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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30화 (230/277)

230화

"끄흐… 끄흐흐흐흐하!"

놈이 다짜고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가슴에 박혀 있는 오러 블레이드는 빨갛게 달아오르며 놈은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아직도 웃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놈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고.

콰직!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는 검을 부여 잡았다.

치지지지직!

붉은 오러는 검을 잡고 있는 놈의 손을 태워가고 있었지만, 놈은 개의치 않고 손에 힘을 주어 검을 밀어냈다.

나 역시 힘을 주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검은 천천히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힘이…!'

힘만으로 내가 녀석에게 밀리고 있다는 걸 믿기 힘들었다.

지금 내 힘 수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하고 있을 정도였는데, 저 녀석이 나보다 힘을 강하다는 걸 어찌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콰과과곽!

검을 천천히 밀어내는 녀석의 눈이 다시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랬던 거군.'

익숙한 장면이다.

블러드 녀석들의 폭주.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고 있는 중이라는 뜻일 것이다.

꾸득! 꾸드득!

순식간에 놈의 등짝에서 괴상한 무언가가 뻗어져 나왔다.

날개의 형태로 뻗어 나온 뼈.

말 그대로 뼈뿐이다.

길게 뻗어나온 날개 뼈 사이로 다시금 붉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콰직! 콰지직!

놈의 몸 곳곳에서는 동시에 가시들이 뻗쳐 나오기 시작했고.

파학!

기어코 놈은 검을 잡아서 자신의 몸에서 완전히 뽑아냈다.

"크아아아아아!"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 순간.

콰콰콰콰!

씨앗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씨앗에서 뻗어 나온 촉수 하나는 쉬지 않고 녀석을 향해 날아들었고.

푸각!

놈의 몸을 관통하며 박혀 들어갔다.

꾸구국! 꾸국! 꾹!

씨앗이 꿀렁대며 촉수를 통해 무언가 쏟아 보내기 시작했다.

'젠장.'

누가 설명해 준 것은 아니지만, 이 현상이 어떤 현상인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이 순간에도 씨앗으로부터 녀석의 몸으로 들러 들어가는 측량할 수 없는 막대한 에너지를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잘라야 한다.'

나는 촉수를 향해 움직였고, 검을 움직였다.

파직!

일격에 촉수가 잘려 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콰콰콰콰콰!

잘려 나간 촉수에서부터 붉은 기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념의 기운이다.

내가 그동안 마주했던 그 어떤 사념보다 짙고 역겨운 사념들이 폭포와 같이 쏟아져 나오며 중앙섬 전체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크흐흐… 크흐흐흐하하하하!"

그 순간, 또 한 번 괴상한 웃음을 터트리는 블러드의 플레이어.

놈은 달랐다.

그동안 만났던 이들은 폭주하면 이성을 잃기 마련이었는데도 녀석의 초점은 또렷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껴 보아라. 이 힘이 얼마나 강인한지… 그렇지 않나? 가지고 싶지 않나? 너도 느끼고 싶지 않느냐는 말이야!"

역시.

녀석의 자아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전 내게 하고 있었던 말을 다시 뱉고 있는 꼴을 보면 분명하다.

'그 말은… 역시 놈들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거야.'

저 녀석이 블러드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건, 녀석은 블러드의 수장이 히든 카드로 생각하고 내 앞으로 내밀었다는 것.

'박살을 내 주마.'

언제까지 자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의 졸병들만 보낼 생각인지.

그따위 알량한 식으로 나를 막아 설 수 없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 주는 수밖에 없겠지.

'이 녀석과 함께 저 씨앗을 한 번에 박살낸다.'

자신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끝장을 내 줄 계획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어비스 전체에서 날뛰고 있는 블러드 녀석들도 한 번에 진압할 수 있을 테니까.

콰앙!

나는 발을 디디며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꽉 쥔 검 위로 붉은빛의 오러가 맹렬하게 치솟았다.

놈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양손을 뻗어들자 놈의 두 손에서도 붉은 사념이 화염처럼 솟구쳤고.

그와 동시에.

쿠우웅! 쿵! 쿵!

녀석이 소환해 낸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의 모습도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

놈들의 모든 갑옷 위로 붉은빛이 맴돌고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더 윤기 나고 탄탄한 모양새였다.

붉게 빛나고 있는 건 놈들의 갑옷만이 아니다.

병사들의 피부와 눈빛, 그리고 들고 있는 모든 무기에서도 붉은빛이 어리고 있었으니.

저 모든 병사들을 만들어 낸 근원적인 힘은 사념이 분명했다.

'만만치 않겠어.'

처음에도 꽤나 성가신 녀석들이었는데, 사념을 둘둘 두르고 있는 상태라면 이전보다 훨씬 더 성가셔 보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마치기가 무섭게.

쿠우우웅!

무언가 엄청난 기세로 날아왔다.

'화살.'

활을 든 병사가 쏘아 낸 화살이다.

화살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내 코앞으로 순식간에 날아왔다.

화살이 빠른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저 화살은 그저 빠르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속도였다.

게다가 평범한 화살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크기라는 걸 생각해 보면… 가히 비상식적인 속도다.

콰아아앙!

내가 검으로 화살을 막아내자, 손아귀가 저릿할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화살을 막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내 검에 닿은 순간 화살은 반으로 쪼개진 채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휘릭!

화살을 베어낸 힘을 역으로 이용하며 하늘로 크게 도약한 나는 병사들을 무시한 채 블러드 플레이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녀석의 두 손에서는 다시금 빨간 가시가 솟구쳤다.

