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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73화 (273/277)

273화

쿠릉- 쿠르릉-

"…홀홀… 녀석이 날뛰기 시작한 모양이야."

하늘.

그러니까 태초의 고래의 배 속 저 높은 곳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봐야 하늘에서 파편 조금이 떨어져 내리는 게 고작이긴 했지만, 확실히 놈에게도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녀석이 더 날뛰기 시작했다는 뜻일 게다."

"그렇겠죠."

조급할 것이다.

내가 조급한 만큼 녀석도.

"그리고 조심해야 해."

"뭘 말입니까."

"놈이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 무언가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제 곧 쏟아져 나올 걸세."

"……?"

쏟아져 나온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오, 마침 오는군."

노인이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엔 웬 누런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라운 건.

치이이익-!

노란 액체가 닿은 곳이 빠른 속도로 부식되어 가고 있다는 것.

"…저건…."

"그래. 소화액일세."

"…하."

어이가 없다.

소화액이라니.

"놈이 무언가를 집어삼킬 때마다 저런 액체가 흘러나오기 일쑤였지."

"경험해 봤습니까?"

내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엄. 내가 이래 봬도 이 녀석 배 속에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거든."

"어떻게 됩니까."

"흘흘… 저 액체가 가득 차게 되면 모든 게 녹아 버리지. 그 어떤 것도 남아있을 수 없어."

"그러면 당신은…?"

"에에잉. 나는 빼고오~"

"대단하군요."

"흘흘… 대단하다마다. 그나저나 이렇게 여유 부리고 있을 때는 아닐 텐데? 이제 머지않아서 녀석의 소화액이 바다를 이룰 게야. 그러면 제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버티긴 쉽지 않을거얼?"

"걱정마시지요."

나라고 놀고 있던 건 아니다.

조금 전, 나는 소환체를 소환했다.

그렇게 소환해 낸 스무 마리의 소환체를 시켜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사념의 구체를 캐오도록 지시 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키리리릭! 키륵!

내가 소환해서 퍼트렸던 소환체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들의 손, 그리고 입에는 사념의 구체들이 담겨있었으니.

"호오오올…."

그 광경을 보며 노인이 탄성을 질렀다.

"대단허이…. 참으로 똘똘한 녀석들이야."

"이로서 대충 오십 개는 모은 것 같습니다."

"그렇구먼."

한 마리가 최소 두 개. 혹은 세 개.

그렇게 스무 마리의 소환체들은 순식간에 오십 개가 넘는 사념의 구체들을 모아 왔다.

그렇게 녀석들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소환체들을 시켜 내가 미리 파악해 둔 위치로 보냈다.

"이렇게 하면 빠르게 이곳에 숨어있는 구체들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확실히 그럴 수 있겠어."

그렇다면 이제는 이렇게나 많은 구체들을 파괴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이 안에는 엄청나게 만들 구체들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까지 포함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구체들이 숨어있을지는 쉽사리 가늠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구체를 한 번에 파괴한다면 아무런 피해가 없을 수는 없겠는데.'

하지만 이 구체를 파괴하는 게 확실히 태초의 고래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망설일 수도 없는 상황.

"후우…."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검 위로 오러를 끌어 올렸다.

우우웅!

검이 공명하며 모여 있는 오십여 개의 사념의 구체가 뿜어내는 사념과 충돌을 일으켰다.

자르르르!

나의 오러와 충돌한 구체의 사념이 요동치며 오십여 개의 구체들이 진동하며 서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차르르르르!

당장이라도 껍질을 깨고 나올 알처럼 크게 떨리던 구체들은.

카아아아악!

기어코 조금 전과 같은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구체가 내뱉는 소음에 노인도 미간을 좁혔다.

그런 만큼 구체의 비명 소리는 끔찍했다.

'일격에 끝낸다.'

구체를 향해 검을 움직였다.

검을 따라 오러의 폭포가 구체들을 향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

검을 감싸고 있던 거대한 오러가 일순 구체들을 뒤덮었고.

카아아악! 카가가각!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오러는 구체가 괴성을 지르면 지를수록 더 강하게 사념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렘!'

오러의 폭포 속에 렘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콰콰콰콰쾅!

오러가 감싸고 있는 그 안에서 사념의 구체들이 무수한 폭발을 일으켰다.

나는 사념이 오러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꾸준하게 오러와 렘을 불어 넣으며 사념을 끝까지 정화해 내기 위해 애썼다.

'…지독하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사념은 오러 밖으로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파스스슥!

오러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사념.

사념은 그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사념을 빨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마지막까지 보류하고 싶었던 방식이다.

구체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사념의 양 자체도 형용할 수 없을 수준이고.

그런 구체의 개수마저도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저 방대한 사념을 내가 모조리 흡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만큼은 해야 할 수밖에.

오러 안에 가둔 사념을 렘으로 정화하는 동시에 밖으로 나온 사념을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그럴수록 내 마나 하트에 사념이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분명 더 많은 사념이 차오를수록 나의 힘도 강해지긴 할 테지만, 아무래도 사념을 흡수한다는 행위가 나에게 있어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념의 폭주를 한 번 겪었던 만큼, 사념이 언제 다시 내 한계를 넘어 폭주해 버릴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야말로 시한폭탄을 내 몸속에 달고 있는 셈이다.

만약 여기에서 다시 사념이 폭주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전에는 별 사고 없이 끝나기는 했다지만.

이다음에는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후.'

그렇게 한 차례 사념 흡수가 끝난 뒤, 기어코 오십 개가 넘는 사념 구체를 파괴할 수 있었다.

아직 사념은 폭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때 막.

키릭! 키르르륵!

