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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122화 (122/132)

# 122화

턱 아래까지 숨이 찼다. 아랫배로 기어들어오는 전율이 거대한 불덩이를 생성해내서 내 자궁을 전부 태워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강렬한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훌쩍거리며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 못된 드래곤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이러다가 내 숨이 끊어질 것 같다.

“파이… 좀! 그만… 그만하라고!”

우렁찬 비명을 내질렀더니 그제야 내 하체에서 입술을 떼어내고 손가락도 빼낸다.

‘하아, 후… 살았어.’

빙글빙글 돌던 머리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갔다. 열심히 숨을 고르며 터질 듯 뛰던 심장을 잠재우는데 파이가 피식 웃는다.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군. 아쉬워.”

그것도 마치 내 탓이라는 듯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오늘따라 엄살이 심한데?”

손가락으로 내 벌어진 밀부를 길게 훑어 올렸다.

“아윽, 흐…….”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끈적한 애액이 잔뜩 흘러나온 채다. 미끈하고 찐득한 액이 꽃잎에 비벼지면서 찌걱거리는 야한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이미 한번 크게 달아올랐던 터라 그의 손가락에 문질러지는 하체가 녹아내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여전히 내 정신을 좀먹는 대단히 음란한 향기야. 당장 넣어서 너를 완전히 느끼고 싶을 정도로.”

“…얼굴하고 어울리지 않는 야한 말 좀 그만해요. 표정은 꼭 돌덩이 같으면서 말은…. 아, 으응…, 진짜… 못됐어!”

눈을 감은 채로 그가 전해주는 기분 좋은 쾌감을 느끼면서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단단하고 굵직한 손가락 세 개가 질 안으로 깊숙이 밀려 들어와 이를 악물었다.

“아, 흐!”

능숙하고 부드럽게 깊숙한 속살까지 손끝으로 살살 긁으며 출납을 이어갔다. 일부러 손목을 빙글빙글 돌려서 예민한 내벽의 감각을 더 일깨워주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차오르는 쾌락의 기운을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솟구치는 열기에 잠식되어 점점 고양되는 흥분을 주체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주 공들여서 섬세하게 내 몸과 신경을 헤집어대는 파이가 상체를 숙여와 내 입술을 가볍게 맞춰왔다.

“그럼 이제, 내 귀여운 치즈가 내 것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식사시간을 시작하지.”

다급히 손가락을 빼내는 그가 내 허벅지를 잡아서 활짝 열어놓았다. 뻐끔거리는 밀부가 너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것 같아 민망스럽던 찰나.

“들어갈게. 반갑게 맞이해주었으면 해.”

즐거운 듯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린 파이가 자신의 우람한 살덩이를 내 입구에 끼워 맞춘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 것을 거침없이 밀어 넣었다.

“……! 아, 아파……!”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의 것이 겨우 손가락 한두 마디 들어섰을 뿐인데 아프다. 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억지로 벌어지는 둔통에 이를 악물며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의 팔뚝을 덥석 잡았다.

원래도 버거운 크기이긴 했다. 좁아터진 안을 가득 채워오면서 느릿하게 긁어내리는 자극도 엄청났다. 통증을 동반한 견디기 힘든 쾌감이 온몸을 할퀴고 지나간다.

“자비 없이 물어대는군.”

파이도 견디기 힘들다는 듯 호흡을 헐떡거렸다. 대답도 할 수 없어서 그저 입을 꾹 다물고 하체를 열어보려 노력했다. 빨리 서로의 몸이 하나가 되고 싶었다.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외로움에 몸을 떨던 지난 반년간의 시간을 그로 채우고 싶었다.

“아흑, 빨리요……!”

“안 돼. 그러다가 네가 다쳐.”

“괜찮, 다니까… 아!”

단단한 살덩이가 좁은 균열을 활짝 열고 미끈하게 진입해온다. 그의 것이 절반이나 쑥 들어와 순간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숨은 쉬어야지, 치즈.”

잠깐 호흡하는 방법을 잊은 것 같았다. 이성이 가루가 되어 머릿속에 먼지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심장이 한껏 오그라들어 콩알만큼 작아졌다가 다시 터지듯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그건 폐가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그거 봐라. 네가 힘들어할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 재촉하지 말고, 일단 몸에 힘을 빼봐.”

