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뭐, 뭐라고요?”
이제 시작이란다. 그럼 조금 전에 한 일들은 다 뭔데? 무, 물론 아쉽긴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고야 말았다.
내가 황당하게 그를 올려다보자, 그 역시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보았다. 그러더니 이로 내 코를 살짝 깨무는 바람에 또 흠칫 놀랐다.
“읏! 뭐 하는 거야?! 자꾸 그렇게 물 거예요?”
세게 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묘하게 잡아먹히는 기분이라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괜히 투덜거리면서 손끝으로 코를 슥슥 문질렀다. 그러자 내 손목을 잡아 내리고는 입을 맞춰왔다. 곧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뜨거운 키스를 퍼붓는다.
“으응… 으, 흐…….”
순간 소름이 훅 끼쳐왔다.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미 기운이 빠진 상태에서 그 짜릿한 감각이 또 전신에 퍼져 조금 힘에 부쳤다. 벌어져있는 내 다리 사이에 그가 아직 머물고 있어서 어쩌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그럴 때마다 질에서 꿀렁, 미끈하고 뜨끈한 액체가 줄줄 흘러나온다.
으으, 이게 다 뭐야? 이상해! 그런데도… 또 이상하게 좋아.
키스만 하면 꼭 달콤한 초콜릿을 먹은 것처럼 행복해졌다. 키스라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날아갈듯 좋아져서 감당되질 않았다. 뇌가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리는 기분.
키스에 집중하면서 오갈 곳 없는 팔로 그의 목을 감싸 더 당겨 안았다. 그리고 질척한 소리를 내면서 얽혀오는 그의 혀에 반응하며 열심히 호응했다. 다디단 사탕이 녹아내려 진득하게 들러붙는 것처럼.
“좋은가?”
“응… 응, 더… 해줘. …아니, 잠깐만?”
말랑하고 부드럽고 촉촉하고 두툼한 그의 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쑥 빠져가서 아쉬워졌다. 그 마음을 담아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다가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더, 더 해달라니? 어머, 어머 치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파이는 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다는 것처럼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다시 몸을 밀착해 온다. 그 사이, 하필 딱 미끈한 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여성지에 그의 굵직한 살덩이가 내려앉는다. 그러더니 그가 삐뚜름하게 웃으며 일부러 꾹 누르는 바람에 또 내장이 크게 요동을 쳤다.
“그래. 솔직해야 우리 치즈답지. 방금 한번 했으니까 이번엔 조금 더 수월할 거다. 다리에 힘 빼야지. 옳지. 잘했어. 그럼 들어갈게?”
“…아, 자, 자, 잠깐!”
미끈한 기둥이 주륵 아래로 내려가 정확하게 질구에 꽂혀들었다. 그러더니 마치 한입에 삼켜지듯 살덩이 절반이 내 안으로 쑤욱 밀려 들어온다.
밀어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진입해오는 뜨거운 살덩이. 게다가 진짜 사정을 한 이후라 그런지 안이 녹진하게 젖어 있어서 그의 움직임이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한번 길을 터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까처럼 막 부담스럽진 않았… 아니 그래도 버거워!
“아… 아읍, 으으응…….”
“…그래도 좁긴 하군.”
커다란 물건을 비좁은 곳에 꾸역꾸역 욱여넣는 느낌. 느릿하게 밀려들어오던 그가 막히는 구간에서 다시 뒤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질구에 귀두 끝을 걸쳐놓다가 내벽의 자잘한 주름들을 곧게 펴면서 꾹꾹 저를 밀어 넣는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동시에 아릿한 쾌감을 전해주니 또 허리근육이 파드득 춤을 춘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꽉 감싸 쥐었다. 허리에 감은 다리를 다시 고쳐 감으려고 움직이다가 파이가 흠칫 놀라서 나까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둘 다 움직임을 멈추고 바짝 굳은 채 서로 동그랗게 뜬 눈으로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풋, 하고 웃어버렸다.
“파이 표정… 표정이… 픕.”
오늘 진짜 파이의 낯선 표정을 보는 것 같다. 꽤 집중하다가 허점을 찔린 사람처럼 당황한 표정이라니.
늘 상상만 했었다. 그의 이런… 진짜 사람다운 얼굴을. 그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면, 행복한 웃음을 그리면 어떤 모습일까? 진심으로 나를 사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빤히 내려다볼 때는 과연 어떤 얼굴일까?
그랬는데 그걸 이제야 진짜로 보게 될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저릿한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눈빛과 더불어 자연스러운 표정들.
그래서 그런가? 갑자기 막 혼자 웃다가 감격에 겨워서 그러는지 눈가에 눈물이 몰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내가 웃다가 우니까 파이가 또 얼굴을 잔뜩 구기면서 손가락으로 눈가에 매달린 물기를 닦아내주었다.
“감정이 급변하는 건 나아지질 않는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래. 다 내 탓이다. 내가 나쁘지. 나도 안다.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듯 앞으로 잘할게. 그러니 나를 용서해라.”
말은 침착하게 뱉어내는 그가 어딘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미묘하게 안달 난 표정이다. 그러더니 하체를 꿈틀거려 내 안에 담긴 그의 살덩이가 조금 더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왔다.
아아, 확실히… 하면 할수록 그 기분 좋은 희열을 받아들이는 게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말이 쉬워서 익숙한 거지. 내 몸을 반으로 뚝 쪼개버릴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압박감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파이 하는 거 봐서요.”
뭘 잘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고, 뭘 용서하라는 건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 지독하고 대단한 열통에서 벗어나면 다시 물어봐야겠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 온몸으로 그를 받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대체 이 남자는 뭐야? 체력이 밑도 끝도 없어!
“아, 아흑! 망할, 파이! 그만… 하아, 윽!”