아니, 가시보다는 칼날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은 모양.

뻗어나온 가시의 아래쪽에 날이 생겨나며 더욱더 길게 뻗어 나왔고.

그 길이는 이내 3m에 육박할 정도로 길어졌다.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은 한 손에서 뻗어 나온 칼날을 크게 휘둘렀다.

카아아앙!

내 검과 놈의 칼날이 충돌했다.

쿠우웅!

파공성이 울려 퍼지며 하늘 위의 구름들이 흩어졌다.

쩌저적!

충돌한 곳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지며 땅 아래에서 수많은 촉수와 사념들이 솟구쳤다.

숨이 막혀 올 정도로 지독한 사념들이 내 몸속을 타고 들었고.

"그어어어어!"

"게으으으!"

병사들이 크게 휘청이며 균형을 잡기 위해 괴성들을 내질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환체들을 빠르게 움직였다.

균형을 잃고 자세가 흐트러진 녀석들의 몸을 타고 오르며 소환체들은 놈들을 끝없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물론 소환체들이 병사들을 완전히 막아내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는 충분할 것이다.

그때.

부우우웅!

녀석의 반대쪽 칼날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다급히 몸을 움직였고.

화아악!

내 몸 위 한끗 차이로 놈의 칼날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놈의 동작이 조금 컸던 나머지 찰나의 순간 자세가 흩어졌고.

빠아아악!

검을 이용해 땅을 짚으며 발을 크게 움직여 놈의 뒤통수를 걷어찼다.

"커허억!"

놈의 균형이 조금 더 크게 흩어졌다.

턱!

급하게 검을 뽑아 든 나는 다시 검을 뽑아든 회전력을 이용해서 다시금 놈을 향해 몰아쳤다.

콰직!

검이 놈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놈의 상체에 커다란 상처가 났다.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뿜어져 나온 피가 촉수의 형태로 허공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젠장. 정말 역겨워 뒈지겠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땅으로 착지했다.

놈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잘려 나간 부분에서 뻗어 나온 촉수는 다시 놈의 몸으로 돌아가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고.

놈은 웃고 있었다.

"자. 어떠냐. 이 힘이 말이다. 무한한 생명과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이 힘이 탐나지 않느냐는 말이다. 흐흐… 흐흐흐하하하하!"

이쯤 되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인형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나는 저 녀석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 저 녀석은 내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까지도.

그 말이 무슨 말이냐하면, 저 녀석은 진심으로 나에게 사념을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라는 말이다.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사상이긴 하지만.

그게 저 녀석의 애정 표현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저 녀석이 얼마나 뒤틀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지독한 녀석이군.'

내가 저 녀석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하나뿐이다.

눈을 감게 해 주는 것.

그래서 저 뒤틀린 마음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이 선에서 끝내주는 것.

'도전을 해야겠어.'

나는 어느새 다시 한번 크게 증가한 렘을 떠올렸다.

이전이라면 평범한 오러와 렘이 섞이는 게 불가능했겠지만, 지금 내가 뿜어내고 있는 오러는 평범한 오러가 아니다.

'용의 기운이 섞인 오러.'

그리고 이 용의 기운을 받아들일 때 렘을 이용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용의 기운이 렘과 오러를 중화해 융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렘까지 이 오러에 섞을 수 있다면… 놈을 처치하고 저 씨앗을 파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렘을 움직인 순간, 렘의 흐름을 따라 용의 기운이 함께 움직였다.

놀라운 일이다.

용의 기운은 정말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오러와 함께라면 오러의 폭발적인 기운을 복돋아 주고, 렘과 함께라면 렘의 차분한 에너지를 더 차분하게 다스렸으니까.

콰콰콰콰!

내 몸을 타고 흘러나오는 렘은 용의 기운과 뒤엉키며 오러와 만나기 시작했다.

용의 기운은 그 사이에서 서로의 대립을 완화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극이던 오러와 렘이 하나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정말… 놀랍군.'

하나로 응축된 렘과 오러가 다시금 검 위로 뿜어져 나오려던 순간.

[렘과 오러가 하나의 기운으로 더해집니다.]

[렘은 오러에게 자신의 힘을 더해 줄 것입니다.]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이 더욱더 강해집니다.]

몇 개의 메시지가 떠오른 뒤.

나는 오러를 바라봤다.

오러의 색은 여전히 붉은빛.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오러 내부에서 강력한 렘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

렘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블러드의 플레이어 역시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는지 잠시 주춤하며 눈매를 좁히고 나를 노려봤다.

"뭐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게 묻는다고 해서 친절하게 대답해 줄 성미는 아니다.

대답 대신 직접 느끼게 해 주는 게 더 빠를 테니까.

"네가 그토록 원하던 진정한 힘이라는 게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마."

그리고 나는 다시 도약했다.

놈을 향해 순식간에 다가간 나는 검을 움직였고.

"개소리하지마아아아아!"

놈의 괴성과 함께 두 개의 칼날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콰직! 콰득!

일격에 두 개의 칼날이 잘려 나갔다.

다르다.

이건 확실히 달랐다.

오러에 섞인 렘의 기운은 녀석의 사념 따위는 한순간에 흩어버린 채, 놈에게 치명타를 입혔고.

놈의 칼날이 잘려간 이후에도.

"크아아아악! 뭐, 뭐야… 이게 뭐냐고오오오!"

용의 기운과 함께 놈의 전신을 타고 불길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로… 훌륭하군.'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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