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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25화 (225/277)

225화

'난감하군.'

내가 도착한 중앙섬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용암섬이었다.

몬스터도 없었고, 혹시나 있을까 생각했던 포탈, 아니면 탑의 흔적들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어비스 플레이어들의 추측이 잘못되었던 걸까?'

중앙 섬에 어비스 상부로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그 추측 말이다.

하긴.

그들의 추측의 근거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도 중앙섬에 와 본 적이 없는 마당에 이 중앙섬에 대한 모든 추측은 어쩌면 말 그대로 '소설'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앙섬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았다.

'괜히 이런 곳을 만들어 놓았을 리가 없어.'

내가 직접 만났던 설계자.

그녀는 일면 허당끼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속 없이 헛소리만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분명 무언가 있을 거다.'

초감각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이미 원한의 숲에서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이곳에서도 분명 초감각으로 감지해 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지.'

지금 내게는 사념의 파편과 렘이라는 두 개의 카드가 남아 있다.

'먼저 파편을 꺼내어 봐야겠어.'

나는 정화하지 않고 남겨 뒀던 파편 하나를 꺼내들었다.

파편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비록 그 진동이 커다랗거나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파편이 진동하고 있다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호임은 확실했다.

'우선 조금 더 둘러봐야겠군.'

한 손에는 파편을,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중앙섬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

"모두가 몰살됐다."

"예상대로군."

"예상대로라고? 지금 이게 그렇게 태평하게 예상대로군, 이라며 떠들고 있을 사안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차피 그 녀석들이 모두 죽을 거라는 건 알고 있던 일이 아닌가! 그게 예상대로지!"

"문제는 한강민 그 한 사람이 아니잖아! 그들을 몰살시킨 건 한강민이 아니었다고. 그 녀석이 끌고 다니는 도마뱀과 머저리인 줄 알았던 음유시인의 손에서 몰살당하지 않았나!"

그 무렵, 블러드 플레이어 상위 랭커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선 큰 소동이 일었다.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 놈은 분명 중앙섬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중앙섬에 발을 들였을 것이라고!"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하지만 이미 오더가 내려오지 않았나! 우리는 한강민을 건드려서는 안 돼. 아니지, 건드릴 수나 있나?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직접 가서 한강민 그자를 쓰러트려 보시던지!"

"뚫린 입이라고…!"

콰앙!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던 중, 누군가가 테이블을 크게 두드렸다.

"다들 그만 하지."

블러드의 사실상 핵심 인물인 남자였다.

그의 한 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다들 너무 흥분할 필요 없다. 스스로 중앙섬 안에 도착해 준 이상 우리로서는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야."

"좋은 일이라고? 그자가 중앙섬에서 비밀이라도 밝혀낸다면…."

그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친 플레이어가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내가 그 정도도 예상치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미 녀석은 내 손안에서 놀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로 알아라."

"아, 알겠…다."

플레이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모두를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이미 모든 상황에 대한 준비는 끝이 나 있는 상태니까.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냐. 애초에 이 사념의 힘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나의 모든 말에 따르기로 다짐했던 것 아닌가?"

잔잔한 말이었지만 얼핏 자신들을 꾸짖는 듯한 내용에 플레이어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렀다.

"결국 이 모든 곳은 나의 몸 안이다. 탑의 설계자들이 무슨 일을 꾸미건, 고작 내 몸 안에서 힘을 기른 인간 따위가 무슨 발악을 하건 그 모든 것은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겠느냐."

플레이어들을 세뇌라도 하듯 끝없이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모두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희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왜 염려하고 있는지 역시 나도 잘 알고 있다. 혹시 누군가는 나에 대한 의심의 마음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 아니다. 의심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의심 따위는…."

"그만."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에 대한 의심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지만, 한두 번쯤은 충분히 눈감아 줄 아량은 있다. 지금의 사안은 특히나 예외적이었고, 나조차도 당황했을 정도니까."

잠시 숨을 고른 남자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중앙섬.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너희도 잘 알고 있을 터."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곳엔 나의 심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심장과는 다르지. 그자가 내 심상에 다가서거나 혹시라도 내 심장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남자의 눈에서 살기가 맴돌았다.

"그때야말로 그자는 나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감히 나에게 응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하게 말이지."

그리고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다들 준비해라. 이제 곧 너희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다. 때가 된다면,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나의 명령을 충실히 따라야 할 것이다. 알겠나."

