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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32화 (32/132)

♬  #32

“흠,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화장실을 빼면 전부 마음에 들어요.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했대?”

나는 또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서 손부채질하며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왼쪽 어깨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파이가 등 뒤에서 내 둥근 어깨를 조심히 감싸 쥐며 고개를 숙여와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앞으로 우리가 자주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겠지. 근처에 결계도 쳐놨으니 인간이 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다. 여기는 우리 둘 이외에 아무도 없어.”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허벅지 사이가 옴죽거린다. 아까부터 후끈 달아올라있던 얼굴에서 피가 쏟아질 지경이다.

아니, 그냥 그렇다는 얘기 같기는 한데 분위기가 묘하다. 꼭, 이곳에서 나와 무슨 짓을 할지 예고를 해주는 것 같아서 바짝 긴장이 되었다.

“여, 크흠, 여기서 뭘 하고 놀아요? 책을 읽거나 낮잠 자는 것밖에는 따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러자 파이가 피식 웃으면서 내 몸을 돌려 세워 나와 마주보았다. 그 바람에 흠칫 놀라서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감싸 쥐고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했다. 내 심장은 또 망가진 듯 제멋대로 벌렁벌렁 뛰어댔다. 덕분에 피가 빠르게 돌아 전신이 간질거렸다. 나른하게 웃던 그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식사도 하고, 야식도 먹고, 목욕도 하고. 키스부터 시작해서 네가 울며불며 그만해달라고 소리 지를 때까지 몸을 섞다 보면 매일 즐겁게 지낼 수 있겠지.”

이런 야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파이가 얄미워서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그러나 그는 아까 제 손에 잡혀서 발갛게 부은 내 팔뚝을 지그시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붉은 손자국을 따라 조심스레 쓸어내린다.

그저 살이 연해서 생긴 자국인데. 그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이상하게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심장이 팔딱팔딱 정신없이 뛰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그걸 내가 허락할 것 같아요?”

“나와 한 몸이 되었던 그 행위가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물론!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아직도 허리 근육이 욱신거릴 정도로 아픈 건 여전했다. 그런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파이가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더니 나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그의 단단한 팔뚝에 앉혀지는 바람에 나는 중심을 잡으려고 그의 어깨를 답삭 잡았다.

“꺅! 노, 높아요!”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내게는 너를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만 알아두도록. 또 가출을 시도해도 좋아. 얼마든지 찾아내 다시 가둬둘 테니까.”

풍성한 드레스 치맛자락을 위로 휙 걷어서 내 허벅지를 은근히 어루만지는 파이가 빙그르 웃는다. 그리고 나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면서 눈동자를 바르르 떨었다. 그가 절대 허세나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연 이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럼 일단 쉬지. 방금 멀미를 했으니 누워있어야겠군.”

“방금 음식을 먹었는데요? 지금 바로 누우면 돼지가 될 거라고요.”

“돼지가 되어도 괜찮다. 그래도 예뻐.”

대체 이 드래곤은 이런 말을 무슨 생각으로 뱉어내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여태까지 많은 사람에게 예쁘다는 얘기를 수백 번은 넘게 들었던 나다. 하지만 파이가 예쁘다고 하는 것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심장이 몸 밖으로 탈출해버릴 것 같은 말을 너무 서슴없이 꺼내는 것도 문제다.

또 가면 같은 그의 얼굴이 파사삭 부서지면서 표정이라는 게 그려지는 것도 신기할 따름. 얼굴근육과 신경이 이어져 있지 않거나 마비라도 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 사실을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허탈감 섞인 탄식밖에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 넓은 침대에 앉은 파이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서 모로 눕게 되었다. 아마 낮잠시간이니 나를 재워주려고 하는 것 같다.

다 큰 성인인데 무슨 낮잠인지. 이런 걸 보면 파이가 진짜 나를 애로 보긴 하는구나 싶어서 괜히 울적해졌다.

“파이 허벅지 너무 딱딱해요.”

“딱딱한 게 좋은 거다.”

