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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35화 (235/277)

235화

"그으으으… 끄으으윽…."

놈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놈은 아직 웃고 있었다.

광인.

탑에서 간혹 보이는 광인의 모습이 딱 저러했다.

안면에 달려 있는 모든 기관들이 따로 움직인다.

입에서는 신음을 흘리지만 눈은 웃고 있으며 입은 도무지 어떤 감정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차라리 잘 됐어.'

이 녀석이 제정신을 차리기 전, 놈을 쓰러트리는 게 나로서는 훨씬 더 가뿐한 상황이다.

꽈아악!

나는 검을 더 깊이 박아 넣었다.

검이 놈의 몸을 파고드는 동시에 놈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놈은 손을 움직여 내 검을 부여잡았지만.

콰지직!

강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면서 놈은 다급히 손을 떼어냈다.

'효과가 있다.'

설계자의 축복이라는 그 능력이 확실히 놈에게 먹혀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설계자의 축복 효과가 짙은 사념의 기운을 중화합니다!]

[상대의 능력치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힘이 증가합니다!]

[민첩성이 증가합니다!]

[체력이 증가합니다!]

[마력이 증가합니다!]

눈앞에 이런 메시지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수치는 정확히 표시되지 않았지만 내 스탯들이 폭등하고 있다는 것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 강해지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상황을 한 시라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

콰콰콰콰콰!

검에서부터 더 맹렬하게 오러가 치솟았다.

내 스탯에 영향을 받는 오러 블레이드인 만큼, 그 위력이 몇 배로 더 강해진 것이다.

그뿐인가.

이 순간에도 용의 기운과 렘은 빠르게 사념을 정화하며 그 힘을 렘의 기운으로 전환하고 있었으니.

쿠쿠쿠쿠쿠!

중앙섬이 크게 흔들렸다.

놈의 몸도 크게 흔들렸고,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으으으아아아…으아아아아악!"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 순간에도 나를 향하고 있는 시선은 바뀌지 않았고, 눈매는 웃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푸학!

검을 다시 뽑아든 채 놈을 향해 휘둘렀다.

파직!

검이 놈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놈의 몸이 잘렸고.

쿠우웅!

놈의 몸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나는 곧 바닥에 착지하고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놈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려 나간 부위는 놈의 몸에서 뻗어 나온 촉수로 인해서 다시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

나는 숨을 고르며 놈을 바라봤다.

놈이 일어난다면 언제라도 다시 놈을 향해 공격하기 위해서.

하지만.

콰아아앙!

놈의 몸이 폭발했다.

말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놈의 몸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심지어 잿가루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로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것이다.

'…….'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시작이야.'

놈은 그저 탑의 일부일 뿐.

놈의 진짜는 저 위 어딘가에서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조금 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완전한 상태의 녀석을 결코 상대할 수 없다.

아직 부족하다.

너무도 많이.

'헤르야. 헤르야를 만나야겠어.'

지금 상태에서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헤르야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능력 '사념의 지배자'를 포식했습니다.]

'……?'

내 눈앞에 이런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사념의 지배자]

>사념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숙련도 : 0%

'이게 무슨….'

사념을 다룰 수 있게 된다니?

조금은 당황스러운 메시지.

하지만 내게 이렇게 능력으로 생겼다는 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이 능력으로 사념을 사용한다고 해서 내가 놈들처럼 사념에 지배될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나는 저 숙련도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저게 바로 내가 사념에 지배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 단서다.

'저 숙련도에 따라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념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고, 그 수치만 따라가면 사념에 지배당할 일은 없겠지.'

좋은 소식이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힘들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내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좋아. 어서 헤르야를 찾아가야겠어.'

용인의 수장.

용인들로부터 분명 얻어낼 수 있는 게 더 있을 것이다.

***

"그게 사실이야?"

"그, 그렇습니다!"

그 무렵, 어비스 전역에서 블러드 플레이어들의 패전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놈들에게 분명 무슨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합니다. 놈들이 사용하는 사념의 힘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브, 블러드의 랭커들은! 블러드의 랭커들은 어떻지?"

"그들은 어느 순간 전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간혹 모습을 드러냈다고는 해도 해츨링과 몰른씨의 공격에 꼬리를 내리고…!"

"그렇구나!"

알렉스.

템플의 수장인 그가 쾌재를 질렀다.

지금 이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자면, 어린아이가 와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강민! 그 사람이야!"

