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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44화 (44/132)

♬  #44

“우와아!”

카르디옌이 치즈를 데리고 우리 블랑 제국의 황궁에 처음 발을 디뎠다. 내 귀여운 작은 소녀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환호를 외친다. 옅은 밀빛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찰랑거릴 정도로 고개를 바쁘게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더불어 짙은 에메랄드 같이 빛나는 초록빛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분홍색의 꼬질꼬질한 이불에 온몸이 돌돌 말린 치즈의 모습이, 꼭 베이컨에 감싸여진 병아리 같다. 어쩐지 군침이 돌아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저 예민한 카르디옌 놈만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당장 꿀꺽하는 건데. 그건 좀 아쉽군.

십 년 전에는 그저 귀엽기만 한 아이였는데. 이제는 어딘지 모르게 여성미가 느껴지고 다른 의미로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하체에 피가 잔뜩 쏠려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확실히 치즈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 자체가 남다르다. 보통 여성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이상야릇한 체취라 저 목석같은 카르디옌이 홀랑 넘어간 것도 이해는 간다. 나도 이렇게 목이 타는데 짐승인 저놈은 오죽하겠어?

나는 최대한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절대 어울리지 않을 드래곤과 인간의 조합을 향해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내보였다.

“블랑 제국과 더불어 내 보금자리의 방문을 환영해, 치즈.”

“여기가 에이든의 보금자리?”

“응. 예쁘지?”

“네! 너무 예뻐요!”

치즈가 좋아할 줄 알았다. 우리 블랑 제국이 얼음 왕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얼음으로 만든 황궁 때문이다.

녹지 않는 얼음으로만 세운 성 내부는 늘 시원한 공기를 머금어 사시사철 적당한 기온을 유지했다. 정교한 디자인을 담은 세련된 성의 내부는 황제 본인의 취향에 맞게끔 변형할 수 있었다. 전부 마력의 힘이기도 하고.

성의 모든 가구와 시설들도 전부 얼음으로 제작된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걸 좋아하는 치즈의 입맛에 딱 맞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황궁에서 가장 가까운 정원에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얼음꽃이 존재한다. 블랑 제국이 탄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녹지 않고 언제나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꽃이다.

이것으로 치즈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딱이지. 꽃을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서 다행이다. 평소에 신경 써서 가꿔두길 잘했어.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하지만 카르디옌의 표정은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세워진 듯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기분 나쁘다는 눈빛으로 그저 좋다고 꺅꺅거리는 치즈를 흘겨보고 있는 모양새에 웃음이 났다.

치즈는 십 년 전에도 꽃과 구름을 좋아하던 소녀였다. 특히나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한 꽃은 그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일등공신이지. 하긴, 그딴 동굴 속에 이런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기를 수도 없었을 거야. 저 삭막한 놈답게 삭막한 동굴을 둥지로 틀었으니, 제 성격과 아주 닮았지. 이런 아름다운 곳을 보고도 표정이 저따위라니. 쯧쯧.

“그런데… 여기 정말 다 얼음으로 된 거예요?”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치즈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면서 거북이 목처럼 이불에 턱을 파묻었다. 얼음이라 당연히 춥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행동일 테지. 그 모습마저 귀여워 미치겠다.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한 능력과 힘을 가진 블랙 드래곤의 품에 안겨 오들오들 떨다니.

게다가 그 귀엽고 통통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치즈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노랫소리처럼 귓가를 간질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십 년 전에도 꼭 꽃처럼 다정하면서도 듣기 좋은 음색의 목소리로 나를 아저씨라고 불렀더랬지.

…그때의 기억은 정말 충격이었어. 내가 저 무식하게 근육만 있는 카르디옌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젊고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대체 어딜 봐서 아저씨로 보이는 거지?

“그게 얼음 왕국으로 불리는 이유지.”

“그, 그럼 바닥도 전부?”

“황궁이 세워진 기반은 안전한 땅이니 걱정 마. 우리 치즈, 혹시라도 바닥이 깨져서 물에 빠질까 봐 걱정되었구나?”

나 역시 어렸을 때 그런 생각에 겁을 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한다. 얼음으로 된 바닥 아래가 꼭 물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이쪽으로.”

우선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방을 안내해줘야지. 내 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치즈를 머물게 하면서 우선은 친분을 다지는 거야.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접근해서 조심히 손부터 잡고 뽀뽀를 하고 키스를 하면서 그대로 침대에 밀어붙이면!

“여기가 전망도 좋고 정리가 가장 잘 된 깨끗한 방이야. 어때?”

“…세상에. 여, 여기를 제가 써도 괜찮아요? 이건… 꼭 그 프리센 왕국에서 보던 그런 느낌인데?”

“내 귀한 손님에게 이 정도도 못 해주겠어?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써도 돼. 그리고 카르디옌, 너는 빨리 가서 우리 기사단에 합류해. 한시가 급한 일이니까.”

빨리 저 드래곤을 치워버려야 저 꼬질꼬질한 이불에 말린 치즈와 친해질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다. 그랬는데 카르디옌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푹신한 소파에 치즈를 조심히 앉혀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버린다.

응?

“전쟁이 발발되면 그때 불러. 내가 너희의 힘이 되겠다고 약조한 것은 힘이 부족할 때 최전선에 나가겠다는 의미였다. 설마 잊은 건 아닐 테지?”

…저 까다로운 놈.

그 예쁜이가 말했던 것처럼, 제 세끼를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을 거라던 말이 사실로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것이 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십 년 전에 치즈에게 혼인하자고 했던 건 약간의 호기심이 더 강했었다. 밝게 웃는 아이의 표정에 마음이 동했지. 그러다가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치즈의 정보를 계속 보고 들으면서 더 마음이 쏠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만큼 성숙하고 아름답게 자란 치즈를 보니 도저히 놓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안달이 났다. 어떻게든 치즈를 유혹할 좋은 수가 없을지 고민했다. 그 사이에 치즈가 카르디옌의 눈치를 살피면서 눈꺼풀을 빠르게 팔랑거렸다.

