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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43화 (243/277)

243화

"여기군."

짧은작별을 나눈 채, 우리는 다시 중앙섬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해츨링의 텔레포트 마법이 있었으니, 꽤 먼 거리기는 하지만 눈 깜짝할 새 발레하드 왕국으로부터 중앙섬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앞에는.

후우우우웅!

커다란 마력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 너머에선 역시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으니.

"무, 무서워요오오…."

중앙섬과 비슷해 보이지만 중앙섬보다는 조금 더 척박해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 안에는 생전 본 적도 없는 괴물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섬찟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약한 소리 하지 마라, 몰른. 만약 원치 않는다면 지금 돌아가도 좋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시, 싫어요오오오!"

몰른이 화들짝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그 옆에 있는 해츨링은 의기양양한 포즈로 콧김을 뿜어냈다.

자신은 하나도 겁나지 않는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듯했으니.

"그래. 같이 가기로 마음먹었으면 무슨 사건이 터져도 약해져서는 안 될 거야."

조금 단호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 역시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까.

"어쨌든 나쁠 건 없겠지. 저 녀석들이 모두 나의 밥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보면 말이야."

오랜만이지 않은가.

새로운 몬스터를 처치하고, 그 몬스터의 능력들을 포식하며 강해지는 일.

그렇지 않아도 꽤 오랜 시간 사냥다운 사냥을 해보지 못한 참이었으니.

"가자."

망설일 이유는 없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일.

우리는 게이트 안으로 몸을 옮겼고, 이내 시야가 어두워졌다.

***

"우우…."

그때 한 꼬마가 눈을 떴다.

"아우... 뭐지.. 왜 내가 잠든 거야."

꼬마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삭막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에도 별 감흥 없다는 듯 푸념을 내뱉은 꼬마는.

"끄아아아아!"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다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재미있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사아아앗!

꼬마의 주변으로 몇몇의 신형이 드러났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주군."

"부르심을 기다렸습니다."

성인 남녀들은 꼬마를 보고서도 예를 갖추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겉모습 따위는 그닥 중요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응. 다들 오랜만이야. 이게 참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었어?"

꼬마는 자연스럽게 성인 남녀들을 하대했다.

그 말을 들은 이들 역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꼬마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저희 역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눈을 떠 보니 이 공간이었고, 지금 주군의 부르심을 받고 황급히 달려 온 참이었습니다."

"저 역시."

"저도요."

"마찬가지입니다."

꼬마뿐만이 아니라 다른 네 명도 이 상황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그때였다.

그르르릉!

거대한 늑대가 그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늑대의 덩치는 커다랬다.

겉모습만 늑대와 비슷했을 뿐, 그 덩치는 가히 코끼리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고.

쿠우웅! 쿵! 쿵!

늑대가 그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토록 산만 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은 기민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다섯 명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늑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으니.

"주군.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때 가장 덩치 큰 한 남자가 주먹에 달린 너클을 고쳐 끼우며 말했다.

하지만, 꼬마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아냐. 오랜만에 몸 좀 풀어 보지, 뭐."

그렇게 말한 꼬마는 늑대를 바라봤다.

그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 늑대를 보고서도 꼬마는 조금도 무서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고.

그 대신 꼬마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꼬마의 손끝에서 작은 구체가 만들어졌고.

작은 고체로부터 뻗어 나온 광선은.

후웅!

늑대의 몸통을 관통했다.

딱히 이렇다 할 굉음도. 화려한 이펙트 같은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사삿!

광선이 지나간 뒤, 늑대의 몸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말 그대로 허공에서 증발한 채 작은 잿가루 하나조차 남기지 않았다.

도무지 몇 번을 확인해 봐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법한 장면임에도,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고 있지 않을 따름이다.

"으… 몸이 뻐근해. 이거 하나 했다고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오랜 시간 잠에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곧 컨디션을 회복한다면…."

"멍청아. 주군께서 그것도 모르실까 봐? 그렇죠 주군?"

"응.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출출한데 식사 먼저 해야 하지 않겠어?"

꼬마의 말에.

""예!""

네 명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홀로 남은 꼬마는 휘파람을 불었다.

"더러운 마계보단 이쪽이 쾌적하네. 살 만할 것 같기도 하고."

그 순간, 꼬마의 이마에서는 뿔 하나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꾸우웅!"

어비스의 상부에 도착한 감상이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사악한 사념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비스 상부는 의외로 깔끔했다.

어쩌면 설계자들이 잘 관리를 해 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뭘 해야 할지 꽤 막막하군."

지도도 없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낯선 세계에 던져졌으니 아직까지는 쉽사리 갈피를 찾을 수 없었다.

'초감각으로도 딱히 무언가 포착되는 건 없는 듯한데.'

