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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23화 (223/277)

223화

"그게 무슨 소리지?"

"1년? 너무 길다. 적어도 반년 안에 나는 이 탑을 부숴버릴 생각이다."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내가 진심이라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군."

"허…!"

헤르야가 결국 탄성을 터트렸다.

"게다가 내가 누구를 지킬 수 있을 만한 성미는 아니라서 말이야. 그럴 시간에 하루라도 빨리 이 탑이라는 괴물을 씹어 먹어 버릴 생각이다. 네 수명이 아직 1년도 넘게 남았다는 사실을 들으니 내 마음도 놓이기도 하고 말이지."

"하하하…."

헤르야가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다."

하지만 헤르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짓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리고 지금의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것도…."

"그런가?"

헤르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도 네게 선물을 줘야겠지. 사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아. 너보다 강하지 않은 내가 네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도 말이 안 되겠지. 그 대신…"

헤르야가 저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밖에 있던 그 아이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

"해츨링 말인가?"

"그래. 마침 그 아이도 나와 같은 불의 힘을 지닌 용이지 않던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해츨링을, 헤르야가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

원한의 숲에 도착한 지 벌써 며칠이 지나갔다.

"마음에 드나?"

"네, 좋아요오!"

몰른은 손에 들고 있는 활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곳에 온 뒤로 몰른에게 새로운 활이 생겼다.

나에게 장비를 만들어 준다고는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검은 이 탑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검.

이것보다 더 좋은 검이 있을 가능성도 낮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이 탑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검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이 검으로 취할 수 있는 이득이 꽤 많아.'

블러드 녀석들과의 충돌에서 이 검은 언제나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으니, 단순히 공격력 몇 정도 차이 난다고 해서 이 검을 포기할 순 없었다.

'어차피 지금 내게 공격력 조금은 큰 의미가 없기도 하고.'

방어구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장비 조금 바꾼다고 해서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강해진 상태였다.

"잘됐군. 지난번 싸움에서 배웠던 것들은 절대 잊지 마라. 앞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물론이죠!"

몰른이 소리쳤다.

해츨링은 헤르야와 함께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은 건, 용들끼리의 무언가가 있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본 헤르야가 해츨링에게 헛짓거리를 할 정도의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평화롭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싸워 온 내게 있어서 원한의 숲이라는 곳은 이름답지 않게 나에게 평온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 끝엔 뭐가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정말 이 탑을 없애 버리고 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변할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걸까?

정말 탑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될까?

그 뒤에는 설계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지구는, 그리고 나는.

플레이어들은?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굳이 생각할 이유도 없을 거고.'

괜히 복잡한 생각이 더해지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몰른. 활을 들어보겠나."

그 시간에 차라리 몰른을 훈련시키는 편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좋아요오오!"

어느새 활이라는 무기에 잔뜩 재미를 붙인 몰른이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

"분명 저 안으로 들어간 게 맞지?"

"예. 벌써 저 안으로 들어가 꽤 오랜 시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글쎄요.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저 안으로 달려들 수도 없고…."

그 무렵, 동굴의 밖에서는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강민과 해츨링, 몰른이 들어간 동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여기에 도착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블러드 내부에서도 강민이 가만히 서서도 드넓은 공간을 탐지해 내는 능력이 있다는 걸 파악한 상태였으니.

섣부르게 강민을 추적하는 멍청한 일 따위는 벌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 중에는 흔적을 추적하는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가 있었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강민의 흔적을 추적하며 뒤를 따랐다.

하지만 지금 저 동굴에서 강민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정말 그 어떤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가?"

"예.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기척이 사라졌습니다. 한강민을 추종하는 음유시인 한 명과 도마뱀도 마찬가집니다."

"알 수 없는 일이군. 네 녀석의 추적 능력을 완벽하게 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텐데도…."

"저도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블러드의 플레이어가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혹시 뒤쪽에 통로가 있는 건 아닐까? 아니야, 그렇다면 추적 능력에 흔적이 감지 되었어야 해.'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지켜보며 강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들로서는 이미 몇 번의 커다란 피해를 입은 뒤로 강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피하라는 지시가 내려 온 참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연락을 보내는 수밖에.'

그는 바쁘게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

"아이야. 기분이 어떠하냐."

"꾸우웅…."

헤르야는 드넓은 숲 한가운데로 해츨링을 끌고 왔다.

