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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26화 (226/277)

226화

심상치 않다.

땅 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씨앗은 심지어 고동치고 있었다.

심장이 한 번 고동칠 때마다 커다란 진동이 내 몸을 감쌌고, 나에게 무슨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 근처에 갔다가는 쉽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게 분명해.'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무도 확실하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작정 저 씨앗을 향해 달려들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조금 전 내가 목적한 것은 반드시 이룬다고 했지만, 지금만은 잠시 물러나야 한다고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으니, 나는 씨앗으로부터 천천히 한 걸음 물러섰다.

'아무래도 이 씨앗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해츨링 덕분일 거다.'

그렇지 않고 내가 렘을 이용하거나 내 손으로 이 씨앗을 꺼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이렇게 멀쩡히 서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데 마치… 심장같군.'

생김새는 씨앗처럼 생겼다고는 해도, 저 씨앗이 고동치는 모습은 마치 심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씨앗으로부터 뻗어 나온 촉수들은 이 중앙섬 깊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했으니.

마치 씨앗이 고동치며 이 중앙섬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고 생각될 법한 모양새다.

'잠깐만, 설마….'

그러던 중 어떤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저 씨앗이 어떤 존재의 심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만약 정말로 저 씨앗이 심장이라면….'

누구의 심장이겠는가.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탑의 심장일 것이다.'

그것 밖에는 추측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소득이군.'

그저 중앙섬에서 어비스의 상부로 향하게 될 열쇠나 발견하게 되면 행운일 거라고 생각했던 마당에.

이 탑의 심장으로 추측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건데….'

확실히 지금의 내 힘으로는 어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물체였다.

무작정 건드리기에는 아직 예상할 수 없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에 쉽사리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때 해츨링의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지켜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만해도 좋다."

내 말에 해츨링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씨앗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씨앗은 완전히 땅에 박히지 않았다.

그 대신 반쯤만 박힌 채로 반틈은 땅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채였다.

그리고 여전히 씨앗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은 땅속 깊은 곳 어디론가 파고든 채 씨앗의 고동과 함께 중앙섬 전체로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만 버텨다오."

나와 해츨링, 몰른은 순식간에 씨앗으로부터 먼 곳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씨앗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야 비로소 해츨링은 자신의 기운을 벗겨냈다.

내 손에 들린 파편은 씨앗의 고동과 함께 공명하고 있었고, 저 먼 곳에서 느껴지는 씨앗의 기운은 나를 해치지는 않았다.

'이것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헤르야. 헤르야와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겠어.'

그렇다면 지금 다시 원한의 숲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한의 숲으로 돌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직도 나를 중앙섬으로 보내줬던 포탈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군.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나도 예상이 안 돼.'

예상 못 하는 일.

그 뒤에는 분명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테지만, 그만큼 나를 흥분시키는 것도 없었다.

'아마 놈도 꽤 조급해 하고 있을 테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블러드의 수장, 그리고 이 탑의 '일부' 혹은 '전체'일 그 존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

'이 어찌….'

그 시각, 남자는 흠칫 놀랐다.

분명 자신의 심장이 움직였건만, 그것뿐이었다.

'내 심장이 움직였다는 건 분명히 내 심장은 건드렸다는 뜻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심장을 건드린 강민이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은 남자를 큰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내 심장을 건드리고서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거지?'

그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의 심장을 손에 대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오랜 시간 품어 왔던 사념에 휩싸여 반쯤은 미쳐버려야 정상일 텐데.

'나의 사념보다 더 강인한 정신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뜻인가?'

순간 그의 머리에 어떤 존재가 스쳐 지나갔다.

'그자인가?'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이던 한 존재가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그가 수많은 세계를 집어 삼켜왔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유일하게 자신의 속에서 이성을 잃지 않았던 유일한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어비스에서 그 존재의 기척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도 그 존재가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뱃속에서 모든 존재의 시간과 공간은 멈추고, 그로 인해서 모든 사고와 이성이 마비되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그럼에도 이성을 부지하고 있었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생명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일.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생명 에너지를 소모하며 버텨왔으니 이 어비스 속에서 오래지 않아 생명이 다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설마….'

그 존재가 살아 있다는 말일까?'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살아 있다면 분명히 자신이 알았어야만 한다.

그 정도의 존재감을 지닌 생명체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젠장!'

