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어디 있느냐아아아아!"
날렵한 영족.
영족들의 전쟁 영웅 카타라.
그가 전방의 천족과 마족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서 포효했다.
그 순간.
콰콰콰콰쾅!
그의 음압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수십이 넘는 천족과 마족들을 날려 보냈다.
카타라의 포효에 날아가 버린 천족과 마족들은 바닥을 뒹굴거나 지형지물에 크게 충돌하며 몸의 뼈가 부러지기 일쑤였다.
외침 한 번으로 순식간에 수십이 넘는 병력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버린 셈이다.
그런 마당에 평범한 마족과 천족들이 카타라에게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이노오오오옴!"
어디선가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카타라의 시선이 노호성의 근원지로 향했다.
거기엔 날개가 여섯 달린 천족 한 명이 서 있었다.
"호오…."
영족의 영웅, 카타라는 호기심 가득한 탄성을 작게 흘려보냈다.
"날개 여섯 달린 비둘기라면… 꽤나 고위급일 텐데. 내 말이 맞나?"
"네놈이 감히 입에 담을 몸이 아니다."
채챙! 챙!
대답 대신, 천족은 양손에서 날이 길게 뻗어 나온 쌍수를 뻗어냈다.
그의 예리한 검날이 허공에서 번뜩였고.
그의 등장에 주변으로 나뒹굴던 천족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아르페로님이시다!"
"아르페로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거야!"
그의 이름은 아르페로.
과거 영족과의 전쟁에서 헬라와 함께 큰 공을 세운 전공자.
그가 등장한 이상, 카타라를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으리라고 천족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재미있구나. 얼핏 네 녀석의 얼굴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군. 으음… 아닌가. 비둘기 녀석들은 죄다 똑같이 생겨 먹은 터라 얼굴을 구별하는 게 정말 쉽지 않군."
카타라의 조롱 섞인 한 마디에 기분이 나쁠 법도 했겠지만, 아르페로는 개의치 않았다.
"네놈의 그런 알량한 도발은 이 몸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콰르륵!
아르페로의 검 위로 금빛 섬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네놈도 그 힘을 손에 넣은 모양이야."
금빛 섬광을 본 순간 카타라는 그 빛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바로 아티팩트다.
강민의 지시로 천족과 마족들 역시 바쁘게 아티팩트를 모아 온 결과였다.
당연히 묘족의 활약이 거대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래. 네놈들과의 싸움을 준비하며 우리가 한눈팔고 있었을 리는 없겠지."
카타라가 아르페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카타라의 얼굴에는 조소가 가득했다.
네가 아무리 날뛰어 봐야 내 밑이라는 듯한 표정.
그런 표정을 읽어냈음에도 아르페로는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차분하게 자신의 기운을 끌어 올리며 카타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달아나라!"
아르페로가 소리쳤다.
"어서! 나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라!"
"호오… 희생정신인가. 대단하군. 하긴. 과거에서 그랬었지. 마치 숭고한 희생인 양 가식을 떠는 네놈들의 가식은 아직도 역겹기 그지없구나."
아르페로의 외침과 함께 다급히 달아나는 천족들을 보면서도 카타라는 아직 손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의미 없는 짓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야."
그리고 그 순간.
쿵!
카타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파직!
"……."
아르페로의 상체가 사라졌다.
"어…, 어…."
"무, 무…."
그뿐만 아니다.
이곳에서 달아나고 있던 천족들도 멍한 눈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아직 고통조차 느껴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두 눈으로 자신들의 몸이 반 토막이 난 채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쿠웅!
천족들 수십의 몸이 반으로 잘린 재 바닥에 나뒹굴었다.
"…것봐. 의미 없다니까."
카타라는 조소했다.
그리고 기뻐했다.
자신의 주체할 수 없이 넘어가는 힘을 느끼며 그의 입꼬리가 가늘게 찢어졌다.
"흐흐… 흐흐흐하하하하!"
카타라가 허공을 바라보며 흉측한 웃음을 터트렸다.
***
"……."
강하다.
먼 곳에서 지켜본 영족들의 전쟁 영웅은 강했다.
특히나 조금 전 꽤 고위급 천족과 충돌한 영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설마 저 녀석이 저토록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당해 버릴 줄이야.'
순간 영족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운만으로 상급 천족의 몸통이 날아가 버렸다.
아마 천족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숨이 끊어졌으리라.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겠어.'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이리라.
시간을 지체해 버리는 바람에 영족들이 아티팩트를 모으며 강해져 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필요했던 과정인 것도 맞아.'
이곳에 있는 이종족들을 하나로 규합하지 않았다면, 더 큰 난전이 벌어졌을 테고.
탑을 향한 나의 계획은 이보다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의 계획을 위해서 천족과 마족, 그리고 묘족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보내올지도 모른다.
부정하진 않겠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몸을 일으켰다.
'더 많은 피해가 생기는 건 유쾌하지 않을 테지.'
원래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본 뒤 싸움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영족들은 강했다.
아무래도 천족과 마족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 순간에도 영족들 내부에선 끝없는 싸움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자."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몰른과 해츨링을 향해 말했다.
"좋아요오오오오!"
"꾸우웅!"
몰른과 해츨링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갈라져야 할 것 같네!"
