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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3화 (3/132)

♬  #3

아름다운 진달래꽃과 같은 예쁜 진분홍색을 머금은 입술을 혀로 살짝 핥았다. 그러자 갑자기 지진 난 듯 몸이 휘청거려서 흠칫 놀라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으앗! 파이!”

“아, 미안.”

그가 내 엉덩이를 감싸 쥔 손에 힘이 쑥 빠져 아래로 쏠렸다가 다시 안아 올려줘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진짜 깜짝 놀랐다. 방심하다가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 찧는 줄 알고. 아까와 다른 의미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에잇, 한창 막 분위기 좋았는데 이게 뭐야.

“왜 그래요? 내가 그렇게 무거웠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런데 어딘지 조금 당황한 파이의 표정이 꽤 낯설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붉은 눈동자에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러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 선명한 눈동자 안에 뜨거운 불꽃 하나가 작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지만 장작을 넣으면 활활 타오를 것만 같은 느낌의 귀여운 불꽃이.

“파이? 파이 눈동자에 이상한 기운이…….”

“누구냐.”

“응?”

“누가 그런 걸 가르쳐줬지?”

분위기가 순간 험악해졌다.

왜?

“뭘요?”

“방금… 네가 내게 한 짓 말이다.”

방금? 입술을 핥았던 것 말인가?

“파이 웃긴다. 그걸 누가 가르쳐줘요? 그냥 파이 입술이 진달래꽃처럼 맛있어보여서 그런 건데?”

“…그런가.”

꼭 무슨 나쁜 짓 하는 학생을 훈계하는 선생님 같다. 조금 얄밉기도 하고.

“다시 해도 되죠? 아니면 파이가 해줄래요? 나 파이한테 키스 받고 싶은데.”

내가 하는 키스도 괜찮지만 기왕이면 그의 키스를 받고 싶다. 오늘 한번뿐인데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라고 속으로만 투덜거리는 사이에 그가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키스는, 자신 없지만 네가 원한다면.”

“파이가 자신 없는 분야도 있었어요? 의외네. 그래도 상관없어요. 나도 처음인 걸?”

나는 그의 허리에 두른 다리를 허공에서 파닥거리며 떨리는 숨을 훅훅 내뱉었다.

아, 긴장돼. 어떡해.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서 혀로 가볍게 핥아 축였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 숨을 고르는 사이, 그가 내 입술을 향해 천천히 접근을 시도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질 때에, 나는 두 눈꺼풀을 느릿하게 감았다. 곧 말랑한 입술이 내게 안착하는 것을 느끼며 허리를 살짝 세운 뒤에 입술을 스르르 벌렸다.

“으응…….”

축축하고 두툼한 무언가가 내 입술 사이로 들어와서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키스가 그렇게 엄청난 행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흡?!”

그건 절대 내 생각만큼 부드럽지 않았다. 한순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거칠고 뜨거운 숨결과 함께 두터운 혀가 내 입 안을 구석구석 찌르듯 거칠게 움직였다. 그 낯선 물체가 입 안의 얇은 점막에 스칠 때마다 전신의 신경들이 비명을 지르며 움찔거렸다.

여태까지 나를 대하던 섬세함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던 그의 성격과는 전혀 달랐다. 어딘지 맹렬한 육식동물에게 쫒기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어왔다.

잡혀 먹힌다는 의미, 대충 이해가 갈 것 같았다. 맹수가 먹잇감을 맛보듯, 거칠거칠한 혀가 느릿느릿 온 몸을 핥아댔다. 더운 열기가 전신에 확 퍼져와 후끈거렸다. 찌릿한 감각이 손가락 끝에 느껴져서 간지러워지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꽉 잡아챘다.

숨이, 모자라.

입천장과 점막을 다급히 핥아대는 그가 도저히 떨어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호흡이 달려서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어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러나 내 허리를 감싸 쥐고 있던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당기는 바람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흐, 흣! 흐윽!”

눈물이 눈가 가장자리에 그렁그렁 매달렸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생경한 감각에 매몰되어 호흡하는 방법을 잊기라도 한 듯. 하지만 그의 혀는 떨어지려고 버둥거릴수록 오히려 사냥꾼처럼 더욱 격렬하게 나를 쫓았다.

아니, 내가 생각한 키스는 이런 게 아니야. 아니라고!

결국 나는 두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내리치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겨우 떨어져 나왔다.

“헉, 으… 너, 너무해. 나는, 흑, 처음인데… 배려도 없어요?”

할딱할딱 모자랐던 숨을 보충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코가 시큰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려고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으나, 갑자기 몸이 뒤로 훅 넘어가버린다. 덕분에 나는 기겁을 하며 그에게 답삭 매달렸다.

“꺅!”

푹신한 침대가 내 체중에 깊숙이 눌리고 등이 반쯤 파묻혔다. 내가 잠버릇이 고약하다보니 파이가 더 푹신한 침대로 바꿔준 게 벌써 5년 전이다. 덕분에 침대 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긴 했다.

아무튼 격렬한 키스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침대위로 패대기가 쳐져서 당황스러웠다. 파이가 이렇게 과격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초점이 어긋난 것을 억지로 맞추고 정면을 올려다 보고나서 나는 말문을 잃었다.

“파이……?”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져 있었다. 혼란스럽게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가 정신 사납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뭔가에 홀리듯 눈빛이 흐릿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이 상당히 야릇하게 느껴져서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방금 그와의 짜릿했던 키스가 떠올라서 더 뜨겁게 달아올라버렸다. 숨을 쉬지도 못할 만큼 괴로웠는데 하고나서 생각해보니 기분이 간질거렸다. 아랫배 어딘가가 묘한 기대감에 욱신거리는 것 같기도.