그 순간 남자의 눈에 핏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퍼즐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강민의 기척이 사라졌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나!'

기척을 탐지하는 플레이어들이 강민의 기척을 놓쳤던 그 이유와 작금의 사태.

그리고 자신의 뱃속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잃지 않고 버텨냈던 존재의 실마리.

이 모든 일들의 톱니바퀴가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어코… 그 둘이 만났다는 말인가?'

둘이 만나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시너지로 인해서 자신의 심장의 정체가 온전히 노출됐다.

그것도 강민에게 일말의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로.

'젠장! 이를 어찌해야….'

심각한 상황이다.

강민이 자신의 심장의 정체를 알아낸 이상 절대로 가만둘 위인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공격을 가해 올 게 분명했다.

'그 심장이 파괴된다고 나의 존재가 소멸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현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은 이 탑의 일부일 뿐.

심장 역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의 파편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중앙섬에 묻어 놓은 심장이 파괴된다면 남자로서도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대처를… 대처를 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나설 수는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블러드라는 집단을 만들고 플레이어들에게 사념을 나누어주는 번거로운 일을 벌이는 이유도 지금은 직접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심장….'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어비스라는.

설계자들이 설계해 놓은 공간 속에서, 중앙섬만은 온전히 자신이 구축한 별개의 공간이었고.

그 중앙섬에 심어 놓은 심장은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힘을 키우며 어비스에 사념을 흩뿌리고 있는 중이었으니.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어비스의 전역을 사념으로 물들일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레 튀어나온 한강민이라는 변수에 의해서 자신의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젠장….'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남은 한 가지 카드.

블러드의 플레이어들.

그들을 움직여야만 한다.

'어차피 소모품일 뿐. 그들이 시간만 조금 더 끌어 준다면… 내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

"그 말이 사실인가?"

"그래. 거대한 씨앗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심장처럼 보였다."

"흐음…."

나는 곧장 원한의 숲으로 돌아와 헤르야를 만났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일찍 돌아온 걸 보고 헤르야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었지만.

내가 중앙섬에서 심장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나보다 더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그것이 이 탑이라는 곳을,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괴물을 공략할 수 있는 절호의 열쇠일 것이야."

"그래. 나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다만…."

"다만?"

내 말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나를 바라보는 헤르야.

"그것은 지금의 나조차 쉽사리 건드릴 수 없었다."

"이유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 그냥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저걸 건드리는 순간, 나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될 거라고 말이야."

"흐음…."

헤르야가 입술을 깨물며 짧은 탄식을 흘려보냈다.

헤르야가 이미 인정했다시피 지금의 나는 헤르야보다 강했고.

자신보다 강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헤르야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일 테니까.

"그럼에도 너를 찾아 온 건, 이 녀석이 그 씨앗을 움직였기 때문이지."

나는 해츨링을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해츨링에게 건네준 어떤 힘 덕분이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런가."

그 순간 헤르야의 눈빛이 빛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네가 나보다 물리적인 힘은 약하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인간'인 나보다 너의 존재가 가진 '격'이라면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르야와 나의 눈이 마주쳤고, 헤르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말했듯 나는 그 괴물의 뱃속에서도 나의 태어난 숲을 지켜냈으니까."

"그래. 너에게 부탁하고 싶다. 네가 직접 중앙섬으로…."

"불가하다."

"뭐?"

너무도 단호한 헤르야의 한 마디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불가능한 일이야. 나 하나를 믿고 이곳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터를 일구고 살아가고 있다네. 그런 마당에 내가 여기를 벗어난다면, 언제 이 원한의 숲이 노출되어 공격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물론."

내 말을 끊어낸 헤르야의 눈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그대라면…."

"……?"

"그대라면 믿고 나의 일부를 넘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무슨 말이지?"

"비록 인간이기는 하나 인간 이상의 존재로 거듭난 그대라면… 그리고 그대가 그 본질만은 사악하지 않은 존재라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말 없이 헤르야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각오가 되어 있는가?"

밑도 끝도 없이 각오라니?

"조금은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대에게 '용언'이 가진 힘을 전해 주고 싶다네."

"그 무슨…."

"저 아이가 지녔던 그 힘을, 자네에게도 주고 싶다는 말일세. 그것이 정말 그 '심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라면… 자네에게도 그 힘을 전해 주고 싶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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