해츨링은 숲 한가운데에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해츨링의 부모는 해츨링이 태어난 순간 이미 죽어 있었고,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품이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음에도.

이 숲에서 해츨링은 그런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다.

변화는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해츨링의 작은 드래곤 하트 안으로 이 순간에도 거대한 마력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 숲은 내가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켜내고, 가꿔 온 숲이란다."

헤르야가 말했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왔던 숲.

탑이라는 괴물에게 자신의 세계가 먹혀 버렸음에도, 헤르야는 모든 힘을 다해서 이 숲을 지켜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무의 궁창 속에서도 이 숲만은 지키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해냈고, 결국에 지켜냈다.

그리고 이 숲이야말로 원한의 숲이 존재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 숲을 지켜내느라 내 수명의 대부분을 소모해 버린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헤르야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태어난 숲만큼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 숲에는 우리와 같은 용족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단다."

헤르야가 해츨링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해츨링은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헤르야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부볐다.

"하하하!"

헤르야는 해츨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의 자식은 아니지만, 정말 자신의 자식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무럭무럭 자라거라. 너와 함께하는 그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 만큼."

"꾸우웅…!"

해츨링이 답했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였다.

그때였다.

투둑- 투두둑-

해츨링의 비늘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해츨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헤르야도 마찬가지다.

"시작되는구나."

그저 그렇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 이후로도 변화는 계속됐다.

해츨링의 몸에 붙어 있던 붉은 비늘이 하나씩 바닥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해츨링의 자그마한 날개는 수분이 말라버린 나뭇가지처럼 말라갔다.

"꾸우우웅…."

해츨링은 조금 괴로운지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헤르야는 그런 해츨링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분, 아무런 말도 도움도 주지 않았다.

"아프겠지만 이겨내야 할 것이야."

"꾸우웅…."

해츨링의 비늘이 더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고, 어느새 마를 대로 말라버린 날개는 해츨링의 몸에서 떨어져 내렸다.

"꾸웅… 꾸우웅…."

해츨링은 아파 보였다.

비늘이 벗겨진 몸을 떨며 신음을 흘렸다.

"참아라. 참아야 한다."

해츨링에게 어떤 도움을 주기보다는 헤르야는 손을 휘저었다.

헤르야의 손짓에 따라 바람이 불어오고, 다시 사라졌다.

나뭇잎이 떨어지며 숲이 흔들렸다.

따스한 바람이 해츨링의 몸을 스쳐 지나갔고, 그럴 때마다 해츨링은 잠시나마 고통을 잊은 듯이 평온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힘내라, 아이야."

헤르야는 해츨링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해츨링은 헐벗은 채로 몸을 가냘프게 떨었다.

시간이 흘렀다.

해가 지고, 달이 떴다.

아직도 해츨링과 헤르야는 숲 한가운데에 서 있을 뿐이었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

'조금 시간이 걸리는군.'

어느새 몰른은 지쳐서 쓰러져 있을 만큼 오랜 시간 몰른을 훈련시켰지만 아직도 헤르야와 해츨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 해츨링에게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헤르야.'

그가 내게 했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

초감각의 범위 안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건 바로 해츨링이었다.

하지만 해츨링의 덩치가 커진 건 아니었다.

초감각의 범위 내에서 느껴지는 해츨링의 덩치는 전보다 조금 더 커졌을 뿐.

하지만 물리적인 덩치를 떠나 해츨링으로부터 느껴지는 존재감은 감히 이전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내가 탑에서 쓰러트렸던 성체의 드래곤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몰른도 그 존재감을 얼핏이나마 느꼈는지 지쳤던 몸을 일으킨 채 해츨링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옮겼고.

잠시 후.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해츨링과 헤르야였다.

그리고 나는 해츨링을 바라봤다.

'달라졌군.'

해츨링은 분명히 달라졌다.

해츨링의 비늘은 이전보다 더욱 견고하고 더 진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으며, 해츨링의 이마에 난 뿔이 커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조금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해츨링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런 내 시선을 읽었다는 듯, 헤르야가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이제 성체의 몸을 갖게 되었다네."

"성체의 몸?"

"그래. 드래곤의 육체는 몇 차례 비늘을 벗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성체의 몸을 갖게 되지. 본래라면 수백 년도 더 넘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 이 아이 하나쯤을 돕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네."

헤르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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