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축 늘어지는 몸이 침대에 반쯤 파묻혔다. 약간 서늘한 침대시트가 피부에 닿아 시원해진다. 기운이 쭉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다.
지쳤어. 난 이제 끝이야. 아, 힘들어.
“응… 파이, 나… 흑. 아니, 파이?”
나는 막 기운이 빠져서 축축 늘어지는데 파이는 아주 쌩쌩해 보였다. 벌어져 있던 내 허벅지를 더 벌리고 무릎걸음으로 더 다가와 하체를 밀착해온다. 그리고 굵직한 기둥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축축하게 젖은 밀부위에 얹어놓는다.
말랑한 촉감과 단단함을 자랑하는 거대한 살덩이가 여성지에 내려앉아 살살 어루만지듯 아래위로 문질러왔다. 파이가 움직일 때마다 자궁이 터질 것 같은 열기에 휩싸였다. 서로 다른 감촉의 살끼리 밀착하는 느낌도 낯설다. 자꾸만 내벽이 제멋대로 꼬물거리는 움직임도 어색하다.
허리근육이 절로 꿈틀거리고 자극에서 벗어나려 엉덩이를 이리저리 피했다. 그때마다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감각이 턱밑까지 차올랐으나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이상해요. 파이…….”
“응. 나도 이상해.”
“…나 장난 아녜요. 진짜라고.”
시야가 파르르 떨려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투덜거렸다. 그러자 파이가 상체를 숙여와 나를 조심히 품에 안고 입을 쪽, 맞춰왔다. 그 입맞춤이 또 얼마나 달콤한지. 진짜 꼭 연인 같은 느낌이다.
물론 행동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채다. 그것도 지금은 얼마나 심각한 표정인지. 꼭 내가 아카데미 기숙사로 보내 달라고 떼를 쓰던 그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질척거리는 접합부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남자야. 나는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다리에 힘을 빼. 내 허리에 감아도 좋고.”
허공에 떠서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그의 말처럼 허리에 감았다. 그러자 더욱 그의 남근이 내게 밀착되어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치즈.”
“으… 으응?”
“어제 그런 질문을 했지. 언제 끝나냐고.”
…아, 어제. 그랬었지. 거의 막 시작할 때였나?
저 거대한 살덩이를 내 안에 전부 품고 나서 물어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응. 물어봤어요. 어제… 흐응, 근데 왜요?”
“꽤 오래, 생각보다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미리 말해두려고.”
“…네?”
설마 날 죽이려고 이러나? 싶어서 기겁했다. 그 순간 묵직한 살덩이의 뭉툭한 끝이 녹진하게 젖어있는 질구를 열고 안으로 진입해왔다.
순간 배가 확 조여들었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두 손으로 그의 옆구리를 답삭 잡고 호흡을 천천히 골랐다.
“긴장 풀어, 치즈.”
“으흐윽! 자, 잠깐!”
“…진정해. 하아… 치즈. 괜찮다. 힘 빼야지.”
“아, 아까부터, 자꾸, 괜… 괜찮다고, 혼자, 말하고!”
나는 괜찮지 않다고! 굵기는 아까의 손가락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배려가 전혀 없는 크기라고!
목소리가 다 갈라진 채로 높은 신음이 멋대로 흘러나올 만큼 이성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하체에 힘을 빼려고 하는데도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냐고.
입구에서 얼마 들어오지 못한 살덩이가 다시 뒤로 물러서는 것도 버겁다. 빈틈 하나 없이 꽉 물린 그것이 다시 내벽을 밀고 들어올 때마다 턱이 부서져라 이를 한껏 깨물었다.
어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역시 그 낯선 자극과 쾌감은 꿈이 아니었어.
“아, 으응, 파이… 파이, 흑!”
