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악!"
칼제르의 주먹이 카타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이 순간, 칼제르는 자신의 검조차 내려놓은 채 온몸을 사용해서 카타라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네놈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그래 봐야 애송이 아니겠느냐아아아아아!"
번쩍!
칼제르의 손에서 마기가 번뜩이는 동시에 칼제르의 깍지 낀 두 주먹이 카타라의 척추를 내리찍었다.
쿠우우웅!
그와 함께 허공에 떠있던 카타라의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굉음과 함께 먼지가 거세게 피어 올랐다.
"허억… 허억…."
허공에서 거친 날갯짓과 함께 칼제르는 숨을 헐떡였다.
'이게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군.'
언젠가 강민이 칼제르에게 꼭 했던 말이 있다.
'빛나는 돌 중에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기능을 가진 게 있을 거다. 성능의 고하를 따지지 말고 꼭 하나 정도는 챙겨 두는 게 좋을 거야.'
다른 이들의 말이었다면 무시했을 게 분명하다.
늙었다고 놀리는 것이냐고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강민의 말은 쉽사리 넘길 수 없었다.
'그 녀석 말을 들어서 손해 볼 일은 없었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해서 강민의 말대로 체력 회복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 단 하나만을 챙겼다.
그 외에도 다른 뛰어난 아티팩트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저 강민의 말을 믿으며 챙긴 것이 바로 체력 회복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였고.
지금 이 순간에 강민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한 참이었다.
'제기랄. 더럽군. 세월이 참 더러워.'
그렇게 몇 번이나 푸념하며 카타라를 한참이나 압박하던 칼제르.
이 순간에도 체력 회복 아티팩트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체력이 회복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아. 분명히 쉽지 않은 녀석이야.'
분명 칼제르 자신이 카타라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카타라가 가진 육체 능력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아티팩트들의 힘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아티팩트를 몇 개 더 챙겼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라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칼제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욕심내지 말라고 했지. 분명히 부작용이 따를 것이라고.'
그런 이유로 마족과 영족들도 많아야 세 개 이상의 아티팩트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힘을 기르고 있던 참이었다.
"후우…."
칼제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는 카타라를 바라봤다.
"이제는… 끝을 내야겠구나."
칼제르는 더 이상 싸움이 길어져선 안 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쿠웅!
칼제르가 발을 굴렀다.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카타라의 앞으로 도달한 칼제르의 커다란 주먹이 허공을 갈랐고.
콰아아앙- 쩌저저적!
칼제르의 주먹이 대지와 함께 카타라의 몸을 완전히 분쇄해 버렸다.
"커, 커억…."
카타라가 짧은 신음을 토해내며 몸을 축 늘어트렸다.
이번 일격으로 카타라의 숨이 끊어졌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파직! 파지직!
카타라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무슨…."
분명히 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카타라의 몸이 다시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다니.
칼제르는 이 기괴한 장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고.
잠시 후.
"그으으윽… 그으으으…!"
카타라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뭐냐. 네놈."
칼제르는 지금의 카타라는 자신이 알고 있던 카타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즉시 눈치챘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다.
"그으으윽…."
카타라에게서는 더 이상 이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그 녀석이 말했던 부작용인가?'
강민이 누차 경고했던 아티팩트의 부작용.
그 부작용이 무엇이 될지는 강민도 알 수 없다고 했었지만, 칼제르는 지금 카타라의 모습이 아티팩트의 부작용임을 확신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카타라의 이성이 사라진 것만이 아니라, 카타라로부터 끔찍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기에 그 누구보다 익숙한 칼제르가 보기에도 카타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마기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고 흉폭했다.
'과연…. 이 어비스라는 곳 전체에서 느껴지는 힘이 바로 저것이었던가.'
강민에게 몇 번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이 있다.
이 어비스라는 곳이 어떤 곳이고, 그들이 왜 자신들이 살던 세계가 아닌 이런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인지 말이다.
'그 녀석이 싸워야 할 대상이 바로 이 기운의 주인.'
문득 강민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울지.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볍게만 여겨오던 칼제르의 입장에서 강민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고작 인간의 몸으로… 아니, 아니다. 고작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저리 강인한 존재인 것인지.
아니면 강민이 조금 특별한 것일지.
문득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칼제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둘 다일지도 모르겠군.'
결국 자신은 인간인 강민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 역시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솔직히 말해서 자신 혼자만이 아니다.
강민에게 의지하고 있는 게 말이다.
일전에 헬라가 말했듯.
천족과 마족, 묘족까지도.
모든 존재들이 강민이라는 한 사람을 의지하며 이 상황에 맞서 싸워나가고 있는 것.
만약 강민이 없었다면.
이 어비스에서 어떤 파국이 벌어졌을지.
어떤 혼란 속에서 아직도 균형 없는 혼돈을 불러왔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그런 것이지.'
칼제르가 눈앞에서 몸을 뒤틀고 있는 카타라를 바라봤다.
'그 녀석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서라면.'
카타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끝내야 한다.
욕심 같아서는 영족 우두머리와의 싸움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싸움은 강민에게로 미뤄 두기로 했다.