“목이 아픈데?”

“대신 밤일엔 유용하지. 너를 기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대체…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이래?”

“허리와 허벅지, 그리고 네 안을 가득 채워주는 내 것이 단단하고 튼튼할수록 상대방을 기쁘게 해준다던데. 아닌가?”

이런 야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면 또 나를 애처럼 보진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헷갈린다. 도저히 그의 생각을 모르겠다. 역시 드래곤이란 종족은 이해가 불가능한 생물인 건가.

나는 괘씸한 그의 허벅지를 손가락을 꽉 꼬집어주었다. 물론… 살이 잡히지도 않고 근육이 어찌나 단단한지 잡히지도 않았지만.

“지금 유혹하는 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해달라는 말 한마디면 기쁜 마음으로 해줄 수 있다.”

그랬는데 이 드래곤이 또 어이없는 말을 투척해서 헛웃음을 뱉었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데 이걸 유혹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널 어떻게 기쁘게 해줘야 할지 그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저 천장에 줄을 묶어 그 위에 매달린 채로 하는 건 어때? 꽤 스릴 있는 걸 좋아했잖아? 아니면…….”

“그 입 다물어욧!”

나는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바닥으로 파이의 요망한 입을 잽싸게 덮었다.

진짜, 뭐라는 거야! 그런 이상하고 야한 생각이나 다 하고!

그런데 가볍게 눈웃음을 치는 그가 내 손목을 잡아 확 당긴다. 그 바람에 나는 그의 허벅지 위에 풀썩 주저앉게 되었다. 그것도 마주 본 채로.

“아니면 이렇게 내 위에서 하는 건 어때? 여성에겐 이 체위가 좋다던데.”

말하면서 은근슬쩍 허리를 손으로 감싸서 옆구리를 가볍게 쓸어 올린다. 파이의 야릇한 손길에 몸이 움찔거리면서 반응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보다 그의 눈꼬리가 살짝 쳐진 부드러운 미소에 심장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

지금 이 남자, 파이 맞아?

“파, 파이가 이… 이런 야한 생각만 하는 변태일 줄이야! 와, 난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변태라니. 섭섭한 소리를 하는군.”

“세상에, 만날 감정 하나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그런 음란한 생각이라니!”

“무슨 말이야?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그리고 내 머릿속에 너와 결합할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된 건 다 너를 위해서다.”

“…벼, 변태! 이 음란마귀!”

“그리고 지금 나보다 네 체취가 더 진해졌어. 느낌이 꼭… 흥분한 것 같은데?”

파이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내 하체에 멈췄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나른한 목소리가 매우 야했다. 그 관능적인 분위기에 입안이 바짝 마른다.

아까부터 진짜 파이답지 않은 말을 계속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다. 머리가 어질어질. 심장은 쿵쾅쿵쾅. 눈가는 화끈 달아올라 뜨거워졌다.

“아, 아니! 자꾸 이상한 말 하지 말라니까!”

“이상한 말이라니. 좋아서 하는 말이야. 네 여기 아래에서 풍기는 향이 너무 좋아서. 드레스가 방해되는데 벗는 게 좋겠군.”

“…헉! 하, 하지 마!”

반항은 소용없었다. 등 쪽에 코르셋 조이듯 끈으로 엮어놓은 줄이 그의 손길 한 번에 스륵 풀렸다. 드레스에 코르셋이 내장되어 있는 최신 디자인이라 간편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 화려한 드레스가 벗겨지는 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가 두 손으로 가볍게 드레스를 쥐어 앞으로 당긴다. 그러자 무슨 콩 껍질 벗겨지듯 드레스가 앞으로 훅 내려가 뽀얀 젖가슴이 훤히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으… 이러면…….”

“왜? 나보다 더 야한 생각을 하는 건 아무래도 너 같군. 드레스가 불편할까봐 벗겨주는 건데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갛지? 꼭… 새빨갛게 잘 익은 딸기 같군.”