사념 구체를 들고서 바쁘게 달려오는 소환체들이 보였다.

"홀홀… 고생길이 훤하구먼."

"…그렇군요."

"그래도… 저길 보게나. 녀석도 꽤 고통스러운 모양이야."

노인이 고개를 들어 저 천정을 바라봤다.

거기엔.

쩌적- 쩌저적!

크게 균열을 일으키며 붕괴되고 있는 고래의 배 속 천장이 보였다.

"그렇군요."

"조금 더 힘을 내보이… 헐헐헐…."

***

"저게 대체 뭐야! 제기랄!"

"…아저씨. 저거 우리가 막을 수 있기는 할까?"

지금, 어비스 상부는 큰 소동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괴물, 태초의 고래 때문이었다.

"골치 아프군요."

어느새 칼제르와 베르제르 옆에 와서 선 헬라도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태초의 고래의 위용은 엄청났다.

천계와 마계의 정점에 군림하던 헬라와 칼제르 역시도 도무지 본 적 없을 정도로 광오한 생명체였으니까.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막아 보는 수밖에."

"예."

그렇지 않아도 벌써 많은 천족과 마족, 묘족들이 저 괴물에게 먹혀 버렸다.

영족을 처치하고 난 뒤 잠시나마 누리던 평화가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는 절망감은 느낄 틈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쩌어어어-!

태초의 고래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채 주변의 모든 것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다들 피해라!"

"어서 피하세요!"

칼제르와 헬라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 말에 천족과 마족들은 서둘러 날개를 펼치고 태초의 고래와 최대한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헬라와 칼제르를 돕고 싶었지만, 몇 번 태초의 고래와 마주치고 난 뒤 자신들이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진즉에 깨달은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라고 해서 별수가 있을지는 모르겠군.'

칼제르가 생각했다.

그 말대로, 자신들과 저기서 입을 벌린 채 모든 것 삼키고 있는 괴물은 차원이 다른 존재다.

차원.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르다.

물리적인 육체를 지닌 자신들과 달리, 저기 있는 저 괴물은 존재 자체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래. 그 사념. 그것으로 이루어진 괴물임이 틀림이 없어.'

그런 마당에 물리적 한계를 가진 자신들이 과연 저 괴물을 막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결국 저 괴물에게 잡아 먹히고 마는 허무한 결말이 날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거야말로 최악이겠지만.'

그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괴물을 막아서는 것만이 강민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 녀석은 지금쯤 저 괴물과 싸우고 있을 테지. 목숨을 걸고 말이야.'

그렇다면 강민의 도움을 받은 자신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그래. 내가 살아 봐야 얼마나 살겠나.'

칼제르는 자조적인 말을 읊조렸다.

그리고.

콰아아아!

그의 몸 위로 검붉은 마기가 치솟았다.

얼핏 태초의 고래를 감싸고 있는 사념과도 유사해 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기운이다.

탐욕보다는 파괴를 추구하는 강렬한 힘.

그와 함께.

쿠우웅!

칼제르가 태초의 고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칼제르가 엄청난 속도로 태초의 고래를 향해 날아가는 그 순간.

번쩍!

태초의 고래의 커다란 눈이 껌뻑였다.

동시에 강렬한 빛이 칼제르를 감쌌고.

'크읍!'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전신이 찢겨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칼제르의 머리에 떠오른 건, 강민이었다.

'네가 이런 괴물과 싸우고 있다면… 응당 나 역시.'

콰콰콰콰쾅!

칼제르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사념을 칼제르의 마기가 밀어냈다.

그리고 칼제르는 다시금 추진력을 얻으며 태초의 고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으니.

고오오오오!

칼제르의 주먹 위로 거센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칼제르는 기어코 태초의 고래의 바로 앞까지 도달하여 자신의 육중한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어엉!

칼제르의 주먹이 태초의 고래를 가격한 그 순간.

콰콰콰콰쾅!

태초의 고래의 몸 위로 거센 폭발이 일어났다.

거어어어어-!

칼제르의 일격에 태초의 고래가 몸을 뒤틀었다.

방금 칼제르의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음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좋아.'

칼제르는 다시 반대쪽 주먹을 움켜쥐고 태초의 고래를 향해 내질렀다.

쿠우우웅!

이번에도 역시 굉음과 함께 몸을 뒤트는 태초의 고래!

그 순간 칼제르가 눈매를 좁혔다.

'이건 조금….'

확실히 공격이 먹혀들어 가고는 있지만, 의문점이 생겼다.

'내 힘에 비해 과도한 위력이다.'

칼제르는 자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이 태초의 고래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미 계산을 끝마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두 번의 공격은 자신의 예상 범위를 한참이나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이거 어찌 된….'

칼제르가 미간을 좁히고 있을 무렵.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주십시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다.

하지만, 칼제르는 그 순간 직감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대체 왜 이 타이밍에 자신에게 버텨 달라고 하는지.

'강민 그 녀석을 돕는 누군가.'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 힘을 빌려준 게 틀림없다.

'그래. 그렇다면.'

그와 함께.

콰아아아앙!

칼제르의 전신에서 마기가 맹렬하게 솟구쳤다.

피부 위로 힘줄이 도드라졌고, 칼제르의 뿔이 더욱더 굵고 길게 뻗어 나왔다.

확연하게 다르다.

자신이 알고 있던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한 힘이 느껴졌다.

펄럭!

칼제르는 날개를 펼쳐냈다.

그의 날개 역시도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게 뻗어 나와 허공을 갈랐다.

'그래, 좋다. 갈 데까지 가 보자고.'

칼제르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그는 다짐했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순간을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내어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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