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미쳤어, 이건 미쳤다고!'
넷.
아니, 이제는 셋밖에 남지 않은 베르제르의 수하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알렉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저 도마뱀의 공격에...!'
그들 역시 해츨링의 정체는 알고 있었다.
드래곤의 새끼.
모를 리가 없다.
그들이 살던 세계에서도 드래곤이라는 생물체는 존재했으니까.
드래곤은 강했다.
하지만 저 작은 도마뱀은 아직 성체가 아니다.
성체가 아닌 해츨링은 마족들의 장난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허약한 생명체.
마기를 증폭시키기 위해 해츨링의 심장을 복용하는 일은 마족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영웅담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고작 해츨링의 마법에 알렉이라는 마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니.
그것도 모자라 저 인간은 자신들의 주군인 베르제르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니, 더 나아가서 베르제르를 압도하고 있기까지 했다.
무려 베르제르의 본모습을 눈앞에 두고서도!
'미, 미… 미친…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어.'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자신들이 모두 힘을 합쳐 저 인간에게 덤벼든다고 한들,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낼 수 있겠는가.
'불가능해.'
저 인간은커녕, 해츨링과 함께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인간조차도 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니까.
그때였다.
베르제르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성인의 모습이 아닌,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아…!'
그의 수하들은 탄식했다.
베르제르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모를 리가 없으니까.
'주군….'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들이 여기에서 베르제르에 대한 동정심을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베르제르를 자신들이 직접 모욕하는 꼴이 되고 말 테니까.
그때, 베르제르가 입을 열었다.
"…제기랄."
그의 입에서는 힘없는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
'…그만하자는 건가.'
순식간에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녀석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상심할 필요 없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녀석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고.
"이…!"
놈은 내 말에 내 눈을 바라보며 안색을 붉혔지만, 이내.
"쳇!"
다시 시선을 돌렸다.
후웅!
놈이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나 역시 오러를 거둬들였다.
놈은 자신의 수하 한 명이 죽었음에도 딱히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으니, 이렇다 할 뒤끝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막상 싸우기는 했지만, 원래 내 목적은 정보를 얻어내는 것.
여기에서 이런 녀석 하나 쓰러트린다고 해서 나에게 달라질 것은 없다.
물론 놈의 능력치를 포식하고 난다면 내 스탯이 크게 증가하긴 할 테지만, 지금 나에게 스탯 조금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정보야.'
물론 놈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그때는 나의 스탯으로 화해야 할 테지만.
지금 당장은 살려 둘 가치가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어떤가. 이제 나와 대화해 볼 의향이 있는가."
내가 묻자.
"…제길."
놈은 대답 대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저게 긍정의 뜻이라는 건 나도, 그리고 저 녀석도 동의할 수밖에 없으리라.
"너는 이곳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내가 물었다.
이미 동의는 끝난 것 같으니 더 이상 지지부진한 대화는 필요 없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몰라."
하지만 들려 온 대답은 나를 실망시켰고.
"다시 한번 묻지. 아무것도 모르는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모른다고!"
외모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것인지, 어린아이가 투정이라도 부리듯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다면 더 이상 너와 마주하고 있을 이유가 없겠군."
다시 검을 꺼내어 검 위로 다시 오러를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보며 놈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성인의 모습으로도 나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심지어 어린아이의 형태라면 내 일격조차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은 놈도 잘 알고 있을 테지.
그 순간.
"자, 잠깐! 잠깐만!"
놈이 손사래를 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네놈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차라리 나의…."
"나, 나는 모른다고! 내가 모른다고 했지…!"
"……?"
"나, 나는 몰라도… 그 아저씨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아저씨?"
"그, 그래. 내가 여기 있는 걸 보면 분명 그 아저씨도 어딘가에 있을 거야. 가, 같이… 같이 가자. 그 칼은 좀… 내려놓고."
놈이 내 오러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이라면…."
"아니라고! 제발 내 말 좀 믿어!"
나는 한참이나 놈의 얼굴을 바라봤다.
혹여나 거짓은 아닐지, 살기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론은.
'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감이 뛰어난 나다.
거기에 더해서 이제 초감각의 능력은 상대의 모공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정도의 탐지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그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놈에게서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빨리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절실함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알겠다."
철컥!
나는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고.
"몰른, 해츨링. 이리 와라."
저 먼 곳에 떨어져 있던 둘을 다시 불렀다.
둘은 빠르게 내 옆으로 다가왔고.
"안내해라."
놈에게 말했다.
"으으으…."
놈은 다시 인상을 찌푸린 채 홱, 하고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주, 주군…!"
"가, 같이 가요!"
"크으윽…!"
