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그리고 그가 팔에 힘을 빼자 중력에 의해 몸이 쑤욱 내려앉았다. 입구에 걸쳐져있던 남근이 예고도 없이 뿌리 끝까지 진입해 또 새된 교성을 내지르며 할딱거렸다.
“이상해, 이상해, 이거 싫어… 응, 싫어…….”
절대 가볍지 않을 대단한 자극이 또 생경하게 느껴져 몸을 바르작거렸다. 허리를 살짝 비틀면서 소심하게 반항했으나 파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 몸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기만 했다. 그래놓고 상냥하게 괜찮다는 뻔뻔한 말만 귓가에 뱉어내며 열심히 제 할 일에 집중하기만 한다.
“으으… 흑, 그만, 그만…….”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목소리가 벌써 잔뜩 쉬어서 그런지 말소리보다 풍선바람 빠지는 소리가 내 갈라진 목구멍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찔한 감각이 하체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와 시야가 다 어질어질하다.
아니, 이미 아까부터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긴 했다.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니까.
어느새 침대 위에 엎드린 채다. 이미 벗겨져서 나뒹구는 내 잠옷을 달달 떨리는 손을 움켜잡았다가 힘이 쭉 빠져버린다. 그리고 침대 시트에 화끈 달아오른 뺨을 묻고, 이기지 못할 쾌감을 조금도 빠짐없이 전부 견뎌내야 했다.
촉촉이 젖은 눈꺼풀을 꾸욱 감았다가 떴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는 통유리 너머에는 벌써 늦은 오후라는 듯 내리쬐는 햇살의 방향이 비스듬해졌다. 분명 아까는 정오가 지나 뜨거운 해가 똑바로 내리쬐는 한낮이었는데. 침실에서 파이에게 붙들려 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이건… 말도 안 돼!
“파이이… 아! 아! 아앗!”
퍽, 퍽. 다소곳이 붙이고 있는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 질척하게 젖은 단단한 살덩이를 무자비하게 박아댄다. 파이는 그저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며 나를 미치게 할 뿐이다.
두 다리가 맞붙여져 더욱 좁아진 질 안을 꾸역꾸역 밀고 들어와 깊숙이 박힐 때마다 눈앞에 별이 보였다. 잔뜩 흐른 애액과 수없이 치솟았던 절정에 부들부들해진 내벽을 무자비하게 할퀴고 지나가기 바쁘다.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는 파이가 고개를 숙여와 날갯죽지와 파르르 떨리는 어깨 위에 입을 맞춰온다. 그러고는 뜨거운 호흡을 훅 뱉어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참는 것도 이제 한계야.”
“차… 참지… 말고, 아니 왜… 으흑…….”
“한 번이니까.”
이 남자가 정말 끔찍한 소리를 다 하신다. 아까 내가 한번만 하자고 했더니 진짜 그 한번을 하루 종일 하려고!
진짜 나는 온 몸이 축축 늘어지고 지치는데도 파이는 지친 기색하나 없이 몸을 치댔다. 애액이 한가득 흘러나와 침대 시트를 잔뜩 적신 채라 축축하고 끈적거렸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쾌감을 극대화 시키는 행위를 이어가기만 할 뿐.
“흐으, 읏, 으응!”
파이가 나름 편안하게 자기를 받아들이라고 나를 엎드리게 한 건데. 오히려 파이의 것이 더 깊게 느껴졌다. 이러다가 자궁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전율이 폭발하듯 치고 올라와 전신의 근육에서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아앗!”
곧 절정에 치달아 비명 어린 교성을 내질렀다. 물론, 이미 다 갈라진 목소리라 바람 빠지는 소리가 더 컸지만.
동시에 짧고 묵직한 신음을 흘리는 파이도 조금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하체를 빠르게 치댔다.
“큭. 헉!”
그리고 곧 거친 숨을 토해내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울컥, 배 안으로 따끈한 무언가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내 등 위로 무너진 그는 나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비벼왔다.
