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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53화 (253/277)

253화

"이 근방은 다 정리된 것 같군."

"예. 조금 전 돌아온 이들을 마지막으로 근방의 잠복형 영족들은 모조리 씨를 말린 참입니다."

헬라가 답했다.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 만에 이 주변에 있는.

아니, 사실상 어비스 상부에서 내가 포착해 낼 수 있는 잠복형 영족이라는 녀석들은 씨를 말린 참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영족과의 싸움은 이제 채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잠복형 영족의 씨를 말린 것만으로도 천족과 마족들은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어쨌든.. 덕분에 두 집단도 꽤 가까워진 것 같은데요. 저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겠지요?"

헬라는 조심스러운 눈치로 칼제르에게 물었다.

그녀는 천족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일시적일지는 몰라도 천족들이 마족들을 향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런 헬라의 물음에.

"이쪽도 그런 것 같군."

칼제르가 답했다.

"저 녀석만 빼면 말이야."

아직도 헬라만 보면 으르렁대는 베르제르를 바라보며 칼제르가 말했다.

"흥! 내가 천족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 줄까 봐? 어림도 없지! 절대 안 돼!"

베르제르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베르제르를 보며 헬라는 다시 미소를 지을 뿐이겠다.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베르제르 당신의 마음을 얻어내려면요."

"어려울걸! 나는 쉽게 마음을 여는 남자가 아니거든!"

"어머, 그런가요."

"……."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베르제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헬라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있자면 왠지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칼제르나 베르제르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이제 칼제르는 완전히 천족들에게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으니, 더욱더 감정 표현에 숨김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산 하나를 넘기는 했지만.

아니, 산을 넘은 것도 아니고 고작 문턱 하나를 넘었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

그런 상황에서 지금 나는 새로운 문제점을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우선 내 말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 모인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는 건 천족, 마족, 영족뿐만이 아니야."

"……?"

"무슨 말씀이지요?"

칼제르와 헬라는 동시에 의문을 던졌다.

저 둘은 어비스 상부가 완전히 얼어 있을 때도 예외적으로 이 어비스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했으니.

지금 내 말에 의문을 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

"너희 둘의 반응은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한다. 이건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니까."

내가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역시 나도 '녀석'들에 대해서 최근에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초감각에도 완전히 파악되지 않던 녀석들이 얼마 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말씀해 보시게."

칼제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너희도 모르는 것을 보면 분명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녀석들인 모양이야. 하지만 평범한 몬스터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성체인 게 틀림없지."

"……."

모두가 긴장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영족이라는 적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적이 될지 모르는 잠재적인 존재가 나타났다는 건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요소일 테니까.

"나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우선 그들은 재빠르다. 어떨 때는 네 발로, 또 어떨 때는 두 발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인간과 짐승 사이에 있는 어떤 존재일 것으로 추측하는 중이야."

초감각으로 파악되는 녀석들의 모습은 반인반수.

특히나 호랑이, 혹은 고양이 쪽에 가까웠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은 기척을 감추는 데에 능하다는 것.

잠복형 영족마저도 감지해 낼 수 있는 초감각인데도 그들이 마음먹고 기척을 숨길 때는 그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모습을 드러냈어. 그 이전엔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있었던 것 같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모두를 돌아봤다.

다들 아무런 말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거겠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너희들의 의견을 먼저 묻고 싶다."

"……."

"걱정이군."

그들 역시 쉽사리 의견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들이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니.

혹시라도 영족과 손을 잡게 된다면 그야말로 큰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접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테니까.

사실 예상했던 반응이긴 하다.

나도 뾰족한 수가 없을 텐데, 이들이라고 해서 무슨 방도가 있을까.

특히나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는 두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면 당분간은 전투력이 뛰어난 정예를 중심으로만 활동하는 게 좋겠군. 그리고… 이제 슬슬 나도 움직여야겠군."

너무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찌뿌둥한 차.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그렇고... 이 근처에 꽤 괜찮은 아티팩트가 숨어있는 것 같았으니까.'

어비스 상부 곳곳에는 아티팩트들이 숨어있었다.

설계자들이 의도적으로 배치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우주가 뒤엉키며 보물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지게 된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둘씩 손에 넣어야겠지.'

이제 앞으로 다가올 싸움을 위해서 착실하게 한 걸음씩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 나는 먼저 일어나 보겠다."

"자, 잠깐!"

그때 베르제르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할 이야기가 있나?"

내가 묻자, 베르제르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은 채 허공을 맴돌았다.

누가 봐도 할 이야기가 있다는 표정이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베르제르.

그리고 그때.

"가, 같이... 같이 가...!"

베르제르가 말했다.

"어딜 말이냐."

"모, 몰라! 네, 네가 가는 데에 나를 좀 데려가 달라고!"

베르제르가 소리치자 칼제르와 헬라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베르제르를 바라봤다.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아, 알겠으니까! 데리고 가… 줘."

어느새 베르제르는 꽤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알겠다. 채비를 하도록."

내 말에 베르제르는 수하들과 함께 바로 떠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

"후응… 여기는 뭐가 이래? 숲은커녕 나무도 하나 없잖아."