“다 했어. 조금만 더. 괜찮아. 후우… 괜찮아. 다 왔다. 이제 끝나.”
끝나기는 개뿔. 대체 몇 번째인지 세지도 못할 절정이 찾아와 얼마나 몸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을 때까지 나를 괴롭히던 그는 절대 끝내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고 사정사정하는데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결국 참다못해 커다란 울음을 터트리고 나서야 그가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물론 아쉬움을 한가득 품은 채 한탄하기는 했지만.
“체력적인 문제가 있을 줄은 몰랐군. 아직 한참 멀었는데. 이런 큰 문제점이…….”
나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거리면서 위로해주던 그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아까는 거의 끝나간다고 했던 말이 다 거짓이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절대적으로 다시는 그와의 정사를 시작도 하면 안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내 목숨은 내가 챙겨야지. 아무렴.
* * *
그날은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해의 가을이었다. 나는 아카데미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막대사탕을 쪽쪽 빨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막대과자의 날?”
“응. 내일이 11월 11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막대과자를 주면서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래.”
“오호? 고백이라고?”
“물론 키워주셔서 감사의 의미로 부모님께 드리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우정으로 나눠주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내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날이랄까?”
나는 레이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막대과자의 날이라. 흐음… 고백이란 말이지?
“레이라. 너는 네 집사한테 주겠네?”
“물론이야. 너는 네 키다리 아저씨에게 줄 거잖아?”
레이라는 저 옆 나라 왕국의 귀족이라고 했다. 그리고 레이라가 좋아하는 남자가 바로 저택의 관리를 도맡아 하는 집사라고.
집사와 귀족 영애의 사랑 이야기라. 애틋하긴 한데 저러다가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귀족이 집사 나부랭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면 집안에서 반대가 엄청 심할 것 같은데. 내 일이 아니니까 상관은 없지만, 친구라서 걱정이 된다.
나는 아카데미에서 우리 파이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사실 늙은 드래곤이긴 하지만 그의 정체는 비밀이니까. 그리고 뭔가 내 아버지라고 하는 것도 싫고, 딱 후견인 정도가 적당하다고 여겨서 그렇게 말했다. 다행히 파이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었으니까.
“흐음, 한번 도전해볼까?”
또 차일 게 불 보듯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념일이라고 하니 또 솔깃하다. 그리고 뭔가 기념일 핑계로 뽀뽀도 한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음심을 가득 담은 계산이 머릿속에 착착 세워졌다.
“막대 과자면, 직접 만들어야 하나?”
“직접 막대과자에 녹은 초콜릿을 굳혀서 거기에 장식을 해도 되고. 나는 이따 수업 끝나면 재료 사러 가려고 해. 요즘에는 아예 만들어진 것도 포장해서 팔더라.”
“나도 같이 가, 레이라.”
“넌 키다리 아저씨가 수업 끝나자마자 데리러 오잖아?”
“…그 전에 빨리 다녀오면 돼.”
그 당시만 해도 저택에서 아카데미까지 매일 통학을 하던 시기였다. 딱 수업 끝나는 시간에 아주 정확히 맞춰 데리러 오는 파이는 단 한 번도 늦게 온 역사가 없었다. 수업 종이 땡, 치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오는지.
다행히 오늘따라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버렸다. 아마 선생님도 막대과자를 사러 가야 해서 그랬나 보다.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나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아하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레이라와 함께 수도 번화가로 향했다. 그리고 과자 집에 들어갔더니 사람이 얼마나 바글바글한지. 아카데미 원복을 입은 학생이 대부분이긴 했다.
세상에, 나만 몰랐네? 다들 이런 걸 챙기고 있었던 거야?
“꺅! 레이라!”
“아, 안 되겠다. 이따 밖에서 만나. 여기 사람이 너무 많…….”
결국, 인파에 휩쓸려 레이라와 떨어져 버렸다. 덕분에 그 낯선 장소에서 홀로 떨어져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슬프게도 입구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 나보다 키가 큰 학생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어? 치즈?”
그때 바로 옆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리브엘?”
리브엘은 나보다 두 살 많은 남학생으로 우리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학생회장이었다. 매번 볼 때마다 초콜릿이 떠오르는 짙은 고동색의 부드럽고 달콤한 눈동자. 녹차 아이스크림과도 같은 예쁜 녹색 머리카락. 그리고 파이와 다르게 뽀얀 피부를 자랑했다. 게다가 레이라와 같은 왕국의 귀족이라고 했다. 어디 공작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안녕, 리브엘? 너도 막대과자 사러 왔, 으악!”
갑자기 누군가의 묵직한 가방에 치여 옆으로 쓰러질 뻔했다. 찰나에 다행히 리브엘이 나를 잡아줘서 넘어지진 않았다. 아니 뭐 나한테는 방어마력이 담긴 귀걸이가 있어서 넘어져도 상관없긴 하지만.
“괜찮아, 치즈?”
“응. 에고고… 정신이 하나도 없네.”
“막 수업이 끝나서 더 정신없을 거야. 우리 조금 이따가 들어올래? 사람들 좀 나가고 나면 한가해질 것 같은데.”
“다 팔리면 어떡해?”
“여기는 다 떨어지면 바로바로 만들어서 괜찮을 거야.”
파이가 오기 전에 사야 하는데. 큰일이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내 키가 워낙 작기도 해서 막대과자의 그림자도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리브엘의 손에 이끌려 과자 집을 겨우 빠져 나와 상점 근처에서 기다렸다.
레이라는 무사할까?
“그렇지 않아도 치즈 널 만나고 싶었는데 잘 됐다.”
짙은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손으로 쓸어 넘기는 리브엘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래서 나는 눈동자를 또륵 굴리고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