“…흑, 키스해줘요.”

그가 바로 상체를 숙여와 내 젖가슴을 잡아 쥐며 입술을 맞춰온다. 반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허리를 유연하게 움직여 조금 속도를 내어 출납했다. 뜨거운 기둥이 한껏 흥분에 점철된 내벽을 느릿하게 문지른다.

“응, 흣, 하으응…….”

점점 더 예민해지는 하체에 불이 붙는 것 같다.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쾌감이 얄궂기만 하다.

부드러운 키스였다. 말랑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유두를 가볍게 애무하는 손길도 섬세했다. 그러나 그의 열기둥이 전해주는 감각만큼은 너무도 거칠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굵직한 그의 것에 맞춰 벌어진 내벽은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그 살덩이가 끊임없이 안으로 밀려 들어올 때마다 그의 존재감이 너무도 확실하게 느껴졌다.

“내가 꽤 그리웠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울 리가 없으니.”

“누가, 먹었다고…….”

“직접 봐.”

내 안에 살덩이를 깊숙이 밀어 넣고 멈춘 그가 내 등을 조금 일으켜 세운다. 몸에 힘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아서 축 늘어진 상태로 초점을 맞췄다.

“보여? 네가 지금 나를 이렇게…….”

붉게 달아오른 여성지를 한껏 벌리고 안에 들어선 우람한 그것. 그가 허리를 뒤로 물리자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된 내벽이 딸려 나갔다. 잔뜩 젖어서 번들거리는 기둥이 드러나고, 다시 한번 천천히 내 안으로 진입한다.

“아읏……!”

“이렇게 향기로운 향기를 흘리면서 나를 집어삼키잖아.”

자궁이 위로 밀려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미 쾌감에 잠식된 시야는 순식간에 제 기능을 상실했다. 집어삼킨다는 말은 그에게 더 어울린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그 살덩이가 내게 주는 쾌락이 더 대단하다고.

유연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그가 조금씩 더 안쪽으로 깊이 들어온다. 곧 질척한 소리가 조금씩 잦아지면서 서로의 하체가 맞부딪히던 순간. 그 기둥의 끝이 내 자궁을 덮쳤다. 순간 아랫배에서 커다란 열기가 터지듯 급격하게 퍼져 허리가 절로 휘어졌다.

“하악! 하으으…….”

뜨겁게 달아오른 눈꺼풀을 파르르 떨린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답삭 잡아챘다. 그럴 때마다 나와 밀착된 그의 남성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져서 덩달아 함께 놀랐다.

‘아아…, 기분 좋아.’

나를 가득 채워준 그가 너무 사랑스럽다. 지난 시간 너무도 애타게 그렸던 그와의 관계다. 어쩐지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내 눈가에 흐르는 물줄기를 파이가 혀로 핥아주며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앞으로 평생 이렇게 함께하자. 다시는 내게 작별을 고하지 마. 만일 네가 놓아 달라 애원해도 나는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응. 나도… 마찬가지야.”

떨어져 있는 내내 오직 파이 생각뿐이었다. 그가 보고 싶었고, 그에게 지금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집요하게 나를 따르는 그의 눈동자도, 손길도, 달콤한 키스도 오로지 내 것이길 바랐다.

그래서 그렇게 혼인을 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렸다. 늘 거절하는 그의 상처를 알아주지 못하고 내 마음만 모른다고 떼를 썼다. 그것을 레이라와 에이든이 서로 배려하고 보듬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알았다. 지금껏 내가 파이를 배려해준 적이 없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제 해도 되지?”

그새 내 목덜미와 어깨에 붉은 자국들을 한가득 남긴 파이가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묻는다. 물어보면서 할 거면 차라리 묻질 말라고!

“으읏.”

뻐근하게 벌어지는 질구가 아릿했다. 묵직하게 출납하는 거대한 남성이 불끈거릴 때마다 나도 움찔거렸다. 비좁은 안을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면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또 빠르게 쑥 빠져나가면서 한껏 뜨거워진 내벽을 시원하게 긁어내렸다.

서로의 속살이 이어지는 곳에서 끈적한 액이 꿀처럼 진득하게 흘러내린다. 그의 움직임이 조금씩 더 빨라질 때마다 엉덩이와 소파를 잔뜩 적실 정도로 뚝뚝 떨어졌다.

