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뭐, 뭐… 뭐야아아아!"
영족 우두머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칼제르는 아직도 쓰러진 채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칼제르의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누적된 피로와 커다란 충격 때문에 잠시 의식을 잃은 정도일 것이다.
'체력 아티팩트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군.'
그리고 그때.
"허억! 아, 아저씨이이!"
"꾸, 꾸우우웅!"
마침내 도착한 몰른과 해츨링은 쓰러져 있는 칼제르를 보자마자 황급하게 칼제르를 향해 달려갔다.
"어, 어딜…!"
그 모습을 본 영족 우두머리가 몰른을 막아서려고 했지만.
파짓!
내가 사념의 기운을 움직인 순간.
"커, 커어어억!"
영족 우두머리는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이 공격의 효과가 내 생각보다 뛰어났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로 저 녀석의 입에서 피를 쏟아내게 할 수 있을 줄이야.
"어서 칼제르를 데리고 피해라."
내가 몰른과 해츨링에게 말했다.
어차피 녀석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격렬한 싸움을 피할 순 없다.
사념을 이용해서 놈에게 데미지를 주는 건 잔재주일 뿐.
놈을 직접 베어내기 위해선 검을 사용하는 것 필수불가결하리라.
"이, 이놈… 이 노오오옴!"
영족 우두머리가 나를 바라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사념을 움직였고.
"커으윽!"
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놈은 더 이상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쿵!
땅이 울릴 정도로 거세게 발을 구르며 나를 씹어 삼키겠다는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 영족 우두머리를 보며.
스릉!
검을 꺼내 들었다.
검 위로 넘실대는 오러를 뿜어냄과 동시에.
"크으아아아아!"
영족 우두머리가 괴성을 내질렀다.
알다시피 내 오러에는 사념이 짙게 배어 있었으니, 지금 분명히 놈의 아티팩트와 사념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으리라.
파짓! 파지짓!
그 증거로 이 순간에도 놈의 몸 곳곳에서 사념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특히 아티팩트의 흔적으로 보이는 문양이 그려진 부분에서는 특히나 스파크가 거세게 튀어 오르고 있었다.
스파크가 튀어 오를 때마다 놈은 몸을 움찔움찔 떨었지만 티를 안 내기 위해 노력하는 기색이다.
"죽여 버릴 거야아아아! 나를… 나를 방해 하고도 네놈이 멀쩡할 줄 알았어어어어?!"
쿵! 쿵! 쿵!
놈이 화가 가득 한 얼굴로 나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놈의 전신에 피어오른 문양이 더 도드라졌다.
화염도, 전류도, 그리고 냉기도 훨씬 더 강한 기세로 타오르며 놈의 전신을 감쌌다.
'미친놈이군.'
사용을 할 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저런 짓을 하는 것인지.
아니, 어쩌면 나를 향한 분노가 놈의 자제력을 완전히 잃게 만들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칼제르의 목숨을 끊어 낼 수 있는 기회를 나 때문에 놓치기도 했고, 그동안 내가 놈들의 진영을 들쑤시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분노로 이성을 잃고 아티팩트를 남용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목숨을 갉아 먹을 테니까.'
번쩍!
놈의 눈이 번쩍였다.
그 순간, 불에 휩싸인 놈의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엄청난 기세다.
화염은 순식간에 몇 배의 크기로 부풀어 오르며 나를 태워 죽일듯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다.
콰콰콰쾅!
아티팩트, 지진을 사용했다.
드넓은 범위가 아닌, 놈이 디디고 있는 부분에 집중하여 놈의 균형을 흩트리기 위해서였다.
"크으으아아!"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휘청였고, 그 빈틈을 노려 검을 움직였다.
'한 번에 베어 버린다.'
나는 놈의 팔을 잘라 버릴 기세로 검을 움직였고, 내 검이 놈의 팔꿈치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쩌어어엉-
'?!'
