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쾅! 콰콰쾅!
'마법인가? 아니면 폭탄?'
에이미가 다급히 시선을 움직였다.
'아…!'
에이미는 그 즉시 화살의 정체를 파악해 낼 수 있었다.
'화살과 마법이 뒤섞였어.'
분명히 그랬다.
자신이 펼쳐낸 마력의 장을 꿰뚫은 것도, 화살이 바닥에 처박힌 순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것도.
전부 다 화살에 마법이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궁수?'
에이미는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마궁수는 본 적이 없어.'
활이라는 무기 하나만 다루는 것도 벅차다.
마법도 마찬가지다.
둘 중 하나의 무기만으로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활과 마법을 이렇게 동시에 다룬다고?'
적어도 그녀가 알고 있는 어비스의 플레이어 중 마법과 활을 이 정도로 다룰 수 있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금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
'젠장. 가지가지 하는군.'
콰콰콰콰쾅!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폭발 속에서 에이미는 다급히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알렉스, 알렉스는?'
그녀가 급히 시선을 움직였지만.
알렉스는 이미 저 먼 곳으로 달아난 상황!
'이런 잔챙이들이…!'
에이미의 속에서 울분이 치솟았다.
갑자기 날아든 화살 때문에 알렉스를 놓쳤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다 잡은 쥐새끼를!'
저 화살 자체가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고,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야.'
한두 개라면 몰라도.
1초에도 몇 개나 날아드는 화살의 공격을 모두 허용한다면 에이미 그녀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는 없을 만큼 강력한 위력의 화살이다.
그럴수록 알렉스의 기척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 돼. 놓치면 안 돼!'
절호의 기회를 두고서 알렉스를 놓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알렉스를 놓치고 만다면 도대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남자로부터 거대한 힘마저도 부여 받은 상황인데!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에이미는 서둘러 알렉스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엄청난 속도로 알렉스와 가까워지는 에이미.
'대단하군.'
알렉스의 이동기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방향 전환도 자유로웠으며, 한 번에 움직이는 거리 역시도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공간을 쥐락펴락하는 알렉스의 절묘한 컨트롤.
콰아아앙!
'젠장!'
에이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알렉스는 에이미의 추격을 절묘하게 피해냈다.
이동 거리와 이동 방향에 끝없이 변수를 두며 에이미를 혼란시켰고.
혹시라도 에이미가 알렉스와 가까워지려는 찰나에는.
콰아아앙!
다시금 여지없이 에이미를 향해 마법이 뒤덮인 화살이 날아들었으니까.
'이런 미친 것들!'
에이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래. 이렇게는 안 된다는 거지.'
그녀도 이제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채로는 저 알렉스라는 쥐새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피해를 감수하는 수밖에.
팔을 한쪽 내주더라도 이번에 반드시 알렉스를 사로잡을 생각이다.
우웅! 우웅! 우웅!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막을 순식간에 열 개도 넘게 펼쳐냈다.
콰쾅! 콰콰쾅!
장막 너머로 이 순간에도 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그 충격이 장막 안에 있는 에이미를 강타했지만 에이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마력을 있는 그대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마력을 끌어모으는 속도는 이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다시금 거대한 마력의 장을 펼쳐냈다.
마력의 장은 그녀를 중심으로 수 킬로나 뻗어나갔고, 그 내부를 무거운 중력의 장이 짓눌렀다.
'네가 아무리 날쌔다고 해도, 이 안에서 빠져나가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날아오는 화살마저도 중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바닥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으니.
콰콰콰콰콰!
다시금 그녀의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고.
'죽어라!'
에이미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응…?"
이상했다.
이 공간 자체가 그대로 증발해 버릴 정도로 강렬한 마력을 내뿜었건만.
'뭐, 뭐지?'
이상했다.
공간이 증발하긴커녕.
'왜…?'
그녀가 모아 놨던 사념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게 다가 아니다.
정말로 이상한 건, 자신이 펼쳐낸 자기장 한가운데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는 것.
'설마…!'
에이미가 눈을 부릅떴다.
아직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이 상황을 모두 정리해 봤을 때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
'한강민…!'
그 사람 밖에는 없다.
'왔구나.'
에이미는 긴장했다.
저렇게 당당하게 마력의 장 안에 들어왔다는 건, 이미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판단을 끝마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자신이 펼쳐낸 사념들이 빠른 속도로 흩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워졌음에도 어떻게 강민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모든 게 알 수 없는 베일에 싸여 있던 중.
쿠웅! 쿠우웅! 쿠우우웅!
강민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거대한 중력에 눌려 있어서 그런지 그의 발걸음이 땅을 울리고 있었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강민이 에이미를 향해 다가왔다.
'안 돼. 겁먹어선 안 돼.'
혼란스럽지만, 에이미는 오히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스스로를 독려했고.
다시금 마력을 끌어 올렸다.
가슴에 박힌 파편이 반응하며 마력과 사념이 뒤엉켰다.
