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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48화 (248/277)

248화

"허허허!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군."

칼제르는 꽤 수다가 많은 노인이었다.

자신의 설명에 따르자면 오랜 시간 절대자의 자리에 올라 있었고, 절대자의 자리는 언제나 외로웠기에 대화를 나눌 상대가 많지 않아서… 라고 하기는 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으니까."

나는 지금 막 내가 얻어낸 용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준 참이었다.

에인션트 드래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칼제르는 크게 즐거워했다.

"용들의 왕이라면… 나 역시도 버거운 상대지. 아니, 버거울 정도일까. 전성기의 나라도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을 걸세."

처음 나의 추측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게 증명된 순간이다.

칼제르는 결국 에인션트 드래곤과 비등한 수준의 강자라는 것 말이다.

'칼제르의 저 말은 답지 않게 겸손하군.'

내가 판단하기로, 절대 전성기 시절의 칼제르가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힘없이 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게 바로 나의 생각.

"무슨 뜻이지? 그 음흉한 눈빛은?"

문득 칼제르가 내게 물어왔다.

"…티가 났나."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칼제르를 눈앞에 두고 있자니 군침이 돌아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겁을 먹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는 가정하에라면 검을 한 번 맞대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하하하하! 그러니 그렇게 강해졌겠지. 그래.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몸이 찌뿌둥한 차였으니…."

켈제르가 몸을 일으켰다.

내가 한참이나 올려봐야 할 정도로 거구의 켈제르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가볍게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땅이 진동할 정도였으니 저 괴물이 진짜 힘을 뿜어내면 감히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이, 이… 미, 미친노오오옴!"

저 옆에 서 있던 베르제르가 괴성을 내질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조소했다.

어차피 베르제르는 더 이상 나의 관심을 끌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 나의 시선을 느낀 베르제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으나, 나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을 달짝거리고 있을 뿐.

"베르제르! 언제까지 그렇게 어리광이나 피우고 있을 셈이냐."

오히려 켈제르가 그를 향해 핀잔을 주었으니, 베르제르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상태였다.

"잘 보아 두어라, 켈제르. 비둘기와 민둥이 놈들에게 큰 한 방을 먹여 주기 위해서 너는 더 강해져야 하지 않겠느냐!"

켈제르의 말에 베르제르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제 곧 이곳에 있는 우리의 가족들을 모두 소집해야 할 것이야. 그런 것까지도 내가 해야겠느냐?"

"아, 아니…."

"그래. 결국 네가 해야 할 일이야. 그렇다면… 네가 더 강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아, 알겠다고!"

베르제르의 심술 맞은 대답에 켈제르가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그가 나를 바라봤다.

"내 부탁 하나 함세."

"…뭐지?"

"시간이 나면 저 녀석과 한 번쯤은 검을 마주해 주시게. 이 노인의 부탁이니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

솔직히 말하면 귀찮았다.

말했듯 베르제르는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없다.

나의 흥미를 끄는 건 오직 켈제르의 상상도 가질 않는 무력뿐.

"흥! 만약 네가 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 역시 그대의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이 없네."

"……."

켈제르가 초 강수(?)를 두며 나를 위협했다.

"…어쩔 수 없군."

기브 앤 테이크.

그것은 나의 철칙이었으니, 켈제르의 제안을 거절할 순 없겠다.

"흐하하하하!"

켈제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콰콰콰콰콰!

켈제르의 몸에서 검붉은 마기가 폭발해 나오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솟구쳤고,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 오너라!"

켈제르가 나를 향해 소리쳤고.

"얼마든지."

콰르륵!

오러를 뿜어내며 켈제르를 향해 도약했다.

***

"헬라시여."

"…으음…. 혼란스럽구나."

어비스 상부의 어느 곳.

고고한 자태를 지닌, 미모의 여성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듯 하옵니다."

"그래. 나도 꽤 혼란스럽구나. 나의 아이들은 모두 이곳에 와 있는 것이냐."

"그런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다만 이 알 수 없는 공간은 너무도 드넓은 나머지 모두를 모으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그러하구나."

헬라라는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저 먼 곳 어디선가 굉음과 함께 대기가 크게 요동쳤다.

"…저자는 이곳에서도 쉬질 않는구나."

"앞으로 일이 꽤 복잡해질 것 같사옵니다."

"그렇겠지. 너희가 자고 있는 동안 이곳을 조금 둘러보았다."

"……."

"마족 켈제르와 영족 하몬 역시도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것이…."

"그래. 결국 이 장소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야."

"아아…."

헬라 앞에 있던 남자의 급격히 어두워졌다.

"걱정은 말거라.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들에게 화가 미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야."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희야말로 헬라님을 지키는 충복. 저희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헬라님의 안전을 지킬 것이옵니다."

그 말에 헬라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라도 고맙구나."

그러던 헬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곳을 바라봤다.

"……."

남자는 헬라의 시선이 움직이는 곳을 향해 같이 시선을 움직였고.

"…저곳."

헬라가 말했다.

"저 먼 곳에 무언가가 있었노라."

"무언가라 하심은…?"

"나도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었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헬라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

"그것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리라는 것이지."

"…제가… 제가 지금 당장 모두를 이곳으로 모아 오겠사옵니다."

"그래. 부탁하마, 아이야."

헬라가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바라봤고, 남자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이런 제엔자앙!"

