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45화 (245/277)

245화

콰아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뭐야.'

그리고 꼬마.

아니, 베르제르는 눈을 부릅떴다.

온 힘을 다해 휘두른 자신의 주먹을, 눈앞에 있는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막아냈다.

물론 주먹과 검이 부딪치고, 검으로 주먹을 잘라내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주먹이 어떤 주먹인데…!'

자신의 주먹 앞에 마계의 수많은 강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뿐인가.

마신과도 맨주먹 하나로 지지 않고 겨룰 수 있는 게 바로 자신, 베르제르였건만!

'근데 고작 인간이 내 주먹을 받아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베르제르는 자신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훑어봤고.

그의 표정에는 이렇다 할 감정이 섞여 있지 않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놈이….'

화가 났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마족들이 자신의 손가락질 한 번에 죽는 시늉마저 하는 곳에서 평생을 살다 왔건만.

고작 인간 따위가 자신의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고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니?

'죽여주마.'

아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끝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그 순간.

빠득! 빠드득!

그의 이마에서 두 개의 뿔이 더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신체였던 베르제르의 몸이 순식간에 성인처럼 커졌으며, 그의 온몸에는 잘 단련된 근육이 생겨났다.

변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펄럭!

어느샌가 등에서부터 뻗어 나온 날개와 함께 그의 온몸이 까맣게 물들어 갔고.

번쩍!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고오오오!

그의 온몸에는 검붉은 마기가 불꽃처럼 타오르며 감싸고 있었다.

베르제르는 다시 눈앞의 인간을 바라봤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잔뜩 겁을 먹은 채로 달아나지는 않을지.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지금이라도 자신의 하찮음을 시인하지는 않을지!

하지만.

"…재밌군."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빠직-!

베르제르의 이성을 끈을 놓아 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큰 충격에 빠진 이들이 있었으니.

'믿을… 수 없….'

조금 전 터진 굉음 때문에 이제 막 다시 정신을 차린 넷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베르…베르제르님의 공격을….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베르제르의 본래 보습을 앞에 두고서도 일개 인간 따위가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상식에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저 모습으로 서 있으면… 상위 마족들도 두려움에 벌벌 떨기 마련이건만.'

베르제르가 평소에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에게서 피어 나오는 기세에 불편함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혼절해 버린다거나, 겁을 주려는 것도 아닌데 벌벌 떨며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리는 등의 일들 말이다.

그게 바로 베르제르라는 마족이었고.

베르제르가 가진 힘이었음에도.

'저 인간은….'

겁을 먹기는커녕, 너무도 태연한 얼굴로 베르제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우우웅!

강민의 검이 진동하며 불그스름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맹렬하고, 폭발적인 기운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베르제르에게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진 베르제르에게 맞서겠다는 듯이.

'하….'

그 모습에 쓰러져 있는 네 명의 마족은 탄식을 흘려야만 했다.

그리고 저 남자는 애당초 자신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으니.

그 순간.

'…저 녀석들을….'

저 뒤쪽에 멀뚱하니 서 있는 인간 한 명과 도마뱀 한 마리.

'저 녀석들을 사로잡으면 베르제르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한 명의 마족이 몰른과 해츨링이 서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훌륭해.'

강민은 용검술에 대해서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쌓아 온 모든 것들.

그곳에는 '기운'을 운용하는 방법 역시도 담겨 있었다.

'나의 새로운 오러 역시 예외는 아니었어.'

그 말대로다.

용검술 안에는 오러를 컨트롤하고 운용하여 검 밖으로 꺼내내는 방식 또한 담겨 있었고.

그 방식대로 나는 지금 오러를 검 밖으로 뿜어낸 것이다.

여러 기운들이 섞여 있는 지금의 오러는 나라고 해도 쉽사리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건만.

용검술의 내용을 바탕으로 오러를 재구성하여 검 밖으로 꺼낸 이 순간에, 오러 블레이드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변모했다.

타오를 듯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 검 위로 새로운 날을 덮어 씌운 듯, 매끄럽고 잘 제련된 '날'의 형태로 검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진짜다.'

그렇게도 폭발적인 기운들을 응축하고, 또 응축해 내어 기운의 손실을 줄이고 살상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한층 진화된 오러 블레이드.

녀석들의 마기와 유사한 검붉은 기운이 내 검 위를 감싸며 길게 뻗어 나왔고.

"크…크크크…!"

내 앞에 있는 마족은 괴상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어쩐지.

그렇게 기세 좋게 날아 온 것 치고는, 그닥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제야 놈의 기운이 조금은 나를 위협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래 봐야….'

내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 녀석이 강하다고 해 봐야 에인션트 드래곤 보다는 아래일 것이고.

나는 그의 검술을 손에 넣었으니까.

그때였다.

팟!

놈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기나 마력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이나 스킬 따위가 아니라, 단순히 놈이 몸을 움직였다는 것이고.

잠시나마 내 시야를 혼동시킬 정도로 놈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일 테지.

'하지만….'

나는 눈으로만 적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는다.

초감각.

