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물이 그새 식었어. 조금 더 올려야겠군.”
뻔뻔하게 온도 투정을 하는 그가 손가락으로 수면을 톡, 건드리자 갑자기 온도가 확 올라가서 흠칫 놀랐다.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 허리에 단단한 팔을 감아왔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납작한 배를 눌러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
그의 다리 사이로 쏙 들어가는 건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등허리 아래쪽에 말랑한 무언가가 닿는 것이 움찔거려서 내가 더 퍼뜩 놀라버렸다.
“뭐, 뭐야 이거?”
“신경 쓰지 마.”
아니, 신경 쓰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고… 왜 당신이 여기 들어와 있냐고!
이 욕조는 내 전용이란 말이다. 그것도 1인용이고 내가 혼자 쓰기엔 넓지만 저 거대한 덩치가 들어오기엔 상당히 좁은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이는 한 번도 내가 목욕할 때 욕조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저 멀찍이서 내가 오리들하고 노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온수의 열기로 내 볼이 발갛게 익기 시작하면 그때 다가와서 씻겨주곤 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파이가 욕조에 오리들을 넣어준 이유가 혼자 알아서 놀라고 준 거였다. 물론 지금은 내가 알아서 챙기는 아이들이지만.
아무튼 새로운 오리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불편… 조, 좁은데 왜…….”
엉덩이가 그의 허벅지 사이에 꽉 껴서 빠져나가려고 들썩거렸다. 그러다가 말랑하면서 툭 튀어나온 무언가가 엉덩이 골에 꾹 눌린다. 덕분에 그대로 얼어붙어 울상을 지어보였다.
이게 뭔지 안단 말이야. 대체 날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아까 내가 버릇없이 굴었다고 지금 혼내주는 거야?
엉덩이와 등 아래쪽에 눌리는 그것이 꿈틀거려서 흠칫 놀랐다. 동시에 아랫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다리 사이가 확 조여들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이는 손에 들고 있던 곰돌이 타월을 물에 담갔다가 내 어깨 위에 얹어 살살 문질러온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화내지 마라.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한다고 하지 않았나. 뭐가 그리 불만인지 알려주면 고치도록 노력해보마.”
와, 진짜. 나 너무 당황스럽다. 여태 한 번도 지금처럼 나를 달래던 남자가 아니었다. 늘 내가 화를 내도 파이가 눈빛으로 제압을 해서 내가 먼저 지고 들어가곤 했다. 어차피 내가 화낸다고 달라질 인사도 아니라는 걸 잘 알아서 그냥 속으로 꿍얼거리기만 했다. 삐져도 내가 아쉬워서 먼저 기분을 풀었고.
그런데 단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변하나? 아무리 사람이 아닌 드래곤이지만. 내가 드래곤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다지만 지금껏 내가 봐온 파이는 절대 그럴 남자가 아닌데?
혼자 당황해서 얼어붙어있는 사이에 촉촉하게 젖은 어깨 위로 뜨거운 숨결과 말랑한 입술이 내려앉는다.
“아…….”
그리고 살살 입술을 가볍게 쓸 듯 문질러오는 촉감이 순간 너무 야릇해서 나도 모르게 거친 숨을 터트렸다.
뭐야? 뭔데? 갑자기!
그것도 당황스러운데 그의 커다란 손이 내 옆구리를 감싸 잡고 천천히 올라와 허리에 바짝 힘이 들어가 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의 손이 봉긋하게 세워진 가슴을 부드럽게 잡아 쥐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하는 거야, 지금?
“파, 파이.”
“쉿.”
그의 커다란 손에 가득 들어찬 내 젖가슴이 손가락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유처럼 하얀 가슴이 까무잡잡한 손에 의해 조금씩 뭉개졌다. 나는 심장이 고동치는 기분을 느끼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래도 되는 건지.’
나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럼에도 그는 한 손으로 내 배를 감싸 쥐고 여전히 가슴을 쥔 손을 조물조물 주물러댄다. 그 야릇한 행위 때문인지 아니면 뜨거운 물의 온도 때문인지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피어나버렸다.
“아, 아흐… 읍!”
