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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52화 (252/277)

252화

"그 말을 믿어도 될까?"

"…어쩌겠어. 헬라님의 뜻이 그러한데. 우리가 따르는 수밖에."

"아무래도 꺼림칙하단 말이야. 마족과 함께 있는 인간이라니… 그것도 가만히 앉아서 떠돌이 영족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천족들.

그들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헬라의 뜻을 따르기 위해 어비스 상부에 흩어져 있다는 영족들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을지 그들은 알 수 없다.

다만 뜬금없이 등장한 한강민이라는 한 인간의 말에 따라서 일종의 도박을 하고 있는 셈.

만일 헬라의 뜻이 아니었다면, 인간에겐 우호적인 천족들이라고 한들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헬라님은 대체 왜 그런 녀석들을 믿기로 한 건지 알 수가 없군."

"우리는 그들을 믿는 게 아니야. 헬라님의 통찰력을 믿는 거지. 그동안 헬라님의 통찰력 덕분에 우리가 많은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잖아."

"그건 그렇지."

결국 그들의 말대로 그들은 헬라를 믿을 뿐이었다.

마족도, 마족과 함께 손을 잡은 인간도.

그들에게 있어선 오로지 불신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움직였을 무렵.

"이 부근이라고 했었지."

"그래."

그들은 강민이 이야기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강민은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영족들의 위치를 이야기해 줬고, 천족들 중 가장 강하기로 손꼽히는 정예들을 선별하고 그 장소로 보낸 참이었으니.

막상 천족이 도착했음에도 영족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긴장을 놓지 마.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잠복형'이라고 했으니까."

"그래. 하지만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영족들의 특성마저 구분할 수 있다는 건지…."

천족들은 의심쩍은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대화를 나눴다.

그들로서는 역시 믿기 힘든 발언이다.

'잠복형' 영족.

물론 강민의 표현에 따르자면 '대충 이 근방에 땅속에 숨어있는 영족들이 있는 것 같군.'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영족들 중에서 은밀하게 숨어서 적의 뒤를 노리는 '잠복형' 영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강민을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감정이 뒤섞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강민을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마족과 함께 있었다면 그들로부터 충분히 영족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들었을 가능성이 클 테고.

적당히 얻어 들은 정보들을 조합해 자신들을 골탕 먹이려는 속셈일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민의 말을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는 당당함.

그리고 강민의 절제된 말과 행동.

그 누구의 탓을 하지도 않고,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든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듯한 그런 표정.

강민의 말투, 단어, 행동.

그러한 모든 요소들서 엄청난 신뢰감이 흘러 나왔다.

"만약 정말 여기에 잠복형 놈들이 숨어있는 거라면…."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직접 이곳에 온 거지. 만일 그 말이 거짓이라면… 헬라께서 결코 그 인간을 용서하지 않으실걸."

"후우… 이게 뭐라고 내가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어."

"그럴 만도 하지. 우리가 얼마나 잠복형 영족에게 고생을 했는지 모르는 녀석이 있나?"

천족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던 중.

"페라힘."

무리의 리더가 페라힘이라는 이름을 불렀고, 무리의 가장 뒤에서 천족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예."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페라힘.

그는 천족 중에서도 탐지 능력에 특화되어 있는 천족.

특히나 이런 식으로 잠복해 있는 적과 싸울 때 그 능력을 발휘하는 천족이었다.

탐지 능력을 지닌 천족은 천족을 통틀어서도 그리 많지 않은 고급인력.

그런 고급 인력이 강민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이곳에 걸음을 옮긴 것이다.

만일 강민이 말했던 이곳에 잠복형 영족이 없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함정'이고 페라힘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이라도 한다면 천족들의 화를 감당하기 힘들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조심해라. 그리고 다들 무기를 꺼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 말에 천족들은 하나둘씩 전투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천족들 중에서도 전투력이 뛰어난 이들이지만, 이 순간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라힘은 자신의 기운을 슬그머니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땅을 손으로 짚으며 자신의 기운을 땅속으로 흘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천족들은 생각했다.

'우리들도 이렇게 탐지해 내야만 하는 잠복형 영족들을 보지도 않고. 그렇게 먼 곳에 떨어져서 파악할 수 있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헬라가 막아서지만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한강민이라는 인간을 베어 버렸을 만큼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허엇…!"

땅속을 탐지하던 페라힘이 기함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으니.

"무, 무슨 일이냐!"

천족의 리더가 다급히 외쳐 물었다.

그의 표정에는 진한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설마 정말로 여기에 잠복형 영족이 숨어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만약.

정말로 강민의 말처럼 잠복형 영족들이 매복해 있는 상황이라면.

이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행동들을 취해야 할지.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가던 그때.

페라힘의 입이 열렸고.

그가 말했다.