“으… 침대로, 가…. 아앙, 파이…….”

널찍한 침대가 아닌 좁은 소파에서 위태롭게 매달린 자세가 불편했다. 달아오른 꼬챙이가 내 몸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미끄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파이는 내 목덜미를 다시 쪽 빨아내면서 작게 웃기만 한다.

“왜? 잘 느끼는데. 아래를 얼마나 조이는지, 나를 얼마나 물어대는지 느껴져?”

“흑,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또 여길 만져주면 더 좋아하잖아.”

하여간 이 드래곤도 흥분만 하면 돌변해서 문제다. 거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손가락으로 발갛게 충혈된 음핵을 가볍게 문질러온다.

“아아… 아, 안 돼……!”

그의 손가락에 단단해진 작은 돌기에서 욱신거리는 전율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순간 자궁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전해져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사리 분별이 전혀 안 될 정도로 정신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으, 흐읏! 파이, 파이… 아아앗!”

곧 엄청난 희열에 교성을 내지르며 고개가 젖혀졌다. 그때 푹푹 빠르게 진입해오던 그의 살덩이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아… 큽!”

파이도 묵직한 신음성을 흘리며 내 다리를 고쳐 잡는다. 그리고 서로의 하체가 맞닿을 정도로 빠르고 깊게 치댔다. 젖은 피부가 쩍쩍 찐득하게 들러붙는 야한 소리가 음란하게 들려왔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에 새하얀 별이 반짝거렸다. 무의식적으로 허리가 들썩거렸다. 그러자 파이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더 거칠게 출납하며 뿌리 끝까지 내 안에 밀어 넣는다.

“아읏!”

“허억!”

자궁을 터트리려는 듯 내 뱃속을 격렬하게 찔러오던 그가 하체를 맞부딪히며 우뚝 멈춰 섰다. 곧 뱃속에 뜨끈한 액이 가득 채워진다. 희미한 백야에 다다르던 정신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다행이… 아닌 건가.’

정액을 분출한 파이가 나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그러더니 서로의 하체가 이어진 그 상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읍… 파이?”

“이 자세는 위험한 것 같아서 안 되겠다. 침대로 가지.”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건지. 파이가 나를 침대에 조심히 눕혀주고 내 위에 올라탈 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것을 절대 빼지 않았다.

“파이, 나 내일… 아응, 출근…….”

“걱정하지 마. 늦지 않게 깨워줄게.”

“그게 아니…, 아……!”

결국, 나는 예상했던 대로 침대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잠들기 전까지 그를 받아내야 했다.

* * *

“피곤해 보여, 치즈.”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뜬 정오. 계산대 옆의 의자에 주저앉아있는 나를 본 레이라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표정은 걱정 반, 호기심 반이긴 하지만.

사실 서 있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허리가 부서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될 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어제 그렇게 출근해야 하니 적당히 하라고 부탁도 했는데!

“괜찮아. 잠을 못 잔 건 아니니까.”

어젯밤, 침대에서 잠이 들기 전까지 그와 몸을 섞었다. 그리고 파이가 깨워서 일어나니 아침이더라.

[네가 잠들어있을 때 네 몸은 깨끗하게 씻겼다. 잘했지?]

그러더니 마치 칭찬해달라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까지. 파이의 얼굴에는 종일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비몽사몽인 채로 출근하자 파이가 나를 주방 의자에 앉혀두었다.

[내가 다 할게. 여기서 쉬고 있어.]

저번에 가르쳐준 대로 마력을 사용해 아주 손쉽게 빵을 만들고 구워냈다. 그래서 나는 의자에 앉아 축 늘어진 채 지시만 했다. 힘쓰는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퇴근하고 나면 다른 쪽으로 체력이 빠져나가겠지.

어쩐지 미래가 훤히 보인다. 과한 것만 빼면 다 좋은데…….

“어쨌든 너하고 그분하고 제대로 화해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래서 언제 혼인해?”

“…그런 얘기는 아직 하지 못해서.”

“아직 얘기 안 했어? 어제 대체 뭘 했… 아, 그래. 하긴, 반년만이었으니 회포를 풀기에도 바쁘긴 했겠다.”