파이의 손아귀에 갇힌 젖가슴이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다. 그래서인지 밀가루 반죽마냥 그의 손가락 사이에 쩍쩍 달라붙었다. 달콤한 벌꿀과 시큼한 레몬향이 가득 담긴 미세한 입자의 거품이 미끌미끌해서 더 느낌이 이상했다. 경황이 하나 없어 어리둥절하면서도 서서히 차올라가는 쾌감에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확실히, 간지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더니 자극에도 예민해. 이러니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절정이 왔겠지. 생각보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군.”
“으, 응, 하… 아!”
물에 젖어 해초처럼 늘어진 내 머리카락을 모아 왼쪽 어깨 아래로 정리해준다. 그리고 드러난 목덜미에 입을 맞춰오는 파이의 뜨거운 숨결에 등줄기가 욱신거릴 정도로 소름이 일었다. 다정한 손길로 배를 쓰다듬던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온다. 물살에 해초처럼 하염없이 흔들리는 밀빛 음모를 가볍게 훑는 자극마저 야했다.
어쩐지 그의 손이 내 은밀한 곳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허벅지를 살짝 모아 꼭 맞붙였다. 그러나 파들파들 떨리는 허벅지 사이를 아주 손쉽게 비집고 들어선 그의 손가락이 밀부 쪽으로 진입해온다.
“아응! 으… 파이! 아아…….”
뒷목이 찌르르 울리는 이상한 쾌감에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허리가 절로 비틀어졌다. 얕게 흔들리는 물살과 수면 위로 둥둥 떠다니는 거품들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더워. 뜨거워.’
연신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음마저 파르르 떨릴 만큼 짜릿한 자극이 쉴 새 없이 전해져온다. 그러다가 음모 근처를 간질거리던 손가락이 조금씩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내가 인지할 수 없을 만큼 느린 속도로 맞붙어 있는 허벅지를 밀어내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 도톰한 피부에 덮여 뾰족 튀어나온 곳에 그의 손가락 끝이 닿았다. 손끝을 이용해 아래에서 위로 가볍게 쓸 듯 문질러오는 느낌이 좀 이상하게 과했다. 뭔가 감각이 나를 잡아먹는 것처럼 조금씩 예민해지는 것 같… 아, 좀, 이건 아니야!
“흑, 하앙. 으으응!”
갑작스레 확 올라오는 전율에 몸을 파드득 떨면서 고개를 크게 휘저었다. 짜릿짜릿한 감각이 한순간 정수리까지 찌르듯 솟구쳐와 시야가 점멸할 정도로 아찔해졌다.
확실히 팔뚝만 했던 그의 살덩이가 내 몸을 뚫고 들어왔던 그곳은 아니다. 위치상 거기는 아니야. 꼭… 소변 나오는 위치인 것 같은데 그럼, 거긴가? 클리토리스?
정말 느낌이 확 달랐다. 삽입을 할 때 거침없이 내벽을 긁어내리던 그 시원한 쾌감과는 달랐다. 반대로 뜨거운 물에 피부가 데는 것처럼 화끈거리는 느낌이 턱 아래까지 훅 치고 올라왔다.
심장이 쫄깃하게 조여들면서 허리가 낭창하게 휘었다. 동시에 질이 수축하고 엉덩이에 힘이 가해져 흑, 울음 섞인 짧은 숨을 토해냈다.
그랬는데 갑자기 몸이 쑥 들려지면서 욕조에서 일으켜져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렸다. 당연히 내 허리에 팔을 감고 있는 파이에 의해 넘어지진 않았다.
“파, 파이?”
“…우선 씻겨줄게.”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져 흠칫 놀랐다. 화가 났나 싶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나를 욕조에 세워둔 파이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곰돌이 타월을 건져냈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그러나 섬세한 손길로 내 몸을 씻겨주었다.
그런데, 왜 하다 말지?
한창 좋았는데 멈추니까 아쉬움이 물밀 듯 넘실거렸다. 그의 손에 잡혔던 한쪽 가슴의 유두가 여전히 빳빳하게 세워진 채다. 다리 사이에는 아까 느꼈던 감각의 여운이 남아 허벅지 안쪽 살이 미세하게 경련하듯 떨렸다.
