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정말?”
“응. 응, 으응, 그, 그만…….”
그런데 요 얄미운 드래곤이 나를 놔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질척하게 젖어들어 빈틈하나 없이 밀착한 하체를 꾹 눌러와 은근슬쩍 허리를 움직여 문질러온다. 그 마찰력에 의해 화끈거리는 여성지가 속옷에 문질러져 또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찌걱, 찌걱.
듣기에 민망한 젖은 소리가 드레스 안에서 작게 울려 퍼진다. 숨이 가빠지면서 점차 고조되는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어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려왔다.
“아, 앗! 파, 파이…… 으흣!”
허리가 낭창하게 휘어 고개가 절로 젖혀진다. 이리저리 피하려고 움직일 때마다 여린 속살이 여지없이 짓눌려 또 바르르 떨며 울먹거렸다.
이, 이게 아닌데. 생각할 틈도 없이 그가 주는 쾌감에 휘말려 들었다.
“활동하는 시간이니 활동적이게 어른들의 놀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너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으응, 싫어… 히잉. 싫어, 싫어…….”
“싫다고 하는 네 말과 다르게 네 몸은 아주 좋아하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잘 모르겠다. 그에게 쉽게 내 몸을 내어주는 게 싫긴 하지만, 목이 타들어갈 정도로 갈증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그의 품에 안겨 점점 차오르는 희열을 더 느끼고 싶기는 하다. 당장 속옷 아래의 젖어버린 내 안에 그를 전부 담고 싶은 충동이 수십 수백 번 나를 괴롭혔다.
“흑, 파이…….”
“괜찮아. 아프지는 않지? 조금 더 느껴봐. 네가 어딜 좋아하는지 내게 알려줘.”
내 엉덩이를 쥐고 있던 그의 오른손이 드레스 안에 숨겨진 허벅지를 가볍게 매만졌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슬쩍 내 아랫배를 어루만지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그의 손가락이 음모에 스친다. 부드럽던 파이의 눈빛이 삽시간에 돌변한다.
곧 그의 엄지손가락이 클리토리스 위를 살짝 누른 채 지분거린다. 그곳에서 전해지는 벼락같은 쾌감을, 나는 알고 있다. 전신을 울리는, 귀에 대고 커다란 종을 크게 내리치는 느낌의 절정. 그 역시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뜨거운 숨을 흘리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기대 되지? 나도 기대 돼. 네가 잔뜩 흥분해서 싸는 액에 젖고 싶어.”
“으… 그, 그런 말 하지… 아앙! 읍!”
꼭 저렇게 야한 말을 하니까 내가 야한 여자가 되는 기분이라고.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느껴지는 창피함에 하체가 더 달아올랐다. 애액이 잔뜩 흘러나와 이미 흥건하게 젖어버린 클리토리스를 섬세하게 문질러오는 그의 손이 점차 빨라졌다. 결국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치미는 쾌감에 몸을 가눌 수가 없게 되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려 몸과 정신이 정욕에 급격하게 물들어갔다.
그나마 남아있는 이성을 끌어다가 겨우 잡아 쥐었다. 그의 위에서 나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지 않기 위해. 또 더 이상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자 파이가 반대 손으로 내 뒷덜미를 잡고 입술을 겹쳐왔다. 아랫입술을 쪽, 빨아내고 혀를 밀어 넣어 부드럽게 휘젓는 키스가 이어졌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손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소리 내도 돼. 참지 말고. 그렇게 이를 깨물고 있으면 다쳐.”
“하아, 하아, 으… 그만, 그… 아학!!”
다리 사이에서 치미는 전율이 온 몸을 잠식한다.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했다. 피부에 닿는 공기마저 찌릿하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자극에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가 하체에서 손을 떼어내고 다시 내게 키스를 퍼부었다. 마치 달콤한 셔벗을 핥는 것처럼 부드러운 키스였다. 그러자 전신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구석구석 들쑤시던 발작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경련하던 전신의 떨림도 가라앉았다. 더불어 기운이 쭉 빠져나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좋았어?”
