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28화 (228/277)

228화

"……."

알렉스와 마주했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알렉스가 말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꽤나 사연 많은 녀석이로군.'

왜 템플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은밀하게 움직이며 블러드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났는지.

그 모든 것은 알렉스의 과거와 분명 연관성이 있었다.

'하긴. 사연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알렉스라는 인간은 정말 순수하고 거짓 따위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

웬만한 시련에도 부러지거나 쓰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알렉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내가 물었다.

"사실 뭐라고 특별히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지금 말 그대로 어비스 전역에서 숨어 있던 블러드 녀석들이 날뛰기 시작했다는 것 밖에는요."

그러면서 알렉스는 나를 바라봤다.

무언가 알아냈느냐는 표정.

그렇다면 나도 대답을 해 줘야겠지.

"녀석의 심장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발견한 참이다."

"……?!"

그 말에 알렉스의 눈이 커졌다.

"당연히 중앙섬에서였지. 중앙섬을 한참 걷던 중, 이 녀석이 땅속에서 무언가를 끌어 올렸어."

"심장이라는 확신은 있습니까…?"

"아직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직접 확인해 보려던 차에 너에게 메시지가 도착해서 이곳으로 온 참이었으니, 다시 그곳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지."

"허…!"

알렉스의 얼굴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우선 이곳에 오긴 했지만, 나는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순 없다는 말을 해야겠어."

"으음…!"

알렉스도 쉽사리 나를 붙잡지 못했다.

만약 내가 본 게 정말 그 녀석의 심장이 맞다면 내가 여기에서 블러드들과 싸우는 것보다 다시 중앙섬으로 향하는 게 훨씬 나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걱정 마라. 이 둘을 두고 갈 테니까. 물론 내가 있으면 큰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어비스 전역에서 블러드가 날뛰기 시작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나 하나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수도 있어 나보다는 차라리…."

내 시선이 해츨링과 몰른에게로 향했다.

"이 둘이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지금의 해츨링과 몰른은 강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특히나 이 녀석이 많이 달라졌지."

해츨링 말이다.

"그런 것… 같군요."

알렉스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블러드들과의 난장판 속에서는 나보다 이 녀석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진심이었다.

헤르야에게 새로운 힘을 받아 한층 더 강해진 해츨링의 마법이라면 분명 정신없이 벌어지는 싸움 속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민씨가 중앙 섬으로 가는 게 우리에게 있어서 훨씬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군요."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군."

그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츨링과 몰른을 놔둔 채로 다시 원한의 숲으로 향했다.

헤르야가 다시 한번 중앙섬으로 갈 수 있는 포탈을 열어준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

'기어코 그렇게 나오겠다는 것이냐.'

남자는 강민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차피 블러드 플레이어들이 전면에 나서서 날뛰기 시작한 이상 강민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골치 아픈 녀석이군, 정말로.'

강민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민이 남기고 간 해츨링과 몰른에 의해서 블러드 플레이어들의 수는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나 해츨링의 활약이 너무 뛰어났다.

해츨링의 마력 컨트롤이 얼마나 절묘한지, 플레이어들이 한 군에데 뒤엉켜 있어도 블러드 플레이어들만을 골라 정확히 적중시키는 해츨링의 마법은 블러드 플레이어들에게는 너무도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해츨링이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블러드의 플레이어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해츨링은 자신의 마법인 텔레포트를 활용하여 어비스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언제나 해츨링을 따라다니는 몰른의 활쏨씨는 블러드 플레이어들을 놓치는 법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블러드 플레이어들의 습격은 몰른과 해츨링이 등장한 순간 급격하게 위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녀석은… 다시 중앙섬으로 향했을 게 분명하다.'

더욱더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한 번 물러서 놓고서 오래지 않아 다시 중앙섬으로 가고 있다는 건, 분명 강민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는 뜻일 것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 녀석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다시 중앙섬에 갈 만큼 멍청한 인간일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남자 역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뜻.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중앙섬에 묻어 둔 심장에 다가가도록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고민이 되나 보군."

누군가가 남자 옆으로 다가왔다.

"도널드로군."

"그래."

도널드라는 남자는 남자의 옆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여기에는 내 허락 없이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남자의 싸늘한 말에도 도널드는 기죽지 않고 남자를 응시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겁먹지 않아."

"너답군."

도널드의 당돌한 말에 남자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는 도널드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도널드가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도 알고 있다.

당연히 도널드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터져 나올 듯한 자신감 때문이다.

스스로를 극도로 사랑하는 지독하고 끔찍할 정도의 나르시스트.

그리고 도널드를 나르시스트로 만들어낸 건, 그의 우월함 때문이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 아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월하고 압도적인 도널드.