알렉스가 소리쳤다.

그는 강민이 이 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확신했다.

"여, 역시…!"

그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템플의 플레이어들이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그들은 마치 완전한 승리를 손에 넣은 것만 같았다.

"우우아아아아아!"

"끄, 끝났다! 끝났어!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아니지! 한강민! 한강민 그 사람이 해낸 거야!"

"어찌 되었건… 승리한 것 아닙니까! 으하하하하!"

플레이어들은 기쁨에 사로잡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사실 그리 긴 싸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고 있던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으니, 그들의 이런 환호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서도 침착하게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는 남자가 있었다.

바로 템플의 수장인 알렉스다.

'아직 끝이 난 건 아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직감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건, 블러드라는 존재들.

아니, 본질적으로는 이 탑과 이 어비스의 정상에는 아직 그 누구도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비밀은 그 위에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강민으로부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민씨가 조용한 것을 보면 분명 아직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게 분명해.'

현재 그가 상황을 파악하는 모든 근거와 이유는 강민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도 알고 있다.

지금 이 어비스의 전체 플레이어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해도 그 영향력은 강민 한 사람에 비해서는 개미 정도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결국 이 어비스 모든 플레이어들의 운명은 강민씨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분하지도 않다.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이.

아니, 더 나아가 이 어비스 전체에서 기뻐하고 있을 플레이어들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도 한강민 한 사람의 행보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할 이유가 없지.'

그의 목적은 어쨌거나 이 탑에서 악의 주축이었던 블러드 플레이어들을 제거하는 것.

그 목적을 몇 년.

아니 어쩌면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던 강민을 만나게 되었다는 건, 그에게 있어선 커다란 행운이었으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도 강민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아, 그렇지.'

알렉스는 가끔 강민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박명철이라고 했던가.'

위드 길드의 박명철이라는 이름을 알렉스는 잊지 않았다.

'강민씨가 의지한다고 했던 유일한 사람.'

그렇지 않아도 알렉스 역시 박명철에 대해서 궁금하던 참이었고.

'머지않아서 어비스에 진입할지 모른다고 했었는데.'

알렉스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강민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알게 된 것 같아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강민씨를 처음 만났던 그곳에 사람을 보내야겠어. 아니, 아니다.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서 박명철이라는 사람을 만나봐야겠군.'

그는 먼저 박명철이 도착하게 될 곳에 가서 그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만약… 내가 박명철이라는 사람을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면, 강민씨도 크게 기뻐하실 거다.'

강민에게 큰 도움은 줄 수 없겠지만.

지금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면 그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들 조용. 아직 들뜨긴 이릅니다.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요."

알렉스가 플레이어들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먼 길을 떠날 파티를 구성하겠습니다."

그렇게 알렉스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이며 체력이 좋고, 발이 빠른 플레이어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

"나의 친구여!"

헤르야는 나를 보자마자 자신의 친구라며 기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해냈구려, 정말로 해냈어!"

헤르야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시작이지. 지금 내가 한 것은 이 일의 서막을 열었을 뿐이야."

물론 헤르야도 그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헤르야는 나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나 이상으로도 이 어비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그렇겠지만, 그대가 오늘 해낸 일은 나와 그리고 나의 친구들. 더 나아가서 이곳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거대한 도약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조용히 헤르야를 바라봤다.

내 눈을 마주친 헤르야는 미소 지었다.

"기쁘오. 그대가 나를 찾아와 줬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가슴 뛰게 하는군. 그렇다는 건, 그대 역시 나에게 더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말일 테니까. 그렇지 않소?"

역시.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심 고맙기도 했다.

"염치가 없지만… 이번 싸움에서 나는 분명 한계를 느꼈다. 더 강해져야만 해. 지금 이 상태로는… 저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아마 이제 머지않아서 어비스의 상부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이 열릴 것이다.

설계자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 전에.

내가 어비스로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더 강해져야 한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위에 대체 무엇이 있을지, 지금의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우리 용인들은… 꽤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내 그대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분이 계시는군."

헤르야가 말했다.

헤르야의 말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헤르야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잠시 의문이 떠올랐다.

'헤르야가 용인들의 수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 이 공간을 지켜내고 조성한 것은 헤르야라고 했었는데.

그런 내 의문을 읽어냈는지 헤르야가 말했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를 따라오시게. 그대가 만나면 정말 기뻐할 만한 위대한 존재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헤르야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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