‘지금 날 가지고 놀기라도 하는 거야?’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나를 대했던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혼란스럽다. 아까는 그렇게 야릇한 손길로 나를 주물럭거리더니 지금은 또 매우 담백하게 씻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거품을 가득 머금은 타월로 팔을 씻기고 서서히 가슴으로 옮겨졌다. 예민해진 유두를 가볍게 쓸고 지나가서 약간 찌릿하긴 했으나 견딜만했다. 다음으로 배를 닦아주는 부드러운 촉감이 간지러워서 배꼽이 저절로 쏙 들어갔다.
“으으, 간지러워.”
그러자 아무 말 없이 씻기는데 집중하던 파이가 피식 웃어서 이유 없이 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왜, 왜 웃어요? 기분 나쁘게.”
“귀여워서.”
“…나 귀여운 거 이제 알았나? 흥.”
괜히 심술이 나서 팩하고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파이가 새하얀 치아를 드러낼 정도로 환하게 웃는다.
세상에, 눈웃음치는 거 좀 봐. 누굴 꼬시려고 저렇게 웃는 거야?
파이가 저만큼이나 크게 웃는 거 또 처음 본다. 어릴 때는 몰라도 현재 내 기억 속에는 없다. 어제도 끽해야 부드럽게 입꼬리만 살짝 올려 미소를 지어준 게 전부였다.
늘 무표정을 가면처럼 쓰고 다닌 남자의 새로운 모습을 이십년 만에 보게 된 충격은 제법 컸다. 그래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 사이에 곰돌이 타월이 허벅지 안으로 쑥 밀려 들어와 흠칫 놀랐다.
“아…….”
나도 모르게 방어하듯 허벅지를 바짝 모아 붙였다. 그 바람에 그의 손이 내 허벅지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파이가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나를 올려다본다. 그 눈빛이 또 어찌나 강렬한지. 한껏 모아 붙인 허벅지가 달달 떨려왔다.
“힘 빼. 괜찮으니까.”
“으… 내, 내가 안 괜찮아!”
“늘 해오던 거다. 야한 생각은 그만하고 씻는 데 집중했으면 하는데? 나는 빨리 씻고 싶어.”
“야한 생각이라니! 누가! 우, 웃겨 진짜?”
“네 얼굴이 다 말해주고 있다.”
그 말에 나는 두 손바닥으로 뺨을 감싸 쥐면서 괜히 억울해 눈꺼풀을 빠르게 팔랑거리며 투덜거렸다.
“너무해……. 자기가 먼저 멋대로 해놓고 또 내 탓이지! 나빠. 진짜 나빠.”
“치즈.”
“윽.”
나직하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 허벅지에 갇힌 손을 꼼지락거리는 야릇한 느낌에 또 울먹거렸다. 결국, 입술을 깨물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다리에 힘을 빼서 살짝 벌려줬다.
다행히 어제처럼 일부러 문질러대진 않아서 긴장을 조금 풀었다. 다리하고 발가락까지 꼼꼼히 씻긴 그가 나를 욕조 가장자리에 앉히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머리카락을 감겨주었다.
단단하고 기다란 손가락이 두피를 꾹꾹 눌러 마사지를 해준다. 목덜미부터 두피 속을 꾹꾹 누르는 강도가 딱 기분 좋게 저릿저릿하다. 목 근육이 말랑하게 풀어질 만큼 시원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가출하면서 이게 제일 아쉽긴 했다. 아카데미에서도 머리를 감을 때 늘 생각나던 마사지였으니까.
“…응?”
그런데 오늘따라 마사지 시간도 짧고 뭔가 급하게 후다닥 끝내는 건 기분 탓이려나?
새로 받은 따뜻한 물로 머리카락을 헹궈내고 세수도 했다. 양칫물로 입도 헹구고 온몸의 거품을 깨끗이 씻겨내면서 목욕이 끝났다. 처음 보는 낯선 수건으로 물기를 조심조심 닦아내고 젖은 머리카락도 탈탈 털어서 말렸다.
“파이. 내 잠옷은요?”
레어에서 지낼 때는 외출하지 않는 이상 매일 잠옷만 입고 지냈다. 원피스가 아주 간단하고 편했으니까. 그런데 잠옷은 방금 그가 사 온 게 전부일 텐데. 세탁도 하지 않아 섬유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걸 내게 입혀놓는 건 아니겠지?
그랬는데 돌아온 대답에 나는 경악했다.
“잠옷을 왜 입지? 지금부터 어제 오늘 다 하지 못한 일을 할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