우선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건, 이 어비스 상부에서 어비스의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래야만 이 길고 지긋지긋한 싸움의 끝을 써낼 수 있을 테니까.

'설계자들도 그 힌트에 대해서는 나에게 언급해 주지 않았어.'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상관없다.

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갈 생각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못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

무언가 엄청난 기세로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 먼 곳 어딘가에서 포착된 무엇은 이 순간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몬스터인가?'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너무도 빠른 속도 덕에 초감각으로도 그 형태를 완전히 포착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우선은 경계를 해야만 했다.

"다들 준비해라."

내가 해츨링과 몰른에게 그렇게 말했고.

둘은 곧바로 싸울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한층 더 새롭게 진화한 검을 뽑아들고 날아오는 무언가를 향해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그 순간.

'빠르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 빠르게 날아오는 그것은, 순식간에 나의 사정권 안에 접근했고.

"지금!"

내가 소리쳤다.

그 순간 해츨링과 몰른의 공격이 한 방향으로 쏘아졌다.

이제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조준하는 것 정도는 능숙하게 해낼 정도로 성장한 둘.

그리고 그때.

콰아아아앙!

한 곳에서 거센 폭발이 일었다.

'속도가 느려졌다.'

분명히 느껴졌다.

둘의 공격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 모양이다.

그 순간에도 몰른과 해츨링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적을 향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으니.

쾅! 콰콰쾅!

몰른의 속사가 쉴 새 없이 뻗어나갔고.

쿠쿠쿠쿠쿵!

해츨링의 마법은 천지를 요동시키며 적을 쉴 새 없이 교란했다.

'흔들리고 있다.'

초감각을 통해서 느껴지는 놈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이쯤까지 다가오자 나는 놈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해 낼 수 있었으니.

'몬스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도 아니야.'

놈에게서는 일면 익숙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얼핏 느끼기로는 사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념은 아니다.

사념보다는 조금 순수한 기운.

순수하다고 해서 결코 선하다는 말은 아니다.

사념은 그야말로 지독하고 사악하며 탐욕스러운 기운이지만,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런 질퍽한 느낌은 존재하지 않았다.

놈의 기운에 대해서는 이 한 단어가 적절할 것이다.

'순수악.'

그 단어가 놈에게서 피어나오는 기운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으리라.

'악마, 혹은 마족의 기운일 터.'

놈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놈이 마족이나 악마 따위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놈이라면 이곳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무엇이라도 알고 있다면, 정보를 털어놓게 만들어 주면 그만.'

그 순간.

'온다.'

놈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해츨링과 몰른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타격은 입혔지만, 놈을 쓰러트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

"비켜!"

내가 그렇게 소리쳤고, 내 외침과 함께 몰른과 해츨링은 잠시 좌우로 흩어졌다.

나는 그 틈으로 발을 디디며 전방으로 날아들었고.

"……!"

순식간의 놈과 가까워졌다.

나와 마주친 순간, 극히 찰나였지만 놈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검을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였음에도 놈은 나의 검을 능숙하게 막아냈다.

놈의 무기는 너클.

평범한 금속은 아닌 모양인지, 내 검을 받아내고서도 놈의 너클은 건재했다.

하지만.

"크으으윽!"

놈의 입에서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몰른과 해츨링의 공격에도 신음 한번 터트리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나의 공격만큼은 쉽사리 버텨낼 수 없었던 모양.

그리고.

쿠우우우웅!

놈이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거센 연기와 함께 바닥의 돌과 모래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패애애앵!

나는 순식간에 놈이 있는 곳으로 다시 몸을 날렸다.

'다리를 벤다.'

놈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다리를 잘라 버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후우우우웅!

무언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엄청난 속도와 작은 크기로 보아 저것은 분명 화살.

카아앙!

나는 검으로 화살을 쳐냈고, 잠시 뒤로 떨어져 바닥에 착지했다.

'한 놈이 더 있었… 아니, 둘… 셋….'

이 싸움을 보고서 놈의 동료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는 걸까.

순식간에 초감각의 범위에 포착되지도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이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끄으으으…."

그 틈을 타서 쓰러져 있던 녀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놈의 입에서는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고, 이마를 짚은 채로 혼란스러운 기색을 내비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시.

탓! 타다닷!

그 옆으로 세 명의 인물이 모두 착지하고선 나를 노려봤다.

'역시….'

내 추측이 틀리진 않았던 모양.

그들의 이마에는 뿔이 한두 개씩 솟아 있었으니.

마족을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마족의 이미지에 굉장히 유사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이 몇 명 더 늘었다는 것이고.

저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정도.

물론 내가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강하다.

저 넷이 힘을 합친 것보다 더.

"한꺼번에 와라. 시간 끌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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