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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18화 (18/132)

♬  #18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건 물론.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그런 내 표정을 내려다보던 파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웃는다. 어쩐지 얄미워 보이는 그가 고개를 숙여와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어제 목욕하고 나서 하는 걸 원했잖아. 다시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해. 오늘은… 중간에 멈추는 일은 없을 거다.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정말이지… 그가 아까 빈말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이틀씩이나 나를 괴롭혀놓고 다 못했다는 게 사실인 건가? 아니, 싫진 않아. 나도 많이 아쉬웠어. 몇 번 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나다. 지금 파이와 다시 몸을 섞고 나면, 나는 과연 그에게 미련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초반에야 아무것도 모르고 했으니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다.

‘근데 이걸 또 한다고?’

몸을 섞는 행위는 생각보다 더 친밀한 행위였다. 이걸 반복한다면, 결심한 것처럼 파이를 떠나기가 더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

“파… 파이. 나는 좀… 그, 그게…….”

“괜찮아. 긴장 풀어. 아프지 않을 거다. 충분히 풀어주면 어제와는 또 다를 거야. 장담할게.”

그, 그게 아닌데.

파이가 섬세한 손길로 내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아준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뺨에 입을 맞춰주는 그가 다시 머리를 말리는 데 집중했다. 물론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살살 털면서 말려주던 파이가 내 손을 잡아끌어 욕실을 나섰다. 곧 시야에 침대가 들어오자마자 눈썹 끝이 축 늘어져 버렸다.

어떡해……!

저택에서 사용하던 내 침대와 똑같은 모양, 똑같은 쿠션감을 자랑하는 침대. 유난히 오늘따라 참 요사스럽게 느껴진다. 어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탓이었다. 귓가에 젖은 소리가 질척하게 들려오는 느낌이다.

바로 어제, 저것과 같은 침대에서 역사를 치렀지. 두껍고 굵직한 살덩이가 내 다리 사이를 뚫고 들어왔던 감각이 아직도 생경하다. 찢어질 것 같았는데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던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보다 감전된 것처럼 전신이 찌릿찌릿하던 그 느낌을 또 겪게 되는 걸까? 그건 달콤한 꿀을 입에 한가득 부어 넣은 기분이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달달한 향과 맛을 즐기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내 취향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먹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쾌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죽을 만큼 아파서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제보다 더 긴장하는 것 같은데.”

침대 근처까지 나를 데리고 간 파이가 나를 두 팔로 안아 들어서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늘 고목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그의 품에 달려들기만 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나를 직접 안은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겪는 일들을 이틀 사이에 너무 많이 경험한다. 머리에 과부하가 오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괜히 부끄러워져서 도저히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떡해… 난 몰라.’

침대 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올라간 파이가 커다란 침대 중앙에 나를 조심히 내려놓는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왔다. 그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내 입술을 혀로 할짝거리면서 뒤통수를 손으로 받쳐 들어 올린다. 그리고 내 목덜미에 베개를 집어넣는다. 푹신한 베개에 뒤통수가 닿아 편해진 자세에 긴장감이 살짝 풀렸다.

“흡!”

하지만 방심할 새가 없었다. 그의 손이 어느새 목덜미를 쓸고 앞으로 내려와 가슴을 부드럽게 감쌌다. 옆구리를 간질이듯 쓰는 손끝. 허리가 자연스레 휘었다.

“응… 흐으…….”

아랫입술을 지분거리는 혀가 요망하게 움직인다. 얇은 피부막 아래로 스며드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그 사이로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온 두툼한 혀끝이 입천장을 쓸었다. 기침이 나올 것 같은 묘한 자극이 사방으로 퍼졌다.

어제 키스를 몇 번 해보긴 했다고 막 새로운 감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는 쾌감도 아니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허리와 엉덩이가 절로 튕겨졌다.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내 위에 올라탄 그의 단단한 허벅지가 양쪽에 닿아서 숨을 삼켰다. 그의 하체가 내 몸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어서.

“으, 읍, 잠깐……!”

“…왜.”

가슴팍을 밀어내면서 고개를 살짝 피하자, 파이가 거친 숨을 토해내면서 불퉁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면서도 내 가슴을 쥔 손은 열심히 조물조물 주무르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손바닥에 눌리고 문질러지는 유두가 딱딱하게 세워져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다. 심장을 향해 얕게 퍼지는 전율에 솜털마저 바짝 곤두세워졌다.

“너무… 부, 붙지 말아요. 불편해…….”

“그래?”

들썩거리면서 움직이기에 자세를 바꾸나 싶어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몸으로 나를 짓뭉개려는 듯 내 위로 아예 엎드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내 목덜미를 파고들어 손가락을 두피에 찔러 넣으면서 감싸 쥐었다.

그의 하체가 내 골반 위를 꾹 눌러온다. 아랫배에 단단한 기둥의 굴곡이 여지없이 느껴져 울상을 지어보였다.

아니, 난 좀 더 피해달라고 한 건데 왜 그러는 거야!

나는 울상을 지었다.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적나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됐지?”

“이… 이걸 말한 게 아니었…….”

“이게 더 편할 텐데? 긴장 풀어. 그러다가 다칠까 봐 무섭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가 고개를 숙여 이마와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춰온다. 두피를 감싼 손가락을 살살 움직여 자극하니 머릿속이 온통 엉망진창이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오는 거람?

“그런데요… 파이?”

“응?”

“파이는 왜, 으으… 아무래도 이거 좀 이상한데 아무튼, 왜 안 씻어요? 생각해보니까 나 여태 파이가 씻는 거 못 봤어요.”

“아아. 마력을 사용하면 간단한 것을 굳이 물을 묻혀가며 씻을 이유는 없지.”