내 검이 놈의 팔을 자르지 못하고 멈춰 섰다.
어찌 된 영문인지 살펴보기 위해 나는 빠르게 놈의 팔을 훑었다.
'색이 변했어.'
말 그대로다.
내가 공격한 부분이 절묘하게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티팩트?'
분명히 아티팩트의 힘이다.
놈이 그 짧은 찰나에 아티팩트의 힘을 이용해서 내 공격을 막아낸다는 말일 것이다.
'내 생각보다… 아티팩트의 사용법에 능숙하군.'
"나를 우습게 보지 마아아아아! 내가… 내가 저 노인네의 머리통을 쪼개 버리기 위해서… 얼마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네놈은 모를 거다아아아!"
콰콰콰콰콰!
놈이 소리를 지르자 놈의 몸 위에서 검은 기운이 거세게 피어올랐다.
저 힘은 분명 사념이다.
그와 동시에.
빠직! 빠지직!
놈의 전신에서 가시가 튀어 올랐다.
가시 위로는 불과 얼음, 전기가 뒤엉키기 시작했다.
'가지가지 하는군.'
그뿐만 아니다.
놈의 피부 전체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놈의 꼴을 보아하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아티팩트의 힘을 있는 그대로 꺼내 올리고 있었다.
아티팩트에 대한 놈의 이해도에 대해서 조금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아티팩트의 활용 숙련도가 제법이야. 오크 몇 마리 잡아 본 정도는 되겠군."
"무슨 개소리야아아아!"
쾅!
놈의 주먹이 내 검과 다시 충돌했다.
놈의 일격에 어깨가 뻐근해 올 지경이다.
놈의 괴력은 그 정도로 끔찍하리만치 강력했다.
칼제르를 비웃는 건 아니지만 칼제르가 이 녀석과 싸웠다면 정말로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영족의 우두머리도 멀쩡한 꼴은 면치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럴 수는 없지.'
적어도 나를 위해 애써 준 칼제르가 그런 최후를 맞이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부웅!
검을 크게 한 바퀴 움직이며 놈을 향해 움직였다.
순간 놈의 몸에서 뻗어 나온 가시가 나를 향해 솟구쳤다.
콰직!
놈은 자신의 가시를 완벽하게 컨트롤 하며 내 공격의 충격을 능숙하게 완화했다.
'굉장해. 그 짧은 새에 아티팩트를 이렇게 능숙하게 컨트롤 해 낼 줄이야. 괜히 영족의 정상에 선 건 아닌 모양이군.'
그뿐만이 아니다.
콰가각!
놈의 등 뒤로 뻗어 나온 가시가 살아 있는 듯 움직이며 나를 향해 솟구쳤다.
'잔재주가 꽤 많아. 오크 잡을 정도라는 말은 취소해야겠어.'
하지만 그뿐.
'조금 더 자극해야겠어.'
놈의 아티팩트가 더 꺼내져 나오도록.
그래서 놈이 사념에 완전히 사로잡히도록 놈을 있는 그대로 자극해서 잡아먹을 계획이다.
사념이 놈을 감싸면 감쌀수록 이 싸움은 내게 유리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가슴을 두르고 있는 사념은 놈을 집어삼키고 싶다는 욕망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그게 바로 놈을 확실하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끝내기 위한 방법이다.'
쿵! 쿠쿠쿵! 쿠쿠쿠쿠쿵!
맹렬한 공격이 나를 향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놈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놈이 아티팩트의 힘을 꺼내 올리면 꺼내 올릴수록 사념의 농도가 짙어졌고.
놈의 이성은 점점 마비되며 놈의 공격 패턴이 단순해지기 시작했으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콰콰쾅! 콰콰콰쾅!
놈의 공격은 끝없이 이어졌다.
놈의 몸에 그려진 아티팩트의 문양에서 붉은빛이 일렁였다.
검게 물들었던 놈의 몸이 이제는 붉은빛으로 완전히 뒤덮였을 무렵.