설마 지금 덮치려는 걸까? 당장 날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진짜 무드도 없이 이러면 곤란해! 아직 목욕도 안 했는데!

혹시 몰라서 허벅지를 바짝 모아 붙이고는 두 팔을 겹쳐 가슴위에 얹고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이, 이러지 말아요. 목욕도 안하고 바로 하는 건 짐승 같단 말이야. 나는 첫날밤의 예의를 제대로 지켰으면 해요.”

“…왜?”

“…응? 왜라니? 뭐가요?”

“목욕만 세 번째다. 아침에도 했고, 드레스를 갈아입기 전에도 했다. 그런데 또 하겠다고?”

“그…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난 못 기다려.”

…응? 뭐라고?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꺼풀을 빠르게 팔랑이는 순간에 그가 고개를 숙여와 내 입술을 덮쳐왔다. 마치 맛을 보듯 아랫입술을 물어 쪽 빨아낸다. 달디 단 사탕을 핥는 것처럼.

동시에 그가 한 팔로 내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팔로 내 목덜미를 잡아 쥐었다. 나보다 덩치가 세배는 더 큰 그의 체중에 짓눌리자 아까보다 더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이 남자,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심스럽더니? 아니, 애초에 이럴 성격이 절대 못 된다. 늘 절제된 모습도 그렇고 표정에 변화가 거의 없던 그였다.

그런데 이렇게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의 파이라니. 그의 허기진 표정에서 지독한 갈증이 느껴지는 것 같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응, 흐! 으읍!”

숨이 딸릴 정도로 격렬한 키스에 앓는 소리가 신음과 뒤섞여 흘러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게 내가 헐떡거리면 입술을 떼어내 주니까. 아까처럼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몰아붙이진 않아서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내가 가쁜 숨으로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울 때, 그가 혀로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 빨아냈다. 동시에 뺨과 젖어있는 눈가를 혀끝으로 핥기까지 한다. 그리고 내 입속에 꿀단지를 숨겨놓은 사람처럼 내 입안을 다시 점령해나갔다.

키스란 원래 이런 걸까?

내가 생각한 키스는 봄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는 거였다. 조심스럽게 서로의 혀가 얽혀지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기분을 느끼는 바로 그것.

그런데 이건 두근두근을 넘어서서 누군가 심장을 콱 움켜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마치 전쟁이라도 하듯 공격적인 태도라서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다.

“흐, 읍… 흐응…….”

그가 주는 이상한 감각에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단단한 팔로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들어 매서 허리가 절로 뒤틀려졌다. 그 난폭한 행동에 허리가 들썩거릴 때마다 얇은 슬립 아래의 젖가슴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짓눌렸다.

그 낯선 감각의 느낌마저도 이상했다. 유두 끝이 쓸릴 때마다 뭔가 간질거리고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어서 허리가 잘게 경련했다.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벅차올라 기운이 쭉 빠지기도 했다. 더워져서 그런지 전신에 땀이 배어 나왔다. 목구멍에서는 연신 끙끙 앓아대는 가느다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쾌감이 점점 진해지는 기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상해, 이상하다고!

“하아, 하아… 힉, 읏!”

숨이 모자라 바들바들 떨면, 지독하게 탐하던 내 입술에서 그제야 살짝 떼어준다. 그때마다 살기 위해서 몇 번 빠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폐에 공기가 전부 들어차기도 전에 그가 다시 입술을 삼켜 버렸다. 마치 틈을 주기도 전에 나를 정복하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은 것 같았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힘이 빠진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발버둥을 쳤다. 슬프게도 내 애타는 움직임 따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때마다 더욱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만, 그만!

아카데미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던 날, 오래달리기를 할 때처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그때는 멈춰서 호흡을 가득 머금을 수라도 있었지. 지금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아서 머리가 빙글 돌았다.

더위에 지친 짐승이 오아시스에서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듯 게걸스럽게 흡입하는 느낌이다. 격렬하게 이어지는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 열기로 가득한 입안을 거칠게 휘저어대는 그가 너무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숨결과 살결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체향은 너무도 익숙했다. 듬직한 어깨와 다부진 근육들로 가득한 육체 또한 오래전부터 알던 그 느낌이었다. 변함없이 든든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그의 품.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키스가 길어질수록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바짝 세워지는 느낌이었다. 달콤한 타액에 젖은 그의 혀가 내 입속의 여린 점막들을 사정없이 쿡쿡 찔러온다. 그리고 가볍게 할짝거리면서 문질러올 때마다 뇌가 전부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아랫배와 허벅지 사이가 찌릿하고 간질거렸다.

“으… 으응, 흐…….”

어느 순간 영원히 떨어질 것 같지 않던 그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작은 동굴을 가득 채우고 정신없이 몰아붙이던 혀가 빠져나가자 이상하게도 허전해졌다.

“…파이?”

쾌감에 얼룩진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그의 분주한 움직임이 설핏 보였다. 그리고 옷감이 내 피부 위에 쓸리는 느낌까지.

곧 구릿빛의 단단한 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뜨겁고 야릇한 열기가 내 피부 위에 닿는다.

옷은 내가 벗겨주겠다고 했는데.

기운이 빠져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웅얼웅얼하는 소리만 내 입에서 맴돌고 있었다.

“치즈.”

그의 목소리가 조금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눈물에 젖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려 그의 붉은 눈동자를 쳐다봤다. 아직도 방금 키스의 여운이 남아있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 초점을 맞추기가 너무 힘이 든다.

“응…….”

“다시, 생각해봐. 아직 늦지 않았다. 내가… 내가 만일 너라면 이런 짓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내가 멈출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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