그 뒤를 따라 마족 셋이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와 해츨링, 몰른은 조금 떨어진 뒤에서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호호! 아까는 너무 무서웠어요오오오!"
마치 그들에게 염장이라도 지르듯 몰른은 되도 않는 소리를 내질렀으니.
"끄으응…!"
저 앞에서는 꼬마의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놈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들 딴에는 내가 못 듣게 하려는 것 같았지만 어림도 없는 짓이다.
'…주군, 이대로 갔다가는….'
'어쩔 수 없어. 저 자식한테 죽느니 아저씨한테 머리통 한 대 쥐어박히는 게 나을 거야.'
'그분께 머리통을 쥐어박힌다면… 두개골이….'
'그럼 여기서 죽을래? 몇 시간이라도 목숨 부지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 그건 그렇습니다.'
대충 이런 대화였다.
***
"흐흠..."
그 무렵, 높은 산 위에서 한 노인이 묘한 두꺼운 눈썹을 꿈틀대고 있었다.
"묘하구나. 굉장히 묘해."
그는 한참이나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마계 같으면서도 마계 같지 않은 곳이라니. 허허허. 모든 것이 멈춰 있기가 꽤 오래 되었건만,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꽤 긴 시간이었어. 흥미로운 곳이야, 정말로."
그는 마치 지난 시간 동안 홀로 깨어 있다는 듯이 산 아래의 모든 것을 훑어보고 있었다.
"움직이는구나. 마치 태초에 생명이 태동하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뚜둑! 뚜두둑!
몸을 일으키자 관절과 관절 사이에서 괴상한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흐으… 너무 오랜 시간 앉아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그의 얼굴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활기가 돋아 올랐다.
"흐흐흠! 그렇지 않아도 마계는 너무도 고여 있지 않았던가. 새로운 활기가 필요하던 차였지! 옳아! 이곳 어딘가에 그 가식으로 똘똘 뭉친 비둘기들도 숨 쉬고 있으렷다!"
그가 먼 곳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난다, 냄새가 나! 그 추악하고 가증스러운 비둘기들의 깃털 냄새가 흉흉하게 퍼져 나오고 있어!"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이때를 기다렸노라. 놈들의 두개골을 깨부술 이 날을 말이야! 으하하하하하!"
끝도 없이 홀로 중얼대다 이내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마는 노인.
누군가 그 옆에 있었다면 정신 나간 노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장면이기도 했으나.
그의 표정은 한없이 진중했으니.
"…흠?"
순간 그가 먼 곳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놈이…."
그가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놈도 여기에 와 있었던 것이구나. 그런데…."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 둘, 셋…."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고.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한 놈이 부족한데…?"
이제는 눈썹을 꿈틀댔고.
"그 뒤에 셋은…? 인간 둘과 도마뱀 한 마리…?"
다시 숫자를 셌지만, 그 수는 변함이 없었다.
무언가 계산이 맞지 않다는 듯 다시 산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손가락을 접고 펴기를 반복하기를 몇 분째.
"놈의 머리에 무슨 일이 생긴 게로군. 그 고집 센 놈이 자신 아래에 인간 따위를 두게 되었다니…? 도마뱀은… 애완동물인가? 혹 낯선 세계에서 고약한 취미라도 생겼다는 겐지…."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후웅!
발을 들어 올렸고.
쿠우웅!
강하게 자신이 발을 굴렀다.
그 순간, 그의 몸이 하늘 위로 도약해 올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 한 번 발을 굴렀을 뿐인데도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하늘 높은 곳으로 비상했고.
쿠르르릉!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거대한 바위산이 무너져 내렸다.
바위산이 아니라 모래산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바위산은 한없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으니.
콰아아아!
그는 산이 무너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먼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
"으, 으허억!"
그때 베르제르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가 괴성을 내지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저 먼 곳에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 때문.
아직 형체가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그게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베르제르뿐만 아니라, 그의 수하 셋마저도 기겁을 하며 공포에 지리기 시작했으니.
"주, 주… 주군!"
"제, 제발… 저희의 목숨을 지켜 주십시오!"
"주, 죽고 싶지 않다고요!"
베르제르와 베르제르의 수하들은 오한이라도 걸린 듯 얼굴이 파래져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물론 강민도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검의 손잡이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아저씨라더니….'
강민 역시도 지금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존재가 조금 전 베르제르가 말했던 '아저씨'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존재가 친근한 동네 아저씨라고 부를 만한 수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정도.
'하지만….'
흥미로웠다.
베르제르가 몸을 떨며 두려워 할 정도로 강인한 존재.
그리고 동시에.
파르르-
강민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기도 전에 몸이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