그런 도널드는 나르시스트였고, 동시에 사이코패스였다.

자신이 아닌 모든 존재를 내려보며 짓밟아 죽이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남자였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시선만 해도 그렇다.

블러드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겁내지 않는 존재.

"내가 가 보지. 지금의 네가 중앙섬으로 직접 가는 것보다는 그쪽이 안전하지 않겠나? 네가 허락만 한다면 한강민이라는 자와 직접 붙어 볼 생각도 있다."

"……."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면전은 안 된다. 다만 직접 부딪치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너 정도라면 말이야."

"아쉽군. 네가 나를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니."

"그렇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한강민 그자는… 진짜니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겠다. 내가 직접 그 녀석의 실력을 판단해 보고 알려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도널드는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한강민….'

그런 도널드의 뒷모습을 보며 남자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이 좋지 않다.

모든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건만, 점점 무언가 균열이 이는 것만 같았다.

***

'다시 도착했군.'

한 번 와 본 중앙섬에 다시 발을 디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나 헤르야가 열어주는 포탈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도착한 중앙섬.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중앙섬은 처음 왔을 때 봤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역시… 이곳은 분명 그 녀석과 관련이 있는 장소야.'

이 중앙섬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 같이 느껴졌다.

단순한 섬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장소라는 뜻이다.

쿠궁! 쿠궁!

이 섬 전체에서 느껴지는 파동만을 봐도 그렇다.

이전에는 나라고 해도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파동이 헤르야로부터 용의 기운을 전해 받은 뒤로는 느껴지게 된 것이다.

'믿을 수 없군.'

정말로 심장이 박동하듯, 중앙섬이 고동치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지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정말 그것이 심장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어.'

그 녀석이 중앙섬에 심어 놓은 자신의 심장.

그리고 이 섬은 심장에 생명을 부여하고 더 많은 힘을 쏟아 넣기 위한 일종의 영양분 공급처일 것이고.

'그 최종 목적은… 사념을 퍼트리는 것이겠지.'

안 봐도 뻔한 일.

결국 이 어비스에 널리 퍼져 있는 사념의 근원은 바로 이 섬이라는 뜻이었고.

'그 심장만 파괴할 수 있다면….'

놈에게 분명 커다란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되겠지.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묻혀 있는 그곳을 향해서.

내 걸음에 망설임은 없다.

역시나 이미 한 번 갔던 길.

길을 헤맬 이유 따위는 없다.

더 이상 중앙섬을 가득 메우고 있는 용암은 내게 아무런 위협조차 되질 않았다.

용의 기운이 더해진 순간 열기는 조금도 나를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의 나였어도 이 정도 열기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용의 기운이 어른거리는 내 몸은 발이 용암 속에 빠져도 아무런 타격조차 입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화염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몸뚱이를 가지게 됐어.'

물론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체감은 정말이지 그 어떤 수식어조차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물론 그 덕에 내가 망설이지 않고 다시 이 중앙섬으로 걸음을 옮긴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슬슬 씨앗이 있는 곳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뽑아 들었고, 검 위로 오러를 불어 넣었다.

붉은빛의 오러가 일렁이며 검은 검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 섬의 고동 소리가 더욱더 또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이 섬은 평범한 섬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임이 확실하게 밝혀진 순간이었으니.

나는 바닥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각!

붉은빛 오러가 중앙섬의 검은 바닥을 관통했다.

그 순간.

쿠구구궁!

섬이 흔들렸다.

[그으으으으-!]

귀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다 대고 누군가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섬뜩하기도 했지만, 놈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는 검을 뽑아든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무렵.

'저기 있군.'

보이기 시작했다.

해츨링이 다시 박아 놓은 심장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촉수를 쫙 뻗은 채로 섬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검을 들었다.

일격에 박아 넣을 생각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이제 나는 그 어떤 위협이라도 충분히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건 진실이다.

부우웅!

내 검이 움직였다.

반쯤 땅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거대한 씨앗을 향해서.

그런데 그 순간.

콰가각!

"……?!"

내 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무언가 가로막았다.

'뭐지?'

갑작스레 허공에서 튀어나온 건, 커다란 몬스터였다.

'마치… 병사처럼 생겼군.'

말 그대로였다.

얼핏 봐도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에 온몸을 철갑으로 두르고 있는 병사였다.

놈의 거대한 방패는 내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쩌저적!

결국 내 오러에 관통당한 채 방패는 쪼개졌고, 내 검은 놈의 허리를 관통했다.

파가각!

나는 그대로 검을 움직여 놈의 허리를 반 토막 내버렸고, 놈은 쓰러졌다.

그때였다.

짝- 짝- 짝-

"듣던 대로 괴물이구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