"하지만 역겨운 냄새는 가득 차 있군."

"그러니까 말이야."

두 남녀.

아니, 어쩌면 암수라고 부를 만한 존재들이 잠시 멈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고, 머리 위에는 고양이 귀가 봉긋 솟아 있었다.

그러던 중, 여자가 코를 킁킁댔다.

한쪽 방향을 바라보면서.

"특히나…."

"그래. 저 방향에서 굉장히 역겨운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어. 우리가 그동안 처치했던 그 녀석들의 냄새 말이야."

"흐응…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원."

"어쨌든 저런 녀석들이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도 빨리 우리의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동족들의 생명 에너지가 점차 소진될 거야."

"그래. 그 말이 맞아. 언제까지나 우리 기척을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다.

이곳은 그들에게 있어서 완전히 낯선 세계.

언제나 신경이 날카롭고 주위를 경계해야 하는 그들에게 보금자리는 생존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래서 둘은 이 낯선 공간을 바쁘게 움직이며 생존할 만한 공간을 찾고 있었지만, 너무도 척박하다는 게 문제였다.

"으으응…. 이렇게 되면 완전히 꽝인데. 어떡하지?"

"골치 아프군. 사방이 적인데 우리 몸을 숨길 숲 하나도 없는 곳이라니.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 동족들은 곧 하나둘씩 쓰러지고 말 거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벌써 알 수 없는 괴물들과 끝없이 싸워왔다.

그렇지 않아도 기척을 숨기느라 지쳐있던 마당에 낯선 적들과 마주하느라 일족 전체가 크게 지쳐있는 상태였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돌파구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

그때였다.

"뭐야! 어디서 쥐새끼가 굴러다니고 있어!"

"뭐? 쥐새끼?"

"쥐가 아니잖아! 저건 고양이 아니야?"

"고양이나 쥐새끼나 그게 그거지!"

한 무리의 민둥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영족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덩치가 너무도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젠장…."

"또 나타났군."

두 남녀는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영족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어디 가는 건데!"

"알 필요 없다."

베르제르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계속해서 목적지에 대해서 캐물었다.

물론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으니까.

"한 번만 더 귀찮게 한다면 다시 돌려보내겠다."

나는 베르제르에게 경고했고.

"으으…."

베르제르는 그제야 다시 입을 다물었다.

"오호호! 걱정마세요오! 그래도 주인님은 그리 매정한 분이 아니랍니다아아!"

"꾸우웅…!"

그 옆에서 베르제르를 향해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는 몰른.

내 생각에 저 둘은 딱 수준이 잘 맞으니, 조금만 더 친해진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너와 대련을 한 번 해줄 테니, 입만 잘 다물고 있으면 말이야."

어쨌거나 나도 베르제르를 달래기 위한 당근을 꺼내 들었다.

나 역시 베르제르가 왜 나를 굳이 따라오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

저 녀석은 벌써 나와의 대련에 맛을 들였다.

내가 한참이나 봐주고 있기는 해도 나날이 실력이 느는 걸 보면 잠재력이 충분한 것도 사실이고.

'녀석이 강해진다면 영족과의 싸움도 훨씬 수월해지겠지.'

지금은 영족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저쪽이로군."

그렇게 조금을 걷던 중, 나는 잠시 멈춰서서 한 곳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커다란 바위산이 놓여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위산.

나무 한 그루도,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척박한 바위산이었다.

"저기에 뭐가 있는 건…. 미안…."

질문을 하려다 말고 다급히 입을 다물어 버린 베르제르.

"따라와라."

나 역시 긴 말 대신 짧은 한 마디로 대답을 대신했고, 바위산을 향해 움직였다.

우리는 바위산 아래로 곧 도착할 수 있었다.

바위산은 먼 곳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그리고 이 바위산 어딘가에 아티팩트가 숨어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 바위산 속에 숨어있다는 거지.'

그 아티팩트를 꺼내기 위해서 이 바위산 전체를 부숴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려울 건 없겠지.'

바위산 하나를 파괴하는 것 정도는 이제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검 대신 주먹을 쥐었고, 주먹 위로 오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부우웅-

바위산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쿠우웅!

주먹이 바위산을 한 번 두드렸다.

그 순간.

쩌적! 쩌저저적!

바위산이 내부에서부터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바위산을 한 번에 부수기 위해서 내부로 강력한 파동을 전달했기 때문이었고.

쿠르르릉!

내부의 충격이 외부로 전해지 바위산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 나와라.'

산속에 숨어있는 아티팩트.

그 아티팩트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어비스 상부 전체에서 느꼈던 그 어떤 아티팩트보다 이 아티팩트에게서 가장 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괜찮은 옵션이 숨어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산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미, 미친… 미친놈…."

경악이 담긴 베르제르의 목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나는 그런 베르제르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네가 이걸 보고 놀란다면, 아직도 네가 한참이나 약하다는 뜻이다."

내가 베르제르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쿵! 쿠쿠쿠쿵!

바위산이 완전히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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