끝나긴 한 것 같은데… 아, 모르겠다. 너무 힘이 빠져서 기운이 하나도 없어.
“끝…났어요?”
“응.”
“잠이 오는데…….”
“자도 돼. 재워줄게.”
“축제, 야시장 구경… 으응, 가야 하는데… 이제 그만 좀 빼요.”
아직도 내 안에 깊이 박혀있는 묵직한 살덩이가 꽤 신경이 쓰일 정도로 버거웠다. 말랑한 속살에 담긴 뜨거운 기둥이 아쉽다는 듯 꿈틀거렸다. 그에 맞춰 오물거리는 내벽이 나를 괴롭혔다. 내 목구멍에서 또 연신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러는 사이에 그가 하체를 잠깐 뒤로 물리기에 끝났나 싶어 안도했다. 하지만 가다말고 도로 내 안으로 진입해오는 바람에 허리를 바르르 떨면서 울컥했다.
“그만하라고!”
울먹거리면서 빽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파이가 웃음을 터트리며 내게서 완전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를 품에 조심히 안아들어 다정한 손길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알았어. 안할게. 이제 씻을까?”
“…씻겨줘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으니 당연히 씻겨줘야 한다. 솔직히 그래, 그 한번이 쉽게 끝날 거라는 생각을 애초에 하진 않았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정말 오래 걸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사가 이런 거라고 누구도 말해준 적 없었다고.
나를 품에 안은 채로 침실을 빠져나간 파이가 바로 근처에 있는 욕조에 그대로 몸을 담갔다. 언제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일단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오려는 걸 물리치려고 애를 썼다.
“좀 자.”
“싫어요. 밤에 그 야시장이라는 곳, 갈 거야.”
“깨워줄게.”
“…못 믿겠어요.”
“낮잠시간도 놓쳤잖아. 야시장은 늦은 밤에 가야 볼거리가 많다.”
성인인데도 아직까지 낮잠시간을 운운하다니. 파이는 인간이 다 낮잠을 잔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래도 목욕은… 다 하고 자야…….”
“걱정하지 말고 자. 내가 다 씻겨주고 닦아줄 테니까. 벌써 눈에 졸음이 가득하네.”
“정말 깨워줄 거죠? 그냥 재우면… 안돼요?”
눈물이 찔끔 배어나올 정도로 크게 하품을 하고나니 정말 참지 못할 정도로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파이가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내 턱을 살짝 들어 가볍게 입을 맞춰왔다.
“알았어. 나만 믿어.”
라는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주 푹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몸을 혹사시켰으니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그리고 깊게 잠에 빠진 상태에서도 누군가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잠에 취한 상태라 눈을 뜰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그만 일어나, 치즈.”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달콤한 무언가를 먹는 꿈을 꾸면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때 귓가에 파이가 작게 웃는 목소리가 들려와 정신이 살짝 깨어났다.
그런데 입술 사이에 뭔가 들어와 있는 이물감이 느껴져서 뭔가 싶었다. 그 작고 둥근 기다란 것이 구부러지는 걸 느끼고 미간을 확 좁혔다. 입속에 들어와 있는 그것의 끝에 매우 달콤한 꿀이 발라져있어서 내가 그걸 쪽쪽 빨아먹고 있었거든.
“으응?”
겨우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려 흐려진 시야의 초점을 맞췄다. 아까 욕조에서처럼 파이에게 안겨있는 자세였다. 다만 장소가 소파로 바뀐 것 뿐.
멀끔한 잠옷을 입은 채로 그의 허벅지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다. 그리고 내 입속에 담겨져 있는 건 파이의 손가락이었다.
“어렸을 때가 생각나는군. 걷지도 못하던 아기였을 때, 이렇게 손가락에 꿀을 찍어 주면 쪽쪽 잘 빨아먹었지. 혹시나 싶어서 해봤는데 지금도 여전히 아기인가보군. 그렇게 맛있어?”