그런데 그 순간, 강민이 허공을 향해 검을 한 번 휘둘렀다.
'헛!'
에이미가 놀라서 숨을 들이켰지만, 다른 변화는 없었다.
에이미로서는 지금 강민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검짓이라니?
도대체 저런 짓을 왜 하는 걸까?
그런데 그때.
휘익!
바람이 몰아쳤다.
에이미의 뺨을 스치고 머리칼이 작게 휘날렸다.
'고작 바람…?'
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빠직!
"어…?"
에이미의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이, 이게… 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마력이 느껴진 것도, 그렇다고 어떤 능력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았건만.
툭!
그녀의 팔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끄아아아악!"
그제야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에이미가 괴성을 내질렀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피는 금세 멎었다.
그녀의 사념이 빠르게 상처를 회복시키고, 잘려나간 팔을 재생시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시.
후웅!
강민이 검을 움직였다.
그녀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몸을 굴렸고.
휘익!
그녀의 옆으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그뿐이었다.
아무런 현상도 벌어지지 않았다.
'대체… 뭐야, 뭐냐고!'
혼란이 더해진 가운데.
쿠우웅!
강민이 다가왔다.
마력의 장의 무거운 중력을 꿰뚫고 에이미의 앞에 다가온 강민은.
"땀이 나는군."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냈다.
"뭐…?"
고작 하는 말이 땀이 나는군, 이라니.
그 한마디는 에이미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
계산은 이미 끝났다.
에이미가 알렉스를 쫓는 속도와, 그녀가 펼쳐내는 기술들.
그리고 몰른과 해츨링의 합공을 짧게나마 지켜보며 에이미의 힘을 가늠해 냈다.
'생각보다 몰른과 해츨링이 잘해줬어.'
그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에이미가 알렉스를 쫓는 것을 방해하는 것까지였다.
하지만 몰른과 해츨링의 합공은 그보다 더 나아가 에이미가 자신의 힘을 꺼내들게 만들어 줬다.
'그 덕에 에이미의 힘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지.'
결국 내 작전은 여기까지였다.
알렉스가 정신없이 쏘다니며 에이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그녀가 잠시나마, 아주 잠시나마 멘탈이 흔들린 틈을 노려 에이미를 '암살'하는 것.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지.'
내 말대로 몰른과 해츨링의 공격에 에이미는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있는 그대로 꺼내든 채, 일명 '시즈 모드'를 실행해 버렸으니까.
'죽여 달라는 거지.'
그렇게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어서' 에이미 앞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생각보단 별로였군."
"뭐, 뭐…?"
그리고 검을 움직였다.
렘이 덮여 있는 검을 에이미를 향해 내질렀고.
푸각!
에이미의 가슴을 관통했다.
"어, 어억…!"
에이미가 신음을 토했다.
렘이 감싸고 있는 검은 정확하게 에이미의 심장을 관통했다.
파편은 건들지 않았다.
역시 에이미의 파편은 활용할 곳이 있을 테니까.
"끄억… 끄어억…."
에이미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검을 뽑아 들었고.
에이미의 몸이 천천히 고꾸라졌다.
'괜히 걱정을 했던 것인가.'
에이미의 힘은 내 생각에 한참이나 못 미쳤다.
아니면 내가 너무 강한 것일지도 모르고.
'이 마력의 장도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았어.'
물론, 알렉스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끄으윽…."
어느새 힘겨운 표정으로 내 옆으로 다가온 알렉스의 표정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저 도망만 다녔을 뿐인데도 입가에서 몇 번이나 피를 쏟아낸 흔적이 역력했고, 안구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으니까.
"커헉… 커흑…."
알렉스는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며 천천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정말… 괴물이십니까?"
알렉스가 물었다.
"그런가 보군. 그나저나 이 여자는 이제 어쩌지?"
이미 쓰러진 채로 죽어가는 에이미.
"후웁… 후웁… 우선 파편은 저희가…."
알렉스는 힘겹게 말을 내뱉으며 에이미의 몸에서 모습을 드러낸 파편을 향해 손을 옮겼고.
툭
알렉스가 에이미의 파편을 건드릴 순간.
파지지직!
파편으로부터 강력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크으악!"
알렉스가 괴성을 내지르며 나자빠졌고.
"……!"
나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빠직! 빠지직!
파편으로부터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흘러나온 검은 기운은 순식간에 에이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꾸드득- 꾸득-
에이미가 기괴한 형상으로 뒤틀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편은 이제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선을 넘으려 하는구나.]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더 이상 그 선을 넘으려 한다면, 너도 감당하기는 힘들 것인데.]
에이미의 목소리였지만, 에이미가 하는 말은 아니다.
분명히 저 검은 에너지를 에이미에게 건네준 그 존재인 것이 분명하다.
"누구냐."
[그런 뻔한 물음에 뻔한 답변을 해주리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
그래.
이렇게 끝났으면 재미없었겠지.
"걱정 마라. 그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날로 먹을 생각도 없었고."
말해 주기 싫다면,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