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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18화 (218/277)

218화

블러드의 플레이어.

그의 이름은 매튜.

태어난 곳은 동유럽이었으나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부모가 선물한 강인한 육체가 있었고.

그 육체 하나만을 믿고 지금껏 살아왔다.

그렇게 각성하게 된 순간 망설임 없이 탑을 올랐다.

어차피 세상에 미련도 없으니 죽더라도 탑에서 죽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매튜는 탑에서 진정한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다.

자신은 강했고, 타인은 약했다.

어린 시절 받아왔던 무시와 차별을 그는 탑에서 풀어냈다.

모두를 죽이고, 무너트렸으며 끝까지 올라섰다.

그러던 순간 한 남자가 자신을 찾아왔다.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에게 거대한 힘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 매튜는 말했다.

'X이나 까라, 이 X발놈아.'

거친 말이었지만 어차피 예절 교육 따위 받아 본 적 없었다.

그저 귀찮으면 쳐죽이고, 빼앗을 뿐이었다.

그게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그 남자도 마찬가지일 뿐.

매튜는 남자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 순간, 매튜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탑의 비밀에 다가선 것만 같았고.

그와 무기를 마주한 한순간에 그는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말에 매튜는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그의 손을 잡는다면 정말로 그의 말대로 믿을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좋다. 나를 강하게 해 다오.'

매튜가 말한 순간.

남자는 붉은 파편 하나를 매튜의 가슴팍에 꽂아 넣었다.

말도 없이 벌어진 그 일에 매튜는 눈을 부릅 떴지만, 머지 않아 남자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매튜는 그 날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강해졌다.

탑의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인한 힘을 손에 넣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이 자는….'

그런 매튜의 눈앞에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한강민이라는 남자였다.

그 앞에서 매튜가 그동안 쌓아 왔던 '힘'이라는 개념은 다시 한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가 '강함' 혹은 '힘'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5초? 아니면 1초.

강민이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 짧은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싸움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한강민이라는 남자가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뿐인데.

그는 믿을 수 없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 인간이긴 한 건가?'

자신이 '그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다.

물론 그때에 비해서 지금은 더 강해졌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분명하다.

이 남자는 위험했고, 자신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알량한 재주로 부려낸 저주 따위로 감히 어찌 할 수 있을 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지금 이 순간 매튜가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으니.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바쁘게 눈을 굴렸다.

그가 나타난 순간 이미 블러드의 사념을 받아들인 모두는 경기를 일으키며 피를 토하고 있었고.

조지 역시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원래의 계획대로였으면 자신이 흘려보낸 사념의 힘과 마력이 뒤엉켜서 점점 사념에 잠식되어야 정상이었건만.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서 있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블러드의 리더인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도망쳐라. 물론 도망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그 녀석의 공격 범위 안에서 벗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을 것이다.]

처음에는 코웃음쳤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선 마력이 사념에 잠식되고서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설마 자신이 도망도 못 치고 죽어 버리라는 건 적어도 매튜의 지난 역사를 돌아본다면 충분히 코웃음을 칠 법한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짜였다.'

그 모든 설마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 버렸으니.

'도, 도망… 도망쳐야 한다.'

매튜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쓰러지더라도 먼 곳에 벗어나서 쓰러져야만 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몸을 움직였다.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자신의 시야에서 강민과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이 사라졌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입에서는 아직도 피가 쏟아졌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당장에라도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정말로 위험했으니까.

쓰러져서 몇 년을 앓아눕는다고 해도 저 남자 앞에 쓰러져 있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고, 그의 직감이 외치고 있었으니까.

순식간이었다.

이제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진 제네시스 길드의 무리.

고작 몇 초 만에 수km도 넘게 달려왔다.

'이쯤이면… 되었나.'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달렸을 무렵.

매튜가 다시 한번 피를 쏟아내며 옆에 있던 나무에 몸을 지탱했다.

"허억… 허억… 뭐 저런… 괴물 같은… 녀석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다니.

정말이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저런 녀석과 대체 어떻게 싸우라는 말이지? 혼자로는 안 돼. 둘? 셋? 아니, 어쩌면 그 녀석을 제외하한 모두가 덤벼야 어찌해볼 만할 것 같은데 말이지….'

매튜가 입가에 묻은 피를 훔쳐냈고.

휘청!

몰려오는 현기증에 잠시 균형을 잃었을 때.

홱!

누군가 그의 팔을 붙들었다.

"……?"

대체 누가?

자신의 옆에 누가 있었다는 말인가?