꿀이었구나. 어쩐지 익숙한 단맛이더라니.
그가 내 입에 담긴 손가락을 뽁, 빼내더니 다른 손가락을 옆에 놓인 꿀단지에 다시 콕, 찍는다. 곧 진득한 금빛 꿀을 머금은 그의 손가락이 내 입에 쏙 들어왔다. 나는 아기가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꿀이 너무 달았다.
또 그의 손가락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꿀을 쪽쪽 빨고 혀로 핥아먹었다. 달달한 게 몸에 퍼지자 정신이 조금 더 확실히 돌아왔다.
“…몇 시?”
물어보면서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그러자 그가 다른 손가락으로 또 꿀을 찍어 입에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주는 걸 마다할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다시 쪽쪽 빨아내며 맛있는 꿀을 음미했다.
“해가 진지 조금 됐어. 잠든 지 두 시간쯤? 지금 야시장이 제일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을 거다. 지금 가면 볼게 많겠군.”
그 말에 번쩍 눈을 뜨고 손으로 그의 손가락을 내 입에서 빼냈다.
“야시장!”
“그래. 야시장.”
“빨리 가요! 갈래!”
아직도 조금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긴 하지만 꿀 때문인지 목이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서자마자 휘청거리면서 그대로 다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며 허벅지도 모자라 등 근육이 욱신욱신. 이것은 오늘 아침에도 느꼈던 바로 그 근육통이 아닌가!
“아파… 이 나쁜 짐승 같으니!”
“이리와. 안아줄게.”
안아준다는 말에 또 냅다 품에 안겨서도 찡얼거렸다.
“신나게 놀고 싶었는데 이게 다 뭐야. 움직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설마 파이, 나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죠?”
파이는 대답 없이 내 눈을 회피했다. 그러니까 더 수상하잖아? 설마 진짜로 내가 또 밖에 나가서 혼자 도망갈까 봐 날 그렇게 괴롭힌 거야?
“설마, 내 말이 정곡을?”
그런데 순간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아 움찔 떨었다. 동시에 파이의 얼굴이 단단한 돌처럼 굳어버리고는 확 일그러진다. 덕분에 내 심장이 쫄깃하게 조여들었다.
설마 내가 구박해서 화났나? 아니,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 아니야?
하지만 식은땀이 배어나올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어서 아무 말도 뱉어낼 수가 없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첨예하게 세워져 금방이라도 내 온몸을 난도질할 것 같은 느낌이다.
“파이……?”
뜨거웠던 체온이 서서히 가라앉은 피부에 서늘한 공기가 닿아 소름이 돋아났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무섭게.
순간 지금 그가 보이는 그 표정,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억이 뇌의 깊숙한 곳에서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꽤 오래전에… 응, 맞아. 파이의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어떤 예쁘장한 남자가 레어에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파이가 혼자 분노하다가 참지 못하고 폭발하려던 그때 표정과 비슷하다. 그 왜, 10년 전에 내가 아저씨라고 했던 남자. 그랬더니 가련한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철푸덕 쓰러지던, 은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 사람.
“넌 여기 있어.”
음산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짐승처럼 목을 긁는 거친 음성이 들려와 흠칫 놀랐다. 그리고 나를 다시 침대 가장자리에 앉혀두고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금방 다녀올게. 꼼짝 말고 있어.”
“…어디 가는데요?”
“레어.”
“레어? 왜?”
“침입자가 있어서.”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침입자요? 보석 훔쳐가려고?”
내 보석! 거기 내 지분도 있어! 아주 많이 있다고!
언제 한번 파이가 레어의 가장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둔 보석을 비롯한 금은보화를 직접 보여준 적이 있었다. 수많은 양의 보석이 너무 반짝반짝해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지. 게다가 눈에 다 들어차지도 않을 정도로 커다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걸 아주 똑똑히 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