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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20화 (220/277)

220화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후로 어비스에는 큰 지각변동이 일었다.

"플레이어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알렉스가 말했다.

알렉스는 어비스 전역에 귀가 달려 있는 듯 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어비스 전체에서 끝없이 소식들을 전해듣고는 나에게 알려왔다.

"좋은 일이라고 한다면 플레이어들이 블러드에 대한 경계를 더욱 곤두세우고 있다는 거죠. 길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러드 플레이어를 색출해 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럴만 하지."

지난 번의 싸움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나 제네시스의 전멸을 통해서 더 이상 블러드의 플레이어가 설 자리가 없다고 플레이어들은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좋아할 수만은 없습니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알렉스가 정색하며 말했다.

"왜지?"

"그야… 놈들이 더욱더 음지로 파고든다는 뜻이니까요."

"그렇군."

확실히 그랬다.

그렇지 않아도 은밀하게 움직이던 블러드가 더욱더 경계심을 갖고 음지를 파고든다면, 지금보다 놈들을 색출해 내는 게 어려워지리라는 뜻이니까.

"그래도 꽤 진척되고 있지 않다고 했나?"

내가 물었다.

에이미의 한쪽 팔은 에이미가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아직 남아 있었다.

역시 렘을 통해서 절단해 냈기 때문일 거다.

'에이미를 처치할 때도 렘을 사용했으면 좋았을 뻔했어.'

하지만 그러기엔 렘의 위력이 약했다.

만약 오러 블레이드가 아닌 렘을 사용해서 끝까지 맞섰다면 에이미를 완전히 처치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예. 덕분이죠. 놈들의 근원 에너지를 축출하는 데에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내가 놈들에게 넘겼던 매튜.

그 녀석은 아직도 죽지 않은 채 살아 있었고.

덕분에 템플에서는 사념의 근원을 추적하는 데 있어서 많은 진척을 이뤄냈다고 했으니까.

"그나저나 근원 에너지라는 건 뭐지?"

"말 그대로죠. 사념의 근원. 이 어비스에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사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추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단하군."

진심이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는 템플의 플레이어들을 보고 있자니,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역시 세상에는 나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탑에서는 위드 길드가 그랬고.

어비스에서는 템플 길드가 그렇다.

정말 두 사람이 만나게 될 순간이 너무도 간절히 기대되는 순간이다.

"이제 머지 않아서 놈들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렉스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제 정말도 놈들도 칼을 빼들고 공격해 올 겁니다."

"알고 있다."

마지막 순간 놈이 내게 보냈던 경고는 알렉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 혼자 알고 있는 것 정도로 충분하다.

굳이 다른 사람을 동요시킬 생각은 없다.

특히나 다른 길드장들에게는 더더욱.

그들은 지난 소동으로 인해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길드의 확장에도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블러드에게 크게 데인 마당에 마구잡이로 길드원들을 받아들인다는 게 두려워 졌기 때문이겠지.

특히나 실력 있는 플레이어들에 대한 경계는 심해졌다.

그들은 몇 번이고 나를 통해 알렉스를 만났고, 플레이어들의 검증을 부탁하며 몇 차례 검증이 끝난 뒤에야 플레이어들을 길드에 받아들였다.

나는 그러는 동안 몰른과 해츨링을 혹독하게 교육해왔다.

'알렉스가 녀석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 줬어.'

가장 큰 문제는 상황 파악 능력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체력의 분배에 대한 문제.

지난번의 전투를 통해 알렉스가 느낀 문제점을 나에게 그대로 보고해줬고.

나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었으니 그들이 가진 단점을 보완해 주기 위해 혹독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어쨌든 이제는 꽤 많이 성장했지.'

특히나 해츨링의 성장속도가 눈에 띄었다.

해츨링의 덩치는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서 1.5배 이상 거대해졌고.

그와 함께 해츨링이 보유한 마나 역시 크게 증가했다.

해츨링의 마법은 이제 인간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수준으로 강해졌으니.

앞으로의 싸움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어 줄 게 분명했다.

"며칠 쉬다가 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놈들은 당장 움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알렉스가 말했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어. 겸사겸사 개척률도 챙길 겸."

어느새 내 개척률은 50%에 육박할 정도로 뛰어올랐다.

"아, 그래. 거기에 가 보면 좋겠는데."

어비스에 존재한다던 중앙섬.

아직 그 어떤 플레이어들도 발을 디디지 못했다는 미지의 땅.

"중앙섬 말씀이군요."

알렉스는 내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그래.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나?"

"글쎄요. 그곳은 아직 저희도 가 본 적이 없어서. 다만… 대략적인 지도는 구비해 뒀습니다."

그러더니 알렉스는 서류를 한참 뒤졌고.

이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언젠가 그곳에 입성할 때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겁니다만, 강민씨께라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겠죠."

그 지도에는 중앙섬으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의 루트가 기록되어 있었다.

"잘 쓰겠다."

"괜찮은 게 있으면 저희에게도 귀띔 좀 해주십쇼."

"물론이지."

나는 지도를 받아들고는 곧바로 움직일 채비를 갖췄다.

'중앙 섬.'