"아, 알겠다."

"그래."

"기다리고 있지."

남자가 몸을 돌려 공간을 벗어났다.

그리고 남자는 미간을 좁혔다.

'한강민….'

입술을 깨문 남자는 자신의 손을 펼쳐 손바닥을 바라봤다.

'네놈이 아무리 날뛰어 봐야 네놈은 내 손바닥 안이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

'진동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파편의 진동이 강해지는 방향은 한 방향으로 향했을 때뿐이었다.

방향을 조금이라도 돌리면 미세하게 진동할 뿐, 진동의 세기가 급격히 약해지기 일쑤였다.

'이 방향에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 텐데.'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쪽 방향으로 쭉 가다 보면 분명 이 탑의 비밀에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되겠지.'

그 무엇이라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특히나 아직 베일에 가려진 중앙섬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이 탑의 비밀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면 무턱대고 손을 댄다거나 공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선은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지.'

적어도 이 중앙섬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나와 어비스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일 것이다.

"다들 긴장해라. 절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

내가 몰른과 해츨링에게 주의를 주고서 우리는 아주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중앙섬을 가로질러 한참을 나아갔을 무렵.

우우우웅!

파편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들고 있던 탑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검까지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이쯤에서는 방향을 돌려도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내가 지금 어떤 곳의 한가운데에 들어왔다는 뜻.'

어느 방향으로 방향을 전환해도 진동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나는 이 중앙섬의 중요한 부분 내부로 진입했다고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다.

'뭐지? 대체 여기에 뭐가 있는 거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그동안 봐왔던 검은 대지와 땅 아래에서 솟구치는 용암뿐.

'집중하자.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다.'

당연히 초감각으로는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지만, 파편이 크게 진동하고 있으니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

'렘을 움직여 볼까.'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무작정 렘을 움직였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면 그거야말로 골치 아픈 일이 따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물러서기엔 너무 아깝다.

정말로 이 탑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를 절호의 기회인데, 그냥 뒷걸음치기에는 여기까지 온 노력이 너무도 아깝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내가 뒤로 물러섰던 적이 있었던가.'

없다.

심지어 아무런 능력도 가지지 못했던 전생에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목적했던 것을 이뤄냈던 나다.

물론 그런 무모함 때문에 결국 죽음이라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와서 뒤로 물러선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렇게 내가 렘을 움직이려던 순간.

"꾸우웅…."

해츨링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봤다.

"뭐지?"

내 물음에, 해츨링은 날개를 작게 퍼덕이기 시작했다.

해츨링이 날개를 움직일 때마다 해츨링의 날개에서는 옅은 마력이 꾸물댔다.

"네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뜻인가?"

"꾸웅…."

해츨링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함께 해츨링은 더 많은 마력을 꺼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구구구구구!

땅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해츨링의 마력에 이 땅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헤르야인가?'

헤르야.

용인의 수장이자 이 탑 내에서 유일하게 어비스와는 별개된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해낸 존재.

그리고 해츨링은 그런 헤르야가 숨겨진 어떤 힘을 일깨우며 다시금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으니.

'…지켜보자.'

나는 해츨링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어쩌면 헤르야를 통해 무언가 전해 들었을 수도 있었고, 아니라면 내가 알지 못하는 드래곤들의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순간 해츨링의 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기어코 해츨링의 눈마저 붉게 물들기 시작했을 때.

쿠쿠쿠쿠쿠!

섬 전체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섬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쩍! 쩌저적!

섬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와 몰른, 그리고 해츨링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갈라지며 순간 갈라진 틈새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갈라진 틈새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씨앗? 아니면 열매?'

무어라 확정해서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건 분명 커다란 열매나 씨앗의 형태를 띠고 있는 물체였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해츨링은 급하게 자신의 마력을 움직이며 물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전의 해츨링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속성의 마력이었으니.

나는 지금 해츨링이 움직이는 마력이 헤르야로부터 전해 받은 기운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헤르야를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고.

결국 커다란 물체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열매보단… 씨앗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는데.'

분명히 그랬다.

해츨링의 붉은 기운이 감싸고 있는 건 커다란.

그것도 너무도 커다란 하나의 씨앗이었다.

'이게 대체… 뭐라는 말이냐.'

아직은 그 무엇을 예측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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