“저기, 파이?”

“말해.”

“밖에 정원 구경하고 싶은데… 나가면 안돼요?”

“정원?”

“응! 얼음꽃은 처음 봐! 너무너무 예뻐서 막막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고요! 지금 못 보면 상사병 걸릴 것 같아.”

“나중에 봐도 되잖아.”

“아니 지금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나 이불 말고 드레스부터 좀 입혀주고, 응? 가면 안 돼요? 바로 요기, 조오기 앞인데? 같이 가면 더 좋고! 네?! 파이이잉…….”

치즈말이 상태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애원하는데 왜 내 목이 이렇게 타들어 가는지. 어딘지 요염하게 느껴지는 눈꺼풀의 느릿한 움직임과 유혹하듯 벌어진 자그마한 분홍빛의 입술에 심장이 요동을 친다. 꽁꽁 묶여있는 상태에서도 교태를 부려 자극적인 분위기가 흘러나와서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빤히 보기만 하는 카르디옌이 오늘따라 대단한 놈으로 보인다. 내가 저 짐승보다 인내심이 없는 건가. 그건 좀… 짜증나는 상황인데?

“그렇게 가고 싶어?”

“응! 네! 물론!”

“그럼 아까 못했던 거 마무리하자. 그럼 같이 나가줄게.”

“…아, 아까 못했던 거요?”

“아까 딱 그 분위기에서 끊어져서 좀 곤란하거든. 꿀을 맛있게 쪽쪽 빨았던 네 행동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봤는데 도통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슬쩍 치즈를 쳐다봤는데, 얼굴이 태양만큼이나 붉게 달아오른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분위기가 묘하네.

그러다가 치즈하고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자 치즈의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더 빨갛게 달아올라서 바로 눈치챘다. 동시에 카르디옌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콧방귀를 뀐다.

“에이든. 눈치껏 자리를 좀 비켜주지? 우리가 못다 한 대화가 있어서 그것부터 해결을 좀 해야 하니까.”

감히 건방지게 내 궁에서 황제인 내게 축객령을 내린다. 차마 반박할 수 없어서 어영부영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방을 나서서 문을 쿵, 닫았다.

하지만 궁금하잖아? 무슨 대화를 말하는 거지? 내가 예상한 것이 맞는 건가?

그래서 문에 기대 한쪽 귀를 문틈에다가 가져다 대고 귀를 기울였다.

“아이참? 남의 집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파이 진짜 좀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잖…….”

“어차피 네게서 내 냄새가 난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여긴 실내니까 괜찮잖아. 좋으면서 왜 종알종알 투정이지?”

“내, 내가 언제 좋다고 그랬어요?”

“기분이 좋아지려던 때에 멈추면 짜증 내던데?”

“아, 아니 진짜 이 드래곤이 하다 하다 거짓말을 다 하네! 내가요? 내가 언제!”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되고.”

“헉! 잠깐, 잠깐!”

흐응… 이거 슬쩍 기분 나빠지려고 하는데?

풀썩거리는 소리와 함께 치즈가 꺅꺅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방문 틈 사이로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되는 바라. 괜히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콧등을 찡긋거렸다.

저 건방진 드래곤 놈이 내 반려가 될 치즈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아잇, 정말 이 짐승이? 여기가 우리 둘만 있는 데가 아니잖아!”

“둘만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지, 진짜 하려고요?”

“내건 이미 아까부터 섰어. 아니, 죽질 않았지.”

“그럼… 빨리 끝내야 돼요?”

“노력해볼게.”

“말로마… 흐, 흣! 읍!”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돋아났다. 질척한 키스에서 쪽쪽 빨아대는 젖은 소리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느다란 치즈의 신음소리에 하체가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따로 만나는 여성도 없었고 무엇보다 루즈 제국의 예쁜이 때문에 욕정을 풀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혼자 손으로 푸는 정도.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하기도 했고 워낙 아프다보니 그러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으…으응, 흐으읏. 아, 파이……!”

발이 떨어지지가 않아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가, 환희에 가득 찬 치즈의 교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위, 위험하다. 하체가 발딱 서버려 바지를 뚫어버릴 기세라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금방이라도 혼자 사정해버릴 것만 같아서.

* * *

블랑 제국에 도착한 뒤로 꼬박 하루가 지났다. 얼음 왕국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블랑 제국은 어딜 봐도 반짝반짝했다. 매끈한 얼음에 빛이 반사되어 마치 별세계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운 장관을 제대로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슬프게도 블랑 제국에 방문한 첫날부터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어 또 울상을 지어보였다.

‘또 꼬박 하루를 버렸어!’

이 늙은 드래곤의 체력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어제 야시장도 못가고 점심 겸 저녁으로 먹었던 크림치즈파이가 금방 소화가 될 만큼 격렬한 밤을 보냈다. 그 엄청난 운동을 끝마친 것은, 하늘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늦은 새벽이었다.

그 뒤로 기운이 쪽 빠져 녹초가 되어 흐물거리던 것도 잠시. 파이가 어디선가 맛난 양고기를 가져와서 작게 썰어, 푹신한 침대에 퍼져있던 내 입속에 집어 넣어주었다. 물론 나는 오물오물 꼭꼭 씹어 맛있는 소스를 음미하며 전부 야금야금 해치웠지.

이후 고기를 전부 내 위장에 집어넣게 만든 그가 또 은근슬쩍 하체를 문질러왔다.

[너 때문에 또 섰어. 책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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