파이는 침착하게 거대한 남근을 내 안에 조금씩 밀어 넣는다. 그러면서 고개를 숙여와 입을 맞춰왔다. 그가 혀로 가볍게 입술을 핥아왔을 때 알았다. 내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뜨거운 혀로 핥아준 그가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어 부드럽게 빨아낸다. 그러더니 다시 손으로 뒷덜미를 감싸 잡고 손끝으로 두피를 살살 문질러왔다.
머리를 감겨줄 때 마사지를 하는 세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익숙한 손놀림이 전해지자 그나마 긴장이 조금 풀어져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든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파이가 허리를 조금 강하게 밀어 붙였다.
“아흑!”
생리적인 현상으로 흐르는 눈물이 찔금 배어나왔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그의 옆구리를 더 세게 잡아 쥐었다. 손톱을 매번 정리해주는 파이 덕분에 날카롭진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갑자기 키스를 퍼부으며, 파이가 허리를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도 모자라 가슴을 잡아 쥐어서 손가락으로 유두를 꽉 잡아 비틀었다. 그 바람에 온 몸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 같았다.
“으, 흐응!”
“하아… 그만 좀 물어. 아주 꽉꽉, 난리도 아니군.”
그가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내 눈을 삼킬 듯 응시한다. 하지만 파이가 전해주는 지독한 전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감각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다.
어제처럼 뿌리 끝까지 밀어 넣고 멈추는 행위와는 달랐다. 아예 그 순서를 삭제시킨 듯 빠듯하게 맞물린 내벽을 이리저리 들쑤시고 헤집으며 격렬하게 긁어대기 바쁘다.
견딜 수 없는 과한 자극이 연달아 치솟아 오르면서 시야와 머릿속이 몇 번이나 홧홧해졌는지 모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내장이 오그라들 정도의 압박감이 밀려와 몸이 짓눌리는 감각.
조금 난폭하다 싶은 움직임에 나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의 단단한 치골이 흥건하게 젖은 하체에 쩍, 쩍, 들러붙었다.
“흐, 앙, 앙, 아… 아!”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쾌감이 한 번에 폭발하듯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여 백지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허리가 활처럼 크게 휠 때에 그가 내 안에 깊이 들어온 채로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더니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잔뜩 부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왔다.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나긋나긋한 입맞춤으로.
“또 혼자 가버리고… 못된 아이니 더 혼나야겠어. 나는 꽤 참고 있는데 말이야.”
“…누, 누가 참으랬어? 그리고 이건 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고! 아… 읏! 파이, 파… 앗!”
아직 호흡조차 전부 고르지 못했는데 그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잔뜩 흥분한 질이 제멋대로 조여들었다. 내벽이 뜨거운 살덩이에 더 진득하게 들러붙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살이 딸려나가는 느낌이다.
다시 한 번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도저히 감당되지 않을 열기에 곧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윽!”
그랬더니 그가 허리를 움찔거리면서 묵직한 신음을 흘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의 야릇한 신음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이미 시야가 흐릿해져서 하나도 보이지 않아 그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던 것이 아쉬울 뿐.
내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처럼 파이도 허벅지를 바르르 떨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은 그가 갑자기 하체를 격렬하게 치댄다. 순간 견딜 수 없는 진한 쾌감이 몰려와 고개를 뒤로 확 젖혔다.
“하앙! 아, 아읏!”
어느 순간 그가 내 안 깊은 곳까지 찌르듯 제 살덩이를 전부 밀어 넣고는 그대로 멈춰 섰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목을 긁는 것처럼 으르렁, 울부짖기까지. 게다가 그 거대한 남근이 내 안에서 크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져 어리둥절했다.
설마, 끝난 건가……?
끝없이 치솟던 쾌감이 공중에 뜬 깃털처럼 살랑살랑 내려가 안정을 되찾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던 파이가 멈추니 후끈 달아올랐던 공기도 제 적정온도를 찾아 내려갔다.