입술을 떼어낸 그가 나를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내 눈가에 아롱진 눈물을 닦아내주었다.
그제야 이성이 다시 제자리로 찾아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으… 내가 하지 말라고…….”
“네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랬다. 예뻤어. 너는 정말, 언제나 내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까.”
울먹거리는 내가 눈물을 글썽거리자 파이가 나를 품에 안아 등을 토닥여줬다. 나는 코를 훌쩍거리며 그의 어깨에 뺨을 묻고 눈물에 젖어 촉촉해진 눈꺼풀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내 다리사이에 꾹 눌려있는 그의 바지가 흥건하게 젖었다는 것을 느꼈다.
대체 저게 뭐가 좋다는 건지. 파이에게 결벽증이 있던 건 이십년간 잘못 알아온 내 착각이었나 싶다.
“울지 마. 울면 더 하고 싶어져.”
그 말에 나는 눈꺼풀을 더욱 더 빠르게 팔랑거리면서 눈물을 전부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를 자극하면 곤란해. 사실은 무서웠다. 몸이 달아오르면서 기분 좋은 쾌락에 젖어 드는 느낌이. 그러다가 내가 먼저 백기를 들어 빨리 해달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보다 더 무서웠던 건, 파이의 지치지도 않던 어마어마한 체력이었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았어!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와 몸을 섞으려면 그만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물론 그가 싫은 건 아니지만… 나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 이 벌건 대낮에 그의 아래 깔려서 울부짖는 건 사양이다.
지금은 밖에서 신나게 놀아야 할 시간이라고!
“옷 갈아입을래요. 편하게.”
나는 일단 화려한 드레스를 벗어버리고 파이가 가져다준 간편한 원피스 잠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벌렁거리는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은 뒤에, 나는 낯선 실내를 여기저기 발발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래 봐야 방이긴 하지만. 대체 창문은 왜 안 만들어주는 거람?
“파이. 창문은 없어요?”
“창문은 실내의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걸 방해할 뿐이다.”
“온도를 어떻게 유지하는데요?”
내 물음에 여전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파이가 손가락을 들어 한 바퀴 빙글 돌렸다. 그러자 청량한 숲의 향을 담은 바람이 옅게 불어온다.
“마력?”
내 말에 빙긋 웃는 파이가 고개를 느리게 주억거렸다. 그래서 레어도 동굴인데 동굴 냄새가 나지 않았던 거구나 싶다. 내 방 근처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청량하고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오랜 시간 쌓인 퀴퀴한 먼지 냄새가 진동을 하곤 했으니까.
파이가 그런 면에서 섬세한 남자기는 해. 다만 내 속도 몰라주니까 나쁜 거지.
나는 속으로 파이 욕과 칭찬을 번갈아 떠올리며 한참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무슨 책이 있나 보기도 하고 유리창에 파리처럼 달라붙어 바깥 숲을 구경도 하고.
마지막으로 딱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욕조에 그려진 황금코끼리를 눈에 가득 담아냈다. 코끼리의 코 주름이 몇 개인지 세어보다가 손가락으로 슥슥 문질러보기도 했다.
그래도 레어에 있는 내 욕조보다 크니까 둘이 같이 목욕할 수는 있겠…….
하고 생각하던 내 머리를 주먹으로 몇 대 쥐어박았다. 벌써 같이 목욕하는 게 익숙해지기라도 한 거냐고! 이렇게 은근슬쩍 자꾸 그를 허락하다보면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당연한 사실로 여기게 될까봐 겁이 났다.
그러다가 순간 떠오른 생각에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고개를 돌려 파이를 쳐다봤다.
“아, 그런데 레이라에게 보낸 연락의 답신은 어떻게 받아요? 밖에 나와 있는데?”
“답신은 이미 받았다. 언제든 환영이라더군.”
“앗! 그럼 지금 가면 되잖아?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 있어요? 어서 다녀와요, 우리! 응?”