그곳을 통해서 어비스의 상부로 진입할 수 있을 거다.

지금 당장 어비스의 상부로 올라갈 수는 없을 테지만.

미리 확인해 두는 건 나쁘지 않을 거다.

***

알렉스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몰른은 해츨링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리고 몰른의 손에는 새로운 활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일전에 만났던 오디세우스의 대장장이 직접 만들어 준 활이었다.

몰른은 그 활을 들고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신나했고.

내가 보기에도 훌륭해 보이는 활이었다.

가벼우면서 탄성이 뛰어난 활이었으니.

한층 실력이 증가한 몰른에게 있어서 훌륭한 무기가 되어 줄 게 분명했다.

"꽤 긴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좋아요오오오!"

"꾸우웅!"

내 말에 몰른과 해츨링이 소리쳤다.

그들도 그동안 꽤 지루했던 모양인지, 멀리 떠난다는 사실에 꽤 들떠 있었다.

사실 나도 감추고는 있지만 괜스레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블러드와의 싸움은 잠시 뒤로 하고서라도, 이제 머지 않아서 정말 이 탑의 본질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두근대는 마음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도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잖아.'

전생에서부터 현생으로까지 이어지는 간절한 염원.

이 탑의 정상에 올라서 탑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

이제 그게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후우…."

나는 짧게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땅을 밟기 시작하니, 눈앞에는 다시 수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새로운 식물과, 동물과 지형을 발견했다는 메시지였고.

그 모든 것들은 동시에 나의 개척률이 되어 돌아왔다.

50퍼센트를 넘은 개척률은 이 순간에도 빠르게 다음 순간을 향해 도약하는 중이었다.

***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우리는 어느새 어비스의 외곽을 한참 벗어나 깊은 곳에 진입했다.

'이곳부터는 플레이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군.'

가끔 마주치는 이들은 모두가 거대 길드의 플레이어들.

그들은 다 개척률을 높이거나 숨겨진 던전을 탐색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수색하는 이들이었다.

'그만큼 이 근방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만만치 않다는 거겠지.'

물론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굳이 내가 움직일 필요도 없다.

이 근방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몰른과 해츨링 선에서 충분히 정리될 정도였고.

그 수가 아무리 모여든다고 해 봐야 해츨링의 손짓 한 번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기 일쑤였으니까.

'지금 위치가.'

나는 알렉스에게서 전해 받은 지도를 확인했고.

주변의 지형과 맞게 탐색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최단 루트라고는 하지만 어비스는 워낙 넓은 탓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여정이었다.

'여기부터는 상세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지 않군.'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자 플레이어들의 인적조차 없었다.

템플의 플레이어가 대체 어떻게 이곳을 파악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험난한 지형의 연속이었다.

'만약 관광지였다면 꽤 장관이었겠지만.'

협곡과 협곡을 넘나들고, 바다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강을 몇 번이나 건넜다.

당연히 그 속에서 서식하고 있던 몬스터들은 나의 스탯을 위한 제물이 되었지만 말이다.

'대단한 곳이야.'

어비스라는 곳 역시 수많은 차원에 존재하던 무수한 세계의 파편들이 모여 이루어진 곳.

지구에서 볼 수 없었던 지형과 경관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개척률 60%를 돌파했습니다.]

어느덧 일주일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개척률은 60%를 넘어 버렸다.

현재 미대륙의 개척률은 고작해야 50% 남짓.

그들 역시 힘을 내고 있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나와의 차이는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상태였다.

오랜 강행군 끝에 몰른과 해츨링도 꽤 지쳐 보였다.

그동안 끝없는 전투를 거치며 그들의 단점들은 꽤 보안이 된 상태였으니.

슬슬 괜찮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초감각의 범위를 극대화시키며 쉴 만한 곳을 탐색했고.

그때 마침.

'저기가 괜찮겠어.'

저 먼 곳 어딘가에서 적당한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그 내부에는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데에는 제격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가자."

나는 몰른과 해츨링을 이끌고 동굴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 않아 동굴이 있는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괜찮군. 여기에서 하루 정도 머물렀다가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좋아요!"

"꾸우웅!"

몰른과 해츨링은 지친 몸을 뉘었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식량을 꺼냈다.

그렇게 몰른과 해츨링이 식사를 시작했을 무렵, 나는 잠시 몸을 일으켰다.

"너희는 밥을 먹고 있어. 나는 잠시 동굴 내부를 살펴보고 올 테니까."

초감각의 범위 내에서는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지만,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어비스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세계다.

특히나 블러드가 본격적으로 칼날을 갈기 시작한 이상,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나.

몰른과 해츨링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열심히 배를 채우고 있었고.

나는 검을 뽑아 들고서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 움직였다.

내 발소리가 동굴 벽에 부딪쳐 메아리를 만들어냈고.

그 메아리가 거인의 발소리처럼 크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동굴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걸었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꽤 깊은 동굴이군.'

그리고 마침 나는 동굴의 코너에 도착했다.

초감각으로 파악하기로는 코너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실 지금까지 확인했으면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봐도 되겠지만, 돌다리도 짚어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나는 별 기대도 없이 코너를 돌아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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