자신의 몸이 늙어서만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이에게 그 끝을 맡기고 싶었기 때문에.
"그게 맞는 것이겠지."
칼제르가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이제는 정말 전심을 다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콰아아아!
그의 검 위로 잘 갈무리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카타라가 칼제르의 마기에 반응하며 눈을 번뜩였고, 카타라가 순식간에 칼제르를 향해 도약했다.
'강하지만… 뻣뻣해.'
콰직!
칼제르의 검이 움직인 순간, 카타라의 몸은 반으로 갈린 채 쪼개져 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콰콰콰콰콰!
저 뒤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무슨…?!"
칼제르가 황급히 고개를 돌린 그 순간.
"크흐하하하하! 하하하하! 다시… 다시 만났구나,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마족 노인네에에에에!"
영족의 우두머리가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우두머리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칼제르.
그 순간.
콰아아아앙!
"커…허억…!"
칼제르는 자신의 등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짐을 느껴야만 했다.
***
콰콰콰콰쾅!
땅이 뒤흔들리며 순식간에 이 근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영족들이 땅 아래로 꺼지기 시작했다.
'훌륭해.'
얼마 전 손에 넣은 아티팩트, 지진의 효과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드넓은 범위에 해당하는 곳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며, 땅을 가르고 서 있는 모든 것들을 땅 아래로 집어삼킨다.
더 놀라운 건, 그 뒤로 갈라졌던 땅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
'사념의 효과까지 더해져 그 파괴력이 몇 배로 증가한 모양인데.'
아티팩트에 담겨있는 사념의 힘.
누군가에겐 그 사념이 부작용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사념의 지배자라는 능력을 손에 넣은 내게 있어서 사념은 조금도 방해가 되질 않았다.
오히려 내 몸속에 있는 사념과 아티팩트의 사념이 더해져 그 위력을 더 증가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고, 고맙습니다!"
"당신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났을 겁니다!"
하늘 위에서 나를 내려보며 소리치는 천족과 마족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영족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의 상황은 영족들의 우세.
'녀석들이 아티팩트를 생각보다 많이 끌어모았어.'
직접 싸움을 시작하고 보니, 내 예상보다 영족들이 수집한 아티팩트의 수가 훨씬 많았다.
아마 그동안 녀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티팩트만을 수집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방금 한 번의 싸움을 통해서 나는 놈들의 약점을 다시 한번 꿰뚫어 냈다.
'놈들의 아티팩트가 나의 사념에 반응한다.'
내가 사념을 조금만 꺼내서 휘두를 경우, 놈들이 사용한 아티팩트에 담겨있는 사념과 나의 사념이 충돌한다는 것.
'그것도 그렇고… 아티팩트의 부작용은 결국 크게 다르지 않았어.'
어비스의 이전 층에서 많이 봐 왔던 결과.
사념에 휩싸여 마치 좀비화가 되는 듯한 그 현상 말이다.
내가 이것을 알게 된 건, 조금 전 칼제르가 영족과의 싸움을 끝마치고 난 뒤였다.
사념이라는 게 얼마나 지독한 힘인지 그 장면을 초감각으로 관찰하며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블러드의 플레이어들은 인간이기에 사념에 휩싸였다고는 쳐도.
설마 영족까지도 그런 결과를 만들어 버릴 줄이야.
'어쨌든… 그것만 잘 이용하면 놈을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겠군.'
영족 우두머리.
놈의 몸 안에 스스로도 모른 채 잠들어 있을 사념만 잘 공략한다면 놈과의 싸움은 내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놈이 죽고 난 뒤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말이다.
그때였다.
'……!'
저 먼 곳에서 한순간에 급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영족 우두머리의 기척.
영족 우두머리의 기척이 느껴지는 건, 칼제르가 조금 전 영족과의 싸움을 끝마친 곳이었다.
'뭐지? 분명 먼 곳에 떨어져 있었는데…!'
내가 방금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영족들을 처치하기 전만 하더라도 영족 우두머리는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설마….'
놈이 손에 넣은 아티팩트 중 순간이동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가 있었던 걸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젠장. 칼제르가 공격당했어.'
방금 전, 칼제르가 영족 우두머리의 기습으로 큰 부상을 당한 게 틀림없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건, 아직 칼제르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
'텔레포트를 사용해야겠어.'
만약 내가 시간을 더 지체한다면 칼제르가 정말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몰른, 해츨링! 나를 따라와라!"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해츨링도 공간이동 마법을 가지고 있으니 나를 따라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다.
그렇게 텔레포트를 사용한 순간, 나의 시야가 뒤바뀌었고.
나는 순식간에 칼제르의 기척이 느껴지는 그곳에 도착했다.
"죽어라아아아아-!"
영족 우두머리.
그가 자신의 커다란 주먹을 칼제르를 향해 내리찍으려는 순간이었다.
'잘 도착했군.'
그리고 나는 사념을 조금 꺼내어 영족 우두머리를 향해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커…커허억…!"
영족 우두머리가 기함을 내지르며 가슴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잘 먹히는군.'
나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