'지금이다.'
내 심장 주변에서 당장이라도 놈을 씹어 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쫘악 벌리고 있던 사념이 검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콰카카카카!
사념은 순식간에 뱀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검 위로 타고 오르는 뱀 형상의 사념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걸 본 영족 우두머리의 눈이 커졌다.
이 찰나의 순간, 잠시나마 놈의 이성이 돌아온 것일까.
하지만.
"늦었다."
콰직!
뱀의 아가리가 놈의 상체를 베어 물었다.
그 순간.
"크아아아아아아!"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사념이 씹어 삼킨 부분에서 놈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사념이 피처럼 튀어 올랐다.
"으아아악! 크아아아아아!"
영족 우두머리가 잘려 나간 몸뚱이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내지르고 또 내질렀다.
"다시!"
뱀 형상의 사념은 순식간에 놈의 몸을 휘감았고.
콰직! 파직!
탐욕스러운 뱀은 놈의 전신을 탐하며 놈의 온몸 곳곳을 맛보고 씹어 삼켰다.
"살려, 살려줘! 살려줘어어어어어!"
놈이 뱀에게 완전히 휘감긴 채 몸을 비틀고 뒤틀었다.
'끔찍하군.'
사념이 씹어 삼킨 그 부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남은 게 있다.
'사념.'
놈의 몸 사라진 부분에서는 몸의 형태 그대로 사념이 일렁이고 있었다.
'지독하군.'
어비스 상부의 진한 사념.
그리고 그 사념이 스며든 아티팩트를 남용할 수 있는 대로 남용한 놈의 몸은 사념으로 가득 차 버렸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나 다름없었다.
'뜯어 먹어라. 모조리.'
카아아아아-!
뱀의 아가리가 놈의 몸과 함께 놈의 몸속에 있는 모든 사념까지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씹어 먹었다.
그 무엇도 남기지 않은 채 붉은 눈을 번쩍이며 모든 것을 씹어 삼킨 뒤.
[사념의 힘이 강해집니다.]
[마나 하트에 더 강인한 사념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마나 하트에 스민 사념이 강하게 응축됩니다.]
몇 개의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번쩍!
눈앞에서 빛이 한 번 번쩍였다.
그리고.
[넌… 누구냐….]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한 번 들어봤던 목소리다.
'놈….'
탑의 분신의 그 목소리.
하지만 놈은 죽었다.
그럼 이 목소리는 분명….
[나를… 알고 있느냐.]
놈이 내게 물었다.
***
카아아아아아!
거대한 생명체가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격렬하게 뒤틀었다.
"저항이 점점 거세지고 있어!"
"젠장! 우리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거야!"
탑의 정상.
탑 본체의 회복을 최대한 억누르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붓고 있는 설계자들이 크게 당황한 채로 소리쳤다.
"한강민이… 점점 더 가까워진 모양이야!"
"버텨! 더 버텨야 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 녀석의 회복을 막아야… 그자의 짐을 덜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모른대! 여기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잖아!"
케에에에에엑!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체의 저항은 더욱더 격해졌다.
그들이 본체의 회복을 막아내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회복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어느새 본체는 반 이상 회복된 상태였다.
그나마도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본체는 이미 원래의 상태를 완전히 회복하며 다시 미쳐 날뛸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들도 느끼고 있다.
강민의 존재가 점점 더 어비스의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싸움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되든… 한강민은 해낼 수 있을 거야.'
대한민국 탑의 설계자가 이를 악문 채로 생각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들어 낸 1인의 절대병기.
자신이 가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인재다.
그렇다면 분명히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원래의 상태로 돌려보낼 수 있으리라.
'와라, 한강민!'
설계자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탑의 본체의 몸을 구속했다.
케에에에에엑!
탑의 본체가 다시금 괴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그때.
번쩍!
본체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뭐, 뭐야!"
"제, 젠자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