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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55화 (255/277)

255화

"묘족이라고 했나요. 반갑습니다. 저는 모든 천족의 어머니, 헬라예요."

"칼제르라고 하오. 마족을 이끌고 있지."

"묘족의 수장 아로…. 이쪽은 내 친구 칼드야."

세 사람은 인사를 나눴다.

묘족이 영족에게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마족과 천족에서도 크게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다.

"이미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묘족들이 앞으로 천족, 마족의 병사들과 함께 영족들을 처치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탁월한 후각이 있으니 너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그렇게 설명을 이었고, 아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할게. 흐응…."

"나 역시 열심히 돕겠소. 하지만 당신 역시 우리에게 했던 약속을 꼭 지켜 줬으면 좋겠소."

칼드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내가 약속도 안 지키는 가벼운 사람으로 보인다면 서운하군."

"그런… 뜻은 아니었소. 그만큼 우리에게 보금자리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기에 드렸던 말씀이오."

"하하하하!"

그때 칼제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보금자리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 것을 보면 애초에 이들은 영족이라는 놈들과 뒤엉켜 있을 수 없는 종족일지도 모르겠어."

"저도 마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영족의 우두머리 역시 이곳을 자신들의 요새화 하기 위해 힘쓰고 있을 테니까요."

헬라와 칼제르가 한 마디씩 거들었고.

"어쩐지… 그 녀석들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더라고."

뜬금없이 아로가 한마디를 던졌다.

"이상한 짓?"

내가 아로에게 물었다.

아로는 아무래도 영족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내 초감각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 놈들이 벌이고 있는 꿍꿍이 속에 대해서.

"으, 응. 내가 우연히 발견했던 건데…."

아로는 조심스레 입을 열어 자신이 보았던 것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그래. 어느 정도 돼 가고 있지?"

"도, 동굴은 거의 다 완성이 되었습니다. 총 100여 개의 동굴을 만들었고 그, 그중에서 대장님의 동굴은 가장 커다랗게 지어 놓았습니다. 시, 식량도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잔뜩 겁에 질린 영족 한 명이 바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우두머리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다. 꼭 맞아야 말을 들어 그렇지?"

"죄,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두머리의 옆에는 벌써 머리가 깨진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는 영족들이 언덕처럼 쌓여있었다.

"쩝쩝. 밥값도 못하는 것들이 숫자는 많아가지고. 흐흐…."

영족.

그들의 번식 방법은 조금 특이했다.

차원에 틈에서 태어난 만큼 그들은 생물학적인 성별의 역할이 나뉘어 있지 않다.

천족이나 마족마저도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데에 반해서 그들의 번식 방법은 그야말로 독특했다.

그 방법이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그게 전부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며 영족들이 모여있으면, 그들의 파편이 조금씩 떨어져 나오고 그들의 부스러기들이 모여 새로운 영족으로 태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영역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그들이 살아가고 대를 잇기 위해서는 휴식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이야기.

가족이나 친구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게 되어 버렸기에,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규칙은 오직 힘과 덩치뿐.

그러니 영족의 우두머리도 부하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 그것이…."

그때 영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또. 뭐 할 말 남았나?"

"도, 동굴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뭔데?"

"아, 알 수는 없으나… 밝게 빛나는 돌이었습니다."

"오…?"

그 말에 우두머리의 눈이 번뜩였다.

빛나는 돌.

그게 뭔지는 몰라도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 여기…."

수하는 우두머리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리고 우두머리는 돌을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저 밝게 빛나고만 있을 뿐.

"아, 알 수는 없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도 없지만 반사적으로 나온 사과에 우두머리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휘 저었다.

"가라."

평소 같았으면 심심풀이로 머리를 으깨 버렸을 법도 하건만 지금에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우두머리의 신경은 오직 빛나는 돌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영족 수하가 떠나간 자리.

우두머리는 홀로 앉아 빛나는 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파아아앗!

돌 속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뭐, 뭐야!"

우두머리가 화들짝 놀라 돌을 내던졌다.

"이런 제기랄! 어떤 개자식이 나한테 이런…."

욕지거리를 내뱉다 만 우두머리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손을 살폈다.

"뭐야, 이거…."

조금 전의 돌은 사라지고.

이제는 그 돌의 빛이 자신의 손으로 옮겨 온 것이다.

"호오…?"

신기한 일이다.

돌덩이를 부쉈는데 손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다니.

"그러고 보니…."

괜히 빛만 새어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치짓! 치지짓!

빛에서는 전류와 함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부웅!

그가 주먹을 들어 쌓여있는 영족의 시체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타다다닥!

치지직!

스파크와 함께 시체가 불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오오…!"

그의 눈이 커졌다.

신기한 일이다.