쿠우웅!

누군가가 돌벽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여기에서 그 망할 천족 놈들과 마족 놈들의 냄새가 나냐는 말이야!"

"진정하십시오! 저희도 아직 상황이 파악되질 않…."

파각!

다급히 말을 잇던 영족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영족 우두머리가 주먹으로 머리통을 일순간에 으깨 버린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낀다는 표정으로.

아니, 오히려 더럽고 역겹다는 듯한 얼굴로 손에 묻은 붉은 피를 그 옆에 있는 영족의 옷에 씻어내기 시작했다.

피를 다 씻어내자마자.

"닥쳐! 이 망할 쓰레기들아! 나의 집! 나의지이이입! 내 집이 사라져 버렸다고!"

벌써 수십도 넘게 모여 있는 영족들.

그들은 하나같이 온몸에 털이 하나도 나 있지 않았고, 마치 비누가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모두 커다란 천을 둘러매고 있는 것처럼 일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 있는 이의 덩치는 다른 영족들에 비해서도 두 배는 훌쩍 넘어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그의 시선이 향할 때마다 그 앞에 조아리고 있는 영족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황급히 시선을 돌리기에 바빠 보였다.

"너희… 너희도 알 거야. 내가 내 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그렇지…?"

"아, 알고 있습니다!"

"화,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조아린 영족들이 황급히 대답했다.

하지만.

콰직!

영족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또 다른 영족의 머리를 발로 짓밟아 으깨 버렸으니.

"알면 이러고 있으면 돼, 안 돼! 이 망할 쓰레기 새끼들아아아아!"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그가 소리치자마자 그들 옆에 있는 돌벽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저 소리가 만들어 낸 파동 하나로 돌벽을 와르르 무너트려 버린 것이었고.

"썩 꺼져! 지금 당장 가서 애새끼들 죄다 모아 오라고, 엉? 나 돌아 버리는 꼴 보고 싶어?!"

그가 다시 소리친 순간, 그 앞에 모여 있는 영족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씨익… 씨익…."

아직도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영족의 우두머리.

그 순간.

콰아아아앙!

저 먼 곳 어딘가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고.

"X부럴. 엿같은 노인네가 지랄발광을 하고 있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아, 아아아… 돌겠네, 진짜.'

그 무렵, 베르제르는 미쳐버릴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켈제르의 말대로라면 분명 어비스 상부에 천족과 영족의 수장들이 있을 것인데.

'여기 있다고 광고 하는 거야, 뭐야!'

강민과 켈제른의 끝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 그 누구라도 켈제르를 아는 이라면 이곳에 켈제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싸움은 격렬했다.

"저, 저… 주군…!"

그때 수하 한 명이 베르제르를 불렀다.

"뭐, 왜…!"

"호, 혹시 켈제르님께서 의도하신 건 아닌지…."

"그게 뭔 소리야!"

"그러니까… 물론 영족과 천족 놈들도 알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분명…."

그 말을 들은 베르제르의 눈이 커졌다.

"그, 그래. 분명 우리 마족들도 아저씨의 위치를 알 수 있겠구나!"

"그, 그럴 것 같습니다!"

"역시! 우리 아저씨가 괜히 저런 멍청한 인간 놈하고 싸워 줄 리가 없지, 안 그래?"

"무, 물론입니다!"

베르제르는 그렇게 확신하며 표정이 밝아졌다.

켈제르가 누구인가!

마계의 절대자.

그리고 자신이 인정한 상대가 아니라면 절대 상종조차 하지 않는 이였다.

자신만 해도 켈제르와 싸움을 해 보는 게 소원이었음에도 그런 기회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은 마당에.

웬 인간놈과 저 앞에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복장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저 망할 놈….'

강민은 켈제르와 정말로 비등하게 검을 맞대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고작 인간 따위가 마계의 절대자와 검을 섞으면서도 쉽사리 밀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때.

"아…!"

제르민.

지금 이곳에서 유일한 여성형 마족이 짧은 탄성을 흘렸다.

베르제르가 반사적으로 제르민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쟤… 뭐 하냐…?'

베르제르는 제르민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힘을 극도로 숭상하는 마족.

남성형이건 여성형이건 상대에게 끌리는 가장 최우선의 조건은 힘이었으니.

지금 강민을 바라보는 제르민의 표정은 분명, '흠모'였다.

"제르민…."

베르제르가 제르민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제르민은 베르제르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듯 강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르… 민…!"

다시 한번 제르민을 부른 베르제르와.

"주, 주, 주군…!"

제르민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바쁘게 굴렸다.

"너…."

하지만.

"주군…."

제르민이 눈짓을 하며 다른 두 명의 마족들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고.

"이런… 미친…."

베르제르는 그제야 눈치 챘다.

강민에게 푹 빠져 버린 건 제르민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른 두 명의 마족들 역시 주먹을 불끈 쥔 채 강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눈에 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미치겠네, 정말.'

입술을 곱씹는 베르제르.

하지만 그도 결국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켈제르가 강민과 검을 섞고 있는지.

왜 자신과 대련 상대가 되어 달라고 부탁을 했는지.

'…강해. 너무 강해. 그리고….'

꿀꺽

차마 뱉고 싶지 않은 한 마디가 아주 짧은 순간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멋있긴 하네….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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