아까부터 자꾸 눈웃음을 치는 그가 붉은 혀를 내밀어 제 아랫입술을 할짝거렸다. 게다가 말끝을 길게 늘이고 야릇한 억양으로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너무 유혹적이다.

그의 반짝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조금 더 낮게 가라앉아 어두워진다. 그러더니 내 턱을 훑고 목과 가슴 아래로 시선을 내리는 그 느릿한 움직임에 뱃속이 자글자글 끓어오른다. 어쩐지 손끝으로 피부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강렬해서 아찔해졌다.

“마음에 들어. 내가 남긴 자국들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서. 피부가 약해서 걱정했는데 이것만큼은 괜찮네.”

“읏! 아… 파, 파이.”

조심스럽게 내 옆구리를 감싸 잡는 파이의 손길에 또 흠칫 놀랐다. 내 몸이 뜨거워서인지, 아니면 그의 손이 차가워서인지 모르겠다. 그의 손바닥이 닿는 곳이 서늘해져서 허리가 바짝 세워진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가슴 주위와 배에 잔뜩 새겨진 붉은 자국들을 가볍게 지분거린다. 그 접촉 때문에 점점 감각이 예민해졌다.

아주 느릿하고 섬세하게 살결을 매만지는 손길이 가벼우면서도 정중했다. 그러나 내 몸은 그의 진지한 모습과 반대로 점점 더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아직 드레스에 가려져 있는 속옷이 조금씩 젖어가는 느낌이라 그 야한 감촉들이 영 달갑지 않았다.

“으… 파이, 아, 아래가 젖어요. 자꾸 파이가 만지니까, 젖어서 이상해… 끈적하고… 아아, 흑, 파이…….”

그의 손에 잡힌 내 허리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하지만 그럴수록 파이의 손이 더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게다가 자꾸만 불쑥불쑥 찾아오는 아찔한 열기가 정수리를 찌릿하게 울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속옷 안쪽의 여성지가 제멋대로 꼬물거려 젖어버린 속옷 위를 스칠 때마다 더운 숨이 훅 뱉어진다.

간지러워…….

“파이, 하지 마요… 응? 파이… 아!”

움찔거리는 엉덩이를 뒤로 슬쩍 빼면서 허리를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그가 내 엉덩이를 답삭 잡아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이미 축축하게 젖어버린 속옷이 그의 피부에 닿아 꾹 눌렸다.

그런데 느낌이… 조금 익숙하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내 여성지의 굴곡에 딱 들어맞는 둥근 느낌이 꼭… 아까 밖에서 먹었던 소시지 같은 것이… 헉!

동시에 파이의 눈빛이 여유롭던 아까와 사뭇 다르게 급격히 가라앉았다. 내 속옷 아래 깔린 그의 살덩이가 갑자기 꿈틀거리는 바람에 흠칫 놀랐다. 엉덩이를 뒤로 빼려고 했으나 파이의 손이 도망가려는 내 엉덩이를 꽉 누르고 있어서 실패.

“이, 이거… 이건 좀…….”

“…왜. 싫어? 네 몸은 이미, 나만큼 준비가 된 것 같은데. 벌써 이만큼… 젖었어.”

파이의 호흡도 파이의 흔들리는 눈동자만큼이나 거칠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다리 사이에 꾸욱, 눌리는 단단한 굴곡의 느낌이 아찔한 전율을 생성해냈다.

쾌감이 심장이며 머리까지 온몸 여기저기를 들쑤신다. 자꾸만 눈앞이 흐릿해져 제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한 번… 아니, 두 번 그에게 길을 내어줬던 속살이 제멋대로 옴죽거렸다. 그럴수록 똑바로 앉아있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금은, 하아… 싫어요… 너무… 아직, 낮인데…….”

멀어져가는 이성을 겨우겨우 붙잡아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끙끙 신음하며 자꾸만 호흡이 가빠져 끊어지는 말을 힘겹게 뱉어냈다.

역사는 밤에 치러지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계략에 홀랑 넘어갈 수 없어! 이렇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면 난 끝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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