그리고 말도 안 될 정도로 탁월해진 초감각의 감지 능력 속에서는 내 눈을 속일 정도로 빠른 녀석의 움직임이 머리카락 하나 움직이는 것까지 포착해 낼 정도로 면면을 파악해 내고 있었다.

'저기로군.'

급할 필요는 없다.

내가 놈의 위치를 파악한 그대로.

그리고 놈의 근육과 눈동자가 움직이고, 호흡이 움직이는 그 방향으로 나 역시 검을 움직일 뿐.

그 누군가에게는 감히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찰나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흘러가고 있는 모든 시간은 내가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콰아아아앙!

다시 놈의 주먹과 나의 검이 충돌했다.

조금 전과 다르지 않은 굉음이 울려 퍼졌고.

쩌저저적!

놈과 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며 드넓은 대지가 들고 일어났다.

쿠쿠쿠쿠쿵!

순식간에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질 정도로 강한 충격!

그리고.

주륵!

놈의 주먹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확실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놈의 주먹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지만, 이번의 일격으로 인해서 놈보다 내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뜻이다.

"아쉽군."

그리고 나는 놈에게 말해줬다.

"네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더 즐거운 싸움이 되었을 텐데."

그 말을 들은 놈의 안색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이, 이……!"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다시 막아 보아라."

나는 그 말과 함께 다시 검을 움직였다.

번쩍!

허공에서 섬광이 스쳐 지나갔고.

푸학!

놈의 몸을 가로지르는 붉은 선과 함께 놈의 상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리하다.

파괴하고 부수는 힘이 아니라, 닿는 그 모든 것을 베어낸다.

그게 제 아무리 두껍고 질긴 무언가라 하더라도, 지금 나의 오러는 그 어떤 것에도 가로막히지 않을 정도로 예리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왜 막질 못하나."

"이, 이… 이런 개자아아아…!"

휘익!

검을 움직였다.

그 순간 놈은 주먹을 내질렀다.

놈의 주먹 위로 마기가 응축되어 뿜어져 나왔고.

쿠우우웅!

내 검과 충돌하며 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푸하악!

놈의 주먹에서는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놈의 마기조차도 뚫어버리고, 놈의 몸에 상처를 내 버렸다는 뜻이다.

'훌륭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해.'

가슴에서 벅찬 감정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러 뿐만이 아니라, 용검술이라는 검술 자체에 나는 매혹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베기와 찌르기 안에도 이전의 내가 생각치 못했던 묘리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니 그저 베고 찌르는 동작에서도 이전의 내 검술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 뿜어져 나왔다.

감히 나의 평생을 다 바쳤다고 해도 깨우칠 수 없었을, 검의 '극의'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이이이…!"

잔뜩 분하다는 듯이 놈이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놈이 발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다리 위로 마기가 흘러 넘치며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로 검을 움직였다.

콰직!

"크아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당연히 놈의 다리였다.

놈은 괴성을 내지르고 몸을 뒤틀며 내 검을 막아내려고 했지만, 놈이 그 어떤 저항을 하더라도 무의미한 짓일 뿐.

그리고 내심 놈의 방어력에 대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검이 위로 솟구친 바위들에 닿기만 하더라도 바위는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있음에도.

놈의 몸에는 이 정도의 상처밖에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놈의 방어력이 상당하는 뜻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칭찬해 주마. 내가 너를 잘라내지 못했다는 게 나로서는 너무도 아쉽다. 다만 네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제 나에게 이 싸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놈은 나보다 약했고, 내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니.

저벅

나는 놈을 향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놈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으, 으으…!"

놈은 떨리는 눈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마, 말도… 말도 안 돼… 내, 내가… 이 내가… 뒤로 물러서다니…!"

"우선… 다리 한쪽 정도는 잘라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귀찮게 할지 모를 테니까."

휘익!

검을 들어 올렸다.

"다, 닥…!"

놈이 빨개진 얼굴로 무언가 소 치려던 그때.

"멈춰! 멈춰라!"

저쪽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놈은 동시에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겼고.

그 자리엔.

"머, 멈… 멈추지 않으면… 이 녀석을 죽여 버릴 거야!"

몰른의 목 위로 검을 들이대고 있는 마족 한 명이 보였다.

나는 그를 보며 조소를 흘렸다.

"이봐."

"멈춰! 멈추라고!"

내 부름에 답하기는커녕 제 할 소리만 떠들어 대고 있는 저 가련하고 하찮은 마족을 어찌해야 할지.

"내가 정말 몰랐다고 생각하나?"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뭐, 뭐…?"

"네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내가 몰랐다고 생각하느냐는 말이다."

적어도 초감각의 범위가 닿는 한, 쥐새끼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까지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내가.

저런 잔재주를 굴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꾸우우웅…."

해츨링이 옆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쿠우우우웅!

굉음과 함께 마족의 몸이 땅으로 짓눌렸다.

그리고.

파직!

마족의 몸이 그대로 터져 버린 것이다.

[힘 100을 포식했습니다!]

[민첩성 200을 포식했습니다!]

[체력 190을 포식했습니다!]

"잔재주를 부릴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쓰러져 있는 셋을 바라보며 경고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