“…그럼 나도 마력으로 씻겨주면 되잖아?”

“인간은 청결과 위생이 중요하다고 했다. 감염에 취약하기도 하고. 잘 씻고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대단한 육아법 나셨네요. 그래서 그렇게 씻는데 몰두하고 흘린 음식을 못 먹게 한 이유가 그거 때문이었나 보다.

아니, 워낙 또 파이의 성격 자체가 유난히 먼지에 예민하고 깔끔하기로 유명하니까. 그래서 가끔 파이가 자신을 찾아오는 친우들에게 험한 말도 일삼긴 했다. 나한테 손만 대려고 해도 병균 옮는다고 근처에도 못 가게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십년 전인가? 내가 아저씨라고 했다고 되게 충격 받아 좌절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도통 안보이네? 정말 삐졌나?

“파이, 파이.”

“응?”

파이가 조금 거친 질감의 제 뺨을 내 볼에 비벼왔다. 그러더니 귓불에 입을 쪽 맞춰와 한쪽 어깨를 살짝 움츠리면서 입술을 잘근 씹었다.

“으… 간지러워요.”

“적응해야지. 그런데 왜?”

“혹시 그, 십년 전에 내가 아저씨라고 했다가 세상 다 무너진다는 얼굴을 한 친구 말이에요. 파이 친구.”

그러자 그가 귓불을 혀로 핥아오다가 멈칫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붉은 눈동자를 아래로 굴려 나를 쳐다본다. 그 눈빛이 또 갑자기 사나워져서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친구? 아저씨? …누구였더라.”

“기,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어… 아! 하얀 머리였다! 맞아요! 약간 은발에 파란색 눈동자였는데, 자기는 여태껏 어디 가서 아저씨라는 말 못 들어봤다고… 파, 파이?”

순간 살벌한 냉기가 그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와 또 소름이 일었다.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퍼지는 서늘한 느낌에 온도가 훅 내려가서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파이가 눈을 더 가늘게 뜨며 냉소를 섞었다.

“글쎄. 기억이 나질 않는군.”

이 이상 입을 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꼭… 3년 전인가? 아카데미에 출퇴근하던 시절. 막대과자의 날에 파이에게 사다주려고 막대과자를 사려고 가게에 갔었을 때. 나를 데리러 온 파이가 그날 우연찮게 만났던 리브엘을 노려보던 그 눈빛과 닮아있었다.

나는 저 눈빛의 뜻을 안다. 매번 마차로 나를 데려온 파이가 내 주위를 훑어보던 그 눈빛이었고, 그것이 경계의 눈초리라는 것을.

레아라가 그랬거든. 마치 자기가 키운 소중한 화단에 누가 쳐들어올까봐 지키고 있는 대형견 같다고. 그래서 대형견보단 늑대가 맞느니, 악어를 지나 사나운 곰이라느니. 삼천포로 빠졌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무튼 결론은 저런 눈빛일 때는 건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거다. 경계중인 짐승을 잘못 건드렸다간 날카로운 이빨에 콱 물린다고 했으니까.

“네. 아닌가 봐요. 제 기억이 잘못된 듯. 그런 사람 모르… 꺅!”

갑자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파이가 이를 세워 살을 꽉 깨물어서 기겁을 했다. 세게 문 건 아닌데 방금까지 짐승의 뾰족한 이빨에 물리는 걸 상상하고 있어서 더 놀랐다.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실 정도로 너무 놀라했더니, 파이도 정색하던 표정을 풀고 미간을 확 좁혔다.

“…과했군. 미안.”

이 남자가 원래 이렇게 사과를 잘 하던 사람이었나? 아니, 애초에 말 자체를 많이 하던 남자가 아니었다. 내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남자도 아니었고.

그래서 너무 낯설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그러더니 다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방금 그가 깨물었던 곳을 혀로 할짝할짝 핥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이건 다른 의미로 이상해!

“파이, 흐… 가, 간지러워요. 앗.”

솔직히 정말 세게 깨문 것도 아니라 아프지도 않다. 그래서 그 간지러움이 더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곤란하다.

간지럽기만 하면 다행이지. 아까 욕실에서부터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해서 전신의 신경이 예민하게 살아난 채다. 그래서 조금만 건드려도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아픈 건 아닌데… 감각이 너무 자기 일을 충실하게 하는 느낌?

“으응… 응, 그만… 그만 핥…….”

목덜미를 벗겨먹으려고 작정했는지 진득하게 핥던 그가 갑자기 입술로 피부를 살살 문지른다. 그러더니 약간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쪽, 빨아내는 이상한 통각에 이를 악물었다.

“아파… 흐윽.”

“맛있어서 그래. 빨간 과즙이 배어나올 것 같아.”

뜨거운 숨을 토해내는 그가 방금 통증을 주던 그곳을 또 혀로 살살 핥아왔다. 그리고 또 근처에도 그와 비슷하게 따가운 자극을 몇 번 더 주고 나서야 천천히 쇄골로 내려왔다.

움푹 들어간 쇄골과 그 아래 가슴으로 내려가는 길목마다 이상한 통증을 남기고 있었다. 허리가 움찔 떨릴 만큼. 그런데 그게 또 미묘하게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느낌이었다.

바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겨우 다잡아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히익?”

쇄골 아래쪽에 붉은 자국이 수두룩하다. 꼭 벌레에 물린 것 같이.

그것도 그거지만. 파이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와 배와 가슴을 간질이니까 내장이 확 조여든다. 더불어 그의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가슴 윗부분에 안착하자마자 심장이 쫄깃해졌다.

어제도 파이가 내 가슴을… 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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