들고 싶지 않네요?”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어 휘는 치즈가 초록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온다. 그리고 입을 맞춰 키스를 해왔고, 숨이 넘어갈 만큼 격렬한 키스를 퍼부으며 그녀를 침대위에 조심히 눕혀두었다.

“응, 응… 흐…….”

당장에라도 잔뜩 성이 나서 불끈거리는 놈으로 그녀를 꿰뚫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내 이성과 몸은 이미 그녀에게 길들여진 채다.

치즈는 이성을 다잡을 수 없을 만큼 애무로 지치게 만들어놔야 자신의 안을 허락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해서. 발로 찰 기운이 남아있을 때 시도하면 또 며칠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버리니 어쩔 수 없다. 참는 수밖에.

그녀의 옆구리를 쓸어 올리려다가 손가락에 캐미솔이 걸린다. 순간 그 옷을 준 장본인이 떠올라 짜증이 났다. 그 얍삽한 흡혈귀 새끼가 치즈에게 했던 그 모든 일은, 그놈의 숨통이 끊어져 전부 불태워 없애버릴 때까지 잊지 않을 테다.

“파이…….”

“왜.”

“오늘은 그냥, 하아… 그냥 해요. 나 빨리… 넣어줘.”

그녀의 목덜미를 핥고 빨아내다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이미 발갛게 달아오른 치즈의 뺨도 그렇고 눈동자가 잔뜩 풀린 채다. 고작 키스밖에 하지 않았는데.

“아프다며.”

“오늘은 파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다 허락할게. 그러니까 빨리… 응?”

갑자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재촉하는지 모르겠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망설였으나, 치즈가 손으로 내 단단한 살덩이를 잡고는 자신의 입구에 귀두를 비벼댔다.

“큭.”

“으응……. 아응, 아!”

언제부터 흥분했는지 이미 음부 전체가 애액에 축축이 젖어있다. 밀착한 귀두 끝이 늘 들어갔던 곳을 기억하는지 그 질구 안으로 쑥 밀려 들어갔다. 순간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서로의 속살이 진득하게 맞붙어 나를 집어삼키는 그 감각은 나를 미치게 만든다.

천천히, 라는 건 이미 내 본능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치즈 역시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그저 내게 온몸을 맡기고 쾌락을 즐겼다.

여전히 비좁긴 하다. 나를 힘껏 죄는 그녀의 속살에 숨이 턱턱 막힌다. 깊숙이 들어가면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들러붙는 자극이 그저 사랑스럽다. 내 움직임에 격정적으로 흔들리는 유려한 그녀의 나체가, 환한 달빛에 물들어 신비롭게 반짝거린다.

“아, 앙! 읏… 으흑.”

“참지 말고.”

“아아, 앗, 하악……!”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접합부가 질퍽해졌다. 능숙하게 허리를 움직이다가 단단한 살덩이를 안에 전부 밀어 넣고 멈췄다. 예쁜 신음을 가느다랗게 흘리며 두 눈을 꾹 감고 있는 치즈를 빤히 내려다봤다.

“벌써 지치면, 곤란한데. 아침까지 놔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알면 좀, 적당히 천천히 하면… 되잖아. 이 짐승! 하여간, 힘만 세서!”

방금 전에는 마음대로 하라더니. 또 도끼눈을 뜨고 나를 흘겨보는 치즈의 눈가가 촉촉하다. 이런 반응도 그저 예뻐서 정말 큰일이다. 처음부터 너무 밀어붙였나 싶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노력하지.”

치즈의 투덜거림은 그 이후로도 몇 차례나 계속되었다. 살살 달래다가도 울리고 또 사과하고.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랐던 그 관계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든 치즈에 의해서 아쉽게 끝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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