순간 밀려오는 터질듯한 불안감과 함께 매튜가 시선을 돌렸고.

"조심해. 넘어질 뻔하지 않았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강민이었다.

"으, 으헉, 으흐아아악!"

매튜가 전신을 뒤틀며 경련을 일으켰고, 그 충격에 코와 입에서 피가 다시 한번 솟구치기 시작했다.

***

멍청한 놈.

제 딴에는 열심히 도망치겠다고 도망친 것 같았지만.

어차피 의미도 없는 짓이었다.

놈이 어디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건 초감각의 범위 내였고.

아무리 빨리 도망간다고 해 봐야 반쯤 망가진 몸으로 얼마나 멀리 달아날 수 있었겠나.

결국 10초도 되지 않아 놈은 내게 붙잡혔으니.

콰직!

"크아아아악!"

내가 놈의 팔을 부여잡고 힘을 주자 놈의 팔이 뒤틀렸고.

놈은 다시금 피를 쏟아냈다.

"흥분하지 마라. 네가 죽으면 골치 아프거든."

"무, 무슨… 무슨 말이야…!"

"너는 죽을 수 없다. 내 허락 없이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놈이 소리쳤고.

다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거기 있나?"

그리고 나는 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에선.

"예."

템플의 플레이어가 걸어 나왔다.

알렉스는 지금쯤 오디세우스 쪽에서 몰른과 해츨링을 돕고 있을 테니.

대신 사람을 보내 온 거다.

"그, 그아아아악!"

블러드의 플레이어가 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그의 눈이 뒤집히고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차라리 이쪽이 낫겠군."

멀쩡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보단 혼절해 있는 쪽이 편하다.

"네가 데리고 가라. 괜찮은 정보 하나라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지."

"고맙습니다. 설마 이 정도로 상위 랭커를 사로잡을 수 있게 될 줄이야…."

나는 고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하나씩 착실히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에이미에 이어서 이 녀석까지.

"머지 않아서 놈들의 심장부에 닿을 수 있겠지?"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 보죠."

템플의 플레이어가 답했다.

확신은 하지 않았다.

아직 이 정도로라도 놈들의 모든 정체를 까발릴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는 말일 테지.

"그래. 그러면 나는…."

시선을 돌렸다.

"저길 먼저 정리하고 돌아가겠다."

"예."

템플의 플레이어는 금세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나 역시 다시 몸을 움직였다.

제네시스를 향한 일벌백계의 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

콰아아앙!

전장에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금세 잠시 모습을 감췄던 강민이 다시 돌아온 순간 땅이 진동을 하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군, 정말로.'

그 모습을 먼 곳에서 지켜보던 톰은 침을 삼켰다.

자신과 조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께 오디세우스를 공격하려고 했던 두 사람의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진 순간이다.

한 순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극명한 차이다.

죽음과 생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을지도 모를 결과다.

'조지의 모든 것은 몰락하게 되겠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조지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파괴될지도 모를 순간이다.

'한 사람에 의해서.'

저 먼 곳에 보이는 강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지만, 수백이 넘어가는 제네시스의 플레이어들은 감히 강민을 향해 무기조차 꺼내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토끼 무리 사이에 끼어든 늑대.

아니, 호랑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으니.

'더 이상… 볼 필요도 없겠군.'

솔직히 말하자면 볼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저런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고.

더 이상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저 한강민이라는 인간을 넘어서서 기울어진 균형의 무게추를 원래대로 돌리는 건 불가능해질 거라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

한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그리고 한 대륙의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있던 수장으로서.

지금의 결과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니.

"돌아가자."

그가 자신의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남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거야.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저 남자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목을 칠 거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을 테니까."

"……."

아레스의 플레이어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를 달 수도 없었고.

분해 할 여유 따위도 없었다.

분함을 느끼는 건, 어느 정도 상대해 볼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고.

그들이 몸을 돌린 순간.

콰아아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거센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고.

진한 피냄새가 드넓은 전장을 가득 메웠다.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 볼 수 없었다.

그저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소리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무는 수밖에.

그리고 자신들이 저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안도할 뿐이었다.

***

[힘 12를 포식했습니다.]

[민첩성 11을 포식했습니다.]

[체력9을 포식했습니다.]

[마력7을 포식했습니다.]

.

.

.

스탯 포식 메시지가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제네시스의 플레이어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었다.

'씁쓸하군.'

마음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으니.

'그럼… 다시 움직여야겠군.'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다.

[레이먼드 : 네 도움이 필요하다. 에이미가 너무 강해!]

아직도 오디세우스 쪽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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