허공을 가로지르던 칼제르가 다급히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굉음들과 함께 마족, 천족들의 피해가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었다.
"…골치 아프군요. 이전보다 영족들이 훨씬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나태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사실… 이런 일만 아니었으면 다시 전쟁이 벌어질 일은 없었을 테지."
"……."
"……."
칼제르의 말에 베르제르와 헬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그들이 살던 세계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눈을 뜨니 난생처음 보는 공간에 도착해 있었으니, 누가 대체 이런 상황을 위해 준비하고 힘을 비축했을까.
"영족들이야… 제 놈들 사이에서 치고받으면서 강한 놈들만 살아남았을 테지."
"그럴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두머리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힘을 기르는 영족들이 있다는 건, 영족 내 외부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했다.
끝없이 증식되는 영족의 수와 힘에 대한 끝없는 갈망.
그것이야말로 영족의 가장 큰 무서움이기도 했다.
"어쨌든… 한강민 그 친구에게 감사해야겠어."
"동감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우리 천족과 마족, 묘족을 하나로 합쳐주지 않았다면… 이 정도 피해로는 끝나지 않았을 테죠."
"그래. 분명히 그랬을 거요. 그리고 그보다 어서 나눠져야 하오."
그렇게 말하며 칼제르가 베르제르를 바라봤다.
"잘 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야, 아저씨."
"그래. 이제는 좀 믿음직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베르제르의 어깨를 두드린 칼제르는 다시 헬라를 바라봤다.
"무사하시오. 이번 싸움이 끝나면 내 최초로 천족과 술을 한 잔 나누고 싶군."
"술은 마시지 않지만… 분위기라면 함께 즐겨 드리지요."
"끝까지 쌀쌀맞기는. 어쨌거나 곧 봅시다. 베르제르, 너도."
그 말과 함께 칼제르는 날개를 다시 펼쳐서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베르제르와 헬라도 서로 잠시 눈을 마주친 뒤, 갈라져서 날갯짓을 재촉했다.
그들이 나뉘어진 장소는 당연히 영족 전쟁 영웅들이 모습을 드러낸 장소.
그렇게 헬라와 칼제르, 베르제르는 각각이 목표한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
'…저 녀석인가.'
베르제르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영족의 기운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이름이… 카타라였지.'
칼제르가 상대로 정한 것은 바로 카타라.
역시 칼제르와 카타라는 구면이다.
이전의 전쟁에서 카타라는 칼제르의 손에 무참히 박살 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 카타라는 결코 칼제르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많이 강해졌군.'
지금 느끼는 카타라의 기운은 과거의 카타라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늙었군, 나도.'
칼제르가 그렇게 읊조렸다.
카타라가 강해진 것도 맞지만 자신 역시 너무 늙어 버린 탓이다.
과거의 전쟁으로부터 벌써 수백 년.
카타라는 어느새 전성기의 강인한 육체를 손에 넣었다.
반면 칼제르는 저무는 해가 되어 이제는 노쇠한 몸이 되었다.
물론 노쇠라는 기준은 기준점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테지만.
칼제르는 스스로의 몸이 많이 늙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끝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내 몫은 확실히 해 내야 하지 않겠나.'
자신의 뒤를 따르는 베르제르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은 다 끝마쳐야 하리라.
그리고 그 순간.
'…놈이군.'
칼제르의 시야 저 먼 곳에 카타라가 비쳐 오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느끼는 것보다 실제로 마주 보는 카타라가 주는 압박감은 확실히 체감이 다르다.
'젊은 게 참 좋군.'
그 순간 또 한 번 강민의 얼굴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번쩍!
카타라로부터 뿜어져 나온 빛이 칼제르를 감쌌다.
그리고는.
콰콰콰콰쾅!
칼제르의 전신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이 역시 카타라가 획득한 아티팩트의 힘.
그와 함께.
"크흐하하하…크흐하하하하! 잘 만났다. 마족 노인네! 네놈에게 입은 상처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구나!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라라라!"
카타라의 끊이지 않는 괴성과 함께 카타라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토해내어 칼제르를 향해 쏟아냈다.
자신이 가진 아티팩트와, 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힘을 터트렸다.
이 날을 위해 준비했다고 생각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영족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원수라고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저 칼제르를 위해서!
"죽어어어어어!"
카타라의 모든 공격이 끝이나고, 거센 연기와 함께 그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
"흐흐… 흐흐흐하하하! 죽었어? 죽었지! 죽었잖아아아아!"
카타라가 환희에 차서 소리쳤다.
그렇게 잠시 후, 연기가 걷힌 뒤, 연기 속에서 신형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 뭐야… 뭐야…!"
"후우…."
칼제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칼제르의 온몸은 피로 젖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칼제르의 어깨는 격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카타라의 공격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는 뜻.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카타라는 공포에 질렸다.
바로 그 모습이다.
과거 전쟁에서 보았던.
칼제르를 마족의 전쟁 영웅으로 만들었던 그 모습.
모든 적을 때려 부수고, 파괴하고, 찢어발기던 칼제르.
그 어떤 상처를 입어도, 어떠한 부상을 입어도 개의치 않은 채 끝없이 영족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전신의 모습.
그 모습을 본 순간 카타라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공포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칼제르가 말했다.
"역시 젊은 게 좋구나, 그렇지 않나. 젊은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