돌 하나로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생기다니!

"이거… 좋은데?"

그의 눈이 다시 번뜩였고.

"거기 밖에 있는 새끼들 빨리 다 뛰어 들어와!"

그가 소리쳤다.

저 빛나는 돌을 더 많이 갖고 싶어졌다.

***

'듣던 그대로군.'

묘족에게 영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잠시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그들은 벌써 어비스를 요새화하기 시작했고, 그 작업들은 착실하게 진행 중이라는 것.

'이렇게 되면 곤란해질 수 있겠는데.'

지금까지는 영족들이 어비스를 무작정 떠돌고 있었다면, 이제 그들이 본격적으로 요새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그들을 상대하는 게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시간을 너무 끌어 버렸나.'

그렇다고 해서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족과 천족을 하나로 묶는 과정과 잠복형 영족들을 제거하고 우리의 행동반경을 넓히는 일은 꼭 필요한 작업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이쪽의 전력도 보강하는 수밖에.'

이쪽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티팩트를 더 많이 수집해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아티팩트는 내가 차지하되, 그렇지 않은 것들은 천족과 마족, 영족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에 사용해야만 한다.

'묘족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군.'

그렇지 않아도 묘족들은 어디선가 아티팩트를 하나둘씩 수집해서 모아놓고 있었다.

그들은 아티팩트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단순히 재미있는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들은 아티팩트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만 되어준다면 아티팩트를 수집하는 작업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어비스 상부에 이렇게 많은 아티팩트가 놓여 있다니. 이건 조금 의외로군.'

탑에서의 아티팩트는 말 그대로 희귀한 물건이었다.

미션의 보상으로, 혹은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보물 중의 보물.

그런 아티팩트가 어비스 상부에는 꽤 많이 널려 있었다.

간혹가다 몇몇의 묘족은 아티팩트를 한 번에 두, 세개씩 수집해서 돌아오기도 했다.

'어쨌건 우리도 속도를 더 높이는 수밖에.'

몰른과 해츨링은 묘족들이 살기 위한 곳에서 열심히 그들을 도우며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중이었고.

천족과 마족들은 묘족들과 짝을 이룬 채 어비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족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들의 요새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말이다.

듣기로 영족의 숫자도 꽤나 많다고 했으니 미리미리 숫자를 줄여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갈 때까지 그들을 나뒀다간 바퀴벌레처럼 그 수가 불어나게 될 테니까.

'어차피 본 게임은 우두머리와 마주하게 될 때부터겠지만.'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만 이라도 몸을 풀어 둘 생각이었다.

"…또 어디 가게?"

베르제르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물었다.

"그래. 영족들의 요새를 구경해 볼 생각이다."

"아…!"

영족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하는 베르제르.

하지만 이내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가, 같이 가. 나도 갈래."

"그래. 꽁무니만 빼지 않는다면."

"이,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어 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 뒤를 베르제르와 베르제르의 수하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

우리는 영족들의 요새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의 요새는 꽤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나도 묘족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여기에 이들의 요새가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정도로 먼 곳이었다.

그 먼 길을 걸어오면서도 베르제르는 단 한 마디의 불평도 내뱉지 않았다.

나름 교육이 된 것인지,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은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어때. 네가 해보겠나."

그런 베르제르를 보며 내가 말을 걸었다.

"어…? 뭘?"

나는 말 대신 시선으로 답했다.

영족들의 요새를 바라보면서.

"저 요새를 붕괴시킬 자신이 있냐는 말이다."

"아…."

베르제르가 머뭇거렸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베르제르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정말로 주먹으로 커다란 바위산을 부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고.

나름의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칼제르가 내게 와서 대체 베르제르를 어떻게 구워삶은 것이냐고 물을 정도로.

그때, 베르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

"좋다."

베르제르의 결연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베르제르의 수하들은 긴장된 기색으로 베르제르를 바라봤다.

"너희도 이제 나를 애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은 하지 마."

베르제르의 한 마디에 셋밖에 남지 않은 수하들의 표정도 바뀌었다.

'이것 참… 내가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말했듯 나이로 따지자면 나의 열 배도 더 많은 베르제르일 텐데.

자신을 향한 묘한 감정들을 뒤로한 채, 베르제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걸어가는 순간순간마다 그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베르제르의 모습이 완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바뀌었을 때.

"치, 침입자다!"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어!"

영족들이 베르제르를 발견하고 큰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영족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던 베르제르였지만, 그의 뒷모습은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재미있군.'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베르제르의 모습이 일견 대견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올라가 있는 내 입꼬리를 발견했다.

'이게 뭐라고 내가 흥분했는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마족을 보며 이런 뿌듯함을 느끼게 되다니.

사람의 삶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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