나는 또 팔랑팔랑 뛰어 파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그의 팔뚝을 감싸 잡고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그런데 파이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다. 표정은 언제나처럼 평온한 가면을 유지하고 있는데 눈빛이 얼마나 따끔한지. 내 얼굴이 다 욱신욱신하다.
“왜 그래요, 파이?”
“…뭐가?”
“화났어요?”
“아니.”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화난 사람 같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그의 선홍빛 눈동자가 아주 살짝 흔들렸다. 그러더니 또 기분이 나빠졌는지 미간을 확 모아 고운 얼굴에 주름이 인다.
“아파서 그래.”
“…응?”
“아프다고.”
“아프다고요? 어디가?”
진심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의 몸을 구석구석 매만져봤다.
파이가 아프다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 친구라던 남자와 서로 죽일 듯 치고 박고 싸우다가 크게 다쳐서 피를 잔뜩 흘리기도 했었다. 그때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안했던 남자다.
그런데 아프다니.
나는 혹시 갈비뼈가 부러졌나, 척추가 무너졌나 이리저리 배와 목뒤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고 체온을 측정했다.
…열이 조금, 음… 미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설마 감기는 아니겠지?
내가 살아 숨 쉬는 날부터 지금까지 그가 감기나 몸살을 앓았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면서 그에게 물었다.
“미열이 약간 있는 것 같아요. 안 아파봐서 이게 많이 아프게 느껴지는 건가?”
“열은 없어. 머리가 아픈 게 아니다.”
“…그럼 어디가 아픈 건데요?”
“여기가.”
그가 제 이마에 얹어진 내 손목을 잡아 아래로 쑥 내렸다. 그러더니 불룩 튀어나온 자신의 하체에 내 손바닥을 얹으면서 뜨거운 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아까부터… 이놈이 죽질 않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배도 아프고 특히 음낭이 욱신거려. 아무래도 가라앉혀줘야 할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 드래곤이 또 나한테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얼굴을 확 구겼다. 그러다가 그가 나한테 이런 걸로 장난칠 만큼 영악한 남자는 아니라는 걸 깨닫고 표정을 풀었다. 어딘지 숨소리도 조금 더 거칠어지고 괴로워 보이는 표정에 내 가슴이 다 욱신거렸다.
그런 와중에 손바닥에 눌린 단단한 살덩이가 들썩거려 또 깜짝 놀랐다. 듣기로는 이 남근이 제2의 인격이라더니. 설마 이게 남자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다른 인격인건가?
“어… 어, 음. 내,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네가 아니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거다.”
“…알겠어요. 도와줄게요.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사정을 해야 하는데… 어제도 그제도 이틀씩이나 제대로 사정하지 못해서… 과연 한 번에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사, 사, 사정? 사정이면… 그걸 해야 한다는 거잖아? 정말이지. 그러게 아까 나 건들지 말라니까!
어쩔 수 없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그에게 해주면 되겠지. 남자를 애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다고 했으니까.
“다… 흠흠, 다른 방법은 없어요? 아! 손으로 해줄게요. 손으로도 음, 가슴도 가능하고 음 또… 뭐라고 했더라? 허벅지로도 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건 싫고. 입으로?”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서 정사를 제외한 방법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그러자 파이의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진다.
“대체 누가 그런 걸 가르쳐준 거지?”
“책에 다 나와요.”
“무슨 책?”
“…누, 누가 아는 언니에게 책을 빌려서 가져온 걸 잠깐 봤을 뿐이에요.”
그 누가 레이라라고는 말 못한다. 레이라가 자기네 집에 숨겨져 있던 어머니의 책 중 하나를 골라서 가져왔다고는 더더욱 말 못해. 이건 나와 레이라만의 비밀이었으니까!
“그래. 그렇다 치지. 하지만 나는 네게 그런 짓을 시키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아프다면서요. 나밖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서?”
“네가 날 품어줘야지. 네 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