레이라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뺨을 붉힌다. 덩달아 나까지 민망해서 괜히 헛기침하고 모른 척 눈을 내리깔았다.

후, 겨울인데 참 덥네.

“치즈.”

손부채질하면서 얼굴에 열을 식히는 사이, 주방에서 나온 파이가 나를 부른다. 기분 좋게 미소를 담은 파이를 보니 또 어제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주체하지 못하고 떨리는 심장은 내 힘으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흠흠, 다 했어요?”

“응. 식사 준비도 끝냈다.”

“…벌써?”

그러자 레이라가 내 등을 떠밀었다.

“가서 맛있게 먹고 와. 나는 오늘 점심은 여기 남겨둔 빵으로 때울 생각이니까 늦어도 돼.”

내 촉이 수상함을 감지했다. 레이라가 나를 향해 웃는 표정이 평소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느낌.

“뭐야? 레이라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그래. 있으니까 어서 식사하고 와. 나중에 말해줄게.”

“…꼭 말해줘야 해? 알지? 나 궁금하면 잠 못 자는 거.”

“알았어, 알았어.”

의미심장하게 웃는 레이라의 배웅을 받으며 파이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나는 파이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몸은 괜찮아?”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긴 하지만 괜찮아요. 허리도 아픈데 견딜 만해요.”

그게 다 파이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파이가 고개를 숙여와 내 이마에 입을 맞춰온다. 또 심장이 쿵, 크게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아서 숨이 차올랐다.

“저택을 알아보고 있어.”

“저택? 무슨 저택이요?”

“우리 신혼집.”

이 드래곤이 진짜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게 분명하다. 신혼집의 뜻은 알고나 있는 걸까?

“거처를, 옮기려고요?”

“한 저택에 두 부부가 살 수는 없잖아.”

부부란다. 그가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호흡이 버거워져서 파이 몰래 크게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그가 다시 말문을 이었다.

“또 네게 따라붙던 감시자를 잡아냈어. 오래 지켜본 놈은 비플라츠 공작가 사람이었고, 최근에 나타난 놈은 루즈 제국의 황족이라더군.”

“그럼 리브엘하고 하유르가?”

“그 흡혈귀 새끼가 루즈 제국 황제와 결탁했다는 증거지. 그리고 그 루즈 제국 황족이 말하기를, 기회를 엿봐서 레이라를 해칠 마음도 있었다는 것 같아. 그놈의 처분은 에이든에게 맡겼지만.”

순간 소름이 일었다. 하유르 그 언니 진짜 나쁜 사람이었구나. 레이라가 블랑 제국의 황후가 될 예정이라는 걸 알고 그런 것이 분명하다. 하마터면 레이라에게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파이가 나타나 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니었으면 전부 위험해질 뻔했잖아.”

“레이라는 걱정할 필요 없다. 에이든이 아무 방비 없이 레이라를 이곳에 둘 놈은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너만 보호하면 돼. 다른 것들이야 죽든 살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누가 파이 아니랄까봐. 이래서 내가 파이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리고 네게 하지 못한 말이 있더군.”

“하지 못한 말?”

걸음을 멈춰 선 파이가 나와 마주 보고 섰다. 그 순간,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그곳은 파이가 내게 생일 선물로 주었던 숲 숙의 반구 모형 별장 안이었다.

“여긴 왜……?”

내가 채 묻기도 전에 그가 내 왼손을 조심히 잡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 약지에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반지를 끼워준다. 블랑제국의 얼음꽃을 작게 조각해서 만든 반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얼음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고, 매번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거였기 때문에.

“블랑 제국의 얼음 나무에서 채취한 보석으로 가공했다. 그 고양이가 선뜻 주더군. 네가 좋아할 거라고.”

어쩐지 감격스러워서 코끝이 찡해졌다.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마치 내 것이라는 듯 딱 맞았다. 심장이 제 기능을 잃어버린 듯 엉망으로 뛰어댔고, 머릿속이 엉망으로 물들어갈 때. 그가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 들어 올리고는 나와 시선을 맞춘다. 보석처럼 맑고 투명한 그의 선홍색 눈동자를 마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가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을 이미 짐작했기 때문에.

“나와 혼인하자,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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