그런데 그가 가만히 있는 모양새가 어째 좀 이상했다. 아까는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한번 절정에 올랐긴 했으나 두 번째는 아니어서 그나마 약간 제정신이 돌아오긴 했다. 뭔가… 아랫배가 조금 뜨끈한 것 같기도 하고?
“파이, 왜 그래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묻자, 파이답지 않게 움찔 놀라면서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으윽,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언제 또 이렇게 안겨보겠냐 싶어서 그냥 내버려 뒀다. 숨을 고르는 듯 가슴팍이 크고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내 몸에서 배어 나온 땀과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땀이 뒤섞이는 것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늘 맡던 그의 익숙한 체취가 더 진해진 것도 좋고.
아직 안에 가득 들어찬 물건의 크기는 여전히 버겁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네. 얌전히 그에게 안긴 채 그나마 평온한 숨을 뱉어내는데, 그가 허리를 뒤로 물리면서 제 것을 조심스럽게 빼낸다.
“아…….”
주르륵, 굵직한 살덩이가 빠져나가자 갑자기 허전함이 몰려오는 것도 잠시. 안에서 뭔가 줄줄 흘러나오는 감각이 이상해서 눈썹 끝을 잔뜩 휘었다.
“으, 파이? 이, 이거 뭐야?”
“…정사의 흔적이라고, 할까?”
아, 그가 사정했나 보다. 오, 그럼 끝난 건가? 으음. 뭔가 좀 아쉬운데.
이래저래 마음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진짜 온몸이 다 산산조각이 나는 것처럼 감당할 수 없는 자극은 좀 꺼려지긴 했다. 하지만 싫은 건 또 아니고.
다리 사이가 텅 빈 느낌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가 한가득 채워져 있을 때가 은근히 그리워지는 내가 밉다. 방금 그렇게 숨이 끊어지는 줄 알았건만. 그랬는데 파이가 목덜미와 어깨에 입술을 파묻고 비벼온다.
“하지, 하지 마요……. 이제 좀, 진정이 되어 가는데!”
“왜?”
고개를 들어 뻔뻔스럽게 묻는 파이의 표정에 심장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 맛있는 음식을 맛봤을 때도, 내가 깜짝 비밀 선물을 사다 줬을 때도. 눈앞에서 재롱을 피울 때도 늘 한결같이 심드렁했던 남자였다. 그런데 이제 좀 사람 같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지금껏 그가 이런 개운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거, 처음 봤다. 뭔가 좋아 죽겠다는 기분을 숨기려고 노력하는데 자기 뜻대로 안 돼서 얼굴 근육을 씰룩거린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낯선지.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잘 몰랐는데 얼굴이 어쩐지 붉어진 것 같기도 하고.
“파이.”
“응?”
“파이 맞아요? 확실해요? 다른 사람 아니지?”
으악! 괜히 물어봤어!
나긋나긋한 봄바람 같던 파이의 표정이 싸늘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바람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날카로운 고드름이 거센 바람에 후드득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기분을 느끼며 몸을 잘게 떨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굳은 얼굴을 조금 풀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많이 아쉬운가 보군. 그래. 내가 방금 미안했다. 너무 빨리 갔지?”
부드럽게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그가 다시 제 말랑한 입술을 내 입술에 가볍게 얹어온다. 타액에 젖어 촉촉한 입술을 뭉근하게 눌러 비비고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 사정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어제부터 너무 참았거든. 내 귀여운 치즈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뭐… 뭐라는 거야?
“네……? 그게 무슨 말…….”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지. 네가 아쉬워해서 다행이야. 조금 자신감이 생기는데?”
아까부터 되게 낯설게 자꾸 웃기만 하는 파이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정말 다른 사람같이 느껴져서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고개를 숙여온 그가 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춰오더니 턱과 목을 타고 내려간다. 자꾸만 목을 핥아와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꼭 사냥감을 포획한 맹수가 먹기 전에 맛을 보는 느낌이라서.
“으, 그만…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말했듯 이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