"노, 놈들이 숨어있습니다!"

"무슨…!"

머리를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만 같았다.

이게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대체 어떻게?

그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아니, 그 전에 정말 인간이 맞기는 한 것인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구구구구구!

땅이 진동하기 시작하며.

쿠쿠쿵! 쿵! 쿵!

"이놈드으으을!"

"천족 놈들은 우리의 땅에서 벗어나라아아아!"

영족들이 괴성과 함께 천족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인간이 정말 잠복형 영족들을 모조리 찾아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쩌면 정말로 강민이라는 한 사람은 그들에게 거대한 지원군이 되어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다.

반드시 강민이라는 인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천족들이 생각했다.

***

"답답하군."

천족들이 떠나간 뒤, 나는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있어야만 했다.

헬라는 나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다지만, 아직 천족 전체의 여론도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 내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조금 기다려 달라는 게 바로 헬라의 뜻이었다.

"조금만 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게다가 지금 이제 곧 우리 마족들마저 도착하게 되면 큰 혼란이 벌어질 거야. 여기에서 그대마저 섣불리 움직였다간… 나나 헬라도 쉽게 정리할 수 없을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네."

"그래. 나도 알고 있어."

"그나저나… 정말 확신하는 건가?"

칼제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당연히 나는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굳이 내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언제나 그랬듯,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간편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이다."

그런 만큼 나는 심플하게 대답했다.

"허어…. 잠복형 영족 녀석들의 까다로움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을…."

"그런가. 별문제는 없겠군. 이제는 내가 있으니까."

자신감이 넘쳐도 너무 넘치는 그 한마디에 결국 칼제르는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그리 쉽게 이야기할 게 아닐세. 잠복형 영족이 왜 까다로운지를 모르는 게야. 그냥 숨어있다면 왜 우리 마족과 비둘… 아니, 천족이 왜 까다로워 하겠느냐는 걸세."

"……."

"놈들은 땅속으로 숨어드는 순간 모든 기척을 지워버리지. 먹지도, 자지도. 숨조차 쉬지 않는 채로 숨어 버려. 아니, 그뿐인가. 놈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마나 에너지까지 완전히 감춰 버리네."

"그걸 내가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내 물음에.

"허, 참…!"

칼제르는 기어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놈들의 위치를 알고 있는데 놈들이 그 정도로 자신들의 기척을 숨긴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테니까.

'사실 나도 놀란 것도 사실이지.'

놈들의 위치를 감지한 순간,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나로서도 충격적이었다.

예컨대 살아있는 식물이나 동물에게서도 생명의 근원인 '마나'가 미약하게나마 느껴지기 마련이건만.

녀석들은 마치 바윗덩어리처럼 차갑기만 할 따름이었으니까.

'그나마 영족이라는 녀석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망정이지.'

칼제르에게 이야기를 듣고, 천족을 만나러 오는 길에 만났던 영족들에 대한 경험들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땅속에 숨어있는 '그것'들이 영족임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

어쨌든 단순히 기척만을 감춘다면 칼제르 정도의 실력자라면 숨어있는 녀석들을 캐치해 낼 수 있을 테지만.

'마나까지 감춰 버린다면….'

그야말로 눈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강자들이 적의 위치를 찾아낼 때는 상대의 기척보다도 고유의 '기운'이 더 중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그 말은.

이들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 가치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없다면 이들은 앞으로 더 힘든 싸움을 해야만 할 테니까.

"아무튼…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곧 증명될 테니까."

그러던 중.

저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당황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한 천족이 한 명 서 있었고.

그가 말했다.

"헤, 헬라께서… 부르신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생각했다.

'됐군.'

이라고.

***

"…정말이었구나."

헬라는 천족들의 손에 들려 있는 영족의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 역시도 설마 강민이 정말 단번에 영족의 위치를 파악해 낸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차.

그럼에도 강민의 말이 사실임이 판명된 순간이었으니.

그녀 역시도 쉽사리 혼란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당연하게도 강민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강민은 자신의 말이 증명이 되었고, 여기 있는 모두에게 신뢰를 얻어냈다는 그 사실 하나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때 마침.

"마, 마족들이 도착했습니다!"

저 먼 곳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왔으니.

그 말을 들은 순간 천족들 사이에선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누구도 격한 반대 의사는 표할 수 없었다.

지금의 모든 상황들이 가리키고 있는 건 강민과 마족들이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고.

동시에 강민이라는 존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으니까.

"됐군. 이쯤이면 더 긴 대화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렇군요."

그 말에 강민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좋다. 지금부터 내가 잠복형 영족이라는 녀석들의 위치를 모두 말해줄 테니, 그들을 우선 놈들을 섬멸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겠군."

적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놈들이 설